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비우면 누구나 꽃을 피워 올릴 수 있는 이치
지공 스님은 1993년부터 이곳에 혼자 있다. 신도라고 탈탈 털어봐야 절 밑의 등에 시작움것이다. 전기 요금 전화 요금 내기도버거운 절이다. 지공 스님이 큰절 마다하고 굳이 구암사로 자청해온까닭은 사명감 때문이다.

사명감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지공 스님은 배고픈 절인 구암사를지키고 있는 것일까? 지공 스님의 사명감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는조선 후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학승이었던 백파 대사의 법맥脈을이어간다는 자존심이 깔려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자존심, 자존심은 이해타산을 떠나게 만든다. 시절 인연이 좋았을 때는그처럼 들끓었던 제자들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니 간데없이사라졌다. 세상사 이런 것인가! ‘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처럼 지공 스님 혼자 외로운 구암사를 지키고 있다. 외롭고 배고픈 절이 된 구암사, 구암사에는 지공 스님과 노랗게 핀 수선화 단 둘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사찰 마당 화초밭의풀을 뽑고 있는 스님은 담담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묻는 말 외에는 일체 말이 없는 분이다.

"휴거헐거休去歇去면 철목개화鐵木開花라는 말이 있지요."
‘철목개화하는 데 몇 년 정도 걸립니까?"
"한 5년만 절 밖에 안 나가면 됩니다."

오랫동안 휴거헐거를 해서 그런 것일까. 지금 스님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나는 그 담담함이 참으로 부러웠다. 장광설은 피곤을 가져오고 담담함은 생기를 준다. 지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만 말해야 한다. 서론을 과감하게 생략하고결론으로 직행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던가.

먼저 돈이 없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어찌 청산을 그리워하겠는가. 중생은 바야흐로 돈이 없어야 고독을 알고, 고독을 응시하기 시작할 때 청산이 부르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청산이 좋아지기시작하면 그때부터 돈 버는 일과는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역마살이다. 역마살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돌아다닐일이 많이 생긴다. 이산 저산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집구석에붙어 있을 날이 없게 마련이고, 사주팔자에 역마살 많은 사람치고일요일 날 방바닥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 사람 못 보았다. 사주의 인신사해 역마살이다.

다음 조건은 염증이다. 도시 생활이 왠지 이유 없이 싫어야한다. 싫어야 산속의 소나무가 어머니 품 같고 고향 같다. 염세증 환자로 분류될 수 있는 기준 중의 하나는 ‘범종 소리를 좋아하는가?‘이다. 석양이 오렌지색으로 변해 넘어갈 무렵, 인적이 드문 절간에서산허리를 타고 돌며 사라져가는 범종 소리를 듣고, 감정이 복받쳤던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단 염세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게는공통적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장 그르니에의 「섬』을 좋아하는취향이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식견을 지녀야 한다. 식견이라고 하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론에다가 풍부한 현장 경험이 합쳐졌을 때 생겨난다. 식견을지녀야만 답사 현장에 섰을 때 단서를 찾아낼 수 있고, 이 단서를 매개로 해 추리가 가능해지고, 추리를 따라가면서 과거, 역사 그리고옛사람들과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식견은 세월과 어느 정도비례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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