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류 소이치(34) 화가. ‘나‘.
히류 고요 소이치의 아버지. 고인.
히류 미와코 소이치의 어머니. 고인.
이케오 사와코(54) 미와코의 여동생. 소이치를 길러준 어머니.
쓰지이 유키히토(28) ㅡ 녹영장影 거주자. 소이치의 육촌 형제.
구라타니 마코토(26) ㅡ 녹영장 거주자. 대학원생.
기즈가와 신조(52) ㅡ 녹영장 거주자. 마사지사.
미즈지리 도키치(68) 녹영장 관리인.
미즈지리 기네(61) 도키치의 아내.
가케바 히사시게(34) 소이치의 죽마고우.
미치자와 기사코(21) ㅡ 대학생.
시마다 기요시(38) 소이치의 친구.
* 괄호 안숫자는 1987년 7월 시점의 만 나이.

평생 젊을 줄 알았는데 올해 5월로 나도 벌써 서른여덟이더라고. 스물두 살 때부터 너랑 알고 지냈으니 이럭저럭 16년.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아직 결혼할 예정은 없고, 일정한 직업도 없다. 언젠가 본가의 절을 이어받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는 아직 기운이 펄펄 넘쳐서 은퇴할 눈치도 안 보이네. 난감하다고 하면 벌 받으려나.

나카무라 세이지中村靑司라는 별난 건축가. 그가 각지에 지은 색다른 건물. 그리고 그 ‘관들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

4월에도 어쩌다 보니 또 터무니없는 사건에 휘말려들었지 뭐야. 단고 반도의 한 촌락 T** 변두리에 위치한 ‘미로관‘이라는 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야. 매스컴에서도 제법 떠들어댄 모양이니 어쩌면 너도 들어봤을지 모르겠네.

어쩐지 사신死神에라도 씐 것 같은...... 아니, 그게 아니지. 사신에 들린 건 내가 아니라 그 건축가가 지은 ‘관’들이야. 반은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고 싶기도 하다니까.

히류 소이치에게(전략)무사히 퇴원했다면서? 일전에 어머님께 편지 받았어. 별 탈 없어서 참 다행이야. 쾌차를 축하하러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이런저런 볼일이 많아서 당장은 어렵겠다. 일단은 서면으로, 실례.

미술에는 거의 까막눈이지만 네 그림에는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예를 들면 그래, 수차관에서 본 후지누마 잇세이 화백의 환상화와 비견할 만한, 어쩐지요사스러운 매력이.

어머니는 "사람 애먹게"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 빗소리가 고마웠다.
옛 도읍, 옛 도읍.
아버지가 태어나고 죽은 곳.......

내가 교토를 찾은 것은 7월 3일 금요일 오후였다.
6월도 지났는데 장마가 걷힐 낌새는 보이지 않고 무겁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에서 미지근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건강 문제로 작년 여름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기나긴 입원생활을 했다. 그 때문이기도 하리라. 퇴원한 후로 어머니는 내 몸 상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교토에는 오래전에 한 번 와봤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먼 옛날...... 어느 계절이었는지도 잊어버렸지만 분명 그때도 이 도시에는 비가 내려 오늘과 똑같은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 몇 년쯤 머물렀던 도쿄와 일찍이 방문해본 도시 몇 군데는 물론이고 고향 시즈오카에도 여태껏 애착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택시를 잡자. 기분은 괜찮니, 소이치?"
나는 탈것에, 특히 열차에 약하다. 시즈오카에서 탄 신칸센이 나고야를 지났을 무렵부터 속이 꽤 거북했다.
"괜찮아요."
작게 대답하고 짐을 고쳐 들었다. 하지만 바삐 계단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리는 통에 다리가 몹시 후들거렸다.

도시는 도시일 뿐, 어느 곳이나 낯선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이는 비슷한 공간이다. 그리고 내게 도시는 마음의 평안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으니까. 언제나, 언제든지.

도시는 자연 풍경과는 반대다. 비를 오래 맞으면 점점 생기를 잃는다.
나는 계절과 날씨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옛 도읍의 첫인상으로 삼았다.

여기에, 이 어두운 집에서 아버지는 내내 혼자 산 걸까.
들고 있던 여행가방을 그 방에 던져 넣은 나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버지의 존재할 리 없는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그때.
나도 모르게 다리가 얼어붙었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얼굴 그리고 목소리조차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먼 옛날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다만, 그 남자가 늘 자기 아들에게 던지던 차가운 불길 같은 눈빛뿐이다.

둘러보니 한적한 고급 주택가라는 느낌이었다.
살짝 가파른 도로를 사이에 두고 흙담과 산울타리가 길게 뻗어 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부지가 상당히 넓다. 큰길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비 때문인지 길에서 노는 아이들도 없다.

그것은 여자, 아마도 젊은 여자였다.
‘젊다‘는 것은 몸의 모양새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늘씬하니 키가 크고 균형 잡힌 몸매다.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잘록한 허리...... 다만.

그것은 여자, 아마도 젊은 여자였다.
‘젊다‘는 것은 몸의 모양새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늘씬하니 키가 크고 균형 잡힌 몸매다.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가슴, 잘록한 허리...... 다만.
그녀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머리는 있지만 머리카락은 물론 눈, 코, 입도 없다. 비스듬히 이쪽을 향한 하얀 얼굴은 기복 없이 번번했다.
게다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에는 팔 하나가 없었다. 오른쪽 어깨 부분에서 부자연스럽게 뚝 끊어진 선.......
"......마네킹?"

2026.08.13 오후 21시 3분13%아버지가 태어난 곳.
아버지가 죽은 곳.
아버지 히류 고요는 작년 말에 이 세상을 떠났다. 예순두 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난 건 언제였더라. 25년 전...... 아니, 더 전이던가.

어쩌면 조각가 히류 고요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탓에 이러한 의문이 드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로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특히 내가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이해한 이후, 요 십수 년간 나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으니까.
아들로서.
또한 붓을 든 또 하나의 예술가 나부랭이로서도.

조각 분야에서는 정통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아주 추상적이고 난해한 작품을 제작했다. 한편 치밀한 필치로 사실적인 정물화도 그렸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극도로 싫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괴짜 취급을 받았지만, 고베 시에 사는 저명한 환상화가 후지누마 잇세이와는 예외적으로 친밀하게 교류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나를 가리키더니 이번에는 노부부를 내게 소개했다.
"미즈지리 씨 부부셔. 도키치 씨랑 기네 씨."

기운이 넘치는 부인과 달리 불려 나온 남편은 허리가 굽은, 척 보기에도 늙수그레한 남자였다. 키는 제법 큰 편이지만 자세 때문에 아주 작아 보였다.

1949년, 25세가 되는 해에 결혼. 이때 부모 곁을 떠나 시즈오카 시로 거처를 옮기지만, 다케나가가 죽은 후 다시 돌아와 교토를 창작활동의 터전으로 삼는다.

애기동백 산울타리는 그 구획의 모퉁이까지 똑바로 이어졌고, 모퉁이를 돌자 앞쪽에 아까와 똑같이 생긴 돌문이 보였다. 저것이 ‘연립주택‘ 입구인 모양이다.
낡은 나무 문패에 적힌 이름, 녹영장綠影莊.

아버지 히류 고요는 한때 제법 이름을 날린 조각가이자 화가였다. 보통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가‘ 히류 고요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1924년, 교토 출생. 실업가인 아버지 히류 다케나가飛龍武永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에 뜻을 둔다.

이 집은 원래 할아버지 히류 다케나가의 소유물이었다. 그것을 아버지 고요가 상속해 자신의 작업장 겸 집으로 삼았는데, 그가 실제로 사용한 곳은 안채뿐이었다. 이쪽 별채는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임대 연립주택이라기보다는 주로 학생용 하숙집으로 개방했다고 한다. 그러니 녹영장이라는 이름도 고요가 붙였으리라.

할아버지 대부터 히류 가를 모셨다는 부부다. 아버지가 집안을 잇고 나서는 녹영장 관리인으로 일했다. 이번에 여기로 이사 오기에 앞서 우리는 연립주택을 계속 운영하기로 하고 관리를 계속해서 두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야, 정말로 많이 크셨어. 요전에 오셨을 때는 아직 어린애였는데."
"요전이요?"
노인이 뱉어내는 미적지근한 입김에서 얼굴을 돌리며 나는 물었다.
"그건 언제?"
"기억이 안 나십니까?"

그럼, 하고 눈짓을 한 후 어머니는 현관으로 향했다.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풍성한 머리를 틀어올린 어머니의 뒷모습...... 어째선지 그때 하얀 목덜미의 색깔이 방금전 안채 현관에서 마주친 마네킹의 색깔과 겹쳤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다케나가 님 장례식 때였던가."
할아버지 장례식 때라면 분명 내가 초등학교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즉 거의 30년 전이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부부의 인품이 아주 성실하게 느껴져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몇 가지만 더, 특히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나 둘 다 매우 지친 상태였다.

"돌아가신 미와코 사모님의 손을 잡고 스님의 독경 소리가 무섭다며 우셨죠."
"이야, 그건 그렇고 참 닮으셨어."
도키치 노인이 말했다.
"닮아요? 아버지를요?"
"그야 물론 고요 님도 닮으셨지만, 다케나가 님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으셨습니다. 그렇지, 여보?"
"그러게요."

갑작스러운 충동에 사로잡혀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잠깐 위에 올라가 봐도 될까요?"
"어머, 같이 갈까?"
"아니요, 어머니는 먼저 돌아가세요. 저 혼자 보고 올게요."

"상냥한 사람들 같은데요."
"소이치는 ‘도련님‘인걸. 그래. 좋은 사람들이야. 게다가 도키치 씨는 몰라도 기네 씨는 아직 또렷또렷하니까 연립주택 일은 맡겨둬도 문제없을 테지."

나, 히류 소이치는 1953년 2월 5일, 아버지 고요와 어머니 미와코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시즈오카 시. 그때 이미 장래의 꿈을 놓고 할아버지와 대립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달아나 둘만의 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미와코는 당시 교토의 요정에서 일하던 아가씨로, 할아버지는 당연히 두 사람의 결혼을 몹시 반대했다.

시야 한쪽에 갑자기 검은 사람의 형체가.......

나는 어린 마음에도 나를 두고 간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려 보았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차가운 감정을 깨닫고 나서는 이케오 이모부와 이모를 ‘아빠‘와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자식이 없던 이모 부부는 말 그대로 친아들처럼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었다.

군!
하지만 그 사람은 잠시 후 천천히 몸을 돌려 비 내리는 길을 걸어 조용히 사라졌다.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가만히 서서 이 집을 보고 있다.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 복장으로 보아 남자인 듯하다.

부부는 가까운 시일 안에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시즈오카에서 다시 교토로 집을 옮기기로 한 모양인데.......
그때였다. 어머니 미와코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그리고.
아버지는 혼자 교토로 돌아갔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막대한 유산을 모조리 상속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분명 28년 전, 그렇다, 내가 여섯 살 때였다고 한다.

지금 내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자는 내 친어머니가 아니다. 친어머니 미와코보다 다섯 살 어린 여동생, 사와코 이모다. 나를 길러준 아버지 이케오 이모부는 10년전에 세상을 떴다.

아버지는 자살했다. 작년 말 눈이 내리던 밤, 이 집 안뜰에서 벚나무에 목을 매었다고 한다.

도대체 여기에는 이런 인형이 몇 개나 있는 걸까. 인형들이 지금도 이렇게 집 안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건 혹시 아버지의 유지일까.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부터 소설가를 꿈꾸었던 쓰지이(본명은 모리타 유키오森田行雄라고 한다)는 두 해 전쯤 어느 문학지 신인상에 입선을 했다. 이후 단편을 몇 편 발표하기는 했지만 크게 호평받은 작품은 하나도 없고, 아직 단행본도 나오지 않았다.

하반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팔도 두 개다. 다만 몸체의 윗부분, 배에서 가슴을 지나 어깨에 이르는 부분이 없다. 대신에 뼈대처럼 십자 형태로 얽은 새카만 막대에 허리와 머리, 두 팔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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