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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로드 2000㎞ - 광복 80주년, 일본에서 다시 만난 독립투사들
김종훈 지음 / 필로소픽 / 2025년 7월
평점 :
『항일로드 2000km』로 살펴본 일본열도 항일독립운동과 식민지배 기억의 현장
― 長崎(나가사키)에서 宮城(미야기)까지, 10개 지역 50개 역사 현장
1. 전체 답사경로 및 역사적 성격
가. 전체 답사경로
ㅇ(주요경로) 長崎(나가사키) → 福岡(후쿠오카) → 下関(시모노세키) → 広島(히로시마) → 大阪(오사카) → 京都(교토) → 金沢(가나자와) → 東京(도쿄) → 千葉(지바) → 宮城(미야기)
ㅇ(답사규모) 『항일로드 2000km』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본 열도 약 2,000km를 이동하며 10개 지역, 50개 주요 역사 현장을 찾아 독립운동가들의 의거, 수감, 순국과 일제 식민지배, 침략전쟁,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원폭피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등의 흔적을 살펴본 역사답사기임.
나. 임정로드, 약산로드와의 차이
ㅇ(경로성격) 『임정로드 4000km』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국 대륙 이동경로를, 『약산로드 7000km』가 김원봉, 의열단, 조선의용대의 활동을 중심으로 따라간다면, 『항일로드 2000km』는 특정 인물이나 조직의 이동경로가 아니라 일본 각지에 흩어진 항일독립운동과 식민지배의 현장을 하나의 답사로로 연결한 것임.
ㅇ(시대범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뿐 아니라 임진왜란, 메이지유신, 청일전쟁,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전쟁, 강제동원, 해방 이후 재일조선인 문제와 과거사 기억까지 함께 다룸.
다. 항일로드의 네 가지 역사적 축
ㅇ(독립운동) 박재혁, 김익상, 백정기, 윤봉길, 양근환, 김지섭, 이봉창, 조명하, 염상섭, 윤동주, 송몽규, 김시현 등 일본 땅에 남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마지막 흔적을 추적함.
ㅇ(제국주의) 메이지유신, 청일전쟁, 일본군 군사시설, 야스쿠니 신사 등 일본이 근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고 조선을 식민지화한 구조를 살펴봄.
ㅇ(식민피해) 군함도, 원폭피해, 우토로, 단바 망간광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통해 식민지 민중이 겪은 피해를 확인함.
ㅇ(기억연대) 고려미술관, 우토로 평화기념관,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후세 다쓰지 현창비, 大林寺(다이린지) 등을 통해 역사를 기억해 온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들의 연대도 함께 살펴봄.
2. 지역별 주요 답사경로 및 핵심 사적지
가. 長崎(나가사키)
1) 長崎刑務所(나가사키형무소)
ㅇ(백정기순국) 흑색공포단 계열 독립운동가 백정기는 1933년 上海(상하이) 六三亭(육삼정)에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등을 공격하려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34년 6월 5일 당시 長崎刑務所(나가사키형무소)가 있던 諫早(이사하야)에서 순국함.
ㅇ(김익상옥고) 의열단원 김익상도 1922년 上海(상하이) 黃浦灘(황포탄)에서 다나카 기이치 암살을 시도하다 체포된 뒤 일본으로 압송되어 나가사키에서 재판과 복역을 시작함.
ㅇ(수감경로) 김익상은 이후 福岡(후쿠오카), 熊本(구마모토), 鹿児島(가고시마) 등의 형무소로 옮겨져 장기간 옥고를 치른 뒤 1936년 출옥함. 따라서 약 15년의 옥고 전체를 나가사키형무소에서 보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음.
ㅇ(역사적의의) 일본 본토의 형무소가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장기간 가두고 끝내 목숨까지 빼앗은 식민지 탄압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줌.
2) 長崎港(나가사키항)
ㅇ(박재혁귀국길) 의열단원 박재혁은 1920년 부산경찰서 의거를 위해 上海(상하이)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長崎港(나가사키항)을 거쳤음.
ㅇ(마지막편지) 나가사키에서 부산의 동지에게 자신의 귀국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낸 뒤 부산으로 이동하여 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를 겨냥해 폭탄을 투척함.
ㅇ(순국지구분) 長崎(나가사키)는 박재혁의 순국지가 아니며, 박재혁은 체포 후 사형을 선고받고 大邱刑務所(대구형무소)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다 1921년 5월 11일 순국함.
3) 端島(하시마), 軍艦島(군함도)
ㅇ(해저탄광) 軍艦島(군함도)는 미쓰비시가 운영한 해저탄광으로 일본 근대산업화의 상징적 장소 가운데 하나임.
ㅇ(조선인동원) 일제 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에 동원되어 해저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였으며, 산업유산이라는 가치와 식민지 노동동원의 역사를 함께 보아야 할 장소임.
ㅇ(역사기억)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조선인 노동자의 동원과 노동환경을 어떻게 설명하고 기억할 것인지를 둘러싼 한일 간 역사문제가 이어지고 있음.
4) 爆心地(폭심지), 長崎原爆資料館(나가사키원폭자료관)
ㅇ(원폭투하) 1945년 8월 9일 미국이 長崎(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막대한 민간인 희생이 발생함.
ㅇ(조선인피폭) 당시 식민지배와 노동동원 등으로 일본에 거주하던 다수의 조선인도 원폭에 피폭되어 사망하거나 후유증을 겪음.
ㅇ(피해규모) 조선인 피폭자와 사망자의 정확한 규모는 자료와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특정 숫자를 확정하기보다 상당수 조선인이 함께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
ㅇ(역사적의의) 일본의 전쟁피해만이 아니라 조선인이 왜 일본 땅에서 원폭피해를 입게 되었는지 식민지배와 전쟁의 인과관계를 함께 살펴보게 하는 장소임.
5) 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ㅇ(가해책임) 일본 시민운동가 오카 마사하루의 뜻을 이어 설립된 자료관으로 원폭피해뿐 아니라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강제동원, 난징학살 등 일본의 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함께 다룸.
ㅇ(역사적의의) 일본의 전쟁피해만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한 침략과 식민지배를 동시에 기억해야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공간임.
6) グラバー園(글로버 가든)
ㅇ(근대화배경) 영국인 상인 토머스 글로버의 활동공간으로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 일본이 서구의 무기, 선박, 산업기술을 받아들이며 근대화되는 과정을 보여줌.
ㅇ(역사적연결) 직접적인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아니지만 서구식 군사력과 산업력을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의 근대화가 이후 군국주의와 대외팽창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장소임.
ㅇ(연계사적) 出島(데지마), 浦上天主堂(우라카미 천주당), 如己堂(뇨코도), 日本二十六聖人記念館(일본 26성인기념관), 大浦天主堂(오우라 천주당) 등과 함께 長崎(나가사키)의 대외교류, 종교탄압,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음.
나. 福岡(후쿠오카)
1) 福岡刑務所(후쿠오카형무소)
ㅇ(윤동주순국) 윤동주는 京都(교토)에서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 1945년 2월 16일 福岡刑務所(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함.
ㅇ(송몽규순국) 윤동주의 고종사촌이자 독립운동가인 송몽규 역시 같은 사건으로 수감되어 1945년 3월 7일 같은 형무소에서 사망함.
ㅇ(주사의혹) 송몽규가 가족에게 형무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는 취지로 말한 기록이 있어 생체실험 의혹 등이 제기되어 왔으나, 윤동주와 송몽규의 정확한 의학적 사망원인은 현재까지 확정되지 않았음.
ㅇ(역사적의의) 식민지 청년들의 사상과 민족의식까지 범죄로 규정했던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사상탄압을 상징하는 장소임.
2) 櫛田神社(구시다 신사), 聖福寺(쇼후쿠지)
ㅇ(히젠도) 櫛田神社(구시다 신사)에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도 가쓰아키가 1908년 봉납한 肥前刀(히젠도)가 전해짐.
ㅇ(사실관계) 봉납기록과 칼집에 남은 글 등을 근거로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로 전해지지만, 직접적인 물증에 대한 검증 문제도 있으므로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는 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함.
ㅇ(성복사) 聖福寺(쇼후쿠지)까지 함께 살펴보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들의 행적과 일본 사회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기억되어 왔는지를 추적할 수 있음.
ㅇ(우범선고영근)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연결하여 친일 행적을 보인 우범선과 그를 처단한 고영근의 삶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음.
ㅇ(연계사적) 水城(미즈키) 유적, 大宰府政庁(다자이후 정청), 九州国立博物館(규슈국립박물관)은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임.
다. 下関(시모노세키)
1) 山口地方裁判所下関支部(야마구치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지부)
ㅇ(관부재판) 부산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등 10명이 1992년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제기한 關釜裁判(관부재판)의 현장임.
ㅇ(일부승소) 1998년 4월 27일 1심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각각 30만 엔을 지급하도록 명령하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림.
ㅇ(후속재판) 이후 항소심과 최고재판소에서는 피해자 측이 패소하였으나, 일본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일부 인정한 매우 중요한 재판으로 평가됨.
ㅇ(역사적의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침묵을 깨고 일본 사법부에 직접 책임을 물은 전후 과거사 투쟁의 대표적 장소임.
2) 朝鮮通信使上陸地(조선통신사 상륙지)
ㅇ(교류역사)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들어올 때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한 지역으로 조선과 일본이 침략과 지배의 관계만이 아니라 외교와 문화교류를 지속해 온 역사도 보여줌.
ㅇ(역사적의의) 한일관계를 침략과 항일이라는 한 가지 틀만으로 보지 않고 전쟁 이전 오랜 외교, 문화교류의 역사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음.
ㅇ(연계사적) 赤間神宮(아카마 신궁), 関門海峡(간몬해협) 등과 함께 조선통신사의 이동경로와 한일 해상교류를 확인할 수 있음.
3) 日清講和記念館(청일강화기념관)
ㅇ(시모노세키조약) 1895년 청일전쟁을 끝낸 下関条約(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된 장소임.
ㅇ(조선문제) 조약에서 청이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도록 하였지만 이는 조선의 실질적인 자주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일본이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됨.
ㅇ(역사적의의) 청일전쟁 이후 동아시아 세력균형이 일본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조선 식민지화가 본격화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핵심 장소임.
4) 長州藩(조슈번), 薩摩藩(사쓰마번)
ㅇ(메이지유신) 長州藩(조슈번)과 薩摩藩(사쓰마번)은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明治維新(메이지유신)을 주도한 핵심세력임.
ㅇ(군국주의연결) 이들 세력에서 배출된 정치인과 군인들이 메이지 정부의 핵심을 차지하면서 중앙집권국가와 근대 군대를 건설하였고, 이후 일본의 대외침략과 조선 식민지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함.
ㅇ(역사적의의) 일본 근대화를 단순한 성공담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근대화, 군국주의, 제국주의 팽창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함.
라. 広島(히로시마)
1) 広島平和記念公園(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韓国人原爆犠牲者慰霊碑(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
ㅇ(원폭피해) 1945년 8월 6일 広島(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며, 강제동원 등을 포함하여 일본에 거주하던 다수의 조선인도 피폭됨.
ㅇ(한국인위령비)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비는 1970년 건립되었고 처음에는 평화기념공원 밖에 위치하다가 1999년 공원 안으로 이전됨.
ㅇ(기억의주변화) 위령비의 위치변화는 원폭피해의 역사 속에서도 조선인 희생이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줌.
ㅇ(피해규모) 조선인 피폭자와 사망자 수는 연구마다 추정치가 다르므로 정확한 규모를 단일 숫자로 단정하지 않고 다수의 조선인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함.
2) 広島大本営跡(히로시마대본영 터)
ㅇ(청일전쟁)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広島城(히로시마성) 안에 일본군 大本営(대본영)이 설치되었고 메이지 일왕도 이곳에 머무름.
ㅇ(군사도시) 広島(히로시마)는 병력과 무기, 군수물자를 아시아 대륙으로 보내는 일본의 핵심 군사, 병참도시로 기능함.
ㅇ(양면성) 따라서 히로시마는 1945년 원폭피해의 상징인 동시에 그 이전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을 수행한 군사거점이었다는 두 측면을 함께 보아야 함.
마. 大阪(오사카)
1) 大阪城(오사카성)
ㅇ(윤봉길수감) 윤봉길은 1932년 上海(상하이) 虹口公園(홍커우공원) 의거 후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으로 압송됨.
ㅇ(오사카수감) 1932년 11월 20일 神戸(고베)에 도착한 뒤 大阪城(오사카성) 안 육군위수형무소에 수감되어 약 한 달을 보냄.
ㅇ(가나자와이송) 12월 18일 金沢(가나자와)로 이송되었으며 다음 날인 12월 19일 총살되어 순국함.
ㅇ(역사적의의) 大阪城(오사카성)은 윤봉길이 생애 마지막 한 달을 보낸 장소이자 일본군이 독립운동가를 군사재판과 형무소를 통해 처형한 과정을 보여주는 현장임.
2) 天王寺公園(덴노지공원)
ㅇ(염상섭독립선언) 염상섭은 국내 3.1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1919년 3월 19일 大阪(오사카) 天王寺公園(덴노지공원)에서 조선인 유학생과 노동자들의 독립선언대회를 열 계획을 세움.
ㅇ(사전준비) 독립선언서와 격문까지 작성하여 준비했으나 일본 경찰의 탄압으로 체포되면서 계획한 형태의 대중집회는 성사되지 못함.
ㅇ(역사적의의) 3.1운동의 독립열기가 일본 본토의 유학생과 노동자 사회로 빠르게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장소임.
ㅇ(연계사적) 大阪市中央公会堂(오사카시중앙공회당) 일대에서도 재일조선인들의 집회와 사회운동 흔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음.
3) 生玉公園(이쿠타마공원) 지하 방공호, 大阪陸軍造兵廠(오사카육군조병창)
ㅇ(재일조선인) 大阪(오사카)는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이 이주하여 노동하며 살아간 대표적인 재일조선인 집거지역 가운데 하나였음.
ㅇ(방공호) 生玉公園(이쿠타마공원)의 지하 방공호는 전쟁 말기 미군 공습과 전시체제 속에서 살아간 주민들의 삶과 전쟁의 흔적을 보여줌.
ㅇ(군수도시) 大阪陸軍造兵廠(오사카육군조병창)은 일본 육군의 대표적 군수공장으로 大阪(오사카)가 거대한 군수산업도시로 기능했던 역사를 보여줌.
ㅇ(역사적의의) 전쟁을 지휘한 군부뿐 아니라 그 전쟁을 떠받친 군수산업과 그 아래에서 살아야 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삶을 함께 살펴보게 하는 장소임.
4) 조명하의 大阪(오사카) 생활지
ㅇ(일본생활) 조명하는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大阪(오사카)에서 노동하며 공부하다 臺灣(대만)으로 이동함.
ㅇ(실제의거지) 조명하의 실제 의거지는 大阪(오사카)가 아니라 1928년 5월 14일 臺灣(대만) 臺中(타이중)임.
ㅇ(타이중의거) 조명하는 臺中(타이중)에서 일본 왕족이자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를 독검으로 공격함.
ㅇ(역사적의의) 大阪(오사카)의 흔적은 의거 현장이 아니라 조명하가 노동과 생활을 통해 식민지 현실을 체감하고 항일투쟁으로 나아간 생애의 한 단계로 이해해야 함.
바. 京都(교토)
1) 耳塚(미미즈카)
ㅇ(조선침략) 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당시 일본군이 전공의 증거로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와 묻은 곳으로 전해짐.
ㅇ(역사적의의) 일제강점기 항일사적지는 아니지만 일본의 조선 침략이 근대 식민지배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임.
ㅇ(연계사적) 方広寺(호코지) 종에 새겨진 「国家安康(국가안강)」, 「君臣豊楽(군신풍락)」 글귀와 도쿠가와, 도요토미 세력의 갈등도 일본사와 조선침략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
2) 同志社大学(도시샤대학)
ㅇ(윤동주유학) 윤동주는 1942년 東京(도쿄) 立教大学(릿쿄대학)에 입학한 뒤 같은 해 京都(교토) 同志社大学(도시샤대학)으로 옮겨 수학함.
ㅇ(체포) 京都(교토)에서 시를 쓰고 생활하다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됨.
ㅇ(역사적의의) 우리말과 민족정체성 자체가 억압받던 시기 일본에서 조선어로 시를 쓰며 자신의 시대와 양심을 성찰한 윤동주의 마지막 청년기를 보여주는 장소임.
3) 윤동주, 송몽규 하숙집 터
ㅇ(유학생활) 京都(교토)에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유학생활을 하던 하숙집과 두 사람의 생활동선을 보여주는 흔적이 남아 있음.
ㅇ(공동운명) 두 사람은 함께 일본에서 공부하고 독립운동 관련 혐의로 체포된 뒤 福岡刑務所(후쿠오카형무소)에서 차례로 생을 마침.
ㅇ(역사적의의) 거대한 역사적 사건 이전에 두 청년이 실제로 먹고 자고 공부하고 미래를 고민했던 일상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큼.
4) 高麗美術館(고려미술관)
ㅇ(정조문) 재일조선인 정조문이 평생 모은 한국 문화재를 바탕으로 세운 미술관임.
ㅇ(문화운동)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여 일본 사회에 한국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씀.
ㅇ(역사적의의) 독립운동을 무장투쟁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해방 이후 재일동포가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온 노력까지 확장하여 볼 수 있게 함.
5) 京都御所(교토어소), 二条城(니조성)
ㅇ(메이지유신) 막부 말기 일본 정치권력의 변화와 明治維新(메이지유신)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는 핵심 장소임.
ㅇ(왕정복고) 막부체제가 붕괴되고 천황 중심의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은 이후 중앙집권적 군사국가와 일본 제국주의의 출발점이 됨.
ㅇ(역사적의의) 일본의 근대화와 조선 식민지배가 서로 분리된 역사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역사과정이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함.
6) 宇治(우지)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ㅇ(마지막사진) 윤동주가 1943년 귀국을 앞두고 학우들과 宇治(우지)를 찾아 생전 마지막으로 알려진 사진을 남긴 장소 부근임.
ㅇ(비건립) 일본 시민들의 노력으로 2017년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가 세워짐.
ㅇ(역사적의의) 윤동주를 단순한 한국의 저항시인으로 기리는 것을 넘어 한일 시민이 과거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현장임.
7) ウトロ平和祈念館(우토로평화기념관)
ㅇ(마을형성) ウトロ(우토로)는 1940년부터 추진된 京都飛行場(교토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숙소를 바탕으로 형성된 마을임.
ㅇ(해방이후) 해방 뒤에도 많은 주민이 일본에 남아 빈곤과 차별, 강제퇴거 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지켜옴.
ㅇ(평화기념관) 2022년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개관하여 전시동원, 재일조선인의 삶, 강제퇴거 반대운동과 한일 시민연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음.
ㅇ(역사적의의) 식민지배가 1945년 8월 15일에 단절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의 삶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장소임.
8) 丹波マンガン記念館(단바망간기념관)
ㅇ(광산노동)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인 망간을 채굴하던 광산의 흔적을 보존한 장소임.
ㅇ(조선인노동) 일제강점기 조선인과 피차별부락 출신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광산노동을 담당함.
ㅇ(기억계승) 광산에서 직접 일했던 사람과 그 가족이 중심이 되어 노동의 역사를 보존하고 전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큼.
ㅇ(역사적의의) 일본의 전쟁수행을 가능하게 만든 산업현장 뒤에 식민지 노동자들의 희생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공간임.
사. 金沢(가나자와)
1) 윤봉길 순국지
ㅇ(순국) 윤봉길은 1932년 12월 19일 金沢(가나자와)의 일본군 육군형무소 공병작업장 일대에서 총살되어 25세로 순국함.
ㅇ(현재현장) 순국지 일대는 현재 군사시설과 관련된 지역으로 자유로운 접근이 제한되는 곳이 있음.
ㅇ(역사적의의) 上海(상하이) 의거로 중국과 세계에 한국 독립운동의 존재를 각인시킨 윤봉길이 생을 마감한 장소임.
2) 野田山(노다야마) 윤봉길 암장지
ㅇ(비밀매장) 일제는 윤봉길의 유해를 野田山(노다야마) 공동묘지 일대에 은밀하게 매장함.
ㅇ(14년세월) 유해는 광복 이후인 1946년 발굴될 때까지 약 14년 동안 일본 땅에 묻혀 있었음.
ㅇ(박인조) 현지에서 윤봉길 암장지와 관련 유적을 지키고 알리는 데 힘쓴 박인조 등 재일동포의 노력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음.
ㅇ(역사적의의) 독립운동가의 죽음 이후 시신마저 숨기려 했던 일제의 처우와, 광복 뒤 유해를 찾아 조국으로 모신 사람들의 노력을 동시에 보여줌.
3) 金沢城(가나자와성)
ㅇ(마지막밤) 윤봉길이 순국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일본군 관련 시설이 金沢城(가나자와성) 일대에 있었음.
ㅇ(현재흔적) 『항일로드 2000km』는 당시 시설의 위치를 옛 지도와 현재 공간을 비교해 추적하며 그 위치가 오늘날 성 안의 일상적인 시설로 변해버린 현실을 보여줌.
ㅇ(역사적의의) 화려하게 복원된 관광지의 현재 모습 아래 독립운동가가 마지막 밤을 보낸 식민지 군사시설의 기억이 묻혀 있음을 보여줌.
4) 윤봉길 유해 안치소 터
ㅇ(유해발굴) 1946년 윤봉길의 유해가 野田山(노다야마) 암장지에서 발굴됨.
ㅇ(임시안치) 유해는 조국으로 봉환되기 전 金沢(가나자와)의 관련 장소에 임시 안치됨.
ㅇ(국내봉환) 이후 이봉창, 백정기의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되어 현재 서울 孝昌公園(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됨.
ㅇ(역사적의의) 순국과 암장으로 끝났던 윤봉길의 마지막 길이 광복 후 유해발굴과 조국봉환으로 완성되는 장소임.
5) 金沢(가나자와) 윤봉길 추모관
ㅇ(추모관추진) 광복 80주년인 2025년 윤봉길 의사의 上海(상하이) 의거일인 4월 29일에 맞추어 金沢(가나자와)에 윤봉길 추모관을 개관하는 계획이 추진됨.
ㅇ(개관연기) 그러나 일본 우익단체 등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당초 예정된 개관이 연기됨.
ㅇ(역사적의의) 윤봉길을 일본 현지에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식민지배와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인식 문제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줌.
6) 大東亜聖戦大碑(대동아성전대비)
ㅇ(전쟁미화) 石川護国神社(이시카와호국신사) 앞에 세워진 대형 비석으로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성전’으로 규정하는 역사관이 담겨 있음.
ㅇ(팔굉위우) 비석에는 八紘為宇(팔굉위우)와 같이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이념과 연결되는 표현도 남아 있음.
ㅇ(역사적의의) 일본 사회 내부에 침략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역사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
아. 東京(도쿄)
1) 양근환 의거 관련지
ㅇ(민원식처단) 유학생 양근환은 1921년 2월 16일 조선인의 일본 의회 참정권운동을 추진하던 친일인사 민원식을 단도로 공격하여 처단함.
ㅇ(장소기록) 당시 자료에는 의거 장소가 帝国ホテル(제국호텔), 동경역전호텔, 철도호텔 등으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음.
ㅇ(답사현장) 『항일로드 2000km』에서는 東京ステーションホテル(도쿄스테이션호텔)을 관련 현장으로 답사하므로, 이를 현재의 답사거점으로 보되 당시 장소 명칭에는 자료 차이가 있음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음.
ㅇ(역사적의의) 일제가 내세운 식민지 조선인의 참정권이라는 회유책에 맞서 식민지배 자체의 철폐를 요구한 의열투쟁이었음.
2) 二重橋(니주바시), 김지섭 의거지
ㅇ(왕궁의거) 의열단원 김지섭은 1924년 1월 일본 왕궁 二重橋(니주바시) 일대에서 일본 왕실을 겨냥해 폭탄 3개를 투척함.
ㅇ(불발) 폭탄은 모두 폭발하지 않았고 김지섭은 현장에서 체포됨.
ㅇ(역사적의의)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의 가장 직접적인 상징인 왕궁을 공격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열투쟁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짐.
3) 警視庁(경시청) 앞, 이봉창 의거지
ㅇ(사쿠라다문의거) 한인애국단원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桜田門(사쿠라다몬) 밖 警視庁(경시청) 정문 앞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히로히토 일왕의 행렬을 향해 폭탄을 투척함.
ㅇ(거사결과) 일본 궁내대신의 마차를 일왕의 마차로 오인하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됨.
ㅇ(역사적의의) 침체되어 있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같은 해 윤봉길 의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됨.
4) 이봉창 순국지
ㅇ(사형선고) 이봉창은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음.
ㅇ(순국) 1932년 10월 10일 市谷刑務所(이치가야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함.
ㅇ(역사적의의)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차별을 경험했던 한 청년이 한인애국단에 들어가 일왕을 직접 겨냥한 독립운동가로 변화한 삶의 마지막 장소임.
5) 日比谷公園(히비야공원), 2.8독립운동 관련지
ㅇ(2.8독립선언) 1919년 2월 8일 일본 유학생들이 東京(도쿄)에서 조선독립청년단 명의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함.
ㅇ(실제발표장소) 독립선언서가 실제로 낭독된 장소는 당시 東京朝鮮基督教青年会館(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관)임.
ㅇ(히비야공원) 『항일로드 2000km』는 日比谷公園(히비야공원)을 2.8독립운동 관련 현장으로 답사하지만 실제 독립선언 낭독장소라고 보아서는 안 됨.
ㅇ(역사적의의) 2.8독립선언은 국내 3.1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독립운동의 불길이 국내외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됨.
6) 明治神宮(메이지신궁)
ㅇ(천황숭배) 메이지 일왕과 왕비를 신격화하여 제사하는 신사로 근대 일본의 천황숭배와 국가신도체제를 상징함.
ㅇ(제국주의배경) 메이지 시대 일본은 중앙집권국가와 근대 군대를 구축한 뒤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 식민지화와 대륙침략으로 나아감.
ㅇ(역사적의의) 메이지 시대를 단순한 일본 근대화 성공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이어진 역사까지 함께 살펴보게 함.
7) 乃木神社(노기신사)
ㅇ(군인신격화)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을 지휘한 노기 마레스케를 신으로 모신 장소임.
ㅇ(순사) 노기는 메이지 일왕이 사망하자 부인과 함께 자결하였고 이후 일본 사회에서 충성과 희생의 상징으로 미화됨.
ㅇ(군국주의) 이러한 죽음과 충성의 미화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국주의적 가치관과 이후 가미카제 특공대의 정신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임.
8) 靖国神社(야스쿠니신사)
ㅇ(전쟁영령) 일본이 벌인 전쟁에서 천황을 위해 죽은 군인과 군속 등을 신으로 제사하는 국가신도와 군국주의 기억의 핵심공간임.
ㅇ(조선인합사) 식민지 조선인 가운데 일본군과 군속 등으로 동원된 뒤 본인이나 유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합사된 사람들도 존재함.
ㅇ(역사논란)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와 연결되어 현재까지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
9) 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 묘
ㅇ(조선침략)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근대국가 형성의 핵심 정치인이자 초대 한국통감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과 식민지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함.
ㅇ(안중근의거) 1909년 10월 26일 安重根(안중근)이 哈爾濱(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함.
ㅇ(역사적의의) 일본에서 국가적 인물로 추모되는 이토의 묘와 한국에서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안중근을 함께 살펴보면 한 인물을 둘러싼 양국 역사인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음.
10) 布施辰治(후세 다쓰지) 현창비
ㅇ(조선인의변호인)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2.8독립선언 관련 학생들과 김지섭, 박열 등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식민지 민중을 적극적으로 변호함.
ㅇ(학살진상규명)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도 노력함.
ㅇ(건국훈장)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활동을 기려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함.
ㅇ(역사적의의) 식민지배국 일본 안에서도 조선인의 독립과 인권을 위해 싸운 일본 시민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임.
11) 立教大学(릿쿄대학), 윤동주 하숙집 터
ㅇ(도쿄유학) 윤동주는 1942년 立教大学(릿쿄대학)에 입학하여 東京(도쿄)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함.
ㅇ(시작품) 東京(도쿄)에서 생활하며 우리말로 시를 썼고 이후 京都(교토) 同志社大学(도시샤대학)으로 옮김.
ㅇ(하숙집) 윤동주의 하숙집 터는 식민지 조선 청년이 일본의 중심부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자신의 시대와 삶을 고민했던 일상의 공간임.
ㅇ(역사적의의) 윤동주의 저항은 무장투쟁은 아니었지만 우리말과 양심을 지키는 문학적 저항이라는 점에서 항일로드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룸.
12) 早稲田(와세다) 스코트홀
ㅇ(신간회도쿄지회) 1927년 新幹会東京支会(신간회 도쿄지회)가 창립된 장소임.
ㅇ(민족협동전선) 신간회는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세력이 일제 식민지배에 맞서 연합한 대표적인 민족협동전선 조직임.
ㅇ(재일운동) 도쿄지회 창립은 국내에서 시작된 신간회운동이 일본에 살던 조선인 사회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줌.
13) 女たちの戦争と平和資料館(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
ㅇ(위안부자료) 2005년 개관한 시민자료관으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함.
ㅇ(가해책임) 피해자의 고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군과 국가가 위안부 제도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일본의 가해책임을 함께 다룸.
ㅇ(역사적의의) 일본 내 시민사회가 정부의 역사인식과 별개로 전쟁가해의 역사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대표적인 공간임.
14) 明治大学(메이지대학), 김시현 관련지
ㅇ(김시현) 김시현은 일본 유학을 경험한 뒤 의열단에서 활동하며 국내외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임.
ㅇ(청년시절) 明治大学(메이지대학) 관련 흔적은 일본에서 공부하던 조선 청년이 식민지 현실을 인식하고 독립운동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줌.
ㅇ(역사적의의) 일본 유학이 단순한 개인의 학업과 출세를 위한 길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 청년들이 민족문제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음을 보여줌.
15) 横網町公園(요코아미초공원), 東京都復興記念館(도쿄도부흥기념관)
ㅇ(관동대지진) 1923년 9월 1일 關東大震災(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조선인이 방화했다”,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등의 허위정보와 유언비어가 퍼짐.
ㅇ(조선인학살) 일본 군과 경찰, 자경단 등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살해되는 대규모 학살이 발생함.
ㅇ(희생규모) 정확한 조선인 희생자 수는 사료와 연구에 따라 차이가 크므로 특정 숫자를 확정하기보다 대규모 학살이 발생했다는 사실과 그 발생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함.
ㅇ(추도비) 공원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는 비가 있으며 일본 시민들이 오랫동안 추도행사를 이어옴.
ㅇ(역사적의의) 국가와 언론, 사회가 만들어낸 혐오와 유언비어가 실제 집단학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 역사현장임.
16) 新大久保駅(신오쿠보역), 이수현
ㅇ(의로운죽음) 2001년 1월 26일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은 新大久保駅(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일본인 세키네 시로와 함께 숨짐.
ㅇ(성격구분)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아니지만 한일 두 나라 시민 사이의 인간애와 연대를 상징하는 장소로 『항일로드 2000km』의 도쿄 답사에 포함됨.
ㅇ(역사적의의) 가해와 피해의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오늘의 한일관계를 인간적 연대와 미래로 이어가야 한다는 책의 문제의식을 보여줌.
자. 千葉(지바), 宮城(미야기)
1) 千葉刑務所(지바형무소)
ㅇ(김지섭옥고) 김지섭은 1924년 二重橋(니주바시) 의거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市谷刑務所(이치가야형무소)를 거쳐 千葉刑務所(지바형무소)로 이감됨.
ㅇ(순국) 장기간 옥고를 치르던 중 1928년 2월 20일 뇌내출혈로 千葉刑務所(지바형무소)에서 순국함.
ㅇ(역사적의의) 일본 왕궁을 직접 겨냥한 의열단원의 투쟁이 결국 일본 감옥에서의 죽음으로 끝난 마지막 현장임.
2) 宮城県(미야기현) 大林寺(다이린지)
ㅇ(안중근지바도시치) 旅順(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을 감시했던 일본군 헌병 千葉十七(지바 도시치)는 안중근의 인품과 신념에 감화된 것으로 전해짐.
ㅇ(안중근유묵) 안중근은 지바 도시치에게 「為国献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는 유묵을 남김.
ㅇ(기억계승) 지바 도시치는 유묵을 평생 간직하였고, 이후 그의 고향과 관련된 大林寺(다이린지)에서 안중근을 기리는 기억이 이어짐.
ㅇ(역사적의의) 식민지배와 독립투쟁으로 서로 적대했던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도 인간에 대한 존경이 생길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소임.
ㅇ(답사종착) 항일로드의 마지막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물이 아니라 안중근과 일본인 헌병 사이의 인간적 인연을 기억하는 장소에서 끝낸다는 점에서 책 전체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줌.
3. 『항일로드 2000km』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주요 인물
가. 직접 의열투쟁
1) 박재혁
ㅇ(부산의거) 1920년 부산경찰서 폭탄 의거를 결행한 의열단원으로 長崎港(나가사키항)은 거사 직전 귀국길의 중요한 경유지임.
2) 김익상
ㅇ(의열투쟁) 1921년 조선총독부 폭탄 의거, 1922년 上海(상하이) 黃浦灘(황포탄) 다나카 기이치 암살 시도를 전개하고 일본 여러 형무소에서 장기간 옥고를 치름.
3) 백정기
ㅇ(육삼정의거) 1933년 上海(상하이) 六三亭(육삼정) 의거를 준비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34년 長崎刑務所(나가사키형무소)에서 순국함.
4) 윤봉길
ㅇ(홍커우의거) 1932년 上海(상하이) 虹口公園(홍커우공원) 의거 후 일본으로 압송되어 大阪(오사카)에 수감된 뒤 金沢(가나자와)에서 순국함.
5) 양근환
ㅇ(민원식처단) 1921년 東京(도쿄)에서 친일 참정권운동을 추진하던 민원식을 처단함.
6) 김지섭
ㅇ(왕궁의거) 1924년 東京(도쿄) 二重橋(니주바시)에서 일본 왕실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고 이후 千葉刑務所(지바형무소)에서 순국함.
7) 이봉창
ㅇ(사쿠라다문의거) 1932년 東京(도쿄) 桜田門(사쿠라다몬) 밖에서 히로히토 일왕을 겨냥해 폭탄을 투척하고 같은 해 사형으로 순국함.
8) 조명하
ㅇ(타이중의거) 일본 大阪(오사카)에서 생활한 뒤 臺灣(대만)으로 이동하여 1928년 臺中(타이중)에서 일본 왕족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를 공격함.
나. 청년, 학생, 문학운동
1) 윤동주
ㅇ(문학저항) 東京(도쿄), 京都(교토)에서 유학하며 우리말로 시를 썼고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福岡刑務所(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침.
2) 송몽규
ㅇ(독립운동)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京都帝国大学(교토제국대학) 유학 중 체포되어 福岡刑務所(후쿠오카형무소)에서 순국함.
3) 염상섭
ㅇ(오사카독립선언) 1919년 大阪(오사카) 天王寺公園(덴노지공원)에서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독립선언대회를 추진함.
4) 김시현
ㅇ(의열단활동) 일본 유학 이후 의열단에 참여하여 국내외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함.
다. 일본인 연대자
1) 布施辰治(후세 다쓰지)
ㅇ(조선인의변호인) 독립운동가와 식민지 조선인을 변호하고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규명에 힘쓴 일본인 법률가임.
2) 千葉十七(지바 도시치)
ㅇ(안중근기억) 旅順(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을 감시했던 일본군 헌병이었으나 그의 인품과 신념을 존경하게 되었고 안중근의 유묵을 평생 간직함.
4. 『항일로드 2000km』 대장정 종합
가. 일본 제국주의의 형성과 팽창
ㅇ(제국주의형성) 下関(시모노세키), 広島(히로시마), 京都(교토), 東京(도쿄)의 현장을 통해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중앙집권적 군사국가를 건설하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 식민지화, 아시아 침략전쟁으로 확대해 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음.
나. 일본 본토에서의 직접 항일투쟁
ㅇ(적지항쟁) 長崎(나가사키), 大阪(오사카), 金沢(가나자와), 東京(도쿄), 千葉(지바)는 박재혁, 김익상, 백정기, 윤봉길, 양근환, 김지섭, 이봉창 등 독립운동가들이 식민지배국 일본의 심장부까지 들어가 직접 투쟁하거나 수감되고 순국한 현장임.
다. 일본 유학생과 청년들의 저항
ㅇ(청년운동) 福岡(후쿠오카), 大阪(오사카), 京都(교토), 東京(도쿄)에는 윤동주, 송몽규, 염상섭, 2.8독립선언 참여 유학생 등 일본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며 식민지 현실에 저항했던 조선 청년들의 흔적이 남아 있음.
라. 식민지 민중의 피해
ㅇ(민중피해) 軍艦島(군함도), 広島(히로시마), 長崎(나가사키)의 원폭피해, ウトロ(우토로), 丹波(단바) 망간광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름 없는 조선 민중이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속에서 겪어야 했던 피해를 보여줌.
마. 기억과 연대
ㅇ(기억계승) 高麗美術館(고려미술관),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ウトロ平和祈念館(우토로평화기념관), 布施辰治(후세 다쓰지) 현창비, 大林寺(다이린지)는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들이 과거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고 계승해 온 현장임.
바. 항일로드의 핵심 흐름
ㅇ(역사흐름) 일본 근대국가 형성 →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팽창 → 조선침략과 식민지배 → 일본 본토에서의 독립운동 → 체포, 수감, 순국 → 침략전쟁과 강제동원 → 원폭과 민간인 피해 → 재일조선인의 삶과 차별 → 과거사 진상규명 → 기억과 한일 시민연대
사. 종합평가
ㅇ(역사적의의) 『항일로드 2000km』는 독립운동가들의 의거지만을 찾아가는 단순한 항일답사로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조선을 침략했는지, 이에 맞서 조선인들이 일본 본토에서 어떻게 저항했는지, 식민지 민중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해방 이후 그 역사를 누가 기억하고 지켜왔는지를 일본 열도 약 2,000km의 현장을 통해 연결하여 보여주는 역사기행임.
ㅇ(독립운동확장) 독립운동을 이름난 독립운동가들의 무장투쟁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유학생의 독립선언과 문학적 저항, 식민지 노동자의 삶, 재일조선인 공동체, 일본 시민들의 양심적 연대까지 함께 바라보게 한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음.
ㅇ(기억의현재성) 金沢(가나자와) 윤봉길 추모관 개관 논란과 大東亜聖戦大碑(대동아성전대비)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는 과거에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이어지고 있음.
ㅇ(최종의미) 『항일로드 2000km』는 일본을 단순히 과거의 적국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가해의 현장과 저항의 현장, 피해자의 흔적과 양심적 일본 시민의 연대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올바른 역사기억 위에서 미래의 한일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답사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