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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로드 4000km -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가이드
김종훈 외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1월
평점 :
『임정로드 4000km』로 살펴본 대한민국 임시정부 26년 대장정
― 上海(상하이)에서 重慶(충칭)까지, 1919~1945
1. 전체 이동 흐름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식 이동경로
ㅇ(공식이동) 上海(상하이) → 杭州(항저우) → 鎭江(전장) → 長沙(창사) → 廣州(광저우) → 柳州(류저우) → 綦江(치장) → 重慶(충칭)
ㅇ 1919년 上海(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과 중일전쟁의 전화를 피해 중국 대륙을 이동하였으며, 1940년 重慶(충칭)에 최종 정착한 뒤 1945년 광복까지 독립운동을 계속함.
나. 『임정로드 4000km』 주요 관련거점
ㅇ(관련거점) 嘉興(자싱), 海鹽(하이옌), 南京(난징), 桂林(구이린) 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이전도시는 아니지만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난과 독립운동 세력의 활동, 조선의용대 활동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요 답사거점임.
2. 도시별 이동경로 및 주요 사적지
가. 제1기 ― 上海(상하이) 시대(1919~1932)
1) 上海(상하이) 【공식 이전도시, 임정로드 거점】
ㅇ(임시정부수립)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약 13년간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출발점으로, 정치, 외교, 언론활동과 의열투쟁의 기반을 마련함.
ㅇ(주요사적)
* 瑞金二路(서금이로) 일대 :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활동지
* 馬當路(마당로) : 上海(상하이) 시기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
* 永慶坊(영경방) : 김구와 가족 거주 관련 사적
* 元昌里(원창리) : 윤봉길 의거 직전 김구와 윤봉길의 마지막 만남 관련 사적
* 虹口公園(홍커우공원) :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 현장
* 萬國公墓(만국공묘) : 독립운동가 관련 묘역
ㅇ(역사적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부조직과 독립운동체제를 확립하고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기 시작한 최초의 거점임.
나. 제2기 ― 피난과 고난의 장정(1932~1940)
1) 嘉興(자싱), 海鹽(하이옌) 【관련거점】
ㅇ(요인피난)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은신한 핵심 피난지역임.
ㅇ(주요사적)
* 日暉橋(일휘교) 일대 : 이동녕, 이시영, 엄항섭 등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의 피난 거주지
* 梅灣街(매만가) : 김구 피난처
* 南湖(남호) : 김구가 일제의 추적을 피해 배를 이용하여 이동했던 피난공간
* 海鹽(하이옌) 南北湖(남북호)
* 載靑別墅(재청별서) : 김구 은신 관련 사적
ㅇ(역사적의의) 임시정부 청사는 杭州(항저우)에 두면서도 주요 요인 상당수가 嘉興(자싱)·海鹽(하이옌) 일대에 분산 피신하여 독립운동의 명맥을 이어감.
2) 杭州(항저우) 【공식 이전도시·임정로드 거점】
ㅇ(피난정부) 上海(상하이)를 떠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 청사를 옮긴 도시로, 윤봉길 의거 이후 본격적인 이동시대가 시작됨.
ㅇ(주요사적)
* 淸泰第二旅舍(청태제2여사) : 上海(상하이) 탈출 직후 임시정부가 사용한 초기 사무공간
* 湖邊村(호변촌) : 대표적인 杭州(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 西湖(서호) 일대 : 임시정부 요인들의 활동공간
* 한국독립당 관련 사적
ㅇ(역사적의의) 上海(상하이)라는 안정된 근거지를 상실한 뒤에도 정부조직을 유지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속한 피난정부 시대의 첫 거점임.
3) 鎭江(전장) 【공식 이전도시】
ㅇ(정부이동) 193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杭州(항저우)를 떠나 이동한 공식 이전지임.
ㅇ(조직유지) 임시정부 기관과 요인들이 분산된 상황에서도 정부조직을 유지하며 독립운동세력 재정비를 계속함.
ㅇ(역사적의의) 체류기간이나 남아 있는 사적의 규모는 다른 도시보다 크지 않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식 이동사에서 빠질 수 없는 거점임.
※ 『임정로드 4000km』에서는 독립된 장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으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이동경로에는 포함됨.
4. 南京(난징) 【관련거점】
ㅇ(독립운동재편) 김구, 김원봉 등 여러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세력의 통합과 군사간부 양성이 이루어진 핵심지역임.
ㅇ(주요사적)
* 中央飯店(중앙반점) : 김구의 중국 국민정부 관계자 접촉 관련 사적
* 淮淸橋(회청교) 일대 : 김구 피난 관련 사적
* 金陵大學(금릉대학) : 독립운동가 활동 관련 사적
* 天寧寺(천녕사)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관련 사적
* 南京(난징) 일대 김원봉·의열단 계열 활동지
ㅇ(역사적의의) 임시정부의 공식 이전도시는 아니지만 김구계열과 김원봉계열 독립운동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는 중국 관내 독립운동사의 중요 거점임.
5) 長沙(창사) 【공식 이전도시·임정로드 거점】
ㅇ(정부이전) 1937년 중일전쟁 확대와 南京(난징) 함락에 따른 위협을 피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長沙(창사)로 이동함.
ㅇ(남목청사건) 1938년 5월 6일 楠木廳(남목청) 6호 조선혁명당 본부에서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의 통합을 논의하던 중 이운환(李雲煥)이 권총을 발사함.
ㅇ 현익철이 사망하고 김구·유동열이 중상을 입었으며 지청천도 부상을 입음. 김구는 湘雅醫院(상아의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생명을 건짐.
ㅇ(주요사적)
* 楠木廳(남목청) 6호 : 남목청 사건 현장
* 湘雅醫院(상아의원) : 김구 총상 치료지
* 長沙(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관련 사적
ㅇ(역사적의의) 독립운동세력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심각한 갈등과 희생까지 겪었던 임시정부 이동기의 대표적인 시련의 현장임.
※ 남목청 사건의 발생일과 총격자의 이름은 자료에 따라 다르게 기록됨. 본문에서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등에 기록된 1938년 5월 6일, 이운환(李雲煥)을 사용하였으나, 일부 자료에서는 사건일을 1938년 5월 7일, 총격자를 이운한(李雲漢)으로 기록하기도 함.
6) 廣州(광저우) 【공식 이전도시, 임정로드 거점】
ㅇ(전시피난) 일본군의 진격과 공습을 피해 長沙(창사)에서 廣州(광저우)로 이동하여 단기간 활동함.
ㅇ(주요사적)
* 東山柏園(동산백원) : 대한민국 임시정부 廣州(광저우) 청사
* 黃埔軍官學校(황포군관학교) : 김원봉을 비롯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군사교육 관련 핵심 사적
* 東較場(동교장) : 중국 혁명운동 및 한국 독립운동 관련 역사공간
ㅇ(역사적의의) 전쟁확대로 중국 동부지역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진 임시정부가 華南(화남)지역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한 거점임.
7) 柳州(류저우) 【공식 이전도시, 임정로드 거점】
ㅇ(항일선전) 임시정부의 정치활동과 함께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문화·선전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임.
ㅇ(주요사적)
* 樂群社(낙군사) : 임시정부 요인 숙소 및 활동 관련 사적
* 柳侯公園(유후공원) : 독립운동 관련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
ㅇ(청년공작) 柳州(류저우)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활동하며 연극·합창·벽보 등을 활용한 대중 항일선전활동을 전개함.
ㅇ(역사적의의) 정부의 정치활동과 함께 청년·문화예술을 활용한 대중적 항일선전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거점임.
8) 桂林(구이린) 【관련거점】
ㅇ(조선의용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이전지는 아니지만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활동을 살펴보기 위해 중요한 독립운동 거점임.
ㅇ(주요사적)
* 七星公園(칠성공원) 일대 : 조선의용대 본부 및 활동 관련 사적
ㅇ(역사적의의) 『임정로드 4000km』에서 별도 장으로 다루고 있으며, 김구 중심의 임시정부 계열뿐 아니라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계열의 독립운동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지역임.
※ 桂林(구이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이전도시는 아님.
9) 綦江(치장) 【공식 이전도시】
ㅇ(조직재정비) 重慶(충칭) 최종 정착을 앞두고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세력이 조직을 재정비하고 통합을 추진한 중요 거점임.
ㅇ(주요사적)
* 上升街(상승가) :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관련 사적
* 沱灣(타만) 일대 : 김구·이동녕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 관련 지역
* 瀛山賓館(영산빈관) : 독립운동진영 통합회의 관련 사적
ㅇ(세력통합) 독립운동 정당 및 단체의 통합노력이 계속되었으며, 이후 1940년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의 통합 한국독립당 결성으로 이어짐.
ㅇ(이동녕서거) 임시정부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이동녕이 1940년 3월 綦江(치장)에서 서거함.
ㅇ(역사적의의) 장기간의 피난과 이동생활을 정리하면서 정부·정당·군사조직을 재정비해 重慶(충칭) 시대를 준비한 전환점임.
다. 제3기 ― 重慶(충칭) 시대(1940~1945)
1) 重慶(충칭) 【공식 이전도시·임정로드 최종거점】
ㅇ(최종정착)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착한 마지막 도시로, 1932년 이후 계속된 장기간의 이동생활을 끝내고 정부·정당·군사체제를 본격적으로 정비함.
가) 임시정부 청사
ㅇ(청사이동) 重慶(충칭) 정착 후에도 일본군 공습과 정부조직 확대 등에 따라 청사를 여러 차례 옮김.
楊柳街(양류가) → 石版街(석판가) → 吳師爺巷(오사야항) → 蓮花池(연화지)
ㅇ 蓮花池(연화지) 청사는 광복을 맞고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까지 사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임.
나) 한국광복군 창설
ㅇ(광복군창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직접 지휘하는 군사조직을 갖춤.
ㅇ(주요사적)
*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관련 사적
* 嘉陵賓館(가릉빈관) :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 개최 관련 장소
다) 독립국가 건설준비
ㅇ(건국강령)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발표하여 광복 이후 수립할 국가의 정치·경제·교육제도와 三均主義(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가건설 방향을 제시함.
ㅇ(대일선전) 1941년 12월 10일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하여 일본에 대한 전쟁을 공식 선언함.
ㅇ(군사통합) 1942년 조선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되면서 중국 관내 무장독립운동세력의 통합이 확대됨.
ㅇ(정부체제) 1944년 임시헌장 개정을 통해 주석·부주석 중심의 지도체제를 정비함.
라) 국내진공작전 준비
ㅇ(국내진공) 1945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첩보기구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 합작하여 국내 침투를 위한 훈련을 실시함.
ㅇ 광복군 요원들은 정보·무전·침투·파괴활동 등에 필요한 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였으나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면서 실제 작전은 실행되지 못함.
마) 한인공동체
ㅇ(土橋한인촌) 土橋(토교) 일대에는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 등 많은 한국인이 집단 거주하며 피난지 속 한인공동체를 형성함.
ㅇ(역사적의의) 重慶(충칭)은 단순한 피난지가 아니라 정부·정당·군대를 정비하고 광복 후 국가건설계획과 국내진공작전까지 준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26년 역사의 최종거점임.
3. 대한민국 임시정부 26년 대장정 종합
가. 공식 이동경로
ㅇ 上海(상하이)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독립운동 기반 구축
ㅇ 杭州(항저우) : 윤봉길 의거 이후 피난정부 시대 시작
ㅇ 鎭江(전장) : 정부조직 유지 및 이동기 독립운동 지속
ㅇ 長沙(창사) : 독립운동세력 통합 추진과 楠木廳(남목청) 사건
ㅇ 廣州(광저우) : 중일전쟁 확대에 따른 華南(화남)지역 이동
ㅇ 柳州(류저우) : 항일선전 및 청년공작활동 전개
ㅇ 綦江(치장) : 독립운동세력 통합과 정부조직 재정비
ㅇ 重慶(충칭) : 한국광복군 창설, 건국강령 발표, 대일선전 및 국내진공작전 준비
나. 주요 관련거점
ㅇ 嘉興(자싱)·海鹽(하이옌) : 김구 및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난·은신
ㅇ 南京(난징) : 독립운동세력 활동과 군사간부 양성
ㅇ 桂林(구이린) :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활동
다. 역사적의의
ㅇ(대장정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국 대륙 이동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일제의 추격과 중일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정부의 법통과 조직을 유지하고, 독립운동세력을 통합하며, 무장독립전쟁과 광복 후 국가건설을 준비한 26년간의 독립국가 건설과정이었음.
ㅇ(핵심흐름) 정부수립 → 피난과 생존 → 조직재정비 → 세력통합 → 무장투쟁 → 건국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