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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 60D 활용가이드 - 매뉴얼도 알려주지 않는
니콜 S.영 지음, 공민희 옮김, 윤우석 감수 / 멘토르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독서사진에세이]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와 함께한 나의 첫 DSLR
― 아이들의 성장과 남도 답사, 그리고 첫 해외여행까지
필름카메라와 작은 디지털카메라들을 거쳐 처음으로 큰맘 먹고 장만한 DSLR. 아이들과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따라 남도를 답사했으며, 마흔을 넘겨 처음 떠난 해외여행까지 함께했다. 지금 옛 사진을 다시 보면 촬영 장소가 어디였는지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EOS 60D에는 우리 가족의 한 시절과 내가 여행하고 답사하는 방식을 만들어가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들어가며 ― 필름카메라에서 DSLR까지
내 카메라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처음에는 삼성 필름카메라가 있었다. 정확한 모델명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지금처럼 셔터를 누르고 곧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필름 한 통을 다 찍어 사진관에 맡기고, 현상과 인화를 거쳐 사진을 받아봐야 제대로 찍혔는지 알 수 있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필름값과 현상비, 인화비가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찾아왔다.
Canon PowerShot A70도 한동안 사용했다. 기억으로는 이 카메라를 가족사진용으로 샀다기보다 사무실에서 공사현장에 가지고 다니며 현장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마련했던 것 같다. 공사현장을 다니다 보면 글과 도면만으로는 남길 수 없는 그 순간의 상태를 사진으로 기록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정말 똥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많이 담아준 카메라 가운데 하나는 Sony Cyber-shot DSC-W1이었다. 지금 그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면 몇백만 화소였는지, 렌즈가 어떠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조그만 아이들의 얼굴과 몸짓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돌이켜보면 내게 카메라는 일찍부터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족의 시간을 남기는 도구이자, 내가 직접 본 현장을 기록하는 도구였다.
2008년 11월에는 Canon DIGITAL IXUS 870 IS도 구입했다. 작고 가벼워 어디든 들고 다니기 편한 컴팩트 디지털카메라였다.
그 사이 잠깐 캠코더에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
첫째가 태어나기 전인 2003년 무렵이었다. 아이가 생기면 동영상도 많이 찍게 될 것 같아 당시 형편에는 조금 무리해서 캠코더를 할부로 샀다.
그런데 캠코더를 사 온 바로 그날 새벽이었다.
아내가 새로 산 캠코더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그 물건에 들어간 돈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결국 캠코더를 반품했다.
지금 생각하면 반납하길 잘했다. 이후 디지털카메라가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 촬영까지 상당 부분 해결해 주었고, 나중에는 스마트폰까지 그 역할을 떠맡았다. 내 캠코더 생활은 사 온 날 새벽에 사실상 끝났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아쉬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메라에 대한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
2010년 11월.
나는 큰맘을 먹고 Canon EOS 60D를 장만했다.
1. 내 손을 거쳐 간 카메라들
돌이켜보면 내 손을 거쳐 간 카메라가 제법 많다.
삼성 필름카메라로 아내와의 연애시절을 찍었고, Canon PowerShot A70으로는 공사현장의 모습을 기록했다. Sony Cyber-shot DSC-W1은 똥강아지 같던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많이 남겨주었고, Canon DIGITAL IXUS 870 IS는 가족의 일상을 부담 없이 담아주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 EOS 60D를 구입하면서 작은 디지털카메라에서 본격적인 렌즈교환식 DSLR로 넘어갔다.
그 뒤 공사현장에서 좀 더 작고 간편하게 사용할 카메라로 Sony Cyber-shot DSC-RX100 II도 마련했다. 작은 몸집에 비해 화질이 좋았고 활용도도 높아 지금도 참 잘 만든 카메라로 기억한다. 이 카메라는 나중에 딸에게 넘겨주었다.
2016년에는 EOS 5D Mark IV, 이른바 오막포를 샀다.
그때부터 내 카메라의 무대는 국내 가족여행과 답사를 넘어 캐나다와 미국, 일본과 중국 등 더 넓은 세계로 본격적으로 확장되었다.
작은 카메라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는지 2021년에는 Sony Cyber-shot DSC-RX100 VII도 다시 샀다.
2024년 6월에는 DSLR에서 미러리스로 넘어가 EOS R6 Mark II를 장만했고, 2026년 3월에는 다시 EOS R6 Mark III로 바꾸었다.
정리하면 내 카메라의 시간은 대략 이렇게 흘렀다.
삼성 필름카메라
→ Canon PowerShot A70
→ Sony Cyber-shot DSC-W1
→ Canon DIGITAL IXUS 870 IS
→ Canon EOS 60D
→ Sony Cyber-shot DSC-RX100 II
→ Canon EOS 5D Mark IV
→ Sony Cyber-shot DSC-RX100 VII
→ Canon EOS R6 Mark II
→ Canon EOS R6 Mark III
정확한 구입 시점이 희미해진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도 있지만, 지금 옛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기종보다 더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그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의 내 삶이다.
그리고 그 변천사에서 EOS 60D는 꽤 중요한 자리에 서 있다.
60D부터 사진의 범위가 가족의 일상에서 여행과 답사의 기록으로 본격적으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2. 처음 손에 넣은 본격 DSLR
작은 디지털카메라들을 사용하다 EOS 60D를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남아 있다.
크고 묵직한 몸체부터 달랐다.
렌즈를 갈아 끼울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고, 셔터를 누를 때 들리는 소리부터 작은 디지털카메라와는 전혀 달랐다.
당시 내 눈에는 거의 신의 병기였다.
아이들을 찍어도 사진이 달라 보였다.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찍던 사진보다 피사체가 훨씬 또렷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고, 배경이 부드럽게 흐려지는 사진을 보면서 DSLR이라는 물건의 매력을 처음 제대로 느꼈다.
카메라를 사고 나서는 렌즈에도 욕심이 생겼다.
지금도 15년이 훌쩍 넘은 당시의 렌즈 구매 메모가 남아 있다.
시그마 18-250mm, 탐론 18-270mm, 캐논 EF-S 18-200mm 등 여러 렌즈를 적어놓고 무게와 가격까지 비교해 놓았다. 1번 시그마 렌즈에는 동그라미를 치고 ‘구입’이라고까지 적어놓았지만 실제로 구입한 것은 그 렌즈가 아니었다.
실제로 산 것은 메모의 4번에 적혀 있던 Tamron AF 28-300mm XR Di VC 계열의 고배율 줌렌즈였다.
이 렌즈는 훗날 DSLR을 쓰는 막내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지금 그 메모를 다시 보면 15년이 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 여행사진의 습관도 보인다.
당시에도 여러 렌즈를 갈아 끼우기보다 광각에서 망원까지 한 렌즈로 해결할 수 있는 28-300mm를 골랐다. 여행에서는 사진 한 장을 위해 멈춰 서서 렌즈를 바꾸는 것보다 계속 움직이며 눈앞에 나타나는 장면을 놓치지 않는 쪽이 내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지금 R6 Mark III에 Canon RF24-105mm F4 L IS USM을 주로 물려 다니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다.
화각은 달라졌고 카메라도 몇 세대나 바뀌었지만, 여행에서는 하나의 렌즈로 최대한 많은 장면을 담고 싶어 하는 내 방식은 60D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사면 나는 또 책을 샀다.
그때 함께 읽었던 책이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였다.
3.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 ― DSLR을 처음 배우다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쓸 때는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많지 않았다.
카메라를 켜고 화면을 보고 셔터를 누르면 됐다.
그런데 DSLR은 달랐다.
조리개가 나오고, 셔터속도가 나오고, ISO가 나오고, 노출과 측광, 초점 방식까지 알아야 할 것이 갑자기 많아졌다.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는 그런 내게 DSLR이라는 새로운 카메라를 이해하게 해준 책이었다.
카메라에는 왜 이렇게 버튼이 많은지, 각각의 기능은 무엇인지,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바꾸면 사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하나씩 읽어 나갔다.
책을 읽을 때에는 이해한 것 같았다.
며칠 지나면 또 헷갈렸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적어도 카메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필요할 때 어떤 기능을 찾아봐야 하는지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훗날 『캐논 EOS 5D Mark IV 완벽가이드』와 『캐논 EOS R6 Mark II/R8 완벽가이드』를 읽게 되었지만, 내게 카메라 공부라는 것을 처음 본격적으로 시켜준 책은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였다.
4. 아이들과 함께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EOS 60D와 함께한 시간에는 아이들의 성장기가 그대로 들어 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던 시절도 아니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국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여행에는 거의 늘 60D가 따라다녔다.
사진 속 아이들도 조금씩 자랐다.
여행지에서 뛰어다니고, 절집 마당에 서 있고, 산길을 걷고, 바닷가에서 장난치는 모습이 차곡차곡 남았다.
그래서 지금 60D로 찍은 옛 사진들을 보면 풍경보다 아이들부터 보게 된다.
“야, 이때는 니가 이렇게 쪼끄맸었구나.”
카메라는 그대로였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계속 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EOS 60D는 내게 단순한 첫 DSLR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을 오랫동안 바라본 카메라 가운데 하나다.
5. 유홍준의 답사기를 들고 남도로
그 시절 국내 가족여행의 또 하나의 중심에는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있었다.
책을 읽고 나면 책 속에 나온 장소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기에 나온 길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특히 남도 쪽을 참 많이 다녔다.
강진은 세 번이나 찾아갔다.
강진의 유명한 한식집 해태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도 영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오래전 남도 여행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강진을 지나 장흥으로, 다시 해남으로 내려갔다.
해남에서는 두륜산과 대흥사를 찾았다.
대흥사 입구의 유선관도 참 기억에 남는다.
두륜산 아래 오래된 절집을 찾아가고, 그 앞의 옛 한옥에서 머물며 아이들과 남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장소 하나하나보다 그곳을 찾아가던 길과 함께했던 가족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당시의 여행은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는 가족여행이면서 동시에 내 답사여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책에서 읽은 장소를 직접 찾아간다.
그곳을 걷는다.
문화유산을 보고 주변의 산과 마을을 바라본다.
그리고 사진으로 남긴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다시 책을 펼쳐보고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다시 생각하고, 책과 자료를 찾아보고, 사진 속에 담긴 장소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내가 여행을 하는 방식이 그 무렵부터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막포를 들고 세계 곳곳의 역사유적과 자연을 찾아다니기 훨씬 전, 그 출발점에는 아이들과 남도를 돌아다니던 EOS 60D가 있었다.
6. 사진은 남았는데 여기가 어디더라
60D로 찍은 옛 사진을 지금 다시 들여다볼 때 가장 아쉬운 점도 하나 있다.
위치정보다.
EOS 60D 바디 자체에는 촬영 위치를 자동으로 기록해 주는 GPS 기능이 없었다.
당시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강진에서 찍으면 강진 사진이고, 해남에서 찍으면 해남 사진이니 당연히 나중에도 기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문제가 생겼다.
사진 한 장을 연다.
산도 있고 오래된 절도 있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한참을 들여다본다.
“강진인가? 장흥인가? 해남인가?”
겁나게 생각해야 한다.
사진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처럼 위치정보까지 사진에 함께 남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래서 장소를 알아내려고 오래된 사진을 한참 들여다볼 때가 있다. 그런데 화면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정작 장소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때의 어린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이다.
위치정보가 없어서 불편한 것은 분명하지만, 오래된 사진을 그렇게 한 장 한 장 다시 들여다보는 동안 잊고 있던 가족의 모습까지 함께 되살아난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위치정보는 남아 있는 편이 낫다.
“여기가 어디여?” 하고 매번 머리를 쥐어짜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7. 2016년 2월, 마흔을 넘겨 처음 국경을 넘다
2016년 2월.
EOS 60D와 함께 내 여행에서 중요한 일이 하나 생겼다.
마흔을 넘겨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것이다.
아내와 두 아이가 함께였다.
목적지는 일본 오사카와 교토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니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빠질 수 없었다. 우리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바로 앞의 유니버설 포트 호텔에서 4박을 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며 신이 났고, 나는 그 모습을 60D에 부지런히 담았다.
하지만 첫 해외여행에서 내 눈을 더 오래 붙잡은 곳은 교토였다.
8. 처음 만난 교토 ― 청수사에서 아라시야마까지
교토에서 가장 먼저 기억에 남은 곳 가운데 하나가 청수사였다.
오토와산 자락에 자리한 청수사에 올라 본당 앞으로 돌출된 넓은 목조 무대에 서니 교토의 풍경이 아래로 펼쳐졌다.
사진과 책에서 수없이 보았던 바로 그 ‘청수의 무대’였다.
한국에서 책으로만 보던 오래된 일본의 사찰에 내가 직접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웠다. 단순히 유명한 절 하나를 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람들이 찾아왔던 장소의 공간감과 주변의 산세, 그곳에서 바라보는 교토를 처음 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청수사를 내려오면서는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걸었다.
돌계단과 오래된 건물들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청수사 관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교토의 옛 거리 속으로 이어졌다.
마루야마공원을 지나 쇼렌인과 지온인도 찾았다.
지금 돌아보면 첫 해외여행부터 절과 오래된 거리를 참 열심히도 찾아다녔다.
그리고 아라시야마로 향했다.
도게츠교를 건너며 강과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라보고, 양쪽으로 높게 솟은 대나무가 길을 감싸는 치쿠린을 걸었다. 덴류지도 찾아가 그곳의 정원과 오래된 공간을 둘러보았다.
아라시야마는 당시에도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도게츠교와 치쿠린을 찾아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교토의 대표 명소가 되었다.
2016년의 나는 그저 눈앞에 펼쳐진 교토가 새로웠다.
청수사의 무대에 서보고,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걷고,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 속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여행은 거듭될수록 보는 눈을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9. 9년 뒤 다시 찾은 교토역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5년 1월.
나고야 여행 중 나는 다시 교토역에 섰다.
이번에는 청수사나 아라시야마를 다시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백제계 도래인들의 흔적을 찾아 비와호 일대로 가기 위해 교토역을 찾은 것이었다.
2016년에는 교토의 오래된 절과 거리를 보았다면, 2025년에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 한반도와 일본 사이를 오간 사람들과 문화의 흔적을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여행을 계속하면 세상을 조금씩 더 알게 된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같은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2016년의 나는 교토라는 오래된 도시를 처음 만나는 데 마음을 빼앗겼다.
9년 뒤의 나는 그 도시 너머에 있는 역사와 사람의 이동,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오래된 교류까지 생각하며 다시 교토역에 서 있었다.
카메라도 달라져 있었다.
첫 교토 여행에서는 EOS 60D가 내 손에 있었고, 9년 뒤에는 EOS R6 Mark II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바뀐 시간만큼 여행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져 있었다.
10. 오사카성, 그때는 몰랐던 윤봉길 의사의 흔적
첫 해외여행에서 오사카성 천수각에도 올랐다.
당시에는 그저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한 성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훗날 윤봉길 의사님이 가나자와로 압송되기 전 오사카성 일대의 오사카 육군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6년의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당시 오사카성 사진을 다시 보면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윤 의사님, 그때는 제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6년 5월, 나는 가나자와에서 윤봉길 의사님의 마지막 흔적을 직접 찾아갔다.
노다야마의 순국기념비와 암장지를 찾아가 먼저 주변을 빗자루로 깨끗이 쓸었다. 마님과 함께 순국기념비 앞에서 묵념하고, 암장지에서는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간 소주 ‘처음처럼’ 한 병을 올린 뒤 절을 했다.
2016년의 오사카성과 2026년의 가나자와 사이에는 10년의 시간이 있다.
그 사이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했고, 책을 읽고 역사를 찾아보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 세상을 더 알게 되고, 아는 만큼 같은 장소에서도 더 많은 것이 보인다.
2016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던 오사카성을, 10년 뒤에는 윤봉길 의사님의 시간을 함께 생각하며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가나자와의 순국기념비와 암장지를 직접 찾아 소주 한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내게 답사는 그렇게 조금씩 깊어져 왔다.
그래서 여행은 다녀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접 보고 사진으로 남긴 뒤, 다시 책을 읽고 역사를 알아가며 오래전 사진을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11. 도톤보리와 처음 맛본 일본 초밥
첫 해외여행이었으니 먹는 것도 모두 새로웠다.
도톤보리의 번잡한 거리를 걸었다.
커다란 간판과 네온사인,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일본 현지 초밥을 처음 제대로 먹어보았다.
한 점을 입에 넣고 깜짝 놀랐다.
“워매, 초밥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그 맛의 차이가 무엇 때문이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때 처음 먹었던 일본 초밥이 겁나게 맛있었다는 기억만은 아직도 또렷하다.
지금은 일본을 여러 번 다녀왔고 일본 음식도 익숙해졌지만, 처음이라는 경험은 다시 만들 수 없다.
청수사도 처음이었고,
아라시야마도 처음이었고,
도톤보리도 처음이었고,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며칠씩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 모든 첫 장면을 EOS 60D가 기록했다.
12. 첫 해외여행을 끝으로 오막포에게 자리를 내주다
공교롭게도 2016년 2월 오사카·교토 여행은 60D의 마지막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해 EOS 5D Mark IV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막포를 샀다.
주력 카메라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EOS 5D Mark IV로 넘어갔다.
오막포를 들고 캐나다와 미국, 홋카이도와 괌, 중국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60D는 점점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때는 가족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챙기던 카메라였는데 새로운 풀프레임 DSLR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뒷방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바로 처분하지는 않았다.
사용 횟수는 크게 줄었지만 오랫동안 집에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수많은 가족여행, 남도 답사와 첫 해외여행이 모두 그 카메라와 연결되어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13. 2024년, 오래된 60D를 보내다
2010년 11월에 구입했던 EOS 60D는 그렇게 2024년까지 내 곁에 남아 있었다.
그해 6월 EOS R6 Mark II를 구입하면서 구형 카메라를 반납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행사가 있었고, 결국 60D를 반납했다.
13년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주력으로 사용한 기간은 그보다 짧았지만 내 카메라 역사에서는 참 오래 남아 있던 녀석이었다.
삼성 필름카메라와 작은 디지털카메라들을 거쳐 처음 손에 넣은 본격 DSLR.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찍었고,
가족과 전국을 돌아다녔고,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따라 남도의 문화유산을 찾아갔으며,
마흔을 넘겨 처음 떠난 해외여행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초입에는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가 있었다.
14. 돌아보며 ― 내 여행과 답사의 시작에 있었던 60D
『Canon EOS 60D 활용가이드』는 지금 내 책장에 없다. 오래전에 중고책으로 팔아버렸다.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며 처음 DSLR을 배우던 시절의 기억은 남아 있다.
60D는 내 첫 DSLR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서며 여행과 답사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시절을 기록한 카메라였다. 책에서 본 곳을 직접 찾아가 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기는 지금의 여행 방식도 그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2016년 첫 해외여행까지 함께한 뒤 오막포에게 주력 자리를 내주었지만, 내 사진과 여행의 역사에서 60D가 차지하는 자리는 여전히 크다.
오막포가 나를 더 넓은 세계로 데리고 나갔다면, 60D는 그 세계를 찾아 나서는 방법을 처음 가르쳐준 카메라였다.
돌이켜보면 내 여행과 답사의 시작에는
EOS 60D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