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너그럽게 이민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북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온 노동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날씨는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좋았다. 밤은 춥지 않았고 낮은 덥지 않았다. 하늘은 바다만큼 푸르렀고 바다는 하늘처럼 고요했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마드리드를 잊었다. 스페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시내 북서쪽 카르멜 언덕의 구엘 공원(Parc Güell)에서 바르셀로나 탐사를 시작했다. 언덕 바로 아래 그라씨아(Gràcia)지구를 구경하면서 엑샴쁠레지구로 내려와 사그라다를 비롯한 명소를 본 다음 중세와 로마 시대를 품은 고딕지구와 라발지구를 거쳐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남동쪽 해변까지 걸어서 갈 생각이었다

비탈진 도시에서는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가는 게 체력 소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G가 그 계획에 맞추어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입장권을 예매했다. 바르셀로나를 하루에 본다면 이렇게 다니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의 건축물이 일곱 개 있는데,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가 제일 유명하고 방문객도 많다.

건축학을 전공한 G의 설명 덕분에 가우디가 토목공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카르멜 언덕은 서울 남산처럼 도시 한가운데 있다. 그런데 왜 택지 분양에 실패했을까? 자동차가 아니라 마차가 부자들의 교통수단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언덕 바로 아래 그라씨아지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엑샴쁠레지구는 건설 중이었다. 시민들의 생활공간은 까딸루냐 광장과 해변 사이의 구시가지에 있었다. 카르멜 언덕은 아직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간 입구는 1992년 올림픽 때 관광객을 받으려고 언덕 중턱에 새로 만든 것이고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현관 앞 출구가 원래의 주택단지 입구였다는 사실을 모르면 가우디가 무슨 일을 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현관 위 전망대의 평면과 아래의 공간도 같은 방식으로 창조했다. 관람객들은 전망대에서 도시의 원경에 취해 시간을 보내다가 발아래 얼마나 대단한 공간이 있는지 모른 채 바삐 현관 분수대를 거쳐 출구로 간다. 그리스 스타일의 돌기둥들이 전망대를 떠받치면서 빗물을 내부의 좁은 통로에 끌어들여 지하 저수조로 보낸다. 저수조 수위가 높아지면 현관 중앙의 타일 조각으로 장식한 도마뱀이 입으로 물을 내뿜는다. 돌기둥 사이에 서니 파르테논 신전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이스탄불의 ‘예레바탄 사라이(지하 궁전)’가 떠올랐다.

건축은 물리학과 예술을 아우른다. 건축가는 예술적 영감과 미학적 자유를 추구하지만, 정역학(靜力學)의 원리를 철저히 따라야만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다. 구엘 공원은 예술가 가우디와 엔지니어 가우디를 다 보여주었다. 그는 사그라다를 지을 때 적용할 여러 예술적 아이디어를 주택단지 토목공사와 현관 건축에서 먼저 실험했다. 그렇지만 구엘 공원을 지배하는 것은 미학이 아니라 역학이었다. 예술가 가우디는 여러 군데에서 만났지만, 엔지니어 가우디를 뚜렷하게 본 것은 그곳뿐이었다

엑샴쁠레는 신시가지를 가리키는 까딸루냐 말이다. 19세기 후반까지 고딕지구는 건물이 빼곡했고 그라씨아는 듬성듬성 집이 있었다. 까딸루냐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구가 급증하자 시정부는 직선으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두 지구 사이의 빈 땅을 특이한 방식으로 개발했다

엑샴쁠레는 구엘 공원과 마찬가지로 마차 시대에 만들었기 때문에 마부와 보행자의 시야를 넓혀 사고를 예방하려고 교차로를 낀 건물의 모서리를 깎게 했다.

고딕지구를 빠져나오면 콜럼버스 기념탑 너머로 몬주익 언덕이 보인다. 몬주익 언덕에는 볼 것과 놀 것이 많다. 시내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출발점인 에스빠냐 광장, 밤마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마법의 분수, 스페인 여러 지역의 대표 건축물을 모아둔 스페인 마을, 미로 미술관, 까딸루냐 미술관, 깜 노우 경기장 보수공사 때문에 FC 바르셀로나가 임시 홈구장으로 쓰는 올림픽 스타디움, 꼭대기의 성과 전망대 등이다. 그 모두를 보려면 하루를 다 써도 부족하다.

『유럽도시기행』 1권과 2권의 도시를 다닐 때 이스탄불 말고는 가이드를 고용한 적이 없었다. 유능한 가이드를 만나면 여행이 두 배 즐거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여러 건축가가 참여해 속도를 올렸으며 컴퓨터를 이용해 세부 설계를 하고 석재를 가공하게 된 이후 속도가 빨라졌다. 전체 완공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중앙탑 공사가 마무리되어 2026년 6월 가우디 사망 100주년에 맞춰 축복식과 공식 개관 행사를 열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현장에 살다시피 하면서 미사는 고딕지구의 작고 오래된 성당에서 보았는데, 1926년 6월 7일 그 성당에 가다가 노면전차에 치였다. 운전사는 옷차림이 허름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방치했고 택시 기사는 승차를 거부했으며 병원은 진료를 기피했다. 공공 구빈 병원으로 옮긴 다음에야 의료진이 신원을 확인하고 친지들에게 연락했다. 가우디는 큰 병원으로 옮기자는 권유를 거절하고 그 병원에 머물다가 사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 수많은 시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가우디의 관은 사그라다 지하에 놓였다.

이스탄불의 하기야 소피아처럼 뒤꿈치를 들고 걷게 하지도 않았다. 나는 두려움도 경건함도 느끼지 않았다. 내게 사그라다는 ‘건축으로 구현할 수 있는 예술의 최고 수준’이었을 뿐이다. 가우디 자신은 심오한 종교적 감정과 예술적 열정을 다 표현했겠지만, 나는 예술적 열정만 받아들였다.

최후의 만찬부터 골고다 언덕 행진을 거쳐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재현한 ‘수난의 파사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중심인데 수비라치가 가우디의 얼굴을 넣은 탓에 또 논란이 일었다.

바다와 하늘이 나눠지지 않아서 배가 하늘을 나는 것 같기도 했고 바르셀로나가 바다를 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장면을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그라다에서 본 지중해가 사그라다보다 나는 더 좋았다

바다와 하늘이 나눠지지 않아서 배가 하늘을 나는 것 같기도 했고 바르셀로나가 바다를 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장면을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그라다에서 본 지중해가 사그라다보다 나는 더 좋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 지도자가 처형당한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만은 예외였다. 프랑코는 프랑스에서 독일군에 붙잡힌 그를 데려와 군사재판에 회부했고 반란 혐의로 몬주익성에서 총살했다. 쿰빠니스는 총살을 당할 때 눈가리개 착용을 거부하고 앞을 보며 외쳤다. ‘까딸루냐를 위하여!’

조형물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민중의 소망을 이루어준 리더도 귀하지만 현실에서 패배한 리더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민중은 그보다 더 귀하다. 민주사회의 주권자한테는 목숨 바쳐 충성한 공무원을 보듬을 책임이 있다.’ 백범 선생과 ‘영원한 광복군’ 장준하 선생을 떠올렸다. 백범은 민족의 분단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남북을 오가면서 분투했으나 현실 정치에서 처절하게 실패하고 암살당했다. 장준하 또한 가슴에 품은 뜻을 다 펴지 못하고 타살 정황이 뚜렷한 의문사로 삶을 마감했다. 그들은 정치 지도자로서 이룬 것이 없었다. 민중에게 무엇인가 베풀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았다. 많은 시민이 지금도 존경한다. 전쟁의 폐허뿐이었던 대한민국을 풍요로운 민주사회로 발전시킨 동력은 유능한 리더가 아니라 실패한 리더까지도 기억하고 보듬는 국민한테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시떠델러 공원을 지나 바르셀로나의 가장 오래된 구역인 보른지구의 역사문화센터(El Born Centre de Cultura i MemÒria) 고고학 발굴 현장을 잠깐 살핀 다음 고딕지구로 향했다. 사그라다를 보았으니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건너뛰었다. 한 도시에서 성당이나 교회를 하나만 본다는 나만의 규칙을 지켰다. 그렇지만 ‘바다의 성모 성당(Basilica de Santa Maria del Mar)’은 예외로 했다. 14세기 지배자와 귀족과 부자들이 고딕지구 한복판에 대성당을 지었던 시기에 바르셀로나의 가난한 어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바다 가까운 곳에 자기네 성당을 세웠다.

까딸루냐 민중은 9월 11일을 ‘그날(la Diada)’이라고 하며 지금까지 국경일로 삼고 있다.

2017년 실시한 주민투표에서는 투표자 대부분이 독립에 찬성표를 던졌고 주의회는 까딸루냐 공화국 창립을 선포했다. 스페인 정부가 주의회를 해산하고 주요 인사를 반역 혐의로 기소해 무위로 끝나기는 했지만 시민들은 각급 선거에서 분리주의 성향의 정당에 더 많은 표를 주는 방식으로 독립 의지를 표현한다. 하지만 까딸루냐의 독립을 허용하면 갈리시아와 바스끄 등 다른 주들도 독립하려 할지 모르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음식과 축구 말고는 스페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없다고 한 마드리드 가이드 E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스페인은 아직 망각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다.

시위대는 스타벅스 매장 앞을 지날 때 특히 큰 함성을 지르면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지중해 건너편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연대감을 표현하려고 거리에 나온 시민이 그렇게 많다는 게 놀라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에 섞여 걷는 동안 밤이 깊었다. 까딸루냐 광장 근처는 큰길과 골목 모두 사람으로 넘쳤다. 식당 피크타임인 아홉 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바르셀로나는 스테이크지!’ 다른 도시의 다른 식당에서도 먹어보았지만, 내 취향으로는 60일 숙성 갈리시아 안심구이가 최고였다.

첫날 2만 보 넘게 걸었고 돌아오는 길에 시위 구경을 하느라 평소 기준으로는 매우 늦게, 그러나 바르셀로나 기준으로는 제때 저녁밥을 먹었다. 까딸루냐 광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의 예약을 받지 않는 ‘동네 맛집’에 20분 넘게 줄을 서 기다렸다.

세 번째는 돼지 다리를 염장 건조한 하몬(jamÓn)이다. 한글로 하몬이라 쓰지만 실제 소리는 하몬과 카몬의 중간쯤 된다. 전용 칼로 얇게 저며 접시에 담아낸 하몬은 빵에 올리거나 멜론을 싸도 괜찮았지만 그 자체로 먹는 게 더 좋았다.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손이 가지 않았던 하몬을 마음껏 즐겼다. 굳이 도토리를 먹인 흑돼지 하몬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스페인 하몬 생산량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최고급은 값이 보통 하몬의 몇십 배나 된다. 사료를 먹여서 기른 백돼지의 뒷다리로 만든 하몬도 충분히 맛있다.

넓은 도자기 접시에 종잇장처럼 저민 생아귀 살을 펼쳐 놓은 ‘생아귀 쎄비체’는 기대한 것보다 더 훌륭했다. 그런데 양이 너무 적어서 화가 났다. ‘돈을 더 받더라도 배불리 먹을 만큼 줘야지!’ 서울에 돌아와 분을 풀려고 직접 만들었다

‘읽는 것은 마음이 되고 먹는 것은 몸이 된다.’ 나는 이야기와 음식을 다 좋아한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 즐겁다. 유럽 도시를 여행하면서 나는 길과 건축물과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그곳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을 먹는다. 아내와 함께, 여행 친구와 함께한다. 어떤 이는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또는 ‘자아를 찾으려고’ 여행을 한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게 여행은 ‘멀리 가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친밀한 사람과 함께하면 두 배 즐겁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좌우에 직립한 집들을 밀쳐내면서 푸른빛이 골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바다가 덮쳐온 것 같아서 숨을 멈추고 위를 보았다.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다. 지중해의 하늘! 상상하지 못한 광경이었다. 말을 잃은 우리에게 G가 말했다. ‘늦은 오후에는 석양이 들어와요.’

고딕지구의 낡은 집 한 채로 문을 열었던 피카소 미술관은 집 다섯 채를 연결한 전시 공간으로 성장했다. 피카소는 안달루시아의 말라가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만년에는 남프랑스 소도시 앙띠브에서 살았다. 그래서 말라가·파리·앙띠브에 모두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바르셀로나는 청소년기에 몇 해 정도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피카소를 대표하는 전시공간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미술관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소장한 작품의 수량이 많아서가 아니라어린 시절 습작을 포함해 예술가 피카소의 생애 전체를 보여주는 미술관이라서다.

왜 그런 미술관이 바르셀로나에 생겼을까? 피카소의 친구이고 비서였던 바르셀로나 태생 시인 하우메 사바르테스(Jaume Sabartés, 1881~1968)가 한 일이다. 그는 프랑코가 피카소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1963년 자신의 이름으로 피카소 작품 컬렉션을 선보였다. 피카소는 나중 보관하고 있던 작품을 기증함으로써 사바르테스의 기획을 승인했다. 그저 친구가 하는 일이라서가 아니다. 피카소는 자신이 화가로 태어난 곳이 바르셀로나라고 생각했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회화는 자연을 모사하는 일이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작업이지.’ 나 같은 사람은 어떤 대상을 모사하는 일만 잘해도 만족한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싶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렇지 않았다. 자연을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일렁이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고 대상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존재하지 않았던 시각적 질서를 창조해 경험적 인식이 만든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현상 너머에 놓인 대상의 본질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자연과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에 변화를 일으켰다. 괜히 천재 예술가라고 하는 게 아니다.

피카소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전통적인 미술 형식과 작별했고, 시대 상황이 달라지거나 삶이 곡절을 겪을 때마다 화풍을 크게 바꾸었다. 대작을 여럿 보유한 파리의 미술관이나 만년에 그린 소품을 주로 전시하는 앙띠브의 미술관에서는 그런 변화를 볼 수 없었는데 바르셀로나의 미술관은 달랐다. 예술가 피카소와 인간 피카소를 다 만날 수 있었다.

<과학과 자비>는 당대의 기독교인이, 권력자가, 문화계 권위자가 좋아했을 그림이다. 힘없이 누운 여인은 인간, 맥박을 재는 의사는 과학, 환자의 아이를 안은 수녀는 신의 자비를 상징한다. 그림의 분위기는 신의 자비 쪽에 무게를 싣는다

<과학과 자비>는 당대의 기독교인이, 권력자가, 문화계 권위자가 좋아했을 그림이다. 힘없이 누운 여인은 인간, 맥박을 재는 의사는 과학, 환자의 아이를 안은 수녀는 신의 자비를 상징한다. 그림의 분위기는 신의 자비 쪽에 무게를 싣는다.

둘째는 옥상에 커다란 성모상을 세우려 한 것이다. 가우디가 고집을 꺾지 않자 건축주가 소송을 냈다. 주택은 교회가 아니다. 인간의 삶에는 성(聖)과 속(俗)이 다 필요하다. 그 둘을 섞으면 안 된다.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이 결합하면 세상은 무서운 곳으로 변한다. 일상의 생활공간을 종교 율법이 침범하면 자유는 질식한다. 건축주만 건축가의 철학과 신념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도 건축주의 취향과 가치관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결국 가우디는 패소해 성모상을 올리지 못했다.

관광산업에 초점을 두고 보면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다. 피카소와 미로도 한몫하지만, 가우디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가우디도 자연을 당하지는 못한다. 까사 밀라가 문을 닫는 시간이 다가왔을 때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몬주익 언덕 오른편 하늘에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조그맣게 붉은색이 나타나더니 점차 번져 남쪽 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옥상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말을 멈추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나도 모든 것을 잊고 노을을 보았다. 가우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예술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산 펠립 네리 광장은 두 가지 이유로 명소가 되었다. 첫째, 가우디가 바로크 스타일의 그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전차에 치였다. 성당 외벽 앞에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여행자들이 있었다. 구엘 공원에서 시작한 ‘가우디 워킹 투어’를 거기서 마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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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의 숲은 중세 왕의 정원이거나 사냥터인 경우가 많은데 레티로 공원도 그렇다.

그보다는 시민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가벼운 차림으로 뛰는 젊은이, 유모차를 미는 커플, 손자와 산책하는 노인, 뱃놀이하는 연인, 버스커, 저글러, 여느 도시의 공원과 다를 게 없었다.

공원을 나오면서 상상해 보았다. ‘똘레도를 떠다가 여기에 심으면 어떨까? 마드리드가 온전한 역사 도시가 되겠지.’

아토차역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랑비아역에서 메트로 1호선을 타고 네 정거장만 가면 아토차역 길 건너 예술역이었다. 길 찾기 앱을 무작정 따라갔다가 시간과 돈을 허비한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앱을 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유럽 도시에서는 이동 시간 계산을 할 때도 길 찾기 앱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말아야 한다. 일찍 나서지 않았다면 보안 검사 시간 때문에 그날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스페인은 한국만큼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다. 마드리드 시내 전철은 노선마다 요금 체계가 달랐고 환승 요금 할인도 없었다. 인터시티 열차도 그랬다. 2022년 서비스를 시작한 민간 고속철도회사(iryo)는 국영 철도회사(renfe)보다 요금이 약간 싸고 서비스가 좋다.

마드리드에 다시 간다면 뭘 할지 생각해 보았더니 세 가지가 떠올랐다. 미술관 감상, 똘레도 소풍, 플라멩코·재즈 공연이다. 미술관을 딱 한 곳만 볼 수 있다면 어디가 좋을까? 대가들의 작품을 최대한 넓게 감상하려면 TB가 좋겠지만 스페인 미술을 깊이 있게 보고 싶다면 프라도가 최선이다. TB와 비슷한 미술관은 다른 곳에도 있지만 프라도는 그렇지 않다. 프라도에는 마드리드에 가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작품이 많다.

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제국의 영광이 사라진 광장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누는, 먹고 마시며 늦은 밤까지 함께 웃는 삶의 터전으로 바꾸었다. 죽은 왕들의 권위를 과시하는 왕궁보다 벨라스케스와 고야 같은 예술가를 품은 미술관을 더 높이 자랑한다. 한국 여행사들이 스페인·포르투갈 관광 일정에 마드리드를 스치고 지나가듯 끼워 넣은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마드리드는 깊게 들여다보아야 멋을 알 수 있는 도시다.

까딸루냐의 주도(州都)인 바르셀로나는 중세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으나 이사벨-페르난도 공동왕의 스페인 왕국 창설 이후 줄곧 마드리드에 억눌렸고 때로는 짓밟혔다.

무역의 중심지였고 근대 스페인 산업화를 주도했으며 제일 잘 사는 지역인 까딸루냐 주민들은 이런 역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까딸루냐 말을 제1 공용어로 쓴다. ‘스페인 국민’이기에 앞서 ‘까딸루냐 시민’임을 자처한다.

카를로스 1세 왕이 국가의 통합에 기여한 공으로 작위를 내렸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스페인의 정치인이기에 앞서 까딸루냐의 시민이라고 주장했다. 바르셀로나시는 2019년 따라데야스의 이름을 공항에 넣음으로써 ‘스페인의 도시’이기에 앞서 ‘까딸루냐의 수도’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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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 60D 활용가이드 - 매뉴얼도 알려주지 않는
니콜 S.영 지음, 공민희 옮김, 윤우석 감수 / 멘토르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독서사진에세이]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와 함께한 나의 첫 DSLR
― 아이들의 성장과 남도 답사, 그리고 첫 해외여행까지


필름카메라와 작은 디지털카메라들을 거쳐 처음으로 큰맘 먹고 장만한 DSLR. 아이들과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따라 남도를 답사했으며, 마흔을 넘겨 처음 떠난 해외여행까지 함께했다. 지금 옛 사진을 다시 보면 촬영 장소가 어디였는지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EOS 60D에는 우리 가족의 한 시절과 내가 여행하고 답사하는 방식을 만들어가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들어가며 ― 필름카메라에서 DSLR까지

내 카메라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에는 삼성 필름카메라가 있었다. 정확한 모델명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지금처럼 셔터를 누르고 곧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필름 한 통을 다 찍어 사진관에 맡기고, 현상과 인화를 거쳐 사진을 받아봐야 제대로 찍혔는지 알 수 있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필름값과 현상비, 인화비가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찾아왔다.

Canon PowerShot A70도 한동안 사용했다. 기억으로는 이 카메라를 가족사진용으로 샀다기보다 사무실에서 공사현장에 가지고 다니며 현장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마련했던 것 같다. 공사현장을 다니다 보면 글과 도면만으로는 남길 수 없는 그 순간의 상태를 사진으로 기록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정말 똥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많이 담아준 카메라 가운데 하나는 Sony Cyber-shot DSC-W1이었다. 지금 그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면 몇백만 화소였는지, 렌즈가 어떠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조그만 아이들의 얼굴과 몸짓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돌이켜보면 내게 카메라는 일찍부터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족의 시간을 남기는 도구이자, 내가 직접 본 현장을 기록하는 도구였다.

2008년 11월에는 Canon DIGITAL IXUS 870 IS도 구입했다. 작고 가벼워 어디든 들고 다니기 편한 컴팩트 디지털카메라였다.

그 사이 잠깐 캠코더에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

첫째가 태어나기 전인 2003년 무렵이었다. 아이가 생기면 동영상도 많이 찍게 될 것 같아 당시 형편에는 조금 무리해서 캠코더를 할부로 샀다.

그런데 캠코더를 사 온 바로 그날 새벽이었다.

아내가 새로 산 캠코더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그 물건에 들어간 돈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결국 캠코더를 반품했다.

지금 생각하면 반납하길 잘했다. 이후 디지털카메라가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 촬영까지 상당 부분 해결해 주었고, 나중에는 스마트폰까지 그 역할을 떠맡았다. 내 캠코더 생활은 사 온 날 새벽에 사실상 끝났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아쉬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메라에 대한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

2010년 11월.

나는 큰맘을 먹고 Canon EOS 60D를 장만했다.


1. 내 손을 거쳐 간 카메라들

돌이켜보면 내 손을 거쳐 간 카메라가 제법 많다.

삼성 필름카메라로 아내와의 연애시절을 찍었고, Canon PowerShot A70으로는 공사현장의 모습을 기록했다. Sony Cyber-shot DSC-W1은 똥강아지 같던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많이 남겨주었고, Canon DIGITAL IXUS 870 IS는 가족의 일상을 부담 없이 담아주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 EOS 60D를 구입하면서 작은 디지털카메라에서 본격적인 렌즈교환식 DSLR로 넘어갔다.

그 뒤 공사현장에서 좀 더 작고 간편하게 사용할 카메라로 Sony Cyber-shot DSC-RX100 II도 마련했다. 작은 몸집에 비해 화질이 좋았고 활용도도 높아 지금도 참 잘 만든 카메라로 기억한다. 이 카메라는 나중에 딸에게 넘겨주었다.

2016년에는 EOS 5D Mark IV, 이른바 오막포를 샀다.

그때부터 내 카메라의 무대는 국내 가족여행과 답사를 넘어 캐나다와 미국, 일본과 중국 등 더 넓은 세계로 본격적으로 확장되었다.

작은 카메라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는지 2021년에는 Sony Cyber-shot DSC-RX100 VII도 다시 샀다.

2024년 6월에는 DSLR에서 미러리스로 넘어가 EOS R6 Mark II를 장만했고, 2026년 3월에는 다시 EOS R6 Mark III로 바꾸었다.

정리하면 내 카메라의 시간은 대략 이렇게 흘렀다.

삼성 필름카메라
→ Canon PowerShot A70
→ Sony Cyber-shot DSC-W1
→ Canon DIGITAL IXUS 870 IS
→ Canon EOS 60D
→ Sony Cyber-shot DSC-RX100 II
→ Canon EOS 5D Mark IV
→ Sony Cyber-shot DSC-RX100 VII
→ Canon EOS R6 Mark II
→ Canon EOS R6 Mark III

정확한 구입 시점이 희미해진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도 있지만, 지금 옛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기종보다 더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그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의 내 삶이다.

그리고 그 변천사에서 EOS 60D는 꽤 중요한 자리에 서 있다.

60D부터 사진의 범위가 가족의 일상에서 여행과 답사의 기록으로 본격적으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2. 처음 손에 넣은 본격 DSLR

작은 디지털카메라들을 사용하다 EOS 60D를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남아 있다.

크고 묵직한 몸체부터 달랐다.

렌즈를 갈아 끼울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고, 셔터를 누를 때 들리는 소리부터 작은 디지털카메라와는 전혀 달랐다.

당시 내 눈에는 거의 신의 병기였다.

아이들을 찍어도 사진이 달라 보였다.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찍던 사진보다 피사체가 훨씬 또렷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고, 배경이 부드럽게 흐려지는 사진을 보면서 DSLR이라는 물건의 매력을 처음 제대로 느꼈다.

카메라를 사고 나서는 렌즈에도 욕심이 생겼다.

지금도 15년이 훌쩍 넘은 당시의 렌즈 구매 메모가 남아 있다.

시그마 18-250mm, 탐론 18-270mm, 캐논 EF-S 18-200mm 등 여러 렌즈를 적어놓고 무게와 가격까지 비교해 놓았다. 1번 시그마 렌즈에는 동그라미를 치고 ‘구입’이라고까지 적어놓았지만 실제로 구입한 것은 그 렌즈가 아니었다.

실제로 산 것은 메모의 4번에 적혀 있던 Tamron AF 28-300mm XR Di VC 계열의 고배율 줌렌즈였다.

이 렌즈는 훗날 DSLR을 쓰는 막내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지금 그 메모를 다시 보면 15년이 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 여행사진의 습관도 보인다.

당시에도 여러 렌즈를 갈아 끼우기보다 광각에서 망원까지 한 렌즈로 해결할 수 있는 28-300mm를 골랐다. 여행에서는 사진 한 장을 위해 멈춰 서서 렌즈를 바꾸는 것보다 계속 움직이며 눈앞에 나타나는 장면을 놓치지 않는 쪽이 내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지금 R6 Mark III에 Canon RF24-105mm F4 L IS USM을 주로 물려 다니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다.

화각은 달라졌고 카메라도 몇 세대나 바뀌었지만, 여행에서는 하나의 렌즈로 최대한 많은 장면을 담고 싶어 하는 내 방식은 60D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사면 나는 또 책을 샀다.

그때 함께 읽었던 책이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였다.


3.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 ― DSLR을 처음 배우다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쓸 때는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많지 않았다.

카메라를 켜고 화면을 보고 셔터를 누르면 됐다.

그런데 DSLR은 달랐다.

조리개가 나오고, 셔터속도가 나오고, ISO가 나오고, 노출과 측광, 초점 방식까지 알아야 할 것이 갑자기 많아졌다.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는 그런 내게 DSLR이라는 새로운 카메라를 이해하게 해준 책이었다.

카메라에는 왜 이렇게 버튼이 많은지, 각각의 기능은 무엇인지,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바꾸면 사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하나씩 읽어 나갔다.

책을 읽을 때에는 이해한 것 같았다.

며칠 지나면 또 헷갈렸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적어도 카메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필요할 때 어떤 기능을 찾아봐야 하는지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훗날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와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를 읽게 되었지만, 내게 카메라 공부라는 것을 처음 본격적으로 시켜준 책은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였다.


4. 아이들과 함께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EOS 60D와 함께한 시간에는 아이들의 성장기가 그대로 들어 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던 시절도 아니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국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여행에는 거의 늘 60D가 따라다녔다.

사진 속 아이들도 조금씩 자랐다.

여행지에서 뛰어다니고, 절집 마당에 서 있고, 산길을 걷고, 바닷가에서 장난치는 모습이 차곡차곡 남았다.

그래서 지금 60D로 찍은 옛 사진들을 보면 풍경보다 아이들부터 보게 된다.

“야, 이때는 니가 이렇게 쪼끄맸었구나.”

카메라는 그대로였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계속 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EOS 60D는 내게 단순한 첫 DSLR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을 오랫동안 바라본 카메라 가운데 하나다.


5. 유홍준의 답사기를 들고 남도로

그 시절 국내 가족여행의 또 하나의 중심에는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있었다.

책을 읽고 나면 책 속에 나온 장소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기에 나온 길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특히 남도 쪽을 참 많이 다녔다.

강진은 세 번이나 찾아갔다.

강진의 유명한 한식집 해태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도 영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오래전 남도 여행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강진을 지나 장흥으로, 다시 해남으로 내려갔다.

해남에서는 두륜산과 대흥사를 찾았다.

대흥사 입구의 유선관도 참 기억에 남는다.

두륜산 아래 오래된 절집을 찾아가고, 그 앞의 옛 한옥에서 머물며 아이들과 남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장소 하나하나보다 그곳을 찾아가던 길과 함께했던 가족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당시의 여행은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는 가족여행이면서 동시에 내 답사여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책에서 읽은 장소를 직접 찾아간다.

그곳을 걷는다.

문화유산을 보고 주변의 산과 마을을 바라본다.

그리고 사진으로 남긴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다시 책을 펼쳐보고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다시 생각하고, 책과 자료를 찾아보고, 사진 속에 담긴 장소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내가 여행을 하는 방식이 그 무렵부터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막포를 들고 세계 곳곳의 역사유적과 자연을 찾아다니기 훨씬 전, 그 출발점에는 아이들과 남도를 돌아다니던 EOS 60D가 있었다.


6. 사진은 남았는데 여기가 어디더라

60D로 찍은 옛 사진을 지금 다시 들여다볼 때 가장 아쉬운 점도 하나 있다.

위치정보다.

EOS 60D 바디 자체에는 촬영 위치를 자동으로 기록해 주는 GPS 기능이 없었다.

당시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강진에서 찍으면 강진 사진이고, 해남에서 찍으면 해남 사진이니 당연히 나중에도 기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문제가 생겼다.

사진 한 장을 연다.

산도 있고 오래된 절도 있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한참을 들여다본다.

“강진인가? 장흥인가? 해남인가?”

겁나게 생각해야 한다.

사진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처럼 위치정보까지 사진에 함께 남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래서 장소를 알아내려고 오래된 사진을 한참 들여다볼 때가 있다. 그런데 화면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정작 장소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때의 어린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이다.

위치정보가 없어서 불편한 것은 분명하지만, 오래된 사진을 그렇게 한 장 한 장 다시 들여다보는 동안 잊고 있던 가족의 모습까지 함께 되살아난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위치정보는 남아 있는 편이 낫다.

“여기가 어디여?” 하고 매번 머리를 쥐어짜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7. 2016년 2월, 마흔을 넘겨 처음 국경을 넘다

2016년 2월.

EOS 60D와 함께 내 여행에서 중요한 일이 하나 생겼다.

마흔을 넘겨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것이다.

아내와 두 아이가 함께였다.

목적지는 일본 오사카와 교토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니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빠질 수 없었다. 우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바로 앞의 유니버설 포트 호텔에서 4박을 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며 신이 났고, 나는 그 모습을 60D에 부지런히 담았다.

하지만 첫 해외여행에서 내 눈을 더 오래 붙잡은 곳은 교토였다.


8. 처음 만난 교토 ― 청수사에서 아라시야마까지

교토에서 가장 먼저 기억에 남은 곳 가운데 하나가 청수사였다.

오토와산 자락에 자리한 청수사에 올라 본당 앞으로 돌출된 넓은 목조 무대에 서니 교토의 풍경이 아래로 펼쳐졌다.

사진과 책에서 수없이 보았던 바로 그 ‘청수의 무대’였다.

한국에서 책으로만 보던 오래된 일본의 사찰에 내가 직접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웠다. 단순히 유명한 절 하나를 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람들이 찾아왔던 장소의 공간감과 주변의 산세, 그곳에서 바라보는 교토를 처음 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청수사를 내려오면서는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걸었다.

돌계단과 오래된 건물들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청수사 관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교토의 옛 거리 속으로 이어졌다.

마루야마공원을 지나 쇼렌인과 지온인도 찾았다.

지금 돌아보면 첫 해외여행부터 절과 오래된 거리를 참 열심히도 찾아다녔다.

그리고 아라시야마로 향했다.

도게츠교를 건너며 강과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라보고, 양쪽으로 높게 솟은 대나무가 길을 감싸는 치쿠린을 걸었다. 덴류지도 찾아가 그곳의 정원과 오래된 공간을 둘러보았다.

아라시야마는 당시에도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도게츠교와 치쿠린을 찾아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교토의 대표 명소가 되었다.

2016년의 나는 그저 눈앞에 펼쳐진 교토가 새로웠다.

청수사의 무대에 서보고,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걷고,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 속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여행은 거듭될수록 보는 눈을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9. 9년 뒤 다시 찾은 교토역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5년 1월.

나고야 여행 중 나는 다시 교토역에 섰다.

이번에는 청수사나 아라시야마를 다시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백제계 도래인들의 흔적을 찾아 비와호 일대로 가기 위해 교토역을 찾은 것이었다.

2016년에는 교토의 오래된 절과 거리를 보았다면, 2025년에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 한반도와 일본 사이를 오간 사람들과 문화의 흔적을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여행을 계속하면 세상을 조금씩 더 알게 된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같은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2016년의 나는 교토라는 오래된 도시를 처음 만나는 데 마음을 빼앗겼다.

9년 뒤의 나는 그 도시 너머에 있는 역사와 사람의 이동,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오래된 교류까지 생각하며 다시 교토역에 서 있었다.

카메라도 달라져 있었다.

첫 교토 여행에서는 EOS 60D가 내 손에 있었고, 9년 뒤에는 EOS R6 Mark II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바뀐 시간만큼 여행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져 있었다.


10. 오사카성, 그때는 몰랐던 윤봉길 의사의 흔적

첫 해외여행에서 오사카성 천수각에도 올랐다.

당시에는 그저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한 성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훗날 윤봉길 의사님이 가나자와로 압송되기 전 오사카성 일대의 오사카 육군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6년의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당시 오사카성 사진을 다시 보면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윤 의사님, 그때는 제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6년 5월, 나는 가나자와에서 윤봉길 의사님의 마지막 흔적을 직접 찾아갔다.

노다야마의 순국기념비와 암장지를 찾아가 먼저 주변을 빗자루로 깨끗이 쓸었다. 마님과 함께 순국기념비 앞에서 묵념하고, 암장지에서는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간 소주 ‘처음처럼’ 한 병을 올린 뒤 절을 했다.

2016년의 오사카성과 2026년의 가나자와 사이에는 10년의 시간이 있다.

그 사이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고, 책을 읽고 역사를 찾아보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 세상을 더 알게 되고, 아는 만큼 같은 장소에서도 더 많은 것이 보인다.

2016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던 오사카성을, 10년 뒤에는 윤봉길 의사님의 시간을 함께 생각하며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가나자와의 순국기념비와 암장지를 직접 찾아 소주 한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내게 답사는 그렇게 조금씩 깊어져 왔다.

그래서 여행은 다녀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접 보고 사진으로 남긴 뒤, 다시 책을 읽고 역사를 알아가며 오래전 사진을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11. 도톤보리와 처음 맛본 일본 초밥

첫 해외여행이었으니 먹는 것도 모두 새로웠다.

도톤보리의 번잡한 거리를 걸었다.

커다란 간판과 네온사인,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일본 현지 초밥을 처음 제대로 먹어보았다.

한 점을 입에 넣고 깜짝 놀랐다.

“워매, 초밥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그 맛의 차이가 무엇 때문이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때 처음 먹었던 일본 초밥이 겁나게 맛있었다는 기억만은 아직도 또렷하다.

지금은 일본을 여러 번 다녀왔고 일본 음식도 익숙해졌지만, 처음이라는 경험은 다시 만들 수 없다.

청수사도 처음이었고,

아라시야마도 처음이었고,

도톤보리도 처음이었고,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며칠씩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 모든 첫 장면을 EOS 60D가 기록했다.


12. 첫 해외여행을 끝으로 오막포에게 자리를 내주다

공교롭게도 2016년 2월 오사카·교토 여행은 60D의 마지막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해 EOS 5D Mark IV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막포를 샀다.

주력 카메라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EOS 5D Mark IV로 넘어갔다.

오막포를 들고 캐나다와 미국, 홋카이도와 괌, 중국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60D는 점점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때는 가족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챙기던 카메라였는데 새로운 풀프레임 DSLR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뒷방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바로 처분하지는 않았다.

사용 횟수는 크게 줄었지만 오랫동안 집에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수많은 가족여행, 남도 답사와 첫 해외여행이 모두 그 카메라와 연결되어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13. 2024년, 오래된 60D를 보내다

2010년 11월에 구입했던 EOS 60D는 그렇게 2024년까지 내 곁에 남아 있었다.

그해 6월 EOS R6 Mark II를 구입하면서 구형 카메라를 반납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행사가 있었고, 결국 60D를 반납했다.

13년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주력으로 사용한 기간은 그보다 짧았지만 내 카메라 역사에서는 참 오래 남아 있던 녀석이었다.

삼성 필름카메라와 작은 디지털카메라들을 거쳐 처음 손에 넣은 본격 DSLR.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찍었고,

가족과 전국을 돌아다녔고,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따라 남도의 문화유산을 찾아갔으며,

마흔을 넘겨 처음 떠난 해외여행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초입에는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가 있었다.


14. 돌아보며 ― 내 여행과 답사의 시작에 있었던 60D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는 지금 내 책장에 없다. 오래전에 중고책으로 팔아버렸다.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며 처음 DSLR을 배우던 시절의 기억은 남아 있다.

60D는 내 첫 DSLR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서며 여행과 답사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시절을 기록한 카메라였다. 책에서 본 곳을 직접 찾아가 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기는 지금의 여행 방식도 그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2016년 첫 해외여행까지 함께한 뒤 오막포에게 주력 자리를 내주었지만, 내 사진과 여행의 역사에서 60D가 차지하는 자리는 여전히 크다.

오막포가 나를 더 넓은 세계로 데리고 나갔다면, 60D는 그 세계를 찾아 나서는 방법을 처음 가르쳐준 카메라였다.

돌이켜보면 내 여행과 답사의 시작에는
EOS 60D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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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 ㅣ 정원그라피아 캐논 EOS 시리즈
임프레스 재팬 지음, 정원그라피아 편집부 옮김 / 정원그라피아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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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사진에세이]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와 함께한 R6 Mark II 1년 반
― 미러리스로 넘어와 세계를 돌고, 결국 또 자동모드로 사진 찍기까지


EOS 5D Mark IV 이후 내 사진생활의 중심을 미러리스로 옮겨준 카메라. 약 1년 반 동안 중국과 일본, 튀르키예를 함께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남겼다. 책에서 배워야 할 기능은 더 많아졌다. 하지만 카메라도 그만큼 훨씬 똑똑해졌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다 할 필요가 있나. 여행 현장에서는 똑똑해진 카메라를 믿고 자동모드에 맡겼다. 결국 이번에도 자동이었다. ㅎㅎ


들어가며 ― 카메라를 목에 걸고 현장으로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이제는 작고하신 정수일 교수님께서 캐논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답사하고 계신 모습이다. 그 사진은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노구에도 직접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다니시며 문명의 흔적을 확인하시고, 그곳에서 직접 보고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문명을 읽고 해부해 나가셨다.

내가 정수일 교수님처럼 문명이론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직접 현장을 걷고, 내 눈으로 보고, 카메라에 남긴 뒤 돌아와 다시 그 기록을 들여다보는 그분의 답사 방식에는 내가 오래도록 닮고 싶었던 태도였다.

그래서 내게 카메라는 단순히 예쁜 사진을 찍는 기계만은 아니다.

내가 그곳에 있었고, 직접 보았다는 것을 남기는 답사의 기록도구다.

아마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카메라를 챙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메라가 무겁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들고 나선다.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여행이 끝난 뒤 다시 그 장소와 사람, 역사와 문명을 불러내는 기록이 된다.

2024년 6월 1일, 그런 내 여행의 새로운 기록도구로 EOS R6 Mark II를 구입했다.

당시 구형 카메라를 반납하면 새 카메라를 할인해 주는 행사가 있었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EOS 60D를 반납했다. 60D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내 카메라 역사를 처음부터 되짚을 때 다시 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그렇게 오래된 DSLR 한 대를 떠나보내고 Canon RF24-105mm F4 L IS USM과 함께 EOS R6 Mark II를 손에 넣었다는 것만 기록해 둔다.

EOS 5D Mark IV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지만, 무거운 DSLR과 렌즈를 들고 여행하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카메라 시장 역시 이미 미러리스 중심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R6 Mark II의 구입은 내게도 미러리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새 카메라가 생기면 나는 또 책을 찾는다.

이번에 고른 책은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였다.


1. 두 대의 미러리스를 함께 다루는 완벽가이드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는 EOS R6 Mark II와 EOS R8의 주요 기능과 활용법을 다루는 책이다. 기본 조작에서부터 AF와 피사체 검출·추적, 셔터 방식과 연사, 화질 설정, 뷰파인더와 모니터, 버튼과 다이얼의 사용자 설정 등 미러리스 카메라의 다양한 기능을 폭넓게 설명한다.

이 책 역시 오막포 때 읽었던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사용설명서가 아니다. 여러 촬영 상황을 실제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어떤 기능과 설정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새 카메라를 샀으니 이번에도 책을 잘 읽고 기능을 익혀 제대로 활용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마음은 늘 그렇다.


2. 오막포 완벽가이드와는 달라진 미러리스의 세계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를 읽다 보면 전에 읽었던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두 책 모두 카메라의 기능과 실제 촬영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지만, 아마추어 사용자인 내가 받아들인 느낌은 조금 달랐다.

EOS 5D Mark IV는 광학식 뷰파인더와 전용 AF 시스템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DSLR이었다. AF 포인트를 어디에 둘 것인지, 측광과 노출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 등 사진가가 카메라를 직접 다루는 감각이 강했다.

반면 EOS R6 Mark II로 넘어오자 카메라가 스스로 해주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사람이나 동물을 알아보고, 눈을 찾아 초점을 맞추고, 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가는 기능도 훨씬 발전했다. 카메라가 장면을 보고 판단하는 능력 자체가 오막포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똑똑해진 것이다.

그래서 두 책을 읽는 느낌도 달랐다.

오막포의 완벽가이드에서는

‘내가 카메라를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

를 배우는 느낌이 강했다면,

R6 Mark II의 완벽가이드에서는

‘이 똑똑해진 카메라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고, 나는 무엇을 정해주면 되는가.’

를 배우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알아야 할 것은 오히려 많아졌다.

AF 영역이 어떻고, 피사체 검출이 어떻고, 트래킹이 어떻고, 전자셔터가 어떻고, 고속 연사가 어떻고….

책을 읽을 때는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인다.

“아하, 이런 기능도 있구먼.”

문제는 여행 현장이다.


3. 카메라는 더 똑똑해졌다. 그러니 이번에도 자동이다

오막포 완벽가이드를 읽을 때 나는 생각했다.

“아, 이거 엄청 복잡하구먼. 이걸 다 알고 어떻게 사진을 찍나?”

그때 자동모드는 어느 정도 ‘에라이, 모르겠다’에 가까웠다.

그런데 R6 Mark II는 조금 다르다.

책에서 배워야 할 기능은 더 많아졌지만, 카메라 자체도 그만큼 훨씬 똑똑해졌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다 할 필요가 있나.

여행은 사진만 찍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고, 눈앞의 사람들은 계속 움직이며, 빛도 변한다. 함께 간 사람들을 세워놓고 카메라 메뉴를 들여다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여행에서 중요한 장면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마음 편하게 카메라를 믿었다.

자동모드.

오막포 때의 자동이

“에라이, 니가 알아서 해라.”

였다면,

R6 Mark II의 자동은

“니가 나보다 똑똑하니 니가 해라.”

에 조금 더 가까웠다. ㅎㅎ

두 완벽가이드에는 공통된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책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문제는 독자가 나였다는 것이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감탄한다.

그리고 여행 현장에서는 자동으로 찍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그리 미안하지도 않다. 카메라가 그만큼 똑똑해졌으니 말이다. ㅎㅎ


4. 또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 ― 렌즈를 사고 싶게 만든다

두 완벽가이드에는 또 하나의 위험한 점이 있다.

책 뒤쪽의 렌즈 소개다.

이 렌즈들의 가격은 어마무시하다.. 무서울정도다. 그런데,,

여러 렌즈의 특징과 그 렌즈로 찍은 실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자꾸 욕심이 생긴다.

“이 렌즈로 찍으니 이런 사진이 나오는구먼.”

“이것도 하나 있으면 좋겄는디….”

렌즈 하나를 보고 있으면 또 다른 렌즈가 눈에 들어온다.

완벽가이드의 잘못은 아니다.

좋은 렌즈를 제대로 소개했을 뿐이다.

문제는 또 독자다. ㅎㅎ

그러나 실제 여행은 책 속 렌즈 소개와는 조금 다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도 바쁜데 여러 렌즈를 가지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좋은 장면이 나타날 때마다 가방을 열어 렌즈를 갈아 끼우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내 여행사진의 대부분은 결국 Canon RF24-105mm F4 L IS USM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24mm 광각에서 105mm 준망원까지 한 렌즈로 사용할 수 있으니 풍경과 도시, 사람과 역사유적을 계속 오가며 찍는 내 여행에서는 활용도가 가장 높았다.

사실상 내 여행의 주력렌즈다.

밤에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조금 더 넓은 화각이 필요할 때는 Canon RF15-35mm F2.8 L IS USM을 사용했다.

특히 야간에는 F2.8의 밝은 조리개가 좋다. 어두운 거리에서 F4보다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셔터속도를 확보하거나 ISO를 지나치게 올리지 않는 데 유리하다. 넓은 화각까지 더해지니 밤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찍기에 좋았다.

Canon RF70-200mm F4 L IS USM도 가지고 있다.

망원 영역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분명 좋은 렌즈지만 실제 여행에서는 사용 빈도가 높지 않았다.

무게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RF24-105mm F4 L IS USM보다 가볍다.

문제는 활용도였다.

도시와 자연, 역사유적을 계속 이동하며 찍는 내 여행에서는 24mm부터 105mm까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RF24-105mm F4 L IS USM이 훨씬 활용도가 높았다. 70mm 이상의 망원이 꼭 필요한 장면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고, 그 몇 장을 위해 여행 중 렌즈를 바꿔 끼우는 일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세 렌즈 가운데 RF70-200mm F4 L IS USM은 가장 사용 빈도가 낮았다.

책은 수많은 렌즈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행이 내게 가르쳐준 답은 점점 단순해졌다.

기능은 많지만 똑똑한 카메라를 믿고 자동모드. ㅎㅎ
렌즈는 세 개지만 대부분 RF24-105mm F4 L IS USM.


5. 짧았지만 진하게 함께한 1년 반

EOS R6 Mark II와 함께한 시간은 오막포에 비하면 길지 않았다.

2024년 6월에 구입했고,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에 들고 나간 것은 같은 해 9월 중국 귀주 여행부터였다.

하지만 그 뒤 약 1년 반 동안 정말 많은 곳을 함께 다녔다.


가. 2024년 9월 중국 귀주 ― R6 Mark II 여행의 시작

R6 Mark II를 처음 본격적으로 들고 나간 해외여행은 중국 귀주였다.

만봉림에서는 밥공기를 수없이 엎어놓은 것처럼 둥글둥글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름 그대로 수많은 봉우리가 숲을 이룬 듯한 풍경이었다.

마령하 대협곡에서는 깊게 패인 협곡과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폭포들이 이어지는 장관을 만났고, 묘족성시에서는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묘족 여성들의 공연도 카메라에 담았다.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황과수폭포도 만났다.

그리고 직금동.

지금까지 내가 들어가 본 동굴 가운데 최고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규모와 풍경이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운 종유석과 석순, 기기묘묘한 지하의 풍경을 바라보며 R6 Mark II의 셔터를 계속 눌렀다.

R6 Mark II는 그렇게 귀주에서 본격적인 내 여행카메라가 되었다.


나. 2024년 10월 일본 규슈

한 달 뒤에는 일본 규슈로 향했다.

구마모토를 지나 아소산의 거대한 화산지형을 바라보았고, 유후인의 한적한 풍경을 걷고, 벳푸에서는 지옥온천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귀주의 거대한 자연과는 또 다른 일본의 화산과 온천 풍경이었다.


다. 2025년 1월 나고야와 시라카와고

2025년 1월에는 나고야를 거쳐 시라카와고를 찾았다.

눈 덮인 합장촌과 갓쇼즈쿠리 가옥은 오래 보고 싶었던 풍경이었다.

하얀 눈 속에 자리 잡은 전통가옥들을 바라보고, 실제 생활공간과 가옥의 구조를 살펴보며 사진을 남겼다.

눈과 오래된 집이 만들어낸 시라카와고의 겨울 풍경은 R6 Mark II와 함께한 여행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다.


라. 2025년 12월 중국 윈난 ― 대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

2025년 12월에는 중국 윈난성으로 향했다.

차마고도를 걸으며 오래전 말과 사람, 차와 물자가 오가던 길을 따라갔고, 호도협에서는 거대한 협곡 사이를 거칠게 흘러가는 물줄기와 깎아지른 산세 앞에 섰다.

리장에서는 만년설을 머리에 인 옥룡설산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상여강〉 공연을 보았다.

화려한 공연이었지만 내게 오래 남은 것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속에는 높은 산과 깊은 협곡, 척박한 고원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함께 담겨 있었다.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의 고단한 삶과, 거대한 자연에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그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때로는 극복하며 자신들의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강인함이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눈앞의 옥룡설산이 대자연의 위엄을 보여주었다면, 〈인상여강〉은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연에 맞서기만 한 것도, 그저 자연에 자신을 내맡긴 것도 아니었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그 안에 삶의 방식을 만들고, 어려운 환경에는 적응하며, 필요한 순간에는 그것을 극복해온 사람들.

그래서 그날 R6 Mark II에 담긴 것은 설산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그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의 고단함과 강인함도 함께 남았다.

이후 리장고성의 오래된 골목을 걷고, 더 높은 고원의 샹그릴라를 지나 쿤밍의 석림까지 이어갔다.

윈난 여행은 차마고도와 협곡, 설산과 고성, 소수민족의 삶이 한데 이어진 여행이었다.


마. 2025년 12월 도쿄와 후지산

같은 달에는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도쿄의 도시풍경을 찍고, 왕인박사와 사이고다카모리의 흔적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후지산을 찾아 나섰다. 후지노미야의 시라이토 폭포도 찾았고, 하루종일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는 후지산의 하얀이마를 마주했다.

그리고 이 시라이토 폭포는 훗날 R6 Mark II를 떠나보낸 뒤 다시 펼쳐본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에서 뜻밖에 다시 만나게 된다.


바. 2026년 2월 튀르키예 ― R6 Mark II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

R6 Mark II와 함께한 마지막 해외여행은 2026년 2월 튀르키예였다.

카파도키아의 괴레메에서는 기암괴석 사이로 이어지는 독특한 풍경을 담았고, 파샤바에서는 마치 스머프들이 살 것 같은 버섯 모양의 요정 굴뚝들을 만났다.

콘야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시 「여인숙」을 쓴 수피 시인 루미가 잠들어 있는 메블라나를 찾았다.

오래전 글로 만나왔던 한 사람을 직접 찾아간 순간이었다.

안탈리아에서는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았고, 파묵칼레에서는 하얀 석회붕이 계단처럼 이어지는 풍경을 걸었다. 그 위에 남아 있는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흔적을 지나고, 에페수스에서는 거대한 고대도시의 폐허 속을 걸으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마지막 이스탄불에서는 다시 풍경의 성격이 바뀌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선에 올라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흘러가며, 그 옛날 골든혼에 울려퍼지던 오스만 투르크군의 피리소리와 대포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톱카프궁전과 아야소피아, 돌마바흐체궁전을 찾아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피에르 로티 언덕에서는 골든혼을 내려다보았고, 이스탄불의 박물관들을 돌아보며 오랜 제국과 문명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괴레메의 바위산에서 지중해의 푸른 바다로, 다시 그리스·로마의 고대도시를 지나 보스포러스 해협까지.

R6 Mark II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은 참으로 많은 풍경을 보여주었다.

2024년 9월 귀주에서 시작된 이 카메라와의 해외여행은 그렇게 2026년 2월 이스탄불에서 막을 내렸다.

오막포가 거의 10년에 걸쳐 천천히 쌓아 올린 여행의 기록이었다면, R6 Mark II는 약 1년 반 동안 숨 가쁘게 몰아친 여행의 기록에 가까웠다.

시간은 짧았지만 남긴 사진과 기억은 결코 적지 않았다.


6. 카메라를 떠나보낸 뒤 책에서 다시 만난 시라이토 폭포

R6 Mark II를 떠나보낸 뒤 아쉬운 마음으로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를 다시 펼쳐보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가 낯익은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후지노미야의 시라이토 폭포였다.

“어? 여기 내가 갔던 데잖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몰랐다.

그때는 새로운 카메라의 AF가 어떻고, 셔터가 어떻고, 설정이 어떻고 하는 기능을 익히느라 책 속의 수많은 예제사진 가운데 하나로 그냥 지나쳤던 모양이다.

그런데 2025년 12월에는 내가 실제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바로 R6 Mark II가 있었다.

폭포 앞에서 나 역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떠나보낸 뒤 책을 다시 펼쳐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사진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오막포 완벽가이드에서는 시부야 스크램블의 사진을 책에서 먼저 보고 훗날 내가 직접 그곳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반대였다.

R6 Mark II를 들고 시라이토 폭포를 직접 다녀온 뒤, 카메라까지 떠나보내고 나서야 책 속에서 그 장소를 다시 발견했다.

카메라는 이미 내 곁을 떠났는데, 책 속에는 그 카메라와 함께 다녀온 여행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기능을 배우는 책이었다.

다시 펼쳐보니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 되어 있었다.


7. 좋은 카메라였지만 끝까지 마음에 걸렸던 2,420만 화소

EOS R6 Mark II에 큰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약 1년 반 동안 여러 여행을 함께하면서 상당히 만족스럽게 사용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는 것이 하나 있었다.

화소수였다.

R6 Mark II는 약 2,420만 화소의 풀프레임 센서를 사용한다.

일반적인 사진 촬영에 부족한 화소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게는 조금 아쉬웠다.

왜냐하면 그전에 거의 10년을 사용한 EOS 5D Mark IV가 이미 약 3,040만 화소였기 때문이다.

더 오래된 DSLR보다 훨씬 새로운 미러리스인데도 숫자만 놓고 보면 오히려 화소가 줄어 있었다.

물론 화소수가 사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은 나도 안다.

R6 Mark II는 AF와 연사, 손떨림 보정과 여러 편의기능을 포함하면 오막포보다 훨씬 발전한 카메라였다.

그런데 다음 카메라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나는 카메라를 2~3년 쓰고 계속 바꾸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막포처럼 앞으로 또 10년을 바라보고 오래 사용할 카메라를 생각하니 2,420만 화소라는 숫자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이패드의 큰 화면으로 여행사진을 다시 보고, 때로는 사진의 일부를 잘라 쓰기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더 여유 있는 해상도를 가지고 싶었다.

결국 R6 Mark II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했을 때 남아 있던 작은 아쉬움 하나.

그것이 화소였다.


8. 2026년 3월, R6 Mark III의 시대로

2026년 2월 튀르키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3월, R6 Mark II를 떠나보냈다.

1년 반 동안 수많은 여행을 함께한 카메라였으니 이것 역시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오막포를 처분할 때에도 그랬지만, 카메라는 단순한 전자제품만은 아닌 모양이다.

여행지에서 내가 보았던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겨준 물건이니 떠나보낼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남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소수에 대한 아쉬움을 더 이상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EOS R6 Mark III로 넘어갔다.

이번 카메라는 가능하면 오래 함께하고 싶다.

오막포처럼 10년을 바라보고, 더 욕심을 내자면 내 사진생활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은 카메라다.

R6 Mark III를 손에 넣은 뒤에는 곧바로 새로운 여행도 시작되었다.

2026년 5월과 7월, 두 차례 일본 북알프스를 찾았다.

5월에는 가나자와에서 윤봉길 의사님의 순국기념비와 암장지를 찾아 소주한잔에 절을 올렸고,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와 구로베협곡을 돌아보았다.

7월에는 다시 북알프스로 향해 가미코치를 걸었고 노리쿠라다케에도 올랐다.

R6 Mark II가 튀르키예에서 자신의 마지막 여행을 마쳤다면, R6 Mark III는 그렇게 일본 북알프스에서 새로운 여행의 기록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아직 『EOS R6 Mark III 완벽가이드』가 나오지 않았다.

카메라는 이미 내 손에 들어왔는데 공부할 교과서가 아직 없는 셈이다.

언젠가 그 책이 나오면 아마 또 사서 읽을 것이다.

AF가 어떻고, 셔터가 어떻고, 새로운 기능이 어떻고….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한번 써보겠다고 또 열심히 읽을 것이다.

그리고 여행 현장에 나가면?

아마 또 자동모드일 것이다.

ㅎㅎ


9. 돌아보며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는 DSLR에서 미러리스로 넘어온 내게 새로운 카메라를 이해하게 해준 책이었다.

처음에는 기능을 배우기 위해 펼쳤지만, 이제 R6 Mark II가 내 곁을 떠난 뒤 다시 생각하면 이 책에는 그 카메라와 함께했던 1년 반의 시간이 겹쳐 있다. 카메라는 바뀌었지만 그때 찍은 사진과 여행의 기억은 그대로 남았다.

R6 Mark II는 짧게 함께했지만 참 많은 곳을 보여준 좋은 카메라였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카메라를 배우기 위해 산 활용서에서, 어느새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한 권의 기록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찍은 사진 속에는 지난 1년 반 동안 내가 직접 보고 걸었던 세계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거면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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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EOS 5D Mark Ⅳ 완벽가이드 ㅣ 정원그라피아 캐논 EOS 시리즈
임프레스 재팬 지음, 정원그라피아 편집부 옮김 / 정원그라피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독서사진에세이]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와 함께한 오막포 10년
― 오막포를 배우고, 들고 여행하고, 결국 자동모드로 사진 찍기까지


EOS 5D Mark IV의 수많은 기능을 배우게 해 준 책이자, 오막포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수많은 사진을 남긴 내 DSLR 시대의 한 기록. 정작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자동모드였지만 말이다. ㅠㅠ


들어가며 ― 카메라는 떠났지만 책은 남았다

10년 전인 2016년, EOS 5D Mark IV가 출시되었을 때 이 카메라를 구입했다. 당시에는 캐논을 대표하는 최신 풀프레임 DSLR이었고, 제대로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에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도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오막포의 여러 기능과 촬영방법을 익혔고, 이후 카메라를 들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수많은 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카메라의 시대도 바뀌었다. DSLR이 카메라 시장의 중심이던 시절은 저물고 어느새 미러리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 역시 2026년 3월, 오랫동안 함께했던 EOS 5D Mark IV를 중고로 처분했다. 한때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했던 카메라를 아쉬운 가격에 떠나보내야 했던 것도 섭섭했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여행을 함께했던 카메라를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카메라는 내 곁을 떠났지만, 그 카메라를 배우기 위해 읽었던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는 아직 남아 있다. 오막포와 함께했던 거의 10년의 시간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펼쳐본다.


1. EOS 5D Mark IV를 위한 전문 활용서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는 2016년 출시된 캐논의 풀프레임 DSLR EOS 5D Mark IV의 기능과 활용법을 집중적으로 다룬 기종별 전문 가이드북이다. 단순한 제품 사용설명서라기보다 카메라의 주요 기능과 설정 방법, 피사체별 촬영법, 렌즈의 특성과 실제 촬영 결과까지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실전 활용서에 가깝다.

EOS 5D Mark IV는 약 3,040만 화소의 풀프레임 CMOS 센서를 탑재하고 듀얼 픽셀 CMOS AF, 터치 패널, DPRAW 등 당시 캐논의 새로운 기술을 담은 카메라였다. 이 책은 이러한 기능을 설명하는 한편 EOS 5D Mark II·Mark III·Mark IV를 비교하여 5D 시리즈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보여준다.

나는 EOS 5D Mark IV가 출시된 해에 이 카메라를 구입했다. 따라서 이 책은 관심 있는 카메라를 구경하기 위해 읽은 책이 아니라, 실제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의 기능을 제대로 알고 활용하기 위해 읽은 책이었다.


2.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기능을 가진 카메라

책을 펼쳐보면 EOS 5D Mark IV라는 카메라 한 대 안에 얼마나 많은 기능이 들어 있는지 새삼 알게 된다. AF 영역과 초점 방식, 측광, 노출 보정, ISO 감도, 셔터속도와 조리개, 화이트밸런스, 픽처스타일, 연속촬영, 사용자 설정 등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조절할 수 있는 요소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특히 단순히 메뉴의 기능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촬영 상황에서 어떤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예제사진과 함께 설명한다는 점이 좋다. 카메라 사용설명서만 읽어서는 쉽게 와닿지 않는 기능도 실제 결과물과 함께 보면 그 기능이 사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결 이해하기 쉽다.

풍경·인물·야경·철도 등 피사체와 상황에 따라 카메라를 어떻게 설정하고 운용할 것인지 보여주는 구성도 실용적이다. EOS 5D Mark IV의 기능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능력을 갖춘 기계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3. 나무에서 바닷속까지, 사진으로 보여주는 촬영법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예제사진이다. 나무와 꽃 같은 일상의 피사체에서부터 기차, 바다와 바닷속 풍경, 산, 도시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면을 실제 사진으로 보여준다.

같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도 렌즈와 촬영방법, 피사체와 빛의 조건에 따라 결과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설명만 읽는 것보다 사진을 먼저 보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를 따라가다 보면 카메라와 렌즈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렌즈 소개 역시 초점거리와 밝기, 무게 같은 제원만 나열하지 않는다. EOS 5D Mark IV와 함께 사용할 만한 여러 EF렌즈를 실제 촬영사진과 연결해 보여주면서 이 렌즈를 사용하면 어떤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광각과 표준, 망원렌즈가 각각 어떤 장면에서 힘을 발휘하는지, 같은 피사체라도 화각에 따라 사진의 느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렌즈 선택에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4. 유독 기억에 남은 시부야 스크램블 사진

수많은 예제사진 가운데 유독 내 눈에 오래 남은 한 장이 있다. EF 16-35mm F2.8L III USM을 소개하면서 실린 도쿄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의 사진이다.

수많은 사람이 횡단보도를 오가고 그 뒤로 빌딩과 대형 전광판, 네온사인이 가득 들어찬 장면이다. 넓은 화각 안에 사람과 거리, 건물과 빛을 한꺼번에 담아내어 초광각렌즈의 특성과 시부야라는 도시 공간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나는 훗날 2025년 크리스마스에 실제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찾았다. 책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소에 직접 서보니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횡단보도 한가운데 잠시 서 있기도 쉽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여유 있게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보였다. 직접 가본 뒤 다시 이 사진을 보니 당시 사진가가 저 장면을 잡아낸 것 자체도 새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내가 이 사진을 오래 기억하는 데에는 사진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 가운데를 걸어가는 두 젊은 여성 가운데 검은 상의에 짧은 흰 치마를 입고 가방을 들고 가는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고 뒷모습만 남아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진을 다시 볼 때면 지금도 가끔 같은 생각이 든다.

‘앞모습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별것 아닌 궁금증이고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그 여성의 앞모습은 지금까지도 이 책 속에 남아 있는 나만의 작은 미스터리다.

옆에 함께 걷고 있던 분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분까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ㅋㅋ


5. 책에서 배운 기능을 들고 여행을 떠나다

이 책에서 EOS 5D Mark IV의 여러 기능과 촬영방법을 익힌 뒤 오막포는 오랫동안 내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밴쿠버 스탠리파크의 바다와 숲, 빅토리아 부차트 가든의 아름다운 정원을 렌즈에 담았다. 캐나다 로키에서는 레이크 루이스·모레인 레이크·스피릿 아일랜드·휘슬러스 피크의 웅장한 산과 호수를 오막포에 담았고, 옐로나이프에서는 그토록 기대했던 오로라를 만났다. 아쉽게도 하늘 전체를 뒤덮는 오로라의 장관까지는 만나지 못했고, 맛보기 정도의 오로라만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롬바드 스트리트를 렌즈에 담았다. 영화 『더 록』의 숨 가쁜 자동차 추격전이 펼쳐졌던 러시안힐 일대를 걷다 보니 영화 속 샌프란시스코의 장면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새크라멘토에서는 골드러시 시대 광산지역의 보급과 교역 중심지이자, 훗날 대륙횡단철도의 서부 출발점이 된 미국 서부개척사의 흔적도 만날 수 있었다.

이어 찾은 요세미티에서는 거대한 화강암 절벽과 계곡을 오막포에 담았다. ‘요세미티’라는 이름에는 이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의 역사도 숨어 있다. 계곡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아와니’라 불렀지만, 오늘날의 이름은 주변 미워크족이 그들을 가리키던 말에서 유래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오래전부터 이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까지 겹쳐 있는 곳이었다.

일본 홋카이도에서는 삿포로·노보리베츠를 거쳐 오타루의 겨울 풍경도 렌즈에 담았다. 특히 오타루는 내가 각별히 좋아하는 영화 『러브레터』의 도시다. 눈 덮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첫사랑과 지나간 시간을 불러내던 영화의 정서와, 설원을 향해 외치던 그 유명한 한마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겡키 데스카.”

영화로 오래 마음에 품었던 오타루를 실제로 찾아와 오막포로 사진에 남긴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각별한 경험이었다.

괌에도 이 카메라를 들고 갔고, 중국 장가계에서는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를 떠올리게 하는 기암절벽과 수많은 봉우리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지금도 유난히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 하나 있다. 2024년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알프스 여행이다. 그때는 오막포를 가져가지 않았다. 카메라와 렌즈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고, 나이도 들면서 무거운 장비를 하루 종일 메고 다니는 것이 기동에 방해가 되었다. 어깨도 아팠다. 결국 이번만큼은 가볍게 다녀보자며 오막포를 집에 두고 떠났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금세 후회가 밀려왔다. 루체른과 잘츠부르크·인스브루크를 지나 스위스 알프스의 쉴트호른과 뮈렌, 그리고 할슈타트의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오막포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보다 훨씬 연세가 들어 보이는 여행객이 DSLR처럼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모습까지 보았다. 미러리스였을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겁다는 이유로 오막포를 두고 온 것이 더욱 아쉬웠다.

물론 그 여행에서도 사진은 많이 남겼다. 그러나 훗날 아이패드의 큰 화면으로 사진을 다시 볼 때면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루체른의 호수와 알프스, 뮈렌과 쉴트호른의 설산, 할슈타트의 호수와 마을을 오막포의 색감과 깊이로 남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무거워서 가져가지 않았던 단 한 번의 선택이 오히려 EOS 5D Mark IV로 찍은 사진이 내게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해 주었다.

그렇게 여러 나라의 도시와 웅장한 자연을 여행하면서 EOS 5D Mark IV는 오랫동안 내 여행의 든든한 기록자가 되어주었다.

웅장한 자연풍경에서 도시의 거리와 사람들, 가족과 함께한 여행의 순간까지 수많은 장면을 EOS 5D Mark IV로 남겼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전문 사진가처럼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 무엇을 조절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했다. 필요할 때는 책에서 익힌 기능과 설정을 활용했고, 그렇게 오막포로 많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찍어온 사진을 아이패드에 저장하고 여행 날짜와 지역별로 앨범을 만들어 정리해 두고 있다. 오래된 여행부터 최근 여행까지 나중에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해놓았고, 일정이 긴 여행은 다시 날짜와 여행일차별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사진이 수천 장씩 쌓이다 보면 이렇게 정리하지 않고서는 나중에 언제 어디에서 찍은 사진인지 다시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가끔 아이패드의 큰 화면으로 오래전 여행사진을 다시 넘겨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많은 사진을 찍지만, 내 눈에는 EOS 5D Mark IV로 찍은 사진이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색감이 더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풍경의 깊이나 그때의 분위기에서도 스마트폰 사진과는 다른 맛이 있다.

특히 로키의 산과 호수, 요세미티의 거대한 자연, 오타루와 홋카이도의 겨울 풍경 같은 사진을 큰 화면으로 다시 볼 때면 무거운 DSLR과 렌즈를 들고 여행지를 돌아다녔던 수고가 결코 아깝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2024년 알프스 여행사진을 볼 때면 오막포를 두고 간 아쉬움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내게 여행사진은 찍는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와 날짜와 장소별로 정리하고,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보면서 그 여행을 되살리는 것까지가 하나의 과정이다. EOS 5D Mark IV는 그 과정에서 거의 10년 동안 수많은 장면을 남겨주었다.


6. 그런데 읽을수록 생긴 가장 큰 의문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감탄만은 아니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엄청 복잡하구먼. 이걸 다 알고 어떻게 사진을 찍나?”

조리개 하나만 알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셔터속도와 ISO, 측광방식, AF 방식과 초점 영역, 화이트밸런스, 노출 보정에 피사체의 움직임과 빛의 상태까지 생각해야 했다. 각각의 기능을 하나씩 읽을 때는 이해가 되는데, 이것을 실제 촬영 현장에서 동시에 판단하고 자유자재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특히 여행에서는 사진만 찍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다. 걷다가 좋은 풍경이 나타나고 사람이 움직이고 빛이 변한다. 그 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카메라 설정을 하나씩 따지고 있는 사이 찍고 싶었던 장면이 지나가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많은 기능을 공부했음에도 실제로 EOS 5D Mark IV를 사용하면서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결국 자동모드였다.

참으로 허탈한 결론이다. ㅠㅠㅠ

그렇다고 이 책을 읽은 것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자동모드로 찍더라도 카메라가 무엇을 판단하고 있는지 알고 맡기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셔터만 누르는 것은 다르다. 특정 상황에서는 책에서 배운 기능을 직접 꺼내 사용할 수도 있었다.

결국 나에게 이 책은 모든 기능을 항상 직접 조작하기 위해 읽은 책이라기보다, 내가 가진 카메라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게 해 준 책이었다.

오막포의 기능은 책으로 배웠다.
그리고 여행에서는 상당 부분 오막포에게 맡겼다. ㅋㅋ


7. 거의 10년을 함께한 오막포와의 이별

2016년 출시 당시 구입한 EOS 5D Mark IV는 그렇게 거의 10년 동안 나와 함께했다.

그동안 카메라 시장은 크게 변했다. DSLR이 카메라의 중심이던 시대가 저물고 미러리스가 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때 캐논을 대표했던 풀프레임 DSLR인 EOS 5D Mark IV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2026년 3월 오막포를 중고로 처분했다.

구입할 당시에는 상당한 금액을 주고 산 최신 카메라였지만 DSLR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중고 가격도 많이 떨어져 아쉬운 가격에 떠나보내야 했다. 기계의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거의 10년 동안 여러 나라를 함께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남긴 카메라였던 만큼 섭섭한 마음까지 없을 수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2024년 알프스 여행에서 오막포를 집에 두고 떠났던 일은 어쩌면 그 이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진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지만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온종일 들고 다니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DSLR이 가진 장점만큼이나 그 무게와 크기도 점점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더구나 아이패드에 연도와 여행별로 정리해 둔 사진들을 넘겨보다 보면 그 카메라가 어디를 함께 다녔는지가 고스란히 보인다. 한 대의 카메라는 떠났지만 그 카메라가 바라보았던 풍경은 수많은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도 남았다.

처음에는 새로 산 카메라의 기능을 배우기 위해 펼쳤던 책이었지만, 이제는 오막포를 처음 손에 넣었던 때와 그 카메라를 들고 세계 여러 곳을 여행했던 시간, 그리고 DSLR의 시대가 저물면서 결국 카메라를 떠나보낸 순간까지 함께 떠올리게 하는 책이 되었다.


8. 종합 평가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는 EOS 5D Mark IV라는 한 기종의 성능과 기능을 깊이 이해하고 실제 촬영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충실한 전문 가이드이다. 기능 설명과 실제 촬영사진을 연결하고, 다양한 피사체와 렌즈의 특성을 풍부한 예제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 특히 좋다.

나에게도 실제로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오막포의 여러 기능을 알게 되었고, 필요할 때는 배운 기능을 활용하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사진을 남겼다.

물론 책을 다 읽고도 결국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자동모드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이 책을 읽고 카메라를 오랫동안 사용해 본 사람으로서 내릴 수 있는 솔직한 결론이다. 전문적인 기능을 모두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해서 책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카메라 한 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다룬다는 것이 생각보다 깊고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아이패드에서 오막포로 찍은 여행사진을 꺼내보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과는 또 다른 색과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카메라를 중고로 떠나보낸 것은 아쉽지만,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시간까지 아쉽지는 않다. 그때 찍은 사진들이 지금도 여행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막포를 가져가지 않았던 알프스 여행의 사진을 볼 때면 여전히 조금 아쉽다. 루체른과 쉴트호른·뮈렌·할슈타트의 풍경을 이 카메라로 남겼다면 어떤 사진이 되었을까. 이제는 다시 확인할 수 없는 장면이다. 그래서 오막포로 찍어놓은 수많은 사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의 수많은 멋진 예제사진 가운데 아직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시부야 스크램블의 한 장이다.

넓은 화각, 화려한 도쿄의 밤, 밀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까지도 앞모습을 알 수 없는, 검은 상의와 흰 치마의 그 처자.

그 미스터리는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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