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찾고, 사유하고, 기록하다
― 여행기록문의 다면적 풍경


1. 들어가며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여행기’, ‘답사기’, ‘기행문’, ‘견문록’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얼핏 보면 모두 어딘가를 다녀온 뒤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 같은 작품을 두고 여행기라 부르기도 하고 기행문이나 견문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어의 뜻을 하나씩 살펴보면 서로 중심이 조금씩 다르다. 여행(旅行)은 다른 곳으로 가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있고, 답사(踏査)는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조사한다는 뜻을 지닌다. 기행(紀行)은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기록하는 것이며, 견문(見聞)은 직접 보고 들은 것 또는 그 과정에서 얻은 앎을 뜻한다.

여기에서 여행과 관련된 기록물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행기(旅行記), 답사기(踏査記), 기행문(紀行文), 견문록(見聞錄)이다.

물론 실제 작품은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의 성격만을 지니지 않는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청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상세히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이기도 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역시 답사기가 중심이지만 여행 과정에서 느낀 감상과 사람 이야기가 풍부하여 기행문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하나의 작품을 억지로 한 유형에만 넣기보다 가장 중심이 되는 성격을 주유형(主類型), 그와 함께 나타나는 성격을 부유형(副類型)으로 구분해 보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주유형에 둘 이상의 부유형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유형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행기록문이 지닌 여러 성격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분류 방법이다.


2. 여행기(旅行記) ― 여정과 체험의 기록

여행기의 중심에는 여행자 자신과 여정이 있다.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갔는지, 어떤 길을 지나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일을 겪었는지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이러한 여행기의 오랜 사례로 볼 수 있다. 혜초가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며 여러 지역의 풍속과 불교 상황을 기록한 책이다. 여행 과정이 기본 골격을 이루지만 당시 각 지역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도 강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왕오천축국전』의 주유형을 여행기, 부유형을 견문록으로 본다.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역시 여행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븐 바투타는 북아프리카를 출발하여 중동과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등 광대한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의 책에서는 이동과 체험이 중심을 이루지만 각 지역의 정치와 종교, 풍속, 사람들에 관한 기록도 방대하다. 이 때문에 주유형은 여행기, 부유형은 견문록으로 볼 수 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는 현대 여행기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은퇴 후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장거리를 직접 걸었다. 책의 중심에는 ‘걷는 사람’의 여정과 육체적 체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각도 등장하지만 가장 강한 축은 자신의 여행 체험이다. 따라서 주유형은 여행기, 부유형은 기행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역시 직접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겪은 경험과 사람 이야기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여행기를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3. 답사기(踏査記) ― 현장을 찾아가 읽는 기록

답사기의 핵심은 ‘현장’이다. 여행자가 어디를 다녀왔는가보다 왜 그곳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무엇을 확인했으며, 그 대상이 어떤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갖는지가 중요하다.

이 유형을 대표하는 저자는 유홍준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의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가 보고, 역사와 미술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 장소가 지닌 의미를 풀어낸다. 책의 중심이 명확하게 문화유산 현장과 그 해설에 있으므로 주유형은 답사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행 중 만난 사람과 풍경, 저자의 감상과 생각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므로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둘 수 있다.

정수일의 여러 ‘○○를 가다’ 계열 저작은 조금 더 복합적이다. 정수일은 실크로드와 세계 여러 문명권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유적과 도시, 교역로를 살펴보고 그것을 자신의 문명교류사 연구와 연결한다. 단순히 유적을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문명이 어떻게 이동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정수일의 이 계열 저작은 답사기를 주유형으로 두되, 문명과 역사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서는 기행문, 각 지역에서 보고 들은 문화와 사회를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고 볼 수 있다.


4. 기행문(紀行文) ― 여행을 통해 생각하는 기록

기행문은 여행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여행기와 가장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여행기가 여정과 체험 자체에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둔다면, 기행문은 그 여행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무게가 더 실린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기행문을 설명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온 여정을 기록했지만 단순한 사행 기록에 그치지 않았다. 청나라의 도시와 제도, 상업, 기술,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조선 사회와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열하일기』를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견문록을 부유형으로 분류한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역시 기행문의 성격이 강하다. 유시민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직접 여행하면서 도시의 역사와 정치, 미술, 건축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여행 동선 자체보다 그 도시를 통해 역사와 인간, 문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책이다. 따라서 주유형은 기행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김병종의 『화첩기행』은 여행과 미술이 결합된 기행문이다. 김병종은 여러 지역을 찾아가 예술가와 작품, 장소의 기억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다. 특정 인물이나 예술의 흔적을 찾아 현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는 답사기의 성격도 있으므로 기행문을 주유형, 답사기를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송재소의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은 중국의 여러 지역을 직접 찾아가 그곳에 남아 있는 역사와 문화, 문학의 흔적을 읽어 내는 인문기행이다. 단순히 유적의 연혁을 설명하기보다는 현장의 풍경과 역사적 인물, 시와 문학을 함께 불러내어 중국이라는 공간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행문의 성격이 강하다. 동시에 실제 역사 현장과 문화유산을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답사기의 성격을, 현지에서 보고 확인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상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 따라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하고 답사기와 견문록을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김성곤의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은 장강과 황하를 따라 중국의 실제 공간을 여행하면서 이백·두보·소동파 등 중국 시인들의 작품을 그 시가 태어나고 기억된 장소와 연결하여 읽는 책이다. 한시 해설이 책의 중요한 축이지만 시만을 떼어 설명하지 않고 산천과 도시, 역사와 고사, 여행 과정의 체험을 함께 엮는다. 따라서 여행지에서 얻은 감상과 문학적 사유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시인과 작품의 흔적을 찾아 실제 장소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답사기를 부유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5. 견문록(見聞錄) ― 보고 듣고 알게 된 세계의 기록

견문록은 여행자 자신의 이동이나 감상보다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가 중심이 되는 기록이다. 새로운 지역의 풍속과 제도, 종교, 정치, 사회, 문명을 관찰하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비중이 크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 세계에서 보고 들은 도시와 국가, 풍속과 제도를 서양 세계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견문록이라는 이름 자체가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직접 장거리 여행을 했다는 점에서는 여행기의 요소도 강하므로 주유형을 견문록, 부유형을 여행기로 볼 수 있다.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역시 직접 여행한 기록이지만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이병한은 약 1,000일 동안 유라시아 여러 지역을 직접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을 관찰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역사와 정치, 국제정세와 문명의 변화를 해석했다. 여기에서는 여행 자체보다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파악한 세계가 중심이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유라시아 견문』을 견문록을 주유형으로,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분류한다.


6. 주유형(主類型)과 부유형(副類型)으로 다시 보기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하나의 유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이 글에서는 작품의 중심적인 성격을 주유형(主類型), 함께 나타나는 성격을 부유형(副類型)으로 구분하였다. 이를 주유형을 기준으로 다시 묶어보면 각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 여행기를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긴 여정과 직접적인 여행 체험이 기록의 뼈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여행기를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두 작품 모두 여행지의 종교와 풍속, 정치와 사회 등 당시의 세계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어 견문록의 성격을 부유형으로 지닌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과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역시 여행자의 이동과 체험이 중심이므로 여행기가 주유형이다. 다만 여행 과정에서 만난 사람과 문화, 그곳에서 느낀 생각과 감상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기행문의 성격을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ㅇ 혜초 『왕오천축국전』 : 여행기(主) + 견문록(副)
ㅇ 이븐 바투타 『이븐 바투타 여행기』 : 여행기(主) + 견문록(副)
ㅇ 한비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 여행기(主) + 기행문(副)
ㅇ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 여행기(主) + 기행문(副)

나. 답사기를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특정 문화유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답사기가 명확한 주유형이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저자의 감상과 생각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정수일의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를 비롯한 여러 ‘○○를 가다’ 계열 저작은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유적과 도시, 교역로를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살핀다는 점에서 답사기를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여행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와 문명에 대한 해석은 기행문의 성격을, 각 지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관찰은 견문록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ㅇ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답사기(主) + 기행문(副)
ㅇ 정수일 『○○를 가다』 계열 : 답사기(主) + 기행문·견문록(副)

다.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신의 생각과 함께 풀어냈다는 점에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청나라의 도시와 제도, 상업과 기술, 생활상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했으므로 견문록의 성격도 강하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역사와 정치, 예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풀어가는 데 중심이 있으므로 기행문이 주유형이다. 실제 여행 동선과 체험이 글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는 여행기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

김병종의 『화첩기행』은 여행지에서 예술가와 작품, 장소를 통해 얻은 감상과 사유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예술가의 흔적과 관련 장소를 직접 찾아간다는 점에서 답사기의 성격을 부유형으로 지닌다.

송재소의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은 중국의 역사 현장을 걸으며 시와 인물, 문화와 풍경을 함께 풀어낸다는 점에서 기행문이 주유형이다. 그러나 문화유산과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확인한다는 점에서는 답사기, 그곳에서 얻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견문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까지 함께 나타난다.

김성곤의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은 중국의 산천과 도시를 걸으며 그곳과 연결된 한시와 시인의 삶을 읽어 내는 데 중심이 있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적 감상과 해석이 강하므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보고, 시와 관련된 실제 장소와 역사적 흔적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답사기를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ㅇ 박지원 『열하일기』 : 기행문(主) + 견문록(副)
ㅇ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 기행문(主) + 여행기(副)
ㅇ 김병종 『화첩기행』 : 기행문(主) + 답사기(副)
ㅇ 송재소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 기행문(主) + 답사기·견문록(副)
ㅇ 김성곤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 기행문(主) + 답사기(副)

라. 견문록을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동방의 여러 나라와 도시, 풍속과 제도를 서양 세계에 전하는 데 기록의 중심이 있으므로 견문록이 주유형이다. 그러나 그 모든 관찰이 장기간의 여행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여행기를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역시 약 1,000일 동안 유라시아 각지를 직접 다니며 얻은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여행 자체보다 각 지역의 역사와 정치, 국제정세와 문명의 변화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데 더 큰 무게를 둔다. 따라서 견문록을 주유형으로,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ㅇ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 견문록(主) + 여행기(副)
ㅇ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 견문록(主) + 기행문(副)

이렇게 주유형별로 작품을 묶어보면 네 유형은 서로 단절된 종류라기보다 서로 겹치고 넘나드는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기는 여정과 체험을, 답사기는 현장과 대상을, 기행문은 사색과 해석을, 견문록은 관찰과 정보를 중심으로 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이 요소들이 여러 방식으로 결합된다.

따라서 주유형과 부유형이라는 구분은 작품을 어느 하나의 칸에 가두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어떤 요소가 그 작품을 가장 강하게 이끌고 있으며 그 곁에 어떤 성격이 함께 놓여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방법이다. 특히 하나의 작품에는 부유형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정수일의 저작처럼 답사기를 중심으로 하면서 기행문과 견문록의 성격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대표적이며, 송재소의 중국 인문기행 역시 기행문을 중심으로 답사기와 견문록이 함께 겹쳐지는 사례로 볼 수 있다.


7. 맺으며

처음에는 여행기와 기행문이 어떻게 다른지, 답사기와 견문록은 또 어디에서 갈리는지가 궁금했다. 하나씩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고 실제 책들을 떠올려 보니 그 차이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여행기는 ‘다녀온 경험’을 기록하고, 답사기는 ‘현장을 찾아가 읽으며’, 기행문은 ‘여행을 통해 생각하고’, 견문록은 ‘보고 듣고 알게 된 세계’를 기록한다.

그러나 실제 작품은 이처럼 깔끔하게 하나의 유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작품 안에서도 여정과 체험, 현장과 조사, 사색과 해석, 관찰과 정보가 서로 다른 비율로 어우러진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가장 강한 성격을 주유형(主類型), 함께 나타나는 특징을 부유형(副類型)으로 나누어 보았다.

이 구분이 문학적으로 확정된 분류 체계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거쳐 박지원의 『열하일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정수일의 여러 문명 답사 저작, 송재소의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김성곤의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김병종의 『화첩기행』,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여행기록을 읽고 그 특징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행기록의 매력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길을 떠나는 순간 여행기가 시작되고,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답사기가 되며, 그곳에서 생각이 깊어지면 기행문이 되고, 보고 들은 세계를 기록하면 견문록이 된다.

그리고 좋은 여행기록은 그 네 가지 가운데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마다 여정과 현장, 사유와 관찰이 서로 다른 비율로 만나고, 때로는 하나의 주유형 위에 둘 이상의 부유형이 겹쳐진다.

바로 그 다양한 결합이 여행기록문이 보여주는 다면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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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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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찾고, 사유하고, 기록하다
― 여행기록문의 다면적 풍경


1. 들어가며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여행기’, ‘답사기’, ‘기행문’, ‘견문록’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얼핏 보면 모두 어딘가를 다녀온 뒤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 같은 작품을 두고 여행기라 부르기도 하고 기행문이나 견문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어의 뜻을 하나씩 살펴보면 서로 중심이 조금씩 다르다. 여행(旅行)은 다른 곳으로 가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있고, 답사(踏査)는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조사한다는 뜻을 지닌다. 기행(紀行)은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기록하는 것이며, 견문(見聞)은 직접 보고 들은 것 또는 그 과정에서 얻은 앎을 뜻한다.

여기에서 여행과 관련된 기록물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행기(旅行記), 답사기(踏査記), 기행문(紀行文), 견문록(見聞錄)이다.

물론 실제 작품은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의 성격만을 지니지 않는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청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상세히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이기도 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역시 답사기가 중심이지만 여행 과정에서 느낀 감상과 사람 이야기가 풍부하여 기행문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하나의 작품을 억지로 한 유형에만 넣기보다 가장 중심이 되는 성격을 주유형(主類型), 그와 함께 나타나는 성격을 부유형(副類型)으로 구분해 보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주유형에 둘 이상의 부유형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유형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행기록문이 지닌 여러 성격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분류 방법이다.


2. 여행기(旅行記) ― 여정과 체험의 기록

여행기의 중심에는 여행자 자신과 여정이 있다.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갔는지, 어떤 길을 지나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일을 겪었는지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이러한 여행기의 오랜 사례로 볼 수 있다. 혜초가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며 여러 지역의 풍속과 불교 상황을 기록한 책이다. 여행 과정이 기본 골격을 이루지만 당시 각 지역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도 강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왕오천축국전』의 주유형을 여행기, 부유형을 견문록으로 본다.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역시 여행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븐 바투타는 북아프리카를 출발하여 중동과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등 광대한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의 책에서는 이동과 체험이 중심을 이루지만 각 지역의 정치와 종교, 풍속, 사람들에 관한 기록도 방대하다. 이 때문에 주유형은 여행기, 부유형은 견문록으로 볼 수 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는 현대 여행기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은퇴 후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장거리를 직접 걸었다. 책의 중심에는 ‘걷는 사람’의 여정과 육체적 체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각도 등장하지만 가장 강한 축은 자신의 여행 체험이다. 따라서 주유형은 여행기, 부유형은 기행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역시 직접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겪은 경험과 사람 이야기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여행기를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3. 답사기(踏査記) ― 현장을 찾아가 읽는 기록

답사기의 핵심은 ‘현장’이다. 여행자가 어디를 다녀왔는가보다 왜 그곳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무엇을 확인했으며, 그 대상이 어떤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갖는지가 중요하다.

이 유형을 대표하는 저자는 유홍준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의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가 보고, 역사와 미술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 장소가 지닌 의미를 풀어낸다. 책의 중심이 명확하게 문화유산 현장과 그 해설에 있으므로 주유형은 답사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행 중 만난 사람과 풍경, 저자의 감상과 생각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므로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둘 수 있다.

정수일의 여러 ‘○○를 가다’ 계열 저작은 조금 더 복합적이다. 정수일은 실크로드와 세계 여러 문명권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유적과 도시, 교역로를 살펴보고 그것을 자신의 문명교류사 연구와 연결한다. 단순히 유적을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문명이 어떻게 이동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정수일의 이 계열 저작은 답사기를 주유형으로 두되, 문명과 역사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서는 기행문, 각 지역에서 보고 들은 문화와 사회를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고 볼 수 있다.


4. 기행문(紀行文) ― 여행을 통해 생각하는 기록

기행문은 여행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여행기와 가장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여행기가 여정과 체험 자체에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둔다면, 기행문은 그 여행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무게가 더 실린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기행문을 설명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온 여정을 기록했지만 단순한 사행 기록에 그치지 않았다. 청나라의 도시와 제도, 상업, 기술,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조선 사회와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열하일기』를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견문록을 부유형으로 분류한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역시 기행문의 성격이 강하다. 유시민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직접 여행하면서 도시의 역사와 정치, 미술, 건축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여행 동선 자체보다 그 도시를 통해 역사와 인간, 문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책이다. 따라서 주유형은 기행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김병종의 『화첩기행』은 여행과 미술이 결합된 기행문이다. 김병종은 여러 지역을 찾아가 예술가와 작품, 장소의 기억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다. 특정 인물이나 예술의 흔적을 찾아 현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는 답사기의 성격도 있으므로 기행문을 주유형, 답사기를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송재소의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은 중국의 여러 지역을 직접 찾아가 그곳에 남아 있는 역사와 문화, 문학의 흔적을 읽어 내는 인문기행이다. 단순히 유적의 연혁을 설명하기보다는 현장의 풍경과 역사적 인물, 시와 문학을 함께 불러내어 중국이라는 공간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행문의 성격이 강하다. 동시에 실제 역사 현장과 문화유산을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답사기의 성격을, 현지에서 보고 확인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상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 따라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하고 답사기와 견문록을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김성곤의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은 장강과 황하를 따라 중국의 실제 공간을 여행하면서 이백·두보·소동파 등 중국 시인들의 작품을 그 시가 태어나고 기억된 장소와 연결하여 읽는 책이다. 한시 해설이 책의 중요한 축이지만 시만을 떼어 설명하지 않고 산천과 도시, 역사와 고사, 여행 과정의 체험을 함께 엮는다. 따라서 여행지에서 얻은 감상과 문학적 사유가 중심이라는 점에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시인과 작품의 흔적을 찾아 실제 장소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답사기를 부유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5. 견문록(見聞錄) ― 보고 듣고 알게 된 세계의 기록

견문록은 여행자 자신의 이동이나 감상보다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가 중심이 되는 기록이다. 새로운 지역의 풍속과 제도, 종교, 정치, 사회, 문명을 관찰하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비중이 크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 세계에서 보고 들은 도시와 국가, 풍속과 제도를 서양 세계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견문록이라는 이름 자체가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직접 장거리 여행을 했다는 점에서는 여행기의 요소도 강하므로 주유형을 견문록, 부유형을 여행기로 볼 수 있다.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역시 직접 여행한 기록이지만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이병한은 약 1,000일 동안 유라시아 여러 지역을 직접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을 관찰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역사와 정치, 국제정세와 문명의 변화를 해석했다. 여기에서는 여행 자체보다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파악한 세계가 중심이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유라시아 견문』을 견문록을 주유형으로,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분류한다.


6. 주유형(主類型)과 부유형(副類型)으로 다시 보기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하나의 유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이 글에서는 작품의 중심적인 성격을 주유형(主類型), 함께 나타나는 성격을 부유형(副類型)으로 구분하였다. 이를 주유형을 기준으로 다시 묶어보면 각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 여행기를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긴 여정과 직접적인 여행 체험이 기록의 뼈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여행기를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두 작품 모두 여행지의 종교와 풍속, 정치와 사회 등 당시의 세계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어 견문록의 성격을 부유형으로 지닌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과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역시 여행자의 이동과 체험이 중심이므로 여행기가 주유형이다. 다만 여행 과정에서 만난 사람과 문화, 그곳에서 느낀 생각과 감상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기행문의 성격을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ㅇ 혜초 『왕오천축국전』 : 여행기(主) + 견문록(副)
ㅇ 이븐 바투타 『이븐 바투타 여행기』 : 여행기(主) + 견문록(副)
ㅇ 한비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 여행기(主) + 기행문(副)
ㅇ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 여행기(主) + 기행문(副)

나. 답사기를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특정 문화유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답사기가 명확한 주유형이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저자의 감상과 생각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정수일의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를 비롯한 여러 ‘○○를 가다’ 계열 저작은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유적과 도시, 교역로를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살핀다는 점에서 답사기를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여행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와 문명에 대한 해석은 기행문의 성격을, 각 지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관찰은 견문록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ㅇ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답사기(主) + 기행문(副)
ㅇ 정수일 『○○를 가다』 계열 : 답사기(主) + 기행문·견문록(副)

다.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신의 생각과 함께 풀어냈다는 점에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청나라의 도시와 제도, 상업과 기술, 생활상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했으므로 견문록의 성격도 강하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역사와 정치, 예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풀어가는 데 중심이 있으므로 기행문이 주유형이다. 실제 여행 동선과 체험이 글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는 여행기의 성격도 함께 지닌다.

김병종의 『화첩기행』은 여행지에서 예술가와 작품, 장소를 통해 얻은 감상과 사유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예술가의 흔적과 관련 장소를 직접 찾아간다는 점에서 답사기의 성격을 부유형으로 지닌다.

송재소의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은 중국의 역사 현장을 걸으며 시와 인물, 문화와 풍경을 함께 풀어낸다는 점에서 기행문이 주유형이다. 그러나 문화유산과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확인한다는 점에서는 답사기, 그곳에서 얻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견문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견문록의 성격까지 함께 나타난다.

김성곤의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은 중국의 산천과 도시를 걸으며 그곳과 연결된 한시와 시인의 삶을 읽어 내는 데 중심이 있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적 감상과 해석이 강하므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보고, 시와 관련된 실제 장소와 역사적 흔적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답사기를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ㅇ 박지원 『열하일기』 : 기행문(主) + 견문록(副)
ㅇ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 기행문(主) + 여행기(副)
ㅇ 김병종 『화첩기행』 : 기행문(主) + 답사기(副)
ㅇ 송재소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 기행문(主) + 답사기·견문록(副)
ㅇ 김성곤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 기행문(主) + 답사기(副)

라. 견문록을 주유형으로 하는 작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동방의 여러 나라와 도시, 풍속과 제도를 서양 세계에 전하는 데 기록의 중심이 있으므로 견문록이 주유형이다. 그러나 그 모든 관찰이 장기간의 여행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여행기를 부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 역시 약 1,000일 동안 유라시아 각지를 직접 다니며 얻은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여행 자체보다 각 지역의 역사와 정치, 국제정세와 문명의 변화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데 더 큰 무게를 둔다. 따라서 견문록을 주유형으로, 기행문을 부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ㅇ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 견문록(主) + 여행기(副)
ㅇ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 견문록(主) + 기행문(副)

이렇게 주유형별로 작품을 묶어보면 네 유형은 서로 단절된 종류라기보다 서로 겹치고 넘나드는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기는 여정과 체험을, 답사기는 현장과 대상을, 기행문은 사색과 해석을, 견문록은 관찰과 정보를 중심으로 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이 요소들이 여러 방식으로 결합된다.

따라서 주유형과 부유형이라는 구분은 작품을 어느 하나의 칸에 가두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어떤 요소가 그 작품을 가장 강하게 이끌고 있으며 그 곁에 어떤 성격이 함께 놓여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방법이다. 특히 하나의 작품에는 부유형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정수일의 저작처럼 답사기를 중심으로 하면서 기행문과 견문록의 성격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대표적이며, 송재소의 중국 인문기행 역시 기행문을 중심으로 답사기와 견문록이 함께 겹쳐지는 사례로 볼 수 있다.


7. 맺으며

처음에는 여행기와 기행문이 어떻게 다른지, 답사기와 견문록은 또 어디에서 갈리는지가 궁금했다. 하나씩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고 실제 책들을 떠올려 보니 그 차이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여행기는 ‘다녀온 경험’을 기록하고, 답사기는 ‘현장을 찾아가 읽으며’, 기행문은 ‘여행을 통해 생각하고’, 견문록은 ‘보고 듣고 알게 된 세계’를 기록한다.

그러나 실제 작품은 이처럼 깔끔하게 하나의 유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작품 안에서도 여정과 체험, 현장과 조사, 사색과 해석, 관찰과 정보가 서로 다른 비율로 어우러진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가장 강한 성격을 주유형(主類型), 함께 나타나는 특징을 부유형(副類型)으로 나누어 보았다.

이 구분이 문학적으로 확정된 분류 체계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거쳐 박지원의 『열하일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정수일의 여러 문명 답사 저작, 송재소의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김성곤의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김병종의 『화첩기행』,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여행기록을 읽고 그 특징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여행기록의 매력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길을 떠나는 순간 여행기가 시작되고,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답사기가 되며, 그곳에서 생각이 깊어지면 기행문이 되고, 보고 들은 세계를 기록하면 견문록이 된다.

그리고 좋은 여행기록은 그 네 가지 가운데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마다 여정과 현장, 사유와 관찰이 서로 다른 비율로 만나고, 때로는 하나의 주유형 위에 둘 이상의 부유형이 겹쳐진다.

바로 그 다양한 결합이 여행기록문이 보여주는 다면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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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문명의 배꼽 그리스] 자유, 自由, Ελευθερία

시골의사 박경철님은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오랫동안 안동에서 의사로 일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9년까지만 해도 인문학 강연에 나선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요즘은 방송이나 강연, 저술 활동에서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다. 공개된 근황도 많지 않다. 그저 어디에 계시든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나보다 훠얼씬 더 잘 지내고 계시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배우 오달수님과 이미지가 제법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진을 붙여 놓고 비교해 보고 싶지만 참는다.

『그리스 기행 1―문명의 배꼽 그리스』가 출간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그 뒤로 그리스 문명 강연도 하시고, 찰스님과 포옹도 하시고 그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무엇보다 에필로그를 읽으며 더 큰 기대를 품었다. 모두 열 권으로 이어질 그리스 문명기행 대장정. 그것도 이미 제2권 초고까지 마친 상태라고 하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박경철의 시선을 따라 그리스를 여행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스를 생각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떠오른다.

그는 크레타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대표 작가다. 그리스는 이라클리온 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의 공식 명칭은 ‘이라클리온 국제공항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한 나라가 자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붙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그리스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묘비명은 너무도 유명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Den elpizo tipota.
Den fovamai tipota.
Eimai eleftheros.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그리고 임종 직전에 남겼다는 메모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임종 직전 남긴 메모

삶을 모두 살아낸 사람이 도달한 자유.

욕망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담담히 관조하는 경지.

해가 저물었으니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온함이 있다. 한 생을 다 살아낸 사람이 삶을 억지로 붙잡지도, 죽음을 과장하지도 않고 조용히 내려놓는 모습이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바로 King Crimson의 〈Epitaph〉이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과 King Crimson의 〈Epitaph〉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 않다.

너무나도 반대되는 이야기다.

카잔차키스는 한 인간이 욕망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도달하는 자유를 말한다. 삶을 다 살아낸 사람이 해가 저문 뒤 조용히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반면 King Crimson의 〈Epitaph〉은 인간이 끝내 욕망과 권력을 제어하지 못했을 때 어떤 미래를 맞게 되는지를 경고한다.

예언자들이 글을 남긴 벽은 갈라지고, 죽음의 도구 위로 햇빛이 비친다. 여기서 죽음의 도구는 핵무기를 비롯해 인간이 만들어 낸 전쟁과 대량살상의 수단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지식을 얻었지만 그것을 통제할 지혜를 갖추지 못했고, 막대한 권력을 쥔 정치인들은 인류의 운명을 위태로운 경계로 몰아간다.

Knowledge is a deadly friend
If no one sets the rules.

규칙과 통제 없이 쌓인 지식은 치명적인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 노래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만들어 낼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염세주의가 짙게 배어 있다. 결국 남게 될 묘비명마저 ‘혼란’일 것이라는 공포, 인류가 스스로 만든 파멸을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묵시록적 경고다.

한쪽은 삶을 내려놓은 사람의 관조이고, 다른 한쪽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문명을 향한 절규다.

한쪽은 욕망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은 인간의 자유이고, 다른 한쪽은 욕망과 권력을 끝내 통제하지 못한 문명의 공포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 문명을 생각한다.

찬란했던 그리스 문명의 시대 역시 영원하지 않았다.

그리스 문명은 외부의 적에게만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도시국가들은 끝내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었고, 권력과 패권을 둘러싼 끝없는 전쟁은 스스로 문명의 힘을 갉아먹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며 국력을 소진했고, 그 틈을 타 북쪽의 마케도니아가 세력을 키웠다. 이후 그리스 세계는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인간이 만든 욕망이 인간의 문명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King Crimson의 〈Epitaph〉이 던지는 묵시록적 경고는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역사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와 철학,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문명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오만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도 끊임없이 보여 주었다. 그 비극은 신화와 희곡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도시국가들은 패권을 향한 욕망을 내려놓지 못했고, 결국 서로의 힘을 소진시켰다.

성취한 지식과 권력을 제어할 원칙이 없다면, 아무리 찬란한 문명도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의 역사는 보여 준다.

카잔차키스는 한 인간이 욕망을 내려놓았을 때의 자유를 말했고, 그리스의 역사는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문명의 흥망을 보여 주었으며, King Crimson은 그러한 인간의 오만이 끝내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를 노래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찬란한 시대는 저물었어도 그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정신은 철학과 문학, 예술과 역사 속에 남았고, 카잔차키스의 문장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박경철은 그 흔적을 따라 그리스 곳곳을 걸으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 했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에필로그, 432쪽

2011년 겨울부터 첫 발을 뗀 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 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서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 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제2권의 초고 집필을 마친 상태이다.
짐작건대 2013년 한 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행과 집필의 시간들로 채워질 듯하다.
모쪼록 이 여행이 필자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의미 있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란다.

이 에필로그를 읽으며 앞으로 나올 아홉 권의 책을 당연한 미래처럼 기다렸다.

펠로폰네소스를 지나 아티카로, 다시 테살로니키와 마그나 그라이키아로 이어질 긴 여행을 박경철의 시선을 따라 함께 걸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두 번째 권의 초고까지 마친 상태라고 했으니, 후속편을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10년이 넘은 지금, 후속편이 나오기는 요원한 것 같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미 다음 권의 초고까지 마쳤더라도, 삶은 언제나 계획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

물론 수천 년에 걸친 한 문명의 흥망과 한 사람의 미완의 집필 계획을 같은 무게로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 문명의 흥망을 기록하려 했던 긴 여행마저 끝내 첫 권에서 멈추었다는 사실 앞에서는,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찬란했던 문명은 폐허와 기록으로 남았고, 열 권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던 여행은 한 권의 책과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다음 권의 초고로 남았다.

문명도 사람의 계획도 언젠가는 멈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과 질문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다시 펼치면 이미 출간된 한 권보다 나오지 않은 아홉 권이 먼저 생각난다. 언젠가 박경철님의 그리스 여행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지만, 이제는 그 기다림조차 이 책의 일부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는 꼭 그리스를 걸어보고 싶다.

박경철이 책에서 걸었던 길을 따라가고, 카잔차키스가 잠든 크레타를 찾아가 그의 묘비명 앞에도 서 보고 싶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미케네와 델포이, 그리고 헬레니즘 문명이 남긴 흔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그리스 문명의 폐허 앞에서 단순히 과거의 영광만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찬란했던 문명이 왜 스스로의 힘을 소진했고, 인간의 욕망과 권력은 왜 끝내 제어되지 못했는지 그 흔적을 직접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앞에서는 한 인간이 모든 욕망과 두려움을 내려놓았을 때 도달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조용히 되새겨 보고 싶다.

그 여행을 마친 뒤 다시 King Crimson의 〈Epitaph〉을 들으면,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박경철이 끝내 이어 가지 못한 그리스 문명기행의 뒷부분을, 언젠가는 나 자신의 두 발로 조금이나마 이어가 보고 싶다.

카잔차키스는 해가 저물었으므로 연장을 거두었다.

그리스 문명의 찬란한 시대도 역사의 저편으로 물러났다.

박경철이 계획했던 열 권의 여행도 아직은 첫 권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카잔차키스의 문장도, 그리스 문명의 흔적도, 박경철이 남긴 한 권의 책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자리에서 또 다른 사람의 여행이 시작된다.

언젠가 그리스의 폐허와 바다, 크레타의 하늘 아래 서게 되는 날, 나는 다시 King Crimson의 〈Epitaph〉을 들을 것이다.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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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트라이앵글’ 중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이 남았다. 줄여서 ‘소피아’라고 하겠다. 소피아는 다음날 똘레도 소풍을 마치고 오후 늦게 돌아와 서둘러 관람했다. <게르니카>를 직접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피아는 프라도보다 규모가 작다. 회화·판화·조각·사진·공예 등 여러 분야의 왕실 수집품과 정부 소유 예술품의 극히 일부인 300여 점만 전시한다. 피카소·달리·미로를 비롯한 현대 작가뿐만 아니라 조르주 브라크·르네 마그리트·로이 리히텐슈타인·프랜시스 베이컨 등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다른 나라 화가의 작품도 있다. 소피아는 프라도나 TB와 달리 사진 촬영을 허락하기에 <게르니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좀처럼 하지 않는 짓인데 거기서는 하고 싶었다.

게르니카는 바스끄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다. 1937년 4월 26일 독일 공군이 프랑코를 지원하려고 공화파 병력이 집결해 있던 그곳을 폭격했다. 정밀 타격 기술이 없던 때여서 폭탄은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고 민간인을 수백 명 죽였다. 파리 세계박람회 스페인관의 벽화 제작 의뢰를 받았던 피카소는 그 사건 직후 가로 776.6 센티미터 세로 349.3 센티미터 대작을 그렸다.

<게르니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반전(反戰) 회화 작품이다. 독일 공군이 프랑코 군대와 함께 그보다 더한 만행을 숱하게 저질렀지만, 이 그림 때문에 게르니카 폭격이 스페인 내전의 가장 참혹한 사건인 것처럼 알려졌다. <게르니카> 앞에서 고야를 생각했다. 고야처럼 피카소도 단지 프랑코와 히틀러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의 비인간성을 고발했다. 1951년 작품 <한국의 학살>도 같은 맥락이었다.

믿음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았다. 두 살 때 콜레라에 부모를 잃고 이모 부부의 보살핌을 받았던 그는 열일곱 살에 만난 여인과 혼인해 자녀 셋을 낳았다. 화가로 성공해 세계를 여행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가족을 그렸다. 주로 풍경화와 정물화를 그렸지만 당대의 사회 현실을 드러내는 작품도 남긴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들이 영감과 열정을 주는 ‘뮤즈’였다.

소로야가 밝고 따뜻한 그림만 그렸던 건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잔혹했던 ‘정글 자본주의’ 시대의 사회 현실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던 ‘사회적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그런 작품 하나가 0층의 잘 보이는 공간에 걸려 있었다.

열차 3등 객실 같은 좁은 공간, 긴 나무의자, 쓰러져 잠든 젊은 여인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앉아 내려다보는 늙은 여자, 낡은 가방, 물건을 싼 보자기, 슬픔과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다. 제목은 <인신매매(Trata de blancas)>, 흑인 노예가 아니라 백인 여자들이라 ‘흰(blanca)’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 것이다. 소로야는 왜 젊은 시절 그렸던 그 작품을 끝까지 보관했을까? 사려는 이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 작품을 거실에 걸고 남한테 자랑할 부자가 있었겠는가

소로야는 대중이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스스로 행복했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집도 그랬다. 적절히 놓아둔 탁자와 소파, 광택이 없는 나무 장식장,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법한 조각품, 벽장식, 집안의 나무 계단, 모든 것이 품격 있고 안온한 예술가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행복한 남자와 사랑 넘치는 가족을 보았다. 덧없는 우리의 삶에서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있겠는가.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기력을 탕진한 여행자에게 소로야 미술관을 권한다.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갈하게 가꾼 정원 벤치에 앉아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드리드는 권력의 힘으로 외부 자원을 끌어다 쓴다. 이베리아반도는 바다 가까운 곳일수록 기후가 순하고 식생이 다양하며 토질도 양호해서 인구밀도가 높다. 마드리드는 내륙 한가운데여서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웠다.

로마 군대의 요새, 서고트 왕국의 수도, 이슬람 왕국의 군사기지, 레콩키스타 시대 까스띠야 왕국의 행정수도였던 똘레도에는 마드리드에 없는 모든 것이 있었다.

고대부터 철강업이 발달해 최고 품질의 칼과 갑옷을 생산했고, 기독교·이슬람·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했다. 오래된 성벽과 유대 예배당과 대성당이 있는 똘레도는 스페인 내전 시기 공화파의 거점이었던 탓에 집중 폭격을 당했고, 프랑코 정권이 날림 복구공사를 한 탓에 오래된 건축물들은 문화적 가치를 잃었다.

무엇보다 좌측 예배실 벽의 나무 장식이 대단했다. 그런데 예수 탄생 장면에 말이 아닌 소가 있었다. 나중에 보니 가우디가 만든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탄생의 문 파사드 역시 그랬다. 화가들의 ‘예수탄생’ 그림에도 말과 소가 함께 나왔다. 중세 유럽에서는 말과 소를 한 우리에서 키웠던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좌측 예배실 벽의 나무 장식이 대단했다. 그런데 예수 탄생 장면에 말이 아닌 소가 있었다. 나중에 보니 가우디가 만든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탄생의 문 파사드 역시 그랬다. 화가들의 ‘예수탄생’ 그림에도 말과 소가 함께 나왔다. 중세 유럽에서는 말과 소를 한 우리에서 키웠던 게 아닌가 싶다.

엘 그레꼬는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나긴 본명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는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한테 그림을 배웠고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았다. 펠리페 2세의 궁중 화가가 되어 주로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렸고 유럽 미술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엘 그레꼬는 말 그대로 ‘똘레도의 화가’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버금간다고 하는 그 벽화를 보려고 가톨릭 순례자들은 긴 줄을 선다. 하지만 무신론자가 보기에는 크기만 할 뿐 특별할 건 없었다. 엘 그레꼬가 살았던 집 근처의 저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 있었지만, 작품은 없다고 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과 매장이 불을 밝히고 있어서 유대인지구라기보다는 무슬림 골목이라 하는 게 맞을 듯했다. 은실로 감싼 장식용 칼과 금속 세공품은 중동의 아부다비나 두바이 기념품 상점에서 본 것과 같았다.

왜 70킬로미터 떨어진 마드리드로 천도했는지 이해했다. 똘레도는 세 방향에 타호강의 급류가 흐르고 북쪽은 가파른 비탈이다. 외부의 공격을 막기에는 유리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강을 건너 도시를 확장할 수 없었다. I가 남서쪽의 제일 오래된 다리를 건너 맞은편 비탈의 호텔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똘레도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왕의 심정은 이랬을 것이다. ‘무슬림 세력을 완전 제압했고 왕권을 확고히 세웠으니 외부 침략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급류와 비탈에 둘러싸인 똘레도는 너무 답답해. 강이 흐르고 농사가 잘되고 넓은 평지가 있는 마드리드로 가자.’

경복궁·창덕궁·종묘가 없고 서촌·북촌·한양도성이 없는 서울을 상상해 보라. 마드리드는 그런 곳이다.

가끔 가는 우리 동네 스페인 식당의 음식값과 비교해 보니 확신이 들었다.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역시 현지 음식이 답이군!’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마드리드의 ‘밤 생활’을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지만, 플라멩코(flamenco) 공연과 재즈 카페는 예약을 해둔 터라 포기하지 않았다. 마드리드에는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극장과 공연장이 여럿 있었다. 낮에는 미술관에 가야 해서 밤에 그랑비아 거리 뒤편 주택가의 상설 공연장에서 하는 정통 플라멩코 공연을 보았다. 마드리드 치안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있지만 시내 주택가의 밤거리는 조용했고 골목 식당들은 젊은이로 붐볐다.

공연 막바지에 흥에 취한 손님들이 춤을 추었다. 밴드 멤버들이 화답하면서 재즈 바는 놀이터가 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 밴드 멤버들은 손님들과 와인 잔을 부딪치면서 사진 촬영에 응해 주었다. 런던에서도 뉴욕에서도 서울에서도 그런 재즈클럽은 본 적이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더 잘 노나?’ 한 군데만 보고서 어찌 판단할 수 있겠는가. 혹시 마드리드에 다시 간다면 다른 재즈 바에 가서 확인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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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시에는 ‘관광 맛집’과 ‘현지 맛집’이 있다. E가 소개한 ‘현지 맛집’은 기본 반찬으로 염장 올리브와 볶은 치스또라(chistorra)를 내주었다. 치스또라는 바스끄 지역의 전통 소시지로 크기는 손가락만 한데 돼지고기·마늘·파프리카·파슬리 따위로 속을 채운 것이라 육향이 세고 짭짤해서 맥주 안주로 딱 좋다. - P-1

샐러드와 쇠고기 따빠(tapa)를 전식으로 맛보고 마드리드 대표 음식 꼬시도(cocido)에 적포도주를 곁들였다. 유대 음식에서 기원했다는 꼬시도는 ‘모둠 고기찜’이다. - P-1

한국 갈비찜과 닭백숙을 부대찌개에 넣어 졸이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았다. 꼬시도는 한 번 맛보면 충분하다. 스페인에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이 있는데 겨우 열흘 여행하면서 뭐 하러 같은 것을 자꾸 먹겠는가. - P-1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밥을 늦게 먹는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모두 밤 열 시에도 식당이 붐볐다. 마드리드 도착한 날 밤에 갔던 그랑비아 거리의 이름난 따빠 전문 식당에서는 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한참 기다려 자리를 받았다 - P-1

점심을 먹으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문화와 취향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E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을 즐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가우디·미로·피카소도 좋아하지만 주로 나라 안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고야와 벨라스케스를 더 좋아한다.’ ‘지역마다 언어와 역사와 문화가 다른 것을 스페인의 장점으로 여긴다.’ 그런 점이 내 마음에 들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가치 판단의 무게 중심을 자신의 내면에 두고 사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스페인 여행이 재미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 P-1

왕들은 광장에서 결혼식이나 투우 행사를 열었고 죄 없는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 목매달고 불태우는 방식으로 민중을 지배하고 통제했다.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한가운데 세운 왕의 기마상 말고는 광장이 권력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없다. 오늘의 마요르 광장은 먹고, 마시고,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민중의 생활공간이다. 얼마나 멋진 변화인가. - P-1

5세(Felipe V, 1683~1746)가 새 궁전을 지었다. 방이 2,800개 넘는 유럽 최대 궁전이라지만 베르사유와 달리 넓은 수로나 정원이나 숲이 없다. - P-1

합스부르크제국과 전쟁을 벌인 끝에 왕권을 지켜낸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편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짚어둔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펠리페 5세를 학살자로 여긴다. - P-1

벽과 천장 모두 중국풍 그림으로 장식한 흡연실이다. 왕실의 남자들도 담배를 피울 때만큼은 공식적 예술형식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다. 거기서 담배를 피우면 맛이 두 배일 것 같았다. 여러 해 피우지 않았던 담배의 맛과 향이 떠올랐다. 사람은 기억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1

무슬림이 쳐들어왔을 때 성벽에 숨겼다가 수백 년이 지나 마드리드를 탈환한 후 다시 찾아냈다는 성모상이다. 이 ‘부활 서사’의 진위는 종교 설화가 다 그렇듯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다. 종교는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다. 신심 깊은 신도들이 다 좋아하는데 뭐 하러 굳이 진위를 밝히려 애쓴다는 말인가. - P-1

고야가 궁정화가 자리를 얻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그 혁명은 극단적 공포정치를 거쳐 나폴레옹의 제정으로 흘렀고, 나폴레옹은 영국과 무역을 한 포르투갈을 응징하겠다며 스페인에 군대를 보냈다. 그런데 프랑스군은 리스본이 아니라 마드리드를 점령해 왕과 왕세자를 감금했고 나폴레옹은 변호사인 형 조제프를 스페인 왕 호세 보나빠르떼(José Bonaparte)로 세웠다. - P-1

스페인 왕과 가족이 프랑스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마드리드를 떠나 파리로 끌려간 1808년 5월 2일 스페인 민중이 들고일어났다.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무장 항쟁이 다른 도시로 퍼졌고 전국적 게릴라전으로 번져나갔다. - P-1

1813년 프랑스군이 철수할 때까지 이어졌던 그 싸움을 ‘스페인 독립전쟁’이라고 한다. 호세 왕은 종교재판을 폐지하고 귀족의 특권을 제한하는 등 사회개혁을 추진했지만,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동생이 권력을 잃자 함께 몰락했다. - P-1

낮에는 ‘골든 트라이앵글’ 미술관을 보고, 점심과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고, 밤에는 플라멩코 공연장이나 재즈 바에서 놀면 된다. 하지만 평생 단 한 번만 마드리드를 여행할 수 있다면 MAN과 마드리드 역사 박물관 가운데 하나를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왕궁이나 대성당을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 P-1

14세기 종교화부터 20세기 팝아트까지 서양미술 전체를 아우르는데,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두 점씩만 보여주어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았다. 지루하지 않다는 말이다. - P-1

티센(Thyssen)은 19세기에 큰 철강회사를 세운 독일 기업인의 이름이다. 정확하게 발음하면 ‘튀센’이지만 다들 티센이라고 하니 받아들인다. 철강기업 티센은 엔지니어링 회사 크룹(Krupp)과 합병해 ‘티센-크룹’이 되었다. 보르네미사(Bornemisza)는 헝가리 귀족 가문 이름이다. 창업자 아우구스트 티센의 아들 하인리히가 1906년 보르네미사 남작의 딸 마르기트와 혼인하자 아들이 없었던 남작이 사위를 양자로 삼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요제프 황제는 귀족 작위를 주었다. 하인리히와 마르기트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후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둘은 이혼했지만, 하인리히의 티센-보르네미사 남작 작위는 남았다. - P-1

미술관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관람해야 힘이 덜 든다. TB는 오래된 작품을 높은 층에 두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대순으로 감상하게 된다. 중세 종교화 일색인 2층 전시장을 최대한 빠르게 통과했는데 9번 방의 마테우스 슈바르츠 초상화들이 눈에 띄었다.

16세기 초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산을 관리했던 유럽 최강 금융업자의 회계사였다. 슈바르츠는 패션을 취미로 삼고 살았던 덕분에 의상 디자인의 선구자, 세계 최초의 패션 북 제작자, 아날로그 시대의 ‘파워 인플루언서’라는 평가를 얻었다.

TB는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다. 프라도도 마찬가지다. 미술관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직접 찍은 사진을 책에 싣곤 했는데, 두 미술관은 어쩔 수 없이 온라인에서 구한 사진을 썼다. 관심 있는 독자는 홈페이지에 접속해 슈바르츠의 패션 초상화를 모두 감상하시기 바란다.

32번 전시실의 인물화도 기억에 남았다. 특히 사전트(J. S. Sargent, 1856~1925)의 그림 ‘베네치아의 양파 파는 여인(Vendedora veneciana de cebollas)’에서 아련한 슬픔을 느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사전트는 세계 주요 도시를 떠돌면서 주로 상류층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렸다는데 거리에서 본 보통 사람을 그린 작품이 나는 더 좋았다.

마드리드 ‘예술의 정원’은 산책을 허락하지 않는다. 유학생이나 외교관이나 회사 주재원이라면 모를까, 단기 여행자는 행군하듯 걸어야 한다. 오전에는 TB에서 오후에는 프라도에서 걷다 서기를 반복했다. 종아리와 허벅지를 거쳐 허리까지 고단함이 차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2백 년 역사를 가진 프라도는 보유한 예술품의 극히 일부인 1,700점만 전시하는데 공예품과 조각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화 작품이다. 기념사진은 허락하는 구역에서만 찍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육안으로 감상해야 한다.

‘피레네 서쪽은 아프리카’라는 말이 틀렸다고 해도 스페인의 산업과 정치가 서유럽에 뒤졌다는 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사는 형편이 나쁘면 문화와 예술도 뒤진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서유럽의 미술관 운영자들은 스페인 예술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프라도에서는 고야·벨라스케스·엘 그레꼬 같은 스페인 화가들을 눈여겨보았다. 스페인 예술이 부당하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 예술가의 작품을 빼고 살펴보라. 런던 내셔널 갤러리나 파리 루브르 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프라도를 능가한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원래는 제목이 없었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아남아 <시녀들>이라는 이름을 얻은 작품에 벨라스케스는 공주·시녀·집사·광대·개와 자기 자신을 그렸다. 펠리페 4세 왕과 왕비는 화가 뒤편의 벽거울에 작고 희미하게 비칠 뿐이다. 천장이 높고 벽에 그림이 빼곡하게 걸린 것으로 보면 방은 화가의 작업실인 듯하다.

무슨 말인지 알고 싶어서 고야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살폈다. 고야는 아라곤의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라고사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보기 드문 재능을 드러냈고 마흔세 살에 왕의 부름을 받아 궁정으로 들어갔다. 일찍이 계몽사상을 학습해 프랑스대혁명의 이상에 공감했던 그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는 부제를 달아 성직자의 부패와 교회의 범죄를 비판하는 판화 작품집을 만들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프랑스 군대는 스페인의 주권을 짓밟고 민중을 학살했다. 고야는 스페인 독립전쟁의 중요한 사건과 전투 장면을 그렸고 전쟁의 야만성과 민중의 고통을 알리는 판화를 제작했다. 영국과 손잡고 6년 동안 싸운 끝에 스페인은 프랑스 군대를 내쫓고 주권을 되찾았지만 고야는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어둠의 그림들’을 전쟁의 참상을 묘사한 판화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였다. 인간 본성에 대한 절망과 세상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극소수 권력자들이 종교의 권위로 인간을 억압하고 세속의 권력으로 민중을 착취하며 국가의 대의를 앞세워 대학살을 저지른 시대였다.

괴물이 깨어난 시대를 살았던 그는 괴물을 다시 잠재우려면 잠들어버린 인간의 이성이 눈을 떠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담은 그림으로 타인의 이성을 깨우려 했다. ‘어둠의 그림들’을 보면서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예술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예술이 무엇이라 하든,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었던 그 시대에 고야 같은 예술가 한 사람도 없었다면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궁정화가 고야밖에 모르면서 들어갔지만 예술가 고야와 철학자 고야를 마음에 담고 프라도를 나왔다. 프라도에서 한 ‘행군’은 넘치는 보상을 받았다. 뿌듯해서 남모르게 내 엉덩이를 툭 치며 혼자 말했다. ‘잘했어, 프라도는 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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