안니발레 카라치, 이아손과 메데이아 이야기, 1583~1584년, 팔라초 파바 그림 양옆에 세워진대리석 조각까지 모두 그림이다. 사람들이 올려다봤을 때 진짜 조각상처럼 느끼도록 시선의 각도에 맞춰 그렸다. - P156
원래 파르네세 가문은 파르마 지역을 지배하는 명문가였습니다. 이런 집안이 교황까지 배출하면서 더욱 막강해집니다. 파르네세 가문 출신인 바오로 3세가 교황에 오르자 가문 사람들은 권위에 어울리는 대저택을 로마 한복판에 짓기 시작합니다. 오른쪽의 지도와 같이 주변 땅을 사들여 저택 앞에 큰 광장을 만들고, 길도 팔라초 파르네세를 중심으로 직선으로 다시 만들어버린 거죠. 그 결과 새로운 도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 P158
팔라초 파르네세, 1517~1589년, 로마 현재는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 P158
파르네세 가문의 문장(왼쪽) 팔라초 파르네세 2층 중앙 발코니에는 여섯 송이의 백합이 박힌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 위로 바오로 3세를 기념하는 교황의 관이 올라가 있다. 티치아노, 교황 바오로 3세와 그의 손자들, 1545~1546년,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오른쪽) 바오로 3세는 파르네세 가문이 배출한 교황이다. 바오로 3세를 중심으로 왼쪽엔 추기경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오른쪽엔 파르마 공작인 오타비오 파르네세가 있다. - P159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신의 본질이자 큰 덕목입니다. 신들의사랑을 다룬 이 그림에서 우리는 종교적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분히 이중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다가 정작 안에서는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축제를 즐긴 셈이니까요. 그러나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던 시기가 바로 안니발레가 살던 17세기였고, 그 모순을 엿볼 수 있는 곳을 파르네세 갤러리라고 생각하면어떨까요? - P168
두 화가는 거의 동시에 로마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니발레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계보를 이으면서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를 고전적 아름다움을 계승한 정통파 화가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즉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이상화된 표현을 중시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풀어냈던 겁니다. - P169
반면 카라바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든 주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 과정에서 로마의 하층민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아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카라바조를 사실주의자로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두 화가는 그리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안니발레는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대상을 연구하고 체계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반면 카라바조는 관찰한모델을 드로잉 없이 캔버스 위에 바로 그렸습니다. 이 때문에 카라바조의드로잉은 거의 전해지지 않습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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