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인형관의 살인』 외전
― 시라카와 길을 따라 인형관을 추리하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은 『기면관의 살인』이었다. 이후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을 읽으면서 작품 속 ‘관’이 실제로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을지를 한번쯤 추리해보고 싶었다.

특히 『십각관의 살인』과 『수차관의 살인』을 읽을 때는 지도를 펼쳐놓고 관의 위치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작품 속에 제시된 지리적 정보만으로 실제 지도 위에서 위치를 좁히기에는 단서가 부족했다. 관 자체의 구조와 주변 환경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지명과 도로를 하나씩 대입해 위치를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인형관의 살인』은 달랐다.

작품은 인형관이 교토 사쿄구 기타시라카와(北白川)에 있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여기에 시라카와 길, 이마데가와 길, 긴가쿠지, 철학의 길, 난젠지, 시모가모 신사처럼 실제 교토의 지명과 도로가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히류 소이치가 어디를 걸어가고 어디를 자전거로 찾아가는지까지 묘사한다.

더구나 그곳은 내가 좋아해서 두 번이나 찾아갔던 교토다.

이 정도라면 한번 해볼 만했다.

인형관은 기타시라카와의 어디쯤에 있었을까.

추리소설을 읽다가 이번에는 범인이 아니라 인형관의 위치를 추리해보기로 했다.


1. 첫 번째 단서 ― 교토역에서 인형관으로

히류가 처음 교토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인형관으로 향하는 장면부터 상당히 구체적인 단서가 나온다.

교토역에서 출발한 택시는 약 30분을 달린다. 그리고 시라카와 길이라는 큰길에서 벗어나 산 쪽으로 들어간 뒤 모퉁이를 몇 번 돈다.

도착한 곳은 교토시 사쿄구 기타시라카와.

히류는 바로 근처에 산이 있다는 것을 보고 이곳이 교토 시내에서도 꽤 변두리에 속하겠다고 생각한다.

주변 풍경에 대한 묘사는 더욱 구체적이다.

한적한 고급 주택가이고, 살짝 가파른 도로를 사이에 두고 흙담과 산울타리가 길게 이어진다. 집마다 부지가 상당히 넓으며 큰길의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인형관의 기본적인 입지 조건이 드러난다.

인형관은 시라카와 길, 즉 시라카와도리(白川通)에 바로 붙어 있는 집이 아니다. 시라카와도리에서 산 쪽으로 들어가 여러 차례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 곳에 있다.

또한 도로에 경사가 있고 산이 바로 근처에 있다고 묘사된다.

기타시라카와의 동쪽은 히가시야마 산지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작품의 묘사를 실제 지형에 대입하면 인형관은 기타시라카와 가운데서도 시라카와도리 동쪽,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주택가 쪽에 자리 잡았다고 추정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것이 인형관의 위치를 좁히는 첫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단서다.


2. 두 번째 단서 ― 시라카와 길을 따라 이마데가와까지

히류의 일상적인 이동에서도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그는 어느 날 시라카와 길을 따라 이마데가와까지 내려간다.

이어 작품은 이마데가와 길이 교토 시가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 가운데 하나이며, 동쪽에서 시라카와 길과 교차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교차점에서 좁아진 길을 동쪽으로 더 나아가면 긴가쿠지(銀閣寺)가 나온다고 덧붙인다.

시라카와도리와 이마데가와도리는 모두 실제 교토의 도로다. 두 길이 만나는 교차점도 실제로 존재하고 그곳에서 동쪽으로 들어가면 긴가쿠지에 닿는다.

소설 속 지리가 허구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실제 교토의 도로망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내려간다’이다.

앞서 인형관은 시라카와도리에서 산 쪽으로 들어간 기타시라카와의 주택가에 있었다. 그런 인형관에서 나와 시라카와도리를 따라 이마데가와까지 ‘내려간다’면, 인형관은 시라카와이마데가와 교차점보다 북쪽에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첫 번째 단서가 인형관을 시라카와도리 동쪽 산기슭으로 좁혔다면, 두 번째 단서는 다시 그 위치를 이마데가와보다 북쪽으로 좁힌다.

두 조건을 겹치면 인형관이 있을 법한 공간이 제법 선명해진다.


3. 세 번째 단서 ― 긴가쿠지와 철학의 길

히류가 좋아하는 산책 장소에서도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히류는 긴가쿠지에서 냐쿠오지(若王子) 신사까지 이어지는 철학의 길을 특히 좋아해 관광객이 적을 만한 요일과 시간대를 골라 이따금 찾아간다고 말한다.

철학의 길은 실제로 긴가쿠지 부근에서 시작해 비와호 소수(琵琶湖疏水)를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고 냐쿠오지 신사 부근에 이르는 약 2킬로미터의 산책길이다.

앞서 확인한 인형관의 위치와 연결해보면 이 동선도 자연스럽다.

인형관에서 산기슭의 주택가를 빠져나와 시라카와도리로 나온다. 그 길을 남쪽으로 내려가 이마데가와도리를 만나고, 거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긴가쿠지와 철학의 길에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철학의 길은 관광객 히류가 우연히 찾아간 명소라기보다 기타시라카와에 사는 히류의 일상적인 산책 생활권 안에 있는 장소로 그려진다.


4. 네 번째 단서 ― 걸어서 가는 곳과 자전거로 가는 곳

히류의 이동수단에서도 거리 감각을 짐작할 수 있다.

히류는 낡은 절과 신사를 싫어하지 않아 난젠지(南禪寺)와 시모가모(下鴨) 신사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들은 근처이기는 해도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만만치 않아 자전거를 타고 갈 때가 많다고 한다.

난젠지는 철학의 길 남쪽에서 더 내려간 곳에 있고, 시모가모 신사는 기타시라카와에서 서쪽으로 떨어져 있다.

이를 지도 위에 올려놓으면 히류의 생활반경이 그려진다.

긴가쿠지와 철학의 길은 산책권, 그보다 거리가 있는 난젠지와 시모가모 신사는 자전거 생활권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기타시라카와의 인형관이 있다.

물론 사람이 어느 정도 거리를 걸을지, 언제부터 자전거를 이용할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따라서 이 단서만으로 정확한 거리를 계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의 두 단서로 추정한 위치가 히류의 생활 동선과 모순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보조 단서로는 충분하다.


5. 교토의 밤 ― 다이몬지 오쿠리비

작품에는 교토라는 공간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하는 장면도 있다.

히류는 어머니로 알고 살아온 이모와 함께 오쿠리비를 보러 간다.

오후 8시.

어두운 산중턱에서 불길이 번져가며 거대한 ‘大’자가 밤하늘 아래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교토의 고잔 오쿠리비(五山送り火) 가운데 다이몬지(大文字)다. 매년 8월 16일 밤 교토를 둘러싼 산에 차례로 불을 밝히며, 다이몬지는 오후 8시에 가장 먼저 점화된다. 소설에 적힌 시각도 실제 행사와 일치한다.

이 대목을 읽으니 아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사실 올해 8월 연휴에는 이 다이몬지 오쿠리비를 직접 보려고 교토에 갈 계획이었다.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일정으로 교토역 인근 호텔까지 예약해두었다. 8월 16일 밤 교토에서 거대한 ‘大’자가 산 위에 불타오르는 모습을 직접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 달 미국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결국 교토 여행은 취소했다. 예약해두었던 숙소도 취소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이 바로 오쿠리비가 열리는 8월 16일이고, 나는 지금 『인형관의 살인』에서 히류가 그 불을 바라보는 장면을 읽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책 속의 히류가 바라보았던 것과 같은 ‘大’자를 나도 교토의 밤하늘 아래서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올해는 책 속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8월 16일의 교토에서 그 불을 직접 보고 싶다.

다만 이 장면은 인형관의 위치를 좁히는 직접적인 단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히류와 이모가 인형관에서 다이몬지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오쿠리비를 보기 위해 이동한 뒤 바라본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인형관의 살인』의 교토가 단순한 배경지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로와 동네, 절과 신사뿐 아니라 교토 사람들이 계절 속에서 경험하는 풍경과 행사까지 소설 안으로 들어와 있다.


6. 지도 위에 인형관을 세워보다

이제 지금까지의 단서를 하나씩 겹쳐보았다.

첫째, 작품은 인형관의 소재지를 사쿄구 기타시라카와라고 명시한다.

둘째, 교토역에서 택시로 약 30분을 달려 시라카와도리라는 큰길에서 산 쪽으로 들어가 모퉁이를 몇 번 돌아야 인형관에 도착한다.

셋째, 인형관 주변은 산이 가깝고 도로에 경사가 있는 한적한 고급 주택가이며, 큰길의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넷째, 히류는 시라카와도리를 따라 이마데가와까지 내려간다. 따라서 인형관은 시라카와이마데가와 교차점보다 북쪽에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다섯째, 긴가쿠지와 철학의 길은 히류가 즐겨 찾는 산책 생활권이고, 조금 더 떨어진 난젠지와 시모가모 신사는 자전거 생활권이다.

이 조건들을 실제 교토 지도 위에 차례로 겹치면 인형관의 위치는 처음보다 훨씬 좁혀진다.

시라카와이마데가와 교차점보다 북쪽에 있는 기타시라카와, 시라카와도리에서 동쪽 산 방향으로 들어간 경사진 주택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시라카와도리에서 산 쪽으로 들어간 기타시라카와 시부세초(北白川仕伏町)에서 야마노모토초(北白川山ノ元町) 일대의 산기슭 주택가를 유력한 범위로 추정해볼 수 있다. 다만 이는 작품에 정확한 주소가 제시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확인한 지명과 이동 방향, 지형 묘사를 실제 지도에 대입해 얻은 추정이다.

아마 이 정도가 소설이 허락하는 가장 합리적인 추정 범위일 것이다.

정확한 골목이나 번지를 지목하는 순간부터는 근거보다 상상이 앞서게 된다. 그러니 인형관을 찾아가는 우리의 추리는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지도 위에는 이미 인형관 하나가 생겼다.

실제로 존재하는 집은 아니지만, 기타시라카와의 산기슭 어느 한적한 골목을 바라보면 아야츠지가 그곳 어딘가에 인형관을 세워두었을 것 같은 공간이 그려진다.


7. 소설이 불러낸 다시 가고 싶은 교토

나는 교토에 두 번 갔다.

그 가운데 한 번은 비와호로 가기 위해 교토를 거쳐간 것이었다. 두 번이나 교토를 찾았지만 금각사와 은각사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인형관의 살인』을 읽기 전까지 은각사는 그저 다음 교토 여행에서 한번 가봐야 할 곳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가 시라카와 길이라는 이름을 만났고, 이마데가와 길을 만났으며, 그 길의 끝에서 은각사를 만났다. 다시 지도를 펼치자 기타시라카와에서 은각사와 철학의 길, 냐쿠오지 신사와 난젠지가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졌다.

철학의 길 옆으로 흐르는 물이 비와호에서 끌어온 소수라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전에 찾아갔던 비와호와 아직 걷지 못한 교토의 길도 내 여행의 기억 속에서 연결된다.

특히 다음에 교토에 가면 은각사에서 시작해 철학의 길을 꼭 걸어보고 싶다.

은각사를 나와 비와호 소수를 따라 천천히 남쪽으로 걷고, 냐쿠오지 신사를 지나 난젠지까지 이어가 보고 싶다. 『인형관의 살인』에서 히류가 좋아해 이따금 찾았다는 길을 이번에는 내가 직접 걸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있다.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청수사다.

전에 찾았던 때는 2월이었다.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경내에는 매화가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겨울 끝자락에서 봄을 준비하던 청수사의 모습이었다.

그 청수사를 이번에는 가을에 다시 보고 싶다.

단풍이 산을 덮고, 붉고 노란 잎 사이로 청수사의 무대가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 2월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매화가 피기 시작하던 청수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가을의 청수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다.

사실 이번 여름에도 교토로 갈 뻔했다. 아니, 오늘이 바로 그곳에 있어야 했던 날이다. 8월 16일 다이몬지 오쿠리비를 보기 위해 숙소까지 예약해두었다가 다음 달 미국 여행 때문에 취소했다. 계획대로였다면 지금쯤 교토 어딘가에서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다이몬지산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교토는 두 번 다녀온 도시이면서도 아직 보고 싶은 것과 걷고 싶은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다음 교토는 가을에 꼭 가고 싶다.

기타시라카와에서 시라카와 길을 걸어보고 싶다. 큰길에서 동쪽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가 소설 속 인형관이 있었을 법한 주택가도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이마데가와까지 내려와 은각사를 보고, 그곳에서 철학의 길로 들어서 냐쿠오지 신사와 난젠지까지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하루쯤은 다시 청수사를 찾아가고 싶다.

2월에 매화가 막 피기 시작하던 그곳에서 이번에는 가을 단풍을 바라보고 싶다. 한 장소를 다른 계절에 다시 찾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인형관의 정확한 주소는 찾을 수 없다.

그래도 기타시라카와의 경사진 골목을 걷다 보면 한번쯤 멈춰 서서 주변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시라카와 길에서 산 쪽으로 들어와 모퉁이를 몇 번 돌면…… 아야츠지가 세운 인형관도 이런 곳에 있지 않았을까.’

추리소설 한 권을 읽다가 범인 말고 집 한 채의 위치를 추리했다.

그 집을 찾아 지도 위의 교토를 돌아다니다 보니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만났고, 이번 여름에 보지 못한 다이몬지의 불도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2월에 찾았던 청수사를 이번에는 단풍 속에서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번 여름에는 가지 못했지만, 교토는 다시 갈 것이다.

다음에는 시라카와 길을 따라 인형관을 추리했던 바로 그 길을 직접 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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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앞뜰 나무 사이로 모습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악의가 느껴져 나는 가벼운 구역질과도 비슷한 기분을 맛보았다.

열쇠는 나와 어머니가 하나씩 가지고 있다. 여벌열쇠는 부엌 찬장 서랍에 넣어두었다. 덧붙여 광에 단 자물쇠의 열쇠 두 개는 내가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참 별일이지? 아무리 봐도 저절로 굴러왔다기보다는 누가 놓아둔 듯한 느낌이 들어."

긴가쿠지에서 냐쿠오지若王子 신사까지 이어지는 ‘철학의 길‘은 특히 좋아하는 곳이라 이따금 관광객이 적을 듯한 요일과 시간대를 골라 나가 본다. 저번 달 여자아이 타살 시체가 발견된 절은 이 길 근처에 있다.

그렇게 멀리 산책 나갈 때 타는 자전거 브레이크가 망가졌다.
10월 16일 금요일 오후의 일이다.

"가끔은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소이치?"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 애들 장난일 거야. 하지만 이른 아침인데.. 초등학생이 학교 가기 전에 그런 장난을 칠까 싶기도 하고. 고양이를 기르는 집은 현관 앞에 빈 캔이나빈 병이 놓여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지만 우리는 고양이도 안 기르는데."

"요전에 구라타니 씨랑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혼자 살다 보니 밥 먹을 때 되게 적적하다는구나. 밖에서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고...... 쓰지이 씨랑 가능하면 기즈가와 씨도 불러서 냄비요리라도 대접하면 어떨까? 모두 혼자 사니까 분명 좋아할 것 같은데."

"낮에 미리 고양이가 있는 집을 찾아둔대. 좋은 고양이가 있는 집에 빈 캔을 놓아 표시를 하고 밤에 고양이를 훔치러 온다나 봐."
"그럼 훔친 고양이는 샤미센 가죽으로?"

낡은 절과 신사도 싫어하지는 않기에 난젠지南禪寺 절이나 시모가모下鴨 신사까지 갈 때도 있다. 이처럼 근처이기는 하지만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만만치 않은 곳은자전거를 타고 갈 때가 많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아이들 몇 명이 좌우로 퍼져서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두 발을 땅에 질질 끌면서 언덕길을 달려오는 자전거를 보고 깜짝 놀라 멈춰 섰다. 몹시 당황한 내 얼굴이 아주 무시무시했던 것이 틀림없다.

셔츠 팔꿈치 부분이 찢어져 드러난 살에 피가 맺혔다. 바지는 찢어지지 않았지만 팔꿈치만큼 아팠다.
상처 치료는 뒤로 미루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자전거 브레이크부터 살폈다. 그리하여 판명된 사실.
핸들 레버와 브레이크를 잇는 와이어 두 줄이 모조리 끊어져 있었다.

아스팔트에 왼쪽 무릎과 어깨, 팔꿈치를 호되게 찧었다. 숨이 턱 막혀 잠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구라타니는 물론 쓰지이도 예상 외로 어머니의 초대를 환영했지만, 기즈가와는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하고 거절했다고 한다. 말투로 보아 육체적인 장애보다 다른두 사람과의 나이 차가 신경 쓰인 것 아니겠냐고 어머니는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 히류 고요 씨는 후지누마 잇세이 화백과 자별한 사이였죠. 당연히 화백의 아들인 기이치 씨와도 알고 지냈을 겁니다. 그런 인간관계를 고려해보면, 저쪽 서양식 저택을 개축할 때 고요 씨가 나카무라 세이지에게 일을 의뢰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큽니다."

"나카무라 세이지. 푸를 청靑자에 맡을 사司자를 써서 세이지입니다."
기억 속에 있는 이름이었다. 분명..
"어떤 건축가의 이름이에요. 벌써 죽었지만,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거든요."

만약 구라타니가 광에 숨어들었던 ‘범인‘이라면 그쪽 복도에 인형이 놓여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 것이다. 그런데 안채에도 인형이 있느냐고 물어보다니, 모르는 척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걸까.
결국 어느 쪽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쓰지이의 말과 표정을 관찰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깔깔 웃는 어머니의 목덜미는 옅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옛날부터 술을 좋아해서 아버지 이케오가 건재했을 때는 매일 밤 둘이서 저녁 반주를 들었다. 지금도 그 습관은 변함이 없어 자기 전에는 늘 청주나 맥주를 마신다. 가끔 같이 마실 때도 있지만 나는 술이 그리 센 편이 아니다. 그래도 이날 밤은 권해주는 대로 비교적 많이 마셨다.

"와, 이 집을 무대로 말입니까?"
구라타니가 탄성을 질렀다.
"인형관의 살인이었던가요?"

"쓰지이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녀석이 범인일까요? 이대로 내버려두면 세 번째 사건이 일어날까요?"
"흠, 글쎄."
쓰지이는 퉁명스레 대답하더니 술잔의 술을 쭉 들이켰다.
"그런 현실의 사건에는 흥미가 없어. 지금 당장은 내 소설 속 살인사건만으로도 힘에 부치거든."
"이야, 그럼 지금 쓰고 계신 건 미스터리 소설?"

지금은 죽고 없는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 그가 지은 몇 채의 관館. 거기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
쓰디쓴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내 머릿속에 작년 가을에 입원한 나를 병문안 왔던 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것은 불쌍한 작은 동물의 사체였다. 털이 하얗고 조그만 고양이 사체.
"I.끔찍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어머니가 비명을 지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비참한 모습이었다. 죽은 새끼 고양이의 작디작은 머리가 납작이 짓눌려 있었다.
10월 24일 토요일 아침의 일이었다.

처음은 광의 인형이었다. 이때 나는 안채와 연립주택 사이의 문을 수리했고, 광 문에는 자물쇠를 달았다. 그 결과 안채에 숨어들 수 없게 된 ‘범인‘은 활동 장소를 집밖으로 옮겨........
우편함에 들어 있던 유리 조각. 현관에 놓여 있던 돌도 포함한다 치고 그다음은 자전거 브레이크. 그리고 머리가 찌부러진 새끼 고양이 사체.
그런 행동에 일관되게 담겨 있는 것은 틀림없이 ‘악의‘다. 우리, 아니 주로 나 개인을 향한 사악한 감정....
물론 어머니도 피해를 입기는 입었다.

마네킹에 묻은 피, 우편함 속의 유리 조각, 현관의 돌, 자전거 브레이크, 고양이 사체. 전부 ㅇㅇ가 저지른 일이다.
그 남자를 겁주기 위해서. 그리하여 싹 다 잊은 듯이 태평하게 살고 있는 그 남자가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아직 모자라다.
아직 그 남자는 남겨놓은 메시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두려워해라.)주문처럼 OO는 되풀이했다.
(두려워해라. 그리고.......)

누군가의 악의는 점점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듯도 하다. 이대로 점점 심해지는 걸까. 그리고 그(혹은 그녀)는 최종적으로 뭘 바라는 걸까.
이제 그만, 단정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4시 반. 장소는 커피집 라임.
어젯밤 가케바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 후로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전화였다.
정말 바라 마지않던 연락이었다. 요 한 달 동안 내 신변에 잇달아 일어난 일에 대해 제3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마침 그럴 때 가케바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실제로 나는 두 번이나 육체적인 피해를 입었다.
유리에 손가락을 베인 정도라면 장난이라는 말로 넘어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자전거 브레이크를 망가뜨린 건 어떠한가. 타기 전에 잠깐 점검했다면 바로 알아차릴 만한 고장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까딱 잘못했으면 그 정도의 상처로는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뭣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거야. 요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벌어진 일의 의미가 이렇게나 바뀐다는 거지. 누군가 널 노린다고 그랬는데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물론 네 ‘해석‘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야. 어쩌면 네 해석이 전면적으로 올바른 해답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 네 모습을 보니 좀 걱정이 돼서."

전혀 짐작 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다. .그때.
목 아랫부분에서 정수리를 향해 약한 전류가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그 느낌과 더불어 눈앞의 현실이 균형을 잃고 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예를 들어 넌 동일인물이 그 일을 전부 다 저질렀다고 가정했는데, 과연 그럴까?"
"아니라는 거야?"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만약 그렇다면 네가 말하는 상대의 ‘악의‘ 역시 저절로 그 성격이 달라져."

"아니, 그럴 것까지는."
"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너무 골똘히 생각하다 노이로제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냐. 그건 내 전공이 아니란 말이야."

지금처럼 강한 ‘요동‘을 경험한 것은 딱 한 번뿐이다. 저번 달 중순경 이 가게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가케바 히사시게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던 바로 그때.......
이건 뭘까.
이건.
혹시 내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무슨 기억?

라임을 나선 나는 가케바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꼭 한 번 우리 집을, 특히 별채인 서양식 저택을 구경하고 싶다고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범인은 여섯 명의 몸에서 별자리의 축복을 받은 부분을 모아 ‘아조트‘라는 이상적인 인체를 창조하려 한 모양인데, 이게 실은......."

나는 일부러 차갑게 대답했다. 가케바는 위쪽이 뻥 뚫린 홀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일어난 우메자와梅澤가 사건*이라고 알아?"
* 작가 주 : 이 사건에 대해서는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고단샤, 1981)에 자세하게 쓰여 있다.
"우메자와 가 사건?"
"쇼와昭和 11년*이었나. 도쿄에서 일어난 유명한 살인사건이야. 여자 여섯 명이 각각 두부頭部, 흉부胸部, 복부腹部, 요부腰部, 대퇴부大腿部, 하족부下足部를 절단당하고, 절단된 부분이 사라진 시체로 발견됐다고 해."
*서기 1936년.

어제 라임에서 가케바와 이야기할 때 경험한 그 기묘한 현실의 붕괴감. 도대체 그것은 뭐였을까.
그전에도 몇 번인가 경험한 적이 있는 감각이지만, 적어도 어제는 가케바가 던진 어떤 질문에 호응하듯이 그 현상이 일어났다. 누가 나를 노릴 만한 이유가 짐작은가느냐?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다

아침 10시쯤에 일어났을 때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분명 어젯밤 또 ‘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깼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같은 지붕 아래 있다. 그 움직임, 그 숨결, 그........

"마네킹 하면 밀랍인형처럼 틀림없이 밀랍으로 만들었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
"다이쇼大正* 시대 당시에 수입된 건 밀랍이었대. 최근에는 FRP라는 강화 플라스틱만 써서 만든다던가. 아버지는 아무래도 독자적으로 이런저런 소재를 시험해본모양이지만."
*다이쇼 천황 시대의 연호. 1912~1926.

라임에서 조언해준 가케바의 말에는 역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뭐든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 정도는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잘 안다. 나쁘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정신건강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가 어제 광의 인형 사건 말고 다른 사건을 ‘우연‘과 ‘별 뜻 없는 장난‘으로 설명하려 든 것은 억지가 아닐까.

"어제는 정말 깜짝 놀랐어."
어머니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웬일로 손님이 왔나 했더니 가케바 아니겠니. 고등학교 때 우리 집에 몇 번 놀러 왔었지. 교토에서 다시 만나다니 우연도 참 이런 우연이 어디 있을까."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연 후 전등 스위치를 더듬어 찾으며 광 안으로 한 발 들어선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쓰러진 인형들의 몸을 물들인 강렬한 색! 빨간 그림물감이 또 그녀들의 하얀 살갗에 마구 처발라져 있었다.

광의 문은 틀림없이 밖에서 자물쇠로 잠가두었다. 여벌열쇠를 포함해 자물쇠 열쇠 두 개는 전부 내가 보관한다. 문 말고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통로는 없다. 벽높은 곳에 둥그런 채광창 몇 개가 있지만 지름은 기껏해야 30에서 40센티미터 정도이고 안쪽에는 철망이 쳐져 있다.

현실의 색채가 어지러이 흐트러지며 마음속 어딘가에서 들린 목소리는.......
.엄......엄마.엄마는?
......어디 있어?!
.뭐였을까.
아아, 뭐였을까.
어찌 되었든 나는 다시금 확신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참상‘이라고 표현해도 되리라.
방구석에 모아둔 인형들이 모조리 한가운데로 끌려나와 있었다. 어떤 것은 팔이 하나 없고, 어떤 것은 다리가 하나 없고...... 두 팔이 없는 것, 하반신이 없는 것, 머리가 없는 것, 번번한 얼굴만 있는 것...... 그런 그녀들이 위를 보거나 엎드리거나 포개어진 상태로 쓰러져 있다. 너무나도 난잡한 그 모습에서는 완성한 나무 블록 집을자기 손으로 허물어뜨리는 어린아이의 흉포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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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비친 광의 내부. 그것은 뭐라고도 할 수 없이 괴이한 광경이었다.
인형들의 집회장이라고나 할까.
옷을 걸치지 않은 하얀 마네킹들이 방 여기저기에 너부러져 있다. 합쳐서 스무 개...... 아니, 더 많나.

"저기, 갑작스레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한데, 가능하면 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이 방에 있자니 정신이 사나워서. 근처 아이들이 뜰에 들어와서 노는 데다 옆방의 구라타니라는 대학원생은 기타를 치더라고요. 시끄러워서 일이 안 됩니다."

아버지의 아틀리에.
이 도시로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버지가 홀로 창작활동을 하던 공간.......

어떤 인형은 팔이 하나 없고, 어떤 인형은 다리가 하나 없다. 두 팔이 없는 것, 하반신이 없는 것도 있다. 그리고 젊은 여자의 몸매를 한 그 모든 인형에는 역시 번번하다는 의미로 ‘얼굴‘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결코 아내 미와코와의 사이에서 얻은 사랑의 결정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나는 아내의 마음을 빼앗고 아내의 생명을 좀먹으며 성장하는 정체 모를괴물에 불과했으리라.

‘그녀’들에게 얼굴이 없는 것은 만년의 아버지가 결국 미와코의 얼굴을 잊어버렸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노쇠와 고독에 찌들어 아버지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괴상한 모습으로 남은 이 인형들에게 그는 죽기 직전까지 무슨 이야기를 한 걸까.

원래부터 비뚤어진 인간으로 통하던 고요는 만년에 이르러 더더욱 사람을 꺼려해 이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고 한다. 새 작품도 더 이상 발표하지 않았다. 그사이 그는여기서 이 마네킹 제작에 몰두했다는 말인가?
이 인형들.

얼굴 없는 ‘그녀‘들에 둘러싸여 일부러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고인 공기 속에서 흔들리는 보랏빛 연기에 감싸여 있던 나는 겨우 한 가지 해답을 나 자신에게 제시할수 있었다. 그것은.

28년 전 가을에 요절한 어머니.
아버지는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했다. 끔찍이...... 그렇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들인 나를 증오할 만큼 끔찍이.
아버지의 입으로 직접 들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차가운 불길 같던 그 눈......) 안다.

그것은 어머니다.
그의 아내, 내 친어머니, 히류 미와코에게 사로잡혔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을 처분할 수도 없었다.
현관과 복도에 있는 것을 포함해 이 집의 인형들은 전부 지금 있는 장소에 그대로 놓아두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 없는 인형들도 익숙해지고 나면 별것 아니다. 거기에 담긴 아버지의 정념과 그가 내게 품었던 감정(증오가 분명한......) 역시 어차피 다 지나간 이야기다. 현재의나를 구속하는 힘은 없다.

부모는 울고불고 슬퍼하고 범인에게 분노하다가 이성을 잃었으리라. 시체를 발견한 학생은 얼마간 악몽에 시달릴 테고. 또래 아이를 둔 근처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는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한편 언제 자기들을 덮칠지 모를 재앙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15일 오후 9시 50분경, 교토 시 사쿄 구 기타시라카와 초町기타시라카와 수로에서 **초에 사는 회사원 우에데라 히토시 씨(35세)의 장남 미쓰시(5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먼저 온 손님이 그대로 두고 갔는지 탁자 맞은편 의자에 신문이 놓여 있었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신문에 인쇄된 검은 글자가 눈을 끌었다.
기타시라카와 강 수로에서 어린아이의 타살 시체 발견

"매일 밤 일을 하러 나가는 김에 해보는 거죠. 집을 나서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합니다. 상대가 아는 사람이라면 반응하는 목소리를 듣고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겠죠?"
"아아, 그렇군요.!"
"그날의 운수를 시험해보는 거랍니다. 죽은 아내는 그렇게 짓궂은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야단쳤지만요."

군!
어쩐지 온당하지 못한 것.
어쩐지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것.
..마치 거대한 뱀의꺼림칙한 느낌이었다. 정체가 분명치 않은 만큼 그 꺼림칙한 느낌은 한층 증폭되어 내 신경을 벅벅 긁었다.

이 남자는 발소리와 체취만으로 내가 히류 소이치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 아직 한 번밖에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데도.

"하하, 놀라셨군요."
"몇십 년이나 눈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면 눈치가 빨라지는 법이죠. 사소한 냄새와 소리로 주변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답니다."

피해자는 이케다 마스미라는 여섯 살배기 여자아이로 근처에 사는 고등학교 교사 부부의 자녀다. 22일 저녁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아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상태라고한다.
살해 방법은 이번에도 역시 액살이었다.

심야.
변함없는 방, 변함없는 정적 속에 OO는 있었다.
(......때가 왔다.)의식적으로 표정에 웃음을 덧붙였다.
OO는 웃었다.
그 남자, 히류 소이치의 거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을 향한 이쪽의 의지를 모른다.
이제 와서 안달할 필요는 없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맨 먼저 해야 할 일, 그것은..
OO는 웃었다.
목구멍 속 깊숙한 곳으로 희미하게.

가케바 히사시게와 재회한 지 나흘째인 9월 24일 조간에 또 교토 시내에서 어린아이 살해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실렸다.
현장은 역시 사쿄 구로, 긴가쿠지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간 곳에 있는 호넨인法然院이라는 절의 경내다. 풀숲에 버려져 있던 시체를 23일 오후에 참배객이 우연히발견했다고 한다.

누가 들어올 수도 있으니 고치는 편이 낫지 않냐고 어머니에게 말했지만 어머니도 제법 느긋한 구석이 있어서 "조만간에"라고만 대답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방의 환경에 불평을 마구 늘어놓는 깐깐한 소설가.
지나쳐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그날의 운세를 점치는 맹인 마사지사.
심야에 쥐를 쫓아다니는 대학원생.
정말 묘한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복도를 되짚어 돌아왔다.

문제의 문은 우리가 이 집에 이사 온 당시부터 자물쇠가 망가진 상태였다. 미즈지리 부인이 말하기로는 벌써 몇 년이나 망가진 채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굳이 수리할필요는 없으리라는 것이 아버지의 의향이었던 듯하다.

짤막한 복도 안쪽에 서 있는 인형의 희끄무레한 형체가 나를 맞이했다. 이제 그 괴이한 모습을 봐도 놀라지는 않지만, 집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그녀‘들에게 드는 위화감은 역시 완전히 씻어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버지의 책장에 있는 문헌을 읽고 알았는데, 마네킹은 보통 붙이거나 뗄 수 있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머리, 윗몸, 아랫몸, 오른팔, 왼팔, 이렇게 다섯 부분이다.

다만 허리 아래 다리 부분을 포함하는 아랫몸은 대개 한쪽 다리가 빠지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바지를 입히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한쪽 다리‘
까지 계산에 넣으면 보통 마네킹은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여기에 있던 인형들은 전부 문 오른쪽 구석에 모아 하얀 천을 씌워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원래대로 방 여기저기에 방치해두려니 마음이 찜찜했기 때문이다.

OO는 웃었다.
목구멍 속 깊숙한 곳으로 희미하게.
(두려워해라.)입술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실컷 두려워해라.)서두르면 안 된다.
일단 공포를 안겨주며 서서히 몰아붙이다가, 그리고.......
(그리고.......)

아버지는 어째서 그 인형들을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으로 만들어 일부러 저택 여기저기에 놓아두었을까. 또한 무슨 까닭으로 인형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라는유언을 남겼을까.

인형은 피투성이였다.
목에서 봉긋한 가슴까지...... 얼굴이 없는 ‘그녀‘의 상반신에는 피로 착각할 만큼 새빨간 그림물감이 흠뻑 묻어 있었다.

나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신음소리를 꿀꺽 삼켰다.
있을 리 없는 것이 거기 있었다.
인형이었다. 방 한쪽 구석에 모아두었을 마네킹 중 하나가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의자 등받이 위로 드러난 어깨와 목, 뒤통수가 보였다. 그것은 분명 마네킹의 무기적인 하얀 피부였다.

어머니도 근심이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 고요가 남긴 재산 덕분에 당장의 생활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교토에는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친구가 하나도 없으니까.

화가라고는 하지만 나는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병약하여 결혼할 뜻도 없으니 당연히 어머니에게 손자를 안겨줄 수도 없으리라. 그런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 정도다.
그러니 인형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결코 강한 여자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몹시 여린, 극히 평범한 여자다.
죽은 친자식의 ‘환생‘이라 여기며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키워준 것은 어머니의 강인함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어머니는 나를 키움으로써 무너져 내릴 듯한 마음을 의지하며 자기 인생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내 주변에서 다시, 이번에는 조금 다른 형태로 기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피안화가 피었다.
‘만주사화‘ ‘저승화‘라고도 불리는 그 꽃이 넓은 안뜰 한구석에 붉게 무리 지어 피었다.
7월에 이사 온 후로 뜰은 앞뜰 안뜰 할 것 없이 특별히 손질한 적이 없다. 이따금 어머니가 현관과 툇마루 부근을 청소하는 것이 전부다.

그 이름 그대로 꽃은 지난달 하순부터 피기 시작했다. * 10월 들어 이제 슬슬 한창때가 지나가려는 참일까.

*일본어의 피안(彼岸)에는 춘분, 추분을 중심으로 한 7일간이라는 뜻도 있다.

여전히 밤중에 자다가 깬다. 누군가, 뭔가가 같은 지붕 아래 있다는, 예의 ‘이물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식 저택 어딘가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입자의 기척이 전해지는 것이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쪽이 일일이 불평을 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그 움직임에 맞추어 호흡하는 것처럼 문득,
.붉은 꽃.
내 마음 어딘가가 부르르 떨렸다.
.두 줄기 검은 선의......
당황해서 눈을 감았다.
.마치.마치......거대한 뱀의...
붉은 잔상이 남은 눈꺼풀 안쪽에 한순간 어쩐지 머나먼 과거의 풍경이 비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을도 점점 깊어져 무성하던 잡초도 눈에 띄게 시들시들해졌다. 메밀잣밤나무와 호랑가시나무, 소나무 따위의 상록수가 담을 따라 어수선히 늘어선 한편으로, 뜰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홀로 서 있다(......봄에는 분명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흐드러지게 핀 피안화는 아버지가 목을 맸다는 벚나무 맞은편에 보였다.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뜰 전체의 색조와는 대조적으로 자극적일 만큼 선명하게 눈으로 뛰어들어온다.

누가 그랬을까.
뭣 때문에 그랬을까.
그 문제는 당분간 미루어둔다 하더라도 아무튼 흙광 문에도 자물쇠를 다는 편이 좋으리라.
나는 바로 열쇠집에 가서 튼튼한 자물쇠를 하나 사왔다.
광문에 단 자물쇠를 보고 어머니는 약간 의아해했지만, 나는 그저 "조심하는 게 최고니까요"라고만 설명했다.

광에서 찜찜한 일이 일어난 뒤로 묘하게 예민해져서, 그전엔 낮에는 풀어두었던 현관문까지 꼼꼼하게 잠근다. 외출할 때는 물론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운뎃손가락 끝이었다. 빨간 핏방울이 동그랗게 맺혔다.
나는 놀라서 우편함 속을 들여다보았다.
..유리?
그렇다. 유리였다.
길이 5센티미터쯤 되는 유리 조각이 우편함에 들어 있었다. 가늘고 긴 삼각형 모양으로 깨진 조각, 그 뾰족한 부분에 손끝을 베인 것이다.

"요즘 묘한 일이 자꾸 생기네."
식탁에서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우편함에 유리 조각이 들어 있던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10월 12일 밤 이야기다.
"분명 애들이 장난친 걸 거야."

어머니는 내 반응에는 개의치 않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까지 합하면 벌써 세 번째인가."
"어떤 장난인데요?"
"현관에 돌을 놓아두더라고."
"돌?"
"응, 이 정도쯤 되려나."
어머니는 양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붙여서 타원을 만들어 보였다.
"꽤 큰 돌을 덩그러니 하나만 놓아두는 거야."

어머니는 이날 오후에 나갔다. 어머니는 월, 수, 금, 이렇게 한 주에 세 번 샤미센을 배우러 간다. 수업을 마친 후에도 그곳 동료들과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므로 대개 어두워져서야 돌아온다.

앞뜰의 수풀에 유리 조각을 내던지며 나는 무의식중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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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류 소이치(34) 화가. ‘나‘.
히류 고요 소이치의 아버지. 고인.
히류 미와코 소이치의 어머니. 고인.
이케오 사와코(54) 미와코의 여동생. 소이치를 길러준 어머니.
쓰지이 유키히토(28) ㅡ 녹영장影 거주자. 소이치의 육촌 형제.
구라타니 마코토(26) ㅡ 녹영장 거주자. 대학원생.
기즈가와 신조(52) ㅡ 녹영장 거주자. 마사지사.
미즈지리 도키치(68) 녹영장 관리인.
미즈지리 기네(61) 도키치의 아내.
가케바 히사시게(34) 소이치의 죽마고우.
미치자와 기사코(21) ㅡ 대학생.
시마다 기요시(38) 소이치의 친구.
* 괄호 안숫자는 1987년 7월 시점의 만 나이.

평생 젊을 줄 알았는데 올해 5월로 나도 벌써 서른여덟이더라고. 스물두 살 때부터 너랑 알고 지냈으니 이럭저럭 16년.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아직 결혼할 예정은 없고, 일정한 직업도 없다. 언젠가 본가의 절을 이어받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는 아직 기운이 펄펄 넘쳐서 은퇴할 눈치도 안 보이네. 난감하다고 하면 벌 받으려나.

나카무라 세이지中村靑司라는 별난 건축가. 그가 각지에 지은 색다른 건물. 그리고 그 ‘관들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

4월에도 어쩌다 보니 또 터무니없는 사건에 휘말려들었지 뭐야. 단고 반도의 한 촌락 T** 변두리에 위치한 ‘미로관‘이라는 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야. 매스컴에서도 제법 떠들어댄 모양이니 어쩌면 너도 들어봤을지 모르겠네.

어쩐지 사신死神에라도 씐 것 같은...... 아니, 그게 아니지. 사신에 들린 건 내가 아니라 그 건축가가 지은 ‘관’들이야. 반은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고 싶기도 하다니까.

히류 소이치에게(전략)무사히 퇴원했다면서? 일전에 어머님께 편지 받았어. 별 탈 없어서 참 다행이야. 쾌차를 축하하러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이런저런 볼일이 많아서 당장은 어렵겠다. 일단은 서면으로, 실례.

미술에는 거의 까막눈이지만 네 그림에는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예를 들면 그래, 수차관에서 본 후지누마 잇세이 화백의 환상화와 비견할 만한, 어쩐지요사스러운 매력이.

어머니는 "사람 애먹게"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 빗소리가 고마웠다.
옛 도읍, 옛 도읍.
아버지가 태어나고 죽은 곳.......

내가 교토를 찾은 것은 7월 3일 금요일 오후였다.
6월도 지났는데 장마가 걷힐 낌새는 보이지 않고 무겁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에서 미지근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건강 문제로 작년 여름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기나긴 입원생활을 했다. 그 때문이기도 하리라. 퇴원한 후로 어머니는 내 몸 상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교토에는 오래전에 한 번 와봤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먼 옛날...... 어느 계절이었는지도 잊어버렸지만 분명 그때도 이 도시에는 비가 내려 오늘과 똑같은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 몇 년쯤 머물렀던 도쿄와 일찍이 방문해본 도시 몇 군데는 물론이고 고향 시즈오카에도 여태껏 애착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택시를 잡자. 기분은 괜찮니, 소이치?"
나는 탈것에, 특히 열차에 약하다. 시즈오카에서 탄 신칸센이 나고야를 지났을 무렵부터 속이 꽤 거북했다.
"괜찮아요."
작게 대답하고 짐을 고쳐 들었다. 하지만 바삐 계단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리는 통에 다리가 몹시 후들거렸다.

도시는 도시일 뿐, 어느 곳이나 낯선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이는 비슷한 공간이다. 그리고 내게 도시는 마음의 평안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으니까. 언제나, 언제든지.

도시는 자연 풍경과는 반대다. 비를 오래 맞으면 점점 생기를 잃는다.
나는 계절과 날씨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옛 도읍의 첫인상으로 삼았다.

여기에, 이 어두운 집에서 아버지는 내내 혼자 산 걸까.
들고 있던 여행가방을 그 방에 던져 넣은 나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버지의 존재할 리 없는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그때.
나도 모르게 다리가 얼어붙었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얼굴 그리고 목소리조차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먼 옛날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다만, 그 남자가 늘 자기 아들에게 던지던 차가운 불길 같은 눈빛뿐이다.

둘러보니 한적한 고급 주택가라는 느낌이었다.
살짝 가파른 도로를 사이에 두고 흙담과 산울타리가 길게 뻗어 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부지가 상당히 넓다. 큰길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비 때문인지 길에서 노는 아이들도 없다.

그것은 여자, 아마도 젊은 여자였다.
‘젊다‘는 것은 몸의 모양새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늘씬하니 키가 크고 균형 잡힌 몸매다.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잘록한 허리...... 다만.

그것은 여자, 아마도 젊은 여자였다.
‘젊다‘는 것은 몸의 모양새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늘씬하니 키가 크고 균형 잡힌 몸매다.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잘록한 허리...... 다만.
그녀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머리는 있지만 머리카락은 물론 눈, 코, 입도 없다. 비스듬히 이쪽을 향한 하얀 얼굴은 기복 없이 번번했다.
게다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에는 팔 하나가 없었다. 오른쪽 어깨 부분에서 부자연스럽게 뚝 끊어진 선.......
"......마네킹?"

2026.08.13 오후 21시 3분13%아버지가 태어난 곳.
아버지가 죽은 곳.
아버지 히류 고요는 작년 말에 이 세상을 떠났다. 예순두 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난 건 언제였더라. 25년 전...... 아니, 더 전이던가.

어쩌면 조각가 히류 고요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탓에 이러한 의문이 드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로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특히 내가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이해한 이후, 요 십수 년간 나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으니까.
아들로서.
또한 붓을 든 또 하나의 예술가 나부랭이로서도.

조각 분야에서는 정통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아주 추상적이고 난해한 작품을 제작했다. 한편 치밀한 필치로 사실적인 정물화도 그렸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극도로 싫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괴짜 취급을 받았지만, 고베 시에 사는 저명한 환상화가 후지누마 잇세이와는 예외적으로 친밀하게 교류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나를 가리키더니 이번에는 노부부를 내게 소개했다.
"미즈지리 씨 부부셔. 도키치 씨랑 기네 씨."

기운이 넘치는 부인과 달리 불려 나온 남편은 허리가 굽은, 척 보기에도 늙수그레한 남자였다. 키는 제법 큰 편이지만 자세 때문에 아주 작아 보였다.

1949년, 25세가 되는 해에 결혼. 이때 부모 곁을 떠나 시즈오카 시로 거처를 옮기지만, 다케나가가 죽은 후 다시 돌아와 교토를 창작활동의 터전으로 삼는다.

애기동백 산울타리는 그 구획의 모퉁이까지 똑바로 이어졌고, 모퉁이를 돌자 앞쪽에 아까와 똑같이 생긴 돌문이 보였다. 저것이 ‘연립주택‘ 입구인 모양이다.
낡은 나무 문패에 적힌 이름, 녹영장綠影莊.

아버지 히류 고요는 한때 제법 이름을 날린 조각가이자 화가였다. 보통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가‘ 히류 고요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1924년, 교토 출생. 실업가인 아버지 히류 다케나가飛龍武永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에 뜻을 둔다.

이 집은 원래 할아버지 히류 다케나가의 소유물이었다. 그것을 아버지 고요가 상속해 자신의 작업장 겸 집으로 삼았는데, 그가 실제로 사용한 곳은 안채뿐이었다. 이쪽 별채는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임대 연립주택이라기보다는 주로 학생용 하숙집으로 개방했다고 한다. 그러니 녹영장이라는 이름도 고요가 붙였으리라.

할아버지 대부터 히류 가를 모셨다는 부부다. 아버지가 집안을 잇고 나서는 녹영장 관리인으로 일했다. 이번에 여기로 이사 오기에 앞서 우리는 연립주택을 계속 운영하기로 하고 관리를 계속해서 두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야, 정말로 많이 크셨어. 요전에 오셨을 때는 아직 어린애였는데."
"요전이요?"
노인이 뱉어내는 미적지근한 입김에서 얼굴을 돌리며 나는 물었다.
"그건 언제?"
"기억이 안 나십니까?"

그럼, 하고 눈짓을 한 후 어머니는 현관으로 향했다.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풍성한 머리를 틀어올린 어머니의 뒷모습...... 어째선지 그때 하얀 목덜미의 색깔이 방금전 안채 현관에서 마주친 마네킹의 색깔과 겹쳤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다케나가 님 장례식 때였던가."
할아버지 장례식 때라면 분명 내가 초등학교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즉 거의 30년 전이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부부의 인품이 아주 성실하게 느껴져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몇 가지만 더, 특히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나 둘 다 매우 지친 상태였다.

"돌아가신 미와코 사모님의 손을 잡고 스님의 독경 소리가 무섭다며 우셨죠."
"이야, 그건 그렇고 참 닮으셨어."
도키치 노인이 말했다.
"닮아요? 아버지를요?"
"그야 물론 고요 님도 닮으셨지만, 다케나가 님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으셨습니다. 그렇지, 여보?"
"그러게요."

갑작스러운 충동에 사로잡혀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잠깐 위에 올라가 봐도 될까요?"
"어머, 같이 갈까?"
"아니요, 어머니는 먼저 돌아가세요. 저 혼자 보고 올게요."

"상냥한 사람들 같은데요."
"소이치는 ‘도련님‘인걸. 그래. 좋은 사람들이야. 게다가 도키치 씨는 몰라도 기네 씨는 아직 또렷또렷하니까 연립주택 일은 맡겨둬도 문제없을 테지."

나, 히류 소이치는 1953년 2월 5일, 아버지 고요와 어머니 미와코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시즈오카 시. 그때 이미 장래의 꿈을 놓고 할아버지와 대립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달아나 둘만의 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미와코는 당시 교토의 요정에서 일하던 아가씨로, 할아버지는 당연히 두 사람의 결혼을 몹시 반대했다.

시야 한쪽에 갑자기 검은 사람의 형체가.......

나는 어린 마음에도 나를 두고 간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려 보았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차가운 감정을 깨닫고 나서는 이케오 이모부와 이모를 ‘아빠‘와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자식이 없던 이모 부부는 말 그대로 친아들처럼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었다.

군!
하지만 그 사람은 잠시 후 천천히 몸을 돌려 비 내리는 길을 걸어 조용히 사라졌다.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가만히 서서 이 집을 보고 있다.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 복장으로 보아 남자인 듯하다.

부부는 가까운 시일 안에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시즈오카에서 다시 교토로 집을 옮기기로 한 모양인데.......
그때였다. 어머니 미와코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그리고.
아버지는 혼자 교토로 돌아갔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막대한 유산을 모조리 상속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분명 28년 전, 그렇다, 내가 여섯 살 때였다고 한다.

지금 내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자는 내 친어머니가 아니다. 친어머니 미와코보다 다섯 살 어린 여동생, 사와코 이모다. 나를 길러준 아버지 이케오 이모부는 10년전에 세상을 떴다.

아버지는 자살했다. 작년 말 눈이 내리던 밤, 이 집 안뜰에서 벚나무에 목을 매었다고 한다.

도대체 여기에는 이런 인형이 몇 개나 있는 걸까. 인형들이 지금도 이렇게 집 안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건 혹시 아버지의 유지일까.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부터 소설가를 꿈꾸었던 쓰지이(본명은 모리타 유키오森田行雄라고 한다)는 두 해 전쯤 어느 문학지 신인상에 입선을 했다. 이후 단편을 몇 편 발표하기는 했지만 크게 호평받은 작품은 하나도 없고, 아직 단행본도 나오지 않았다.

하반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팔도 두 개다. 다만 몸체의 윗부분, 배에서 가슴을 지나 어깨에 이르는 부분이 없다. 대신에 뼈대처럼 십자 형태로 얽은 새카만 막대에 허리와 머리, 두 팔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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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ㅣ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타샤의 정원』, 그 이후
― 타샤가 떠난 뒤, 가족이 지키고 자연이 되찾아가는 코기 코티지

※ 이 글에서 다룬 타샤 튜더 사후의 코기 코티지 관리·공개 현황과 버몬트의 진흙철 관련 내용은 2026년 8월 현재 타샤 튜더 가족 공식 홈페이지 ‘Tasha Tudor and Family’, 비영리단체 ‘Tasha Tudor Society’, ‘Green Mountain Club’과 버몬트주 말버러 마을 공식 홈페이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하였다.

참고 자료

1. Tasha Tudor and Family-Tasha’s Corgi Cottage
https://tashatudorandfamily.com/pages/tashas-corgi-cottage

2. Tasha Tudor Society-FAQs
https://tashatudorsociety.org/faq/

3. Green Mountain Club-Mud Season & Hiking in Vermont
https://www.greenmountainclub.org/hiking/mud-season/

4. Town of Marlboro-How Do I?
https://marlborovt.us/how-do-i/

사진 속 전원생활은 참으로 낭만적이다. 꽃이 흐드러진 정원과 오래된 집,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지고 금세라도 도시를 떠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1970년대 초반 시골에서 태어나 1980년대를 거쳐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낭만일 수는 있어도, 그 안에서 살아갈 때는 결코 낭만만 있는 생활이 아니었다.

여름에는 덥고 모기가 들끓었으며, 겨울에는 매섭게 추웠다. 모기를 쫓으려고 쑥부쟁이를 태워 모깃불을 피웠고, 마당에는 두엄 냄새가 퍼졌다. 밥상에는 파리가 한두 마리 날아드는 정도가 아니라 더글더글 달라붙었다. 한 손으로 파리를 휘휘 쫓아가며 다른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예사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까지도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말 그대로 아사리판이었다.

우리 집은 마을 한가운데 다른 집들과 옹기종기 붙어 있지도 않았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고, 집 오른쪽에는 뒷간이 있었다. 뒷간 뒤로는 곧바로 야산이 이어졌으며 그 산에는 묘지가 몇 기 있었다. 집 왼쪽 가까이에는 이른바 ‘오씨네 공동묘지’까지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밤이 되면 집 둘레가 온통 무덤으로 에워싸인 듯했다.

그런 곳에서 밤중에 똥이 마려우면 뒷간까지 나가는 일이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컴컴한 뒷간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똥통 속에서 손이 불쑥 올라와 “파란 손으로 닦아줄까, 빨간 손으로 닦아줄까?” 하고 물을 것만 같았다. 바람에 나뭇가지만 흔들려도 간이 콩알만 해졌다.

밤중에 똥을 누고 돌아와 소에게 절을 하면 다시는 밤에 똥이 마렵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소에게 절까지 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겠는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다음에도 밤이 되면 어김없이 똥이 마려웠다.

이런 생활을 직접 겪어본 까닭에 『타샤의 정원』 속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그 정원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동과 비용이 필요했을지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다. 타샤 튜더가 세상을 떠난 뒤, 그 넓은 정원과 외딴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1. 타샤가 떠난 뒤에도 열렸던 정원

타샤 튜더의 가족은 그가 살아 있던 2005년부터 소규모로 정원 관람을 허용했다. 책과 사진을 통해서만 코기 코티지를 보았던 독자들에게 실제 정원을 둘러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타샤는 2008년 6월 18일, 아흔세 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가족은 곧바로 정원의 문을 닫지 않았다. 정원 공개를 이어갔고, 뒤에는 타샤가 생활하던 코기 코티지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개 범위를 넓혔다.

그곳은 처음부터 박물관으로 지어진 시설이 아니었다. 타샤가 실제로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음식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던 개인 주택이었다. 가족이 관람을 허용했다는 것은 집과 정원을 보여주는 일뿐 아니라 방문객을 맞이하고 건물과 정원을 관리하는 책임까지 맡았다는 뜻이었다.

2. 2019년 이후 닫힌 코기 코티지

코기 코티지의 정원 관람은 2019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중단된 뒤 현재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코기 코티지 투어가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안내되어 있다.

코기 코티지는 지금도 가족이 소유한 개인 주택이자 사유지이다. 관광지나 공공 정원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의 형편과 사생활, 건물의 안전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방문객을 받을 수는 없다. 가족은 집과 부속 건물에 보수가 필요하고, 가족의 건강과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현재 코기 코티지는 아무 때나 찾아가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원 관람이 다시 시작된다는 공식 발표도 아직 없다. 홈페이지는 계속 운영되고 있지만, 홈페이지가 운영된다는 사실과 정원이 일반에 개방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3. 정원을 돌보는 가족들

현재 코기 코티지와 정원을 관리하는 주체는 박물관이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타샤 튜더의 가족이다. 다만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한 사람이 정원 전체를 전담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가족 여러 명이 집과 정원, 타샤의 작품과 관련 사업을 나누어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공개적으로 중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손자 윈즐로 튜더(Winslow Tudor)와 그의 아내 에이미 튜더(Amy Tudor)이다. 원예를 공부한 에이미는 1998년부터 타샤의 정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1999년부터 가족 사업에 참여했다.

가족은 잔디를 깎고 잡초와 침입식물을 제거하며 타샤가 심은 식물을 돌본다. 정원에서 씨앗을 받아 보존하고, 일부 씨앗은 가족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한다. 타샤의 책과 카드, 그림을 비롯한 관련 상품을 소개하는 ‘Tasha Tudor and Family’ 홈페이지도 현재 계속 운영되고 있다.

타샤 튜더 소사이어티(Tasha Tudor Society)는 코기 코티지를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단체가 아니라, 타샤의 삶과 작품을 알리고 보존하는 별도의 비영리단체이다. 기존 박물관은 2017년 소사이어티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현재 상설 전시관 대신 온라인 자료와 회원 소식지, 행사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4. 자연이 되찾아가는 ‘비밀의 정원’

현재의 정원이 『타샤의 정원』에 실린 사진 속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타샤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정원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가족에게 전했다고 한다.

가족은 타샤가 남긴 정원을 보존하면서도 자연의 변화를 완전히 막으려 하지는 않는다. 다화장미와 마늘냉이 같은 침입식물이 화단 전체를 뒤덮지 못하도록 제거하고, 타샤가 심은 작약과 붓꽃, 양귀비를 돌본다. 접시꽃 어린 모종에는 철망을 씌워 야생동물이 뜯어 먹지 못하도록 보호한다.

그 사이 정원은 새와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여우는 헛간 아래에서 새끼를 낳고, 호저와 밍크·피셔·너구리를 비롯한 여러 동물이 숲과 정원을 오간다. 수많은 새가 나무와 덤불 속에 둥지를 튼다.

가족은 지금의 코기 코티지가 예전보다 더욱 ‘비밀의 정원’에 가까워졌다고 표현한다. 타샤가 심은 꽃과 가족이 돌보는 화단, 스스로 자리를 넓혀가는 풀과 나무가 한 공간에서 섞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원은 타샤가 완성해 놓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정원이라기보다, 가족의 관리와 자연의 변화가 함께 진행되는 정원이다.

5. 지금도 계속되는 버몬트의 진흙철

『타샤의 정원』에는 4월과 5월에 눈이 녹으면 코기 코티지로 이어지는 길이 진흙탕이 되어 배달 차량조차 들어오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지금은 도로가 좋아져 그런 불편이 사라졌을까.

버몬트에는 지금도 ‘머드 시즌(Mud Season)’, 곧 진흙철이 있다. 대체로 3월 말이나 4월 초부터 5월 말까지 이어진다. 봄이 되어 지표면은 녹지만 땅속은 여전히 얼어 있어 눈 녹은 물과 빗물이 지하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차량이 다니면 비포장도로에 깊은 바퀴 자국이 생기고 길 전체가 진흙탕으로 변한다.

코기 코티지가 있는 말버러에서는 지금도 진흙철의 도로 문제가 반복된다. 말버러 마을 공식 홈페이지는 네 명의 도로관리 인력이 약 65마일의 도로를 맡고 있으며, 진흙철에는 가장 심한 진창 구간이 어디인지 대체로 파악하고 현재 도로 상태에 관한 주민들의 제보를 받는다고 안내한다.

따라서 타샤가 살던 시절 책에 묘사된 진흙철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코기 코티지로 들어가는 사유지 진입로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지금도 4월과 5월에 배달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지는 공개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확인된 사실처럼 단정할 수 없다.

사진에서는 숲속으로 이어지는 흙길도 낭만적인 풍경이 된다. 그러나 그 길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식료품과 우편물, 난방 재료와 수리 장비가 오가는 생활도로이다. 길이 진흙탕이 되면 불편한 정도를 넘어 일상생활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6.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것

타샤의 전원생활은 누구나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소박한 시골살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넓은 토지와 작가로서 거둔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런 바탕이 있었다고 해도 그 정원과 집을 다음 세대가 계속 보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원에서는 해마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늙는다. 침입식물이 번지기도 하고, 야생동물이 어린 모종을 먹기도 한다. 집과 온실, 헛간 같은 건물은 비와 눈을 맞으며 낡아간다. 가족은 코기 코티지의 삼나무 지붕널 대부분을 새로 갈았지만, 아직도 손볼 곳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

정원을 일반에 개방하려면 꽃과 나무만 돌보면 되는 것도 아니다. 건물의 안전을 점검하고 방문객의 동선을 관리해야 하며, 가족의 생활과 사생활도 보호해야 한다. 집과 정원뿐 아니라 진입로와 부속 건물까지 함께 관리해야 한다.

우리가 책과 사진에서 보는 아름다운 정원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꽃 뒤에는 흙을 갈고 풀을 뽑는 손이 있으며, 오래된 집 뒤에는 지붕과 벽을 고치는 노동과 비용이 있다. 타샤의 정원을 보존하는 가족들도 바로 그 현실을 감당하고 있다.

7. 두 번째 계절을 지나가는 정원

한 장의 사진은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골라 보여준다. 꽃이 흐드러진 화단과 초록빛 풀밭, 고풍스러운 집과 코기들이 어우러진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곳의 추위와 진흙, 벌레와 수리비까지 떠올리기는 어렵다.

내가 살았던 시골집도 지금 사진으로 보면 그리운 풍경이다. 흙담 밑에 핀 꽃과 우물, 눈 덮인 지붕과 오래된 느티나무가 먼저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던 때에는 무더위와 추위, 모기와 파리, 두엄 냄새가 함께 있었다. 한밤중에 묘지 옆 뒷간까지 나가야 했던 무서움도 시골생활의 일부였다.

그렇다고 전원생활의 아름다움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만 보고 실제 생활의 수고와 불편을 지워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고된 생활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 안에 함께 존재한다.

지금의 코기 코티지는 타샤가 살던 시절의 모습으로 멈춰 있지 않다. 일반 관람은 중단되었지만 가족은 집과 정원을 관리하고 있으며, 그 사이 숲과 야생동물도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그곳은 타샤를 기념하기 위해 고정된 전시물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의 손길과 자연의 변화 속에 놓인 사적인 집이자 정원이다.

타샤가 떠났다고 해서 정원의 시간이 끝난 것은 아니다. 『타샤의 정원』 이후에는 가족의 손과 자연의 시간이 함께 써 내려가는 두 번째 계절이 이어지고 있다.

자료 조사·정리: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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