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불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타이나 인도네시아, 미얀마를 비롯한 남방불교권에 가보면 한쪽 팔을 베고 누워있는 와불이 유달리 많이 조성돼 있는데, 이는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중생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위한 뜻일 게다.

안심사에 와서 앞산의 열반상을 한참 쳐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먹고살 것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쉬어보라는 메시지가 깃들어 있다. 서 있기보다는 앉아 있는 것이 편안하고, 앉아 있기보다는 누워 있는 것이 편안한 법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지을 때 ‘안심사라고 지은 듯하다.

탐진치 삼독심 가운데 남자들이 대체적으로 참기 힘든 것이 진심, 즉 화내는 마음이다. 노인은 탐심이 많고, 여자는 치심, 남자는 진심이 많다. 화를 내게 되면 몸의 기혈이 엉망진창으로 뒤집히기 때문에 아주 해롭다. 도가에서는 섹스보다 더 해로운 것이 성내는 마음이라고 규정할 정도이다. 대체로 몸에 불기운이 많은 사람이화를 잘 내고 흥분을 잘한다. 물이 많으면 차분하고 능글능글하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요."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요.‘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인생의 수많은함축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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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쯤은 만화 속 캐릭터와 함께 항해해도, ‘동료가 되라’는 주인공의 말이 마치 차원 너머 나에게 하는 말인 듯 설레어도, 이 세계를 구해달라는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도 될 텐데.

아무튼 이런 분위기는 만화를 본다는 것을 일종의 롤러코스터, 항해의 시작, 불시착과 표류로 여기는 나에게는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유치하다’. 사람들이 대체 어떤 대상에 이 말을 쓰는지 한참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유치하다’는 단어는 감상을 너무나 단편적으로 설명하고 작품을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작품이 성숙하지 않다는 뜻으로 유치하다고 평가하는 걸까? 그렇다면 세상에 성숙한 작품이 있다는 것인데, 나는 성숙한 작품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작품은 시대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로 평가되니까.

사람들은 주인공이 감성 충만한 작품을 볼 때 ‘오글거린다’는 말을, 주인공이 완전한 선(善)일 때 ‘유치하다’는 말을 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와 인식을 확장하고(있다고 믿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려 노력하고(있다고 믿고), 뻔한 담론을 타파하려 하고(그렇겠지?), 관습을 의심하며 세상을 바꿔보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선명한 선악 구도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그런 사람들이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일본 만화 시장에 내적, 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준 〈우주소년 아톰〉(1952년), 〈기동전사 건담〉(1979년), 〈아키라〉(1982년),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년) 같은 SF 작품들은 감시 사회, 운석 충돌, 지구 멸망, 전쟁 등의 소재를 다루며 전반적으로 종말과 전쟁의 불가피함, 패전국이라는 패배 의식, 그리고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영웅 출현의 소망 등을 기저에 깔고 있다.

"우리들은 디지털 몬스터야!"
"우린 너희를 지키기 위해서 기다린 거야."

그 진화는 쿠가몬을 물리치고 이기기 위한 진화가 아니었다. 쿠가몬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진화였다.

언뜻 보면 비슷한 듯 보이지만, 무언가를 무찌르고 싶다는 마음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 것이 선행되느냐에 따라 그 색이 완전히 달라지고 디지몬은 후자였다. 디지몬은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했다.

나는 거기서 비밀의 열쇠를 돌려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어버렸다.

나는 스스로 선택받은 아이가 되었지만, 차원의 문을 여는 디지바이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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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아무튼, 디지몬 :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 천선란

이건 내가 디지몬과 영원히 이별하는 이야기다

"〈디지몬 어드벤처〉요."

〈디지몬 어드벤처〉는 정말로 SF 장르의 특성을 모두 충족시킨다. 결정적인 근거는 배경이 ‘디지털 세상’이라는 거다. 어떻게 SF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주인공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며, 그곳의 혼돈은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성인이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에서 파란 약과 빨간 약의 혼돈에 갇혀 있을 때, 아이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몬 친구를 만났다. ‘선택받은 아이’가 되어 디지털 세상으로 갈 날을 기다리며 모니터에 괜히 말을 걸어보거나, 상상 속의 디지바이스*를 열심히 흔들며 새로운 세기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와 다를 바 없이 살던 일곱 명의 아이들이 비가 오던 어느 날 디지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버린 것이다.

찾아라 비밀의 열쇠*
* 한국판 〈디지몬 어드벤처〉 오프닝 곡 첫 가사.

〈디지몬 어드벤처〉는 7세 이용가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당신이 7세 이상이라면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호자 지도 없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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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비우면 누구나 꽃을 피워 올릴 수 있는 이치
지공 스님은 1993년부터 이곳에 혼자 있다. 신도라고 탈탈 털어봐야 절 밑의 등에 시작움것이다. 전기 요금 전화 요금 내기도버거운 절이다. 지공 스님이 큰절 마다하고 굳이 구암사로 자청해온까닭은 사명감 때문이다.

사명감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지공 스님은 배고픈 절인 구암사를지키고 있는 것일까? 지공 스님의 사명감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는조선 후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학승이었던 백파 대사의 법맥脈을이어간다는 자존심이 깔려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자존심, 자존심은 이해타산을 떠나게 만든다. 시절 인연이 좋았을 때는그처럼 들끓었던 제자들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니 간데없이사라졌다. 세상사 이런 것인가! ‘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처럼 지공 스님 혼자 외로운 구암사를 지키고 있다. 외롭고 배고픈 절이 된 구암사, 구암사에는 지공 스님과 노랗게 핀 수선화 단 둘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사찰 마당 화초밭의풀을 뽑고 있는 스님은 담담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묻는 말 외에는 일체 말이 없는 분이다.

"휴거헐거休去歇去면 철목개화鐵木開花라는 말이 있지요."
‘철목개화하는 데 몇 년 정도 걸립니까?"
"한 5년만 절 밖에 안 나가면 됩니다."

오랫동안 휴거헐거를 해서 그런 것일까. 지금 스님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나는 그 담담함이 참으로 부러웠다. 장광설은 피곤을 가져오고 담담함은 생기를 준다. 지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만 말해야 한다. 서론을 과감하게 생략하고결론으로 직행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던가.

먼저 돈이 없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어찌 청산을 그리워하겠는가. 중생은 바야흐로 돈이 없어야 고독을 알고, 고독을 응시하기 시작할 때 청산이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청산이 좋아지기시작하면 그때부터 돈 버는 일과는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역마살이다. 역마살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돌아다닐일이 많이 생긴다. 이산 저산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집구석에붙어 있을 날이 없게 마련이고, 사주팔자에 역마살 많은 사람치고일요일 날 방바닥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 사람 못 보았다. 사주의 인신사해 역마살이다.

다음 조건은 염증이다. 도시 생활이 왠지 이유 없이 싫어야한다. 싫어야 산속의 소나무가 어머니 품 같고 고향 같다. 염세증 환자로 분류될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는 ‘범종 소리를 좋아하는가?‘이다. 석양이 오렌지색으로 변해 넘어갈 무렵, 인적이 드문 절간에서산허리를 타고 돌며 사라져가는 범종 소리를 듣고, 감정이 복받쳤던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단 염세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게는공통적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장 그르니에의 「섬』을 좋아하는취향이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식견을 지녀야 한다. 식견이라고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론에다가 풍부한 현장 경험이 합쳐졌을 때 생겨난다. 식견을지녀야만 답사 현장에 섰을 때 단서를 찾아낼 수 있고, 이 단서를 매개로 해 추리가 가능해지고, 추리를 따라가면서 과거, 역사 그리고옛사람들과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식견은 세월과 어느 정도비례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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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복사 주위는 우리나라에서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김제·만경의 곡창지대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둠벙 파놓으면 개구리 뛰어든다‘는 옛날속담처럼 쌀이 있는 곳에는 문화가 발달하고 사람이 모이게 마련인가 보다.

화두...... 글자 그대로 말의 머리만 있지 꼬리는 감추고 없다. 머리만 힐끔 보고 몸통과 꼬리를 한눈에 파악해야 한다. 언어를 가지고 언어를 파괴하는 것이 화두이다. 비논리를 가지고 논리를 깨는것이 화두이다. 원효가 역작 『기신론소起信論』에서 제시한 의언진여依言眞如(언어에 의지해 진리를 표현함)의 세계에서, 이언진여難言眞如(언어를 떠남으로써 진리를 표현함)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화두이다.

"달다.……………."
전강이 휘두른 이 한마디는 지혜 제일의 검객이 보여준 초식이다.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한칼에 해결해버린 것이다. 이 화두는 중생의 삶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가없이 너른 들녘은 태어나서 죽어가는 생사의 광야이니 그곳으로 사방에서 붙어오는 불길은 생로병사의 불이요, 우물은 황천이며,
미친 코끼리는 무상한 살귀鬼요, 나무는 사람의 몸이며, 칡넝쿨은사람의 목숨이고, 검은 쥐 흰 쥐는 해와 달이요, 세 마리의 이무기는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이며, 네 마리의 뱀은 지·수·화·풍 사대이다. 꿀은 오·욕·락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서산이 옳은 것인가, 진묵이 옳은 것인가? 동포가 왜놈의 칼날에 처참하게 살육당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진묵은 저 혼자 살자고 산속에 숨어버린 도피주의자란 말인가? <미션>에서 평화의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칼을 잡고 돌격하는로버트 드 니로.......

나의 머릿속에는 서산과 진묵의 극단적인 인생행로가 한꺼번에몰려들었다. 서산은 칼을 들고 산에서 내려온 셈이고, 진묵은 그냥청산에 머물렀다. 시뻘건 피를 튀게 하는 칼이 색이라면, 청산은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색과 공이 이처럼 확연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전쟁이 일어날 때이다. 피와 칼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다. 눈앞에 칼이 들어오는데 과연 이것이 환상이고 공인가. 칼이 들어오는현실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가, 아니면 도망갈 수밖에 없는가.

그래서 나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겹쳐보았다. 그리고 진묵의 행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커다란 사건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3년 전, 그러니까 기축년(1589)에 김제 금구에서 발생한 ‘정여립 역모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정여립과 관련돼 걸려든 사람이 수천 명이고, 그들 중 사형되거나 고문으로 죽은 사람만 해도 대략 1천 명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다. 누구의 표현대로 ‘조선의 광주민주화운동‘이었던 것이다.

정치적 좌절은 종교적 천재를 낳았다. 진묵이라는 천재가 없었다면 상처받은 민초들은 어디로 가서 위안을 얻었을 것인가! 임금에게서 위안을 받을 것인가, 사또에게서 위안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미쳐 버려야 한단 말인가? ‘진묵 신앙‘은 상처 치유의 산물이었다. 한국의 승려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경상도는 정치인이 많이 나고,
전라도는 도인이 많이 나온다‘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음미할 가치가 있다.

불교는 정해진 지역구가 따로 없다. 마음에 드는 도량이 있으면방방곡곡 전국 어디라도 찾아간다. 불교의 사상이 무주공산 사상이라 어디 따로 임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자동차가 많이 보급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강해졌다. 전국 어디에있는 사찰이라도 가고 싶으면 간다.

나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맹자』 「진심장」에 나오는 "궁색할때는 홀로 자신을 돌보는 데 힘쓰고 잘 풀릴 때는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 를 마음속에서  새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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