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품절


차례

추천의 말 4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12

첫 마음, 종이와 연필 19
'첫 생각' 을 놓치지 말라 24
멈추지 말고 계속 써라 29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35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40
습작을 위한 글감 노트 만들기 45
글이 안 써질 때도 글을 쓰는 법 51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56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58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63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66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려라 70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74
강박관념을 탐구하라 78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82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84
케이크를 구우려면 87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91
글쓰기는 육체적인 노동이다 94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97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102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105
꿈에 대해 써라 110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114
말하지 말고 보여 주라 117
그냥 '꽃' 이라고 말하지 말라 120
몰입하기 124
평범과 비범은 공존한다 126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131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135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139
-8~9쪽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141
자신을 믿어라 145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148
작업실에 대하여 154
성,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157
자신니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161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163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166
삶을 사랑하라 168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173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176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178
왜 글을 쓰는가 181
관통하는 글쓰기 187
작가로 살아남기 191
자신이 쓴 글에서 떠나라 194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199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204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209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216
음식에 대해 써 보라 220
외로움을 이용하라 223
스스로에게 넌덜머리가 났을 때 226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라 228
이야기 모임 만들기 234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 238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244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249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252
고쳐 쓰기 256
나는 죽고 싶지 않다 263

에필로그 266
옮기고 나서 269
-9~10쪽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는 소설을 읽고 시를 암송하는 것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친구 세 명과 함께 미시간 주에서 인공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순수 자연식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그때가 70년대 초반이었고 나로 말하면 ㄹ스토랑 개업 1년 전에야 난생처음 아보카도라는 열매를 먹어 보았던, 그야말로 음식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다.


아침이면 나는 건포도나 검은 딸기를 넣은 머핀을 구워야 했다. 간간이 마음이 동하는 날이면 땅콩버터를 넣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만든 머핀을 고객들이 맛있어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정성을 기울여 만들 때만 정말 맛좋은 음식이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 레스토랑의 창조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레스토랑의 음식 맛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노력에 달린 일이었다.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학창 시절 A학점을 받았던 답안지처러 기가 막힌 답이 나올 수는 없었다. 이때가 내가 자신의 마음만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최초의 시기였다.

-14쪽

그리고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평생 안정될 거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16쪽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글쓰기 공부는 일차원적인 과정이 아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A에서 B를 거쳐 그 다음은 C로 가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없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다. -17쪽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 전체로 이 책을 흡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여러분들이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18쪽

첫 마음, 종이와 연필

나는 첫 번째 수업을 무척 좋아한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 '첫 마음' 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첫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돌아가야 하는 자리일 것이다.

두 달 전에 꽤 괜찮은 글을 썼다고 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솔직히 나는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전에 어떻게 글을 완성했었는지 의아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19쪽

글쓰기는 정신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작업이기에 사용하는 도구와 장비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나는 감정적인 글을 쓸 때는, 적어도 처음에는 직접 손으로 쓴다. 손으로 쓰는 것이 심장의 운동과 더욱 가깝게 연결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22쪽

책상을 마주했을 때는 최소한의 제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나에게는 세사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 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미래의 위대한 소설가가 되리라 결심을 했으면서도 정작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학생들을 나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만약 당신이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무언가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커다란 절망으로 끝나기 쉽다는 걸 명심하라. 이런 기대감이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나는 한 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 한다(나는 작품을 쓸 대마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를 항상 새롭게 만든다). 그저 이 노트를 채우면 그만이다. 이것이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훈련법이다. -32쪽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한 일이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한창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진 상태를 글로 적절히 표현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오직 "난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 있어" 라는 소리만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막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온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아직 그 도시를 몸으로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알 수 없다. 그는 주변 환경에 익숙치 못해서 물건을 사러 편의점에 나갔다가 길을 ㅇ맇어버릴 수도 있다. 아직 그 도시에서 겨울을 난 적도 없고, 청둥오리가 가을에 호수를 떠났다가 봄이면 다시 호수로 찾아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35쪽

헤밍웨이는 그의 작푸 <움직이는 사육제A Moveable Feast>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리에서 미시간 이야기를 썼듯 어쩌면 나는 파리를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진짜 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파리를 충부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리를 떠난 후에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릭의 지각 능력이나 판단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퇴비를 섞는 과정' 이라고 부른다. 인생이 남긴 쓰레기더미는 자꾸 쌓여 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계란 껍질,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이 비옥한 토양이 우리의 시와 이야기를 꽃 피워 주는 자원이다. 하지만 비옥한 토양은 단시일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필요하다. 유기적으로 이어진 인생의 모든 세부 항목들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어서 쓸데없는 찌꺼기들을 걸러 내야만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36쪽

이다.
똑같은 시간을 주었음에도 남모다 많은 분량의 글을 써내는 학생을 보면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긴 글이라고 해서 우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36쪽

하나의 재료로서 탐색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런 학생들이야 말로 그저 '나도 글을 써 보겠다' 는 소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훈련 과정을 충실히 거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고무래로 흙을 파내듯 자신의 마음을 자꾸 써레질해주고, 얕은 개울 같은 생각을 자꾸 뒤집어 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든 일이지만,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고 해서 신경증적인 위험에 빠진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는 자기 내면의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그 풍요의 정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동안 나는 쓰고 싶은 주제가 늘 똑같았던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83년 8월부터 12월까지 내 습작 노트를 보면, 거기엔 내가 여러 달 내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때 나는 이 주제에 매달려 거기에 맞는 퇴비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12월에 접어들어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제과점인 크로아상 익스프레스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37쪽

대한 장시 한 편이 놓여 있었다. 내가 말해야만 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실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퇴비에서 한 송이 붉은 튤립이 피어난 순간이었다.-37쪽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또는 당신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 이런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모든 불안을 잠재우고 인내심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경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가 쓰는 글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계거리로 삼지 말라.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비료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우리의 근육이 되어 준다면 우리는 위대한 조류를 타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면 다른 사람의 성공도 인정할-38쪽

수 있으며 쓸데없는 욕심에도 빠지지 않게 된다.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것은 그저 사람마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세에서 그 때를 만날 수도 있고, 죽은 후에야 찾아올 수도 있다.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써라. -39쪽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의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탱하고 키워주고 있다는 믿음만은 늘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나만의 길이 하나 있을 거라는 신념은 놓치지 않았다. 비록 마을은 아무런 감흥없이 무감각하게 가라앉아 있거나 잡념들로 산만하게 채워져 있곤 했지만,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그런 산만한 마음과 그 동안 살았던 인생이 전부였다. 나는 거기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이 노트를 통해 내가 전보다 발전하고 있음을 안다. 이 노트는 한 인간의 존재 증명이다."
이처럼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42~43쪽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실제로 옛날 습작 노트를 다시 읽고 나서, 나는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이 응석을 부렸으며 정리되지 않은 생각 속에서 너무 오래 방황햇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이런 인식이 생긴 되에는 아름다움과 다정한 배려, 명료한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튼튼한 갑옷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려움을 등에 진 채 무작정 아름다움을 좇아 거칠게 달려가지 않게 된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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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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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안정효,모멘토,2006)
글쓰기의 공중부양(이외수,해냄,2007)
글쓰기 생각쓰기(윌리엄 진서,이한중 옮김,돌베개,2007)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김연수 옮김,한문화,2006)
아티스트웨이(줄리아 카메론,임지호 옮김,경당,2003)
네 멋대로 써라(데릭 젠슨,김정훈 옮김,삼인,2005)
문장강화(이태준,임형택 해제,창비,2005)
우리글 바로쓰기1,2(이오덕,한길사,1992)
우리 문장 쓰기(이오덕,한길사,1992)
인디라이터(명로진,해피니언,2007)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린다 스펜스,황지현 옮김,고즈윈,2008)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박현찬,설흔,위즈덤하우스,2007)
즐거운 글쓰기(루츠 폰 베르더,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김동의 옮김,들녘,2004)



최근 3년 동안 글쓰기에 관해 읽은 책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책은 《네 멋대로 써라》, 《우리 문장 쓰기》,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글쓰기 생각쓰기》다. 좋아하는 이유는 한 가지, 이 책들을 읽다보면 쓰고 싶다는 욕구와 써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를 읽으면서도 '뭐라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6쪽에서 47쪽이면 몇 페이지지? 하나, 둘, 셋, 넷... 장장 서른 두 쪽이다. 단행본에서 이 정도 분량이면 서문으로는 너무 길지 않나? 적어도 위에 쓴 책 가운데서는 제일 길다.

말이건 글이건 서론이 긴 사람은 반갑지 않다. 더구나 그 긴 내용이 결국 '스스로 속이지 말라, 정직하라'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얼마나 장황한 설명이란 말인가! (아아.. 정말 내 스퇄(스타일) 아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고 나서 '뭐라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 이런걸 무심하게 넘기다보면 금방 뇌에 살이 붙어. 뱃살 붙는 것도 갑갑해 죽겠는데 뇌까지 군살이 생기면 어쩌겠어. 뭐 그건 그렇고.

즉각적 판단 기준이 되버린 '내 스퇄'이라는 것 부터 좀 따져볼 필요가 있겠지만, 그리 급한 문제는 아니니까 우선은 리뷰 본분에 따라 써보자.

내 스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의 프롤로그가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물에 걸려들었다. 그것도 치밀하게 짠 커다란 정치망에! 정치망이 뭔가. 영어로 set net, 한자로 定置網(고기떼가 다니는, 일(一定)한 곳에 상당(相當)한 기간(期間) 동아나 고(固定)시켜 놓고 물고기를 잡는 그물 자리그물)

참 촘촘하게도 짜 놓았네. 중간 중간 매듭도 꼼꼼하게 짓고, 걸려들었다 하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렇게 빈틈없는 그물. 여기 걸려들었으니 하다못해 그 날 일기라도 몇 줄 써야하지 않겠나. 그래 이왕 쓰려면 좀 참신한 걸로 하지 그러면서 시작한 리뷰. (잘 하고 있나? 흐흐) 

하나 걸고 넘어갈 게 있다. 저자는 2006년부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해 왔고, 이 책은 결과물이다. 강좌에는 강사와 수강생이 있다. 강사만으로 강의를 진행할 수 없고, 수강생만으로도 안된다. 그런데 그 강좌의 결과물로 나온 책의 저자가 한 사람이라는 점은 부당하다. 밭 갈고 씨 뿌리고 물 주고.. 땀은 여럿이 흘리고 열매는 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 아닌가. 물론 수강생들도 나름대로 자기를 찾고, 길을 찾고 배운 것으로 보람을 찾을 수 있겠지. 그래도 수강생들이 낸 '초보 습작'이 없었다면 이 책은 애초에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책을 내며' 한 쪽에 수강생 명단이라도 올려놓았다면 좀 좋을까! 

뭐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프롤로그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쓰라'고 나를 자극한다. 장황한 설명이 지루한데도 계속해서 내가 자극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금방 답이 나온다. 강사도 수강생도 모두 우리나라 사람, 저자도 나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점! 그래 확실히 《글쓰기 생각쓰기》나 《네 멋대로 써라》와는 다르다. 두 번역서가 퓨전요리라면 이 책은 어릴 때부터 먹어온 밥,김치,된장찌개다.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 매끼 먹어도 또 먹고 싶은 김치...

그래서 바란다. 밥같은 김치같은 글쓰기 책이 더 많이 나오기를! 이왕이면 나하고 좀 더 죽이 잘 맞는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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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 Haeundae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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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31일 목요일
해운대에서 해운대를 본다.

낮에 해운대에서 2시간 걷고,
밤에 동래CGV에서 2시간 동안 영화 '해운대'를 본다.

낮에 맨눈으로 본 해운대는 '처음 뵙겠습니다',
밤에 스크린에서 본 해운대는 '오랜만이야! 반갑다 친구야!'

영화를 나중에 보길 잘했어.
친한 친구를 만나듯 그렇게 편안했어.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바닷가에 제일 많은 새는 뭐게?
갈매기지?
그런데 부산 해운대에는 갈매기보다 비둘기가 더 많다!
왜 그러게?
부산 갈매기들은 다 사직구장에 갔거든.
흐흐흐.
이게 꼭 우스개소린줄만 알지?
땡!
정말 땡이야.
부산에 가봐라. 해운대에 가봐.
거기 정말 비둘기가 더 많이 날아다녀.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봐.
"어? 여기 바닷가잖아요? 갈매기는 다 어디가고 비둘기가 이렇게 많아요?"
"어허, 참. 부산 갈매기는 사직구장에 가야 보지요!"
"어머! 그게 정말이예요?"
크크크.

영화 '해운대'에도 야구장이 나온다.
거기서 설경구 연기 정말 끝내준다.
어찌나 웃었든지. 크크크크.

배우 설경구가 아니었더라면,
영화는 망했을 것이다.
확실하다.

설경구.. 노력하는 배우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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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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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크하하하하, 웃다가
맞아, 맞아, 박수치다가
이런 이런, 분통터뜨리다가
어쩜 그래, 어머어머, 놀라다가, 침 삼키다가, 사래걸려서 켁켁거리기까지...
오만 포즈로 책을 읽음.

디자이너가 이렇게 입담 좋아도 돼?
하긴 10년 이상 꾸준히 썼다하니, 그것도 자기 분야에 관해서!
재미없다면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겠나!
쓰는 사람도 재미있고 읽는 사람도 그랬어야 계속 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니까 재미있는 게 당연하지.
난 이번에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거야!!
만족, 만족^^ 

 

-밑줄 메모-

■인상적인 등장인물1. 스승 권명광 교수

9쪽 노느니 글을 쓰자
우뇌를 사용하는 디자이너가 글을 쓴다는 것은 좌뇌를 쓰는 먹물들의 영역을 침범한 대역죄다. 내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스승이신 권명광 교수께서 '꼭 글을 쓸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셔서다.

디자이너는 우뇌 쓰고 먹물들은 좌뇌를 쓴다고? 왼손잡이 오른손잡이는 들어봤는데, 그럼 디자이너는 우뇌잡이 먹물들은 좌뇌잡이란 말? 왼 손은 왼 손, 오른 손은 오른 손 따로 노는데 뇌도 정말 왼쪽 오른쪽 따로라고? 흠... 그건 그렇고, 디자이너가 글 쓴다고 무슨 대역죄씩이나!ㅋ
아무튼 참 훌륭한 스승을 만나셨군. '꼭 글을 쓸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라'는 당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당부가 아니리라. (스승께서 언제고 한 번 글 못써서 엄청 억울한 일이라도 당하셨던 게지..ㅋ) 좋구나. 그런 당부를 해주시는 스승을 만난 것도 그렇고, 그걸 잊지 않고 간직한 제자도 그렇고!)  

■인상적인 등장인물2. 디자이너가 된 촌놈, 안광욱 직원

(39쪽) 촌놈, 디자이너 만들기
"아래께 먹었던 자루찌개가정말로 맛있던데요..."
사무실 막내인 그를 몸보신 시키려고 뭘 먹고 싶냐 물었더니 알 수 없는 대답을 한다.
"뭐, 자루찌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며칠 전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던 그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자루가 아니라 부대찌개."
(43쪽)...... 그는 요즈음 출판디자인계에서 잘나가는 안광욱이다.

크크크.. 자루찌개!

 

■인상적인 등장인물3. '내탓이오'를 디자인한 신명우 선배>

(49쪽)내 '안내자'였던 신명우 선배
이런 글을 쓰리라 생각을 가다듬고 있을 즈음 명동성당에 신부로 계시는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신명우 씨 별세."
"아, 명우 형이!"

'내탓이오'를 남기고 간 남자..


■인상적인 등장인물4. '니들이 김치를 알아!' 프로젝트 박수호주간

(258쪽)'니들이 김치를 알아!' 프로젝트
...갑자기 박수호 주간이 그리워졌다.
"야, 좀 와 봐라."
그 양반 디자인하우스 단행본 편집주간하실 때 나를 늘 그렇게 불러댔다. 뭐 서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 일이 있어 부르겠지만, 서둘러 가지 않으면 혼난다. 자기는 디자인이 좋아 다니던 의대를 때려치우고 디자인 책을 만들고 있는데..... 그러니까 디자이너들에게 봉사중이고 희생하고 계시단다. 전화하면 즉각 뛰어가야 한다. 고집은 정말 고래힘줄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좀 나서 줘야 하겠다."
이 양반 조국과 민족을 팔면 그 다음 레퍼토리는 뻔하다. 깎자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책은 팔리지 않을 것이 뻔한데, 주제가 조국과 민족이니 허접하게 만들었다간 만들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똥 묻은 개한테 욕만 먹는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아니 돈 생기지 않는 일에 부담만 백 배이다. 늘 그렇듯 그 양반이 근무하는 출판사 근처 생맥주집으로 간다.
전화해서 어디 있냐고 물어봐야 전화비만 아깝고, 돈 깎자고 하면서 생맥주 한잔으로 때운다. 그래도 맨입으로 깎자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다. 내가 너무 박하다고 엄살을 떨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신다.
"내가 이 나이에 디자인이 좋아서..... 이 넓은 서울 바닥에 바늘 꽂을 땅 한 평 없이 사는데.... 내가 돈 있으면서 그러냐? 이 자식, 이름 좀 나더니...."
더 들어 봐야 좋을 것 하나 없으니 그냥 무조건 한다고 해야 한다. 그게 정답이다. 나는 그날 한마디도 안 개겼다.
"일본 놈들이 말이야, 웹스터 사전에 '김치'를 제치고 '기무치'라는 이름을 넣으려고 해요."
이 말씀으로 시작한 그 양반은 생맥주 500cc를 '원샷' 하시더니 여느 날과는 달리 한 잔을 더 주문하셨다. 술에 약한 그 양반, 30분 후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외치셨다.
"지들이 김치를 알아?" 


'지들이 김치를 알아?' 한마디로 끝났다면 별 볼 일 없는 인생. 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 능력있고 머리도 있고 가슴도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이렇게 떡허니 책 한권을 만들어냈으니 와우!..? 아니, 아니.. 요새 감탄사가 새로 생겼지, 오~올레! 멋쪄부러^^~~

 

 
■인상적인 등장인물5. '너 혼자 잘나서 큰 줄 아냐.' ... '가서 하나라도 더 팔거라.' ... 어머니, 아, 어머니!(저자 홍동원의 어머니, 책에 실명 언급 없음.)

(209쪽)
"공짜로만 달라고 해 그냥 돌아왔다."
내게 전화를 하면서 공짜 심보에 속이 상해 하셨다.
"어머니, 친구 분들에게 그냥 나누어 주셔도 돼요."
나는 그래봐야 몇 개나 되겠나 하는 생각에 어머니께 여유를 가지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께 그 말씀을 드리고 혼이 났다.
"야 이놈아, 내가 너 대학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대학원 보내고 유학도 보냈는데 그 돈은 뭐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진 것인 줄 아냐, 니 애미 허리가 휘었다."
그 말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외제라고 특별소비세가 붙어 엄청 비싼 물감을 사느라고 나는 라면도 굶었고, 어머니는 버스 서너 정류장 거리는 걸어다니셨다. 아니 내가 한 절약은 어머니에 비하면 절약도 아니었다. 그 아까워 못쓰고 꼬깃꼬깃 모아 둔 돈을 놀음판에 미친 서방이 들고 튀듯 아들이 날름 들고 나가니 서러워 눈물로 곡도 못하고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키신 양반이다.
"너 혼자 잘나서 큰 줄 아냐."
이 말이 내 가슴에 꽂힌 어머니의 결정타였다.
한번은 어머니가 노안으로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숫자가 아주 큰 달력을 만들어 드렸다. 어머니는 달력을 받아 들고 아주 흐믓해 하시더니 내게 다시 주셨다.
"가서 하나라도 더 팔거라."
그 말씀이 너무 단호해 나는 달력을 그냥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안다.
나도 안다, 그거. 
달력을 만든이의 심정, 달력 만드는 이를 키운이의 심정..
너무도 잘 알겠다.
"엄마!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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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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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1,2』를 읽고 열광했다.
마커스 주삭의 책을 더 읽고 싶었지만 더이상 번역서가 없다.
1년 이상 기다림.

2009년 5월 드디어 『메신저』출간.
소식을 듣고 바로 구매?..하여 읽고싶었으나 여의치 않음.
상황이 상황인지라.. 구성도서관 희망도서 신청.
한달 뒤 띵동~ 문자메시지 수신.
【[구성도서관]희망도서가 도착하였습니다.
[메신저]우선예약기간 2009년 7월 15~17일】
이런! 하필 지방 출장기간에 걸렸네ㅜㅜ

18, 19, 20... 26일!
도서관에 책이 도착하고 열이틀이 지난 26일에야
내가 도서관에 갈 수 있었다.
벌써 누가 빌려갔겠지 뭐..
헛수고하는셈치고 한 번 검색해봤는데, 와우!
'대출가능' 이라네^^
당장 찾아서 빌려가지고 읽기 시~작!

참 고맙지 뭐야.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동안 아무도 못알아본 덕분에 내가 처음 대출자가 됐쟎아?
게다가 마커스 주삭!
기다린 보람이 있어!

『책도둑』을 읽고 '말'로 그림 그리는 마커스 주삭에게 열광했다면,
『메신저』를 읽고는 '이야기'로 슬며시 주인공들 하나하나가
내 생활 속에 스며들어오는것 같아 으스스할 정도다.
(여기서 '으스스하다'는 표현은 사실 좀 그렇네.
실은 좋은 의미로 따뜻함이 쫙 번져오는 느낌인데 말이지)

아무튼 마커스 주삭은 참 괜챦은 인간이야.
이렇게 재미있고도 괜챦은 이야기를 나에게 두 번씩이나 들려주다니!

작년에 책도둑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면,
올해는 메신저를 읽고 그의 친구가 되었다.
물론 이렇게 일방적으로 친구가 되는 법은 흔치 않지만 말이다.

팬으로서, 친구로서 앞으로도 그의 책이 번역된다면 빼놓지 않고
읽게되겠지. 흐믓~

()


'옮긴이의 말'을 읽고, 옮긴이 정영목이 옮긴 책들을 찾아본다.
그정도로 옮긴이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여기에 '옮긴이의 말'을 옮겨본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고 지혜로워진다는 말을 잘 안 믿는 쪽이다. 다른 곳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바로 나 자신을 볼 때면, 정말이지 그 말이 중년이나 노년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지어낸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간혹 그 데데함과 비루함에 질릴 때면,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연골이 닳아 없어지듯 사람다운 좋은 면도 닳아 없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똑같은 이유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말로 너그럽고 지혜로워지는 희귀한 예를 만날 때면 존경하는 마음도 훨씬 더 강해진다).

물론 젊은 사람들의 너그러움과 지혜로움은 시험을 거쳐 얻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존재의 불안정의 뒤집힌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시험을 거쳐 남은 것이라고는 속좁음과 어리석음 뿐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 모든 걸 자기 중심적으로 하겠다는 말의 위장으로 느껴지고, 안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아슬아슬한 것인지 깨달을 때면, 외려 젊은이들의 모습이 사람의 연약한 본질을 가장 어른스럽게 감당해내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내가 만난 그런 좋은 젊은이들 가운데도 마커스 주삭은 특히 연골 같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으로 식어가는 마음을 덥혀준다는 점에서 각별하게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으로 딱 두 번밖에 만난 적이 없지만, 주삭은 지난번 『책도둑』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황에서 리젤이라는 독일 소녀를 소개해주더니, 이번 『메신저』에서는 21세기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도시 변두리 지역에 사는 에드라는 이름의 스무 살이 채 안 된 택시기사를 소개해주었다. 시대적 배경, 나이, 성별, 각자가 처한 상황 모두 다르지만,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은 방금 말했듯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따뜻함은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과 마음을 뻗는 데서 나온다. 특히 『메신저』에서는 이런 인간적 연대가 단지 이타적인 행동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이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이 점은 곱지 않게 늙어가는 개인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애늙은이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도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아닐까.

사실 『메신저』는 『책도둑』보다 앞서 2002년에 나온 작품으로 흔히 마커스 주삭의 출세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특히 결말부를 읽은 뒤에는, 이 작품을 그의 작가로서의 출사표(出師表)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이 작품에서는 『책도둑』에서 활짝 피어났던 주삭 특유의 글쓰기 방식도 꽃봉오리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책도둑』에서 그의 문체에 매혹되었던 독자들은 『메신저』를 앞에 두고 입맛을 다실 것이고, 반대로 너무 낯설다고 느꼈던 독자들은 『메신저』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새로운 맛의 강도를 높여가며 적응해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가와 젊음의 유대를 형성하여 마음 가득 물결처럼 온기가 퍼져나가는 느낌에 젖어보는 것이야말로 노소를 막론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2009년 5월
정영목


 

 

오 이런! 내 눈을 믿을 수 없다. 책 속에 내가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백퍼센트, 아니 이백퍼센트 일치하는 나 자신과, 내 엄마가...


(325쪽) 

"엄마?"
"왜?"
"왜 날 그렇게 미워하세요?"
그러자 나를 본다. 이 여자가. 나는 눈이 내 속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단조롭게, 간단하게, 엄마는 대답을 한다.
"왜냐하면, 에드.... 널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거든."
그 사람?
의미가 파악된다.
그 사람, 아버지.
엄마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한 사내를 커시드럴에 데려가 죽이려고까지 한 적도 있다. 청부 살인자들이 내 부엌에 들어와 파이를 먹으며 나를 두들겨 팬 적도 있다. 십대 깡패 집단한테 몰매를 맞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 나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간으로 느껴진다.
우두커니 서 있다.
상처를 받으며.
나의 어머니의 현관에.

하늘이 열린다. 부서져 열린다.
손과 발로 문에 망치질을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푹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고 만다. 혼을 빼버릴 듯 엄청난 타격을 준 말 옆에 쓰러진다. 그 말을 좋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으니까. 알코올중독 부분만 빼면, 아버지와 같다는 게 전적으로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가한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렇게 끔찍한가?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얻을 만한 답을 얻기 전에는 이 엿 같은 문간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필요하다면 여기서 잘 거고, 내일 하루 종일 땡볕에서 기다릴 거다. 다시 일어서서 소리친다.
"나 안 가요, 엄마!" 다시. "내 말 들려요? 나 안 간다니까."
십오 분 뒤 문이 다시 열리지만 엄마를 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길을 향해 말한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잘해줘요. 리, 케이스, 토미 모두. 마치..." 여기서 약해질 수는 없다.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정말 멸시하듯 말을 해요.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은 나예요." 이제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본다. "뭔가 필요할 때 여기 있는 사람은 나라고요. 매번 내가 다 해요, 안 그래요?"
엄마도 동의한다. "그래, 에드." 하지만 엄마도 달려든다. 엄마 나름의 진실로 나를 공격한다. 그 말들이 귀를 너무 날카롭게 파고드는 바람에 귀에서 피가 흐를 것만 같다. "그래, 넌 여기 있어. 바로 그게 문제야!" 엄마는 두 팔을 펼친다. "이 쓰레기장 같은 곳을 봐. 집, 이 지역, 죄다." 목소리가 어둡다. "그리고 네 애비... 그 사람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겠다고 나한테 약속했어. 그냥 짐을 싸서 떠날 거라고 말했어. 그런데 우리가 어디 있는지 좀 봐, 에드. 우린 아직도 여기 있어. 난 여기 있어. 너도 여기 있고. 너는 꼭 네 애비 같아. 늘 약속만 해, 에드. 하지만 결과는 없어. 너...." 엄마는 독을 바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너는 걔들 누구 못지않게 잘될 수 있었어. 심지어 토미만큼 잘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아직도 여기 있고, 오십 년이 지나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주 차가운 목소리다. "그때도 넌 뭐 하나 이룬 게 없을 거야."
소리가 희미해지며 정적이 찾아온다.

"난 네가..." 엄마가 정적을 꺠다. ".... 뭘 좀 해봤으면 좋겠어." 엄마는 천천히 현관 계단으로 다가오며 말한다. "네가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에드."
"뭔데요?"
이제 조심스럽게 말이 흘러나온다. "네가 믿든 안 믿든.... 사랑이 아주 커야만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거야."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엄마는 현관에 그대로 서 있다. 나는 잔디밭으로 내려가 다시 엄마르 ㄹ돌아본다.
맙소사, 이제 깜깜하다.
스페이드 에이스만큼이나 깜깜하다.(328쪽)


(375쪽)
집을 나와 잔디에 들어서는데 뒤에서 두 사람이 부른다. 처음에는 토미가, 그 다음에는 엄마가.
토미가 나와서 말한다. "잘 지내는 거지, 형?"
다시 돌아간다. "잘 지내, 토미. 정신없는 한 해였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 넌?"
우리는 현관 계단에 앉아 있다. 반은 그늘에 가려 있고, 반은 해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있고, 토미는 빛 속에 앉아 있다. 정말이지 상징적이다.
오늘 들어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짧은 질문에 대답한다.
"대학은 괜찮고?"
"응, 점수가 잘 나왔어. 기대 이상이야."
"잉그리드는?"
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정적이 흐른다. 이윽고 우리 사이의 정적이 깨지며 둘 다 웃음을 터뜨린다. 아주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나는 토미를 축하하고 토미도 자축을 한다.
"나쁘지 않아." 동생이 말한다. 진심으로 동생한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잉그리드 때문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비하면 잉그리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잘됐어, 토미." 토미의 등을 한 대 치고 일어선다. "행운을 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토미가 말한다.
"언제 전화 한번 할게. 한번 봐."
하지만 이번에도 장단을 맞추줄 수가 없다. 몸을 돌리고, 나도 놀랄 정도록 차분하게 말한다. "네가 전화하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기분이 좋다. 거짓말로부터 벗어나니 상쾌하다.
토미도 동의한다.
"형 말이 맞아."
우리는 아직도 형제다. 누가 알랴? 어쩌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정말로 한번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지. 여러 가지를 함께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속을 털어놓을지. 대학이나 잉그리드보다 더 큰 것들에 관해.
빨리는 안 되겠지만.
잔디를 건너며 말한다. "잘 가, 토미. 나와줘서 고마워." 한 가지에는 만족한다.
사실 해가 우리 둘 다 밝에 비출 때까지 현관에 그대로 앉아 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일어서서 계단을 내려왔다. 해가 오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해를 쫓아가련다.

토미가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거리로 나서려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나온다.
"에드!"
엄마를 마주 본다.
엄마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엄마도요." 그러고 나서 덧붙인다. "그런데 엄마, 장속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예요. 여기를 떠나 다른 어디로 갔다 해도 엄마는 똑같았을 거예요." 사실이다.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난다 해도...." 침을 삼킨다. "먼저 여기서 더 나은 사람이 된 다음에 떠날 거예요."
"알았다, 에드." 엄마는 멍한 표정이다. 나는 이 평범한 지역의 가난한 거리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맞는 말 같구나."
"나중에 봐요, 엄마."
떠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377쪽)



"...사랑이 아주 커야만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거야." 라고?.. 틀렸다.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 '사랑' 대신 '기대'라는 말을 쓴다면 정답이다. "기대가 아주 커야만 (그리고 기대한 만큼 이뤄지지 않아서 실망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면)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다" 라고 했다면, 내가 이렇게 끝까지 말꼬리 잡고 늘어질 필요도 없는데...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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