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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문명의 배꼽 그리스] 자유, 自由, Ελευθερία
시골의사 박경철님은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오랫동안 안동에서 의사로 일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9년까지만 해도 인문학 강연에 나선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요즘은 방송이나 강연, 저술 활동에서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다. 공개된 근황도 많지 않다. 그저 어디에 계시든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나보다 훠얼씬 더 잘 지내고 계시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배우 오달수님과 이미지가 제법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진을 붙여 놓고 비교해 보고 싶지만 참는다.
『그리스 기행 1―문명의 배꼽 그리스』가 출간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그 뒤로 그리스 문명 강연도 하시고, 찰스님과 포옹도 하시고 그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무엇보다 에필로그를 읽으며 더 큰 기대를 품었다. 모두 열 권으로 이어질 그리스 문명기행 대장정. 그것도 이미 제2권 초고까지 마친 상태라고 하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박경철의 시선을 따라 그리스를 여행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스를 생각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떠오른다.
그는 크레타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대표 작가다. 그리스는 이라클리온 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의 공식 명칭은 ‘이라클리온 국제공항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한 나라가 자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붙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그리스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묘비명은 너무도 유명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Den elpizo tipota.
Den fovamai tipota.
Eimai eleftheros.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그리고 임종 직전에 남겼다는 메모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임종 직전 남긴 메모
삶을 모두 살아낸 사람이 도달한 자유.
욕망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담담히 관조하는 경지.
해가 저물었으니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온함이 있다. 한 생을 다 살아낸 사람이 삶을 억지로 붙잡지도, 죽음을 과장하지도 않고 조용히 내려놓는 모습이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바로 King Crimson의 〈Epitaph〉이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과 King Crimson의 〈Epitaph〉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지 않다.
너무나도 반대되는 이야기다.
카잔차키스는 한 인간이 욕망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도달하는 자유를 말한다. 삶을 다 살아낸 사람이 해가 저문 뒤 조용히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반면 King Crimson의 〈Epitaph〉은 인간이 끝내 욕망과 권력을 제어하지 못했을 때 어떤 미래를 맞게 되는지를 경고한다.
예언자들이 글을 남긴 벽은 갈라지고, 죽음의 도구 위로 햇빛이 비친다. 여기서 죽음의 도구는 핵무기를 비롯해 인간이 만들어 낸 전쟁과 대량살상의 수단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지식을 얻었지만 그것을 통제할 지혜를 갖추지 못했고, 막대한 권력을 쥔 정치인들은 인류의 운명을 위태로운 경계로 몰아간다.
Knowledge is a deadly friend
If no one sets the rules.
규칙과 통제 없이 쌓인 지식은 치명적인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 노래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만들어 낼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염세주의가 짙게 배어 있다. 결국 남게 될 묘비명마저 ‘혼란’일 것이라는 공포, 인류가 스스로 만든 파멸을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묵시록적 경고다.
한쪽은 삶을 내려놓은 사람의 관조이고, 다른 한쪽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문명을 향한 절규다.
한쪽은 욕망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은 인간의 자유이고, 다른 한쪽은 욕망과 권력을 끝내 통제하지 못한 문명의 공포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 문명을 생각한다.
찬란했던 그리스 문명의 시대 역시 영원하지 않았다.
그리스 문명은 외부의 적에게만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도시국가들은 끝내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었고, 권력과 패권을 둘러싼 끝없는 전쟁은 스스로 문명의 힘을 갉아먹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며 국력을 소진했고, 그 틈을 타 북쪽의 마케도니아가 세력을 키웠다. 이후 그리스 세계는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인간이 만든 욕망이 인간의 문명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King Crimson의 〈Epitaph〉이 던지는 묵시록적 경고는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역사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와 철학,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문명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오만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도 끊임없이 보여 주었다. 그 비극은 신화와 희곡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도시국가들은 패권을 향한 욕망을 내려놓지 못했고, 결국 서로의 힘을 소진시켰다.
성취한 지식과 권력을 제어할 원칙이 없다면, 아무리 찬란한 문명도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의 역사는 보여 준다.
카잔차키스는 한 인간이 욕망을 내려놓았을 때의 자유를 말했고, 그리스의 역사는 욕망을 내려놓지 못한 문명의 흥망을 보여 주었으며, King Crimson은 그러한 인간의 오만이 끝내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를 노래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찬란한 시대는 저물었어도 그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정신은 철학과 문학, 예술과 역사 속에 남았고, 카잔차키스의 문장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박경철은 그 흔적을 따라 그리스 곳곳을 걸으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 했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에필로그, 432쪽
2011년 겨울부터 첫 발을 뗀 이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 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서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 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제2권의 초고 집필을 마친 상태이다.
짐작건대 2013년 한 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행과 집필의 시간들로 채워질 듯하다.
모쪼록 이 여행이 필자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의미 있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란다.
이 에필로그를 읽으며 앞으로 나올 아홉 권의 책을 당연한 미래처럼 기다렸다.
펠로폰네소스를 지나 아티카로, 다시 테살로니키와 마그나 그라이키아로 이어질 긴 여행을 박경철의 시선을 따라 함께 걸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두 번째 권의 초고까지 마친 상태라고 했으니, 후속편을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10년이 넘은 지금, 후속편이 나오기는 요원한 것 같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미 다음 권의 초고까지 마쳤더라도, 삶은 언제나 계획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
물론 수천 년에 걸친 한 문명의 흥망과 한 사람의 미완의 집필 계획을 같은 무게로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 문명의 흥망을 기록하려 했던 긴 여행마저 끝내 첫 권에서 멈추었다는 사실 앞에서는,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찬란했던 문명은 폐허와 기록으로 남았고, 열 권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던 여행은 한 권의 책과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다음 권의 초고로 남았다.
문명도 사람의 계획도 언젠가는 멈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과 질문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다시 펼치면 이미 출간된 한 권보다 나오지 않은 아홉 권이 먼저 생각난다. 언젠가 박경철님의 그리스 여행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지만, 이제는 그 기다림조차 이 책의 일부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는 꼭 그리스를 걸어보고 싶다.
박경철이 책에서 걸었던 길을 따라가고, 카잔차키스가 잠든 크레타를 찾아가 그의 묘비명 앞에도 서 보고 싶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미케네와 델포이, 그리고 헬레니즘 문명이 남긴 흔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그리스 문명의 폐허 앞에서 단순히 과거의 영광만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찬란했던 문명이 왜 스스로의 힘을 소진했고, 인간의 욕망과 권력은 왜 끝내 제어되지 못했는지 그 흔적을 직접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앞에서는 한 인간이 모든 욕망과 두려움을 내려놓았을 때 도달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조용히 되새겨 보고 싶다.
그 여행을 마친 뒤 다시 King Crimson의 〈Epitaph〉을 들으면,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박경철이 끝내 이어 가지 못한 그리스 문명기행의 뒷부분을, 언젠가는 나 자신의 두 발로 조금이나마 이어가 보고 싶다.
카잔차키스는 해가 저물었으므로 연장을 거두었다.
그리스 문명의 찬란한 시대도 역사의 저편으로 물러났다.
박경철이 계획했던 열 권의 여행도 아직은 첫 권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카잔차키스의 문장도, 그리스 문명의 흔적도, 박경철이 남긴 한 권의 책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자리에서 또 다른 사람의 여행이 시작된다.
언젠가 그리스의 폐허와 바다, 크레타의 하늘 아래 서게 되는 날, 나는 다시 King Crimson의 〈Epitaph〉을 들을 것이다.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