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
조셉 M. 마셜 지음, 김훈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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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코스트너가 감독, 제작, 주연배우까지 한 영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 1990)'이 생각납니다. 오래되서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디언식 이름들 '늑대와춤을, 주먹쥐고일어서, 열마리곰, 떠도는구름' 등...  그 영화를 보고 친구들끼리 인디언식 이름 지어주기가 유행했는데 그 때 한 친구가 제게 '차타고오래못가'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제가 멀미를 하도 해서 혜화동에서 종로1가까지도 죽자고 걸어만다녔거든요. 그 친구를 다시 만나서 이름을 다시 지어달래야겠습니다. 지금은 차타고 대전도 가고 서해로 동해로 어디든 잘 다니니까요. 아마 지금은 '운전하면멀미안해'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이야기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좋아하다가는 거지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참 싫었습니다. 싫고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물론 거기엔 '이야기듣기만 좋아하다보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당연히 가난해진다'는 숨은뜻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래도 이야기책을 읽을때마다 부담감도 함께 느꼈습니다. 그래서그랬겠죠. 이야기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지만 살면서 그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잘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도 하는 그런 일은 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시절에 들었던 한마디 부정적인 말이 제 삶에 끈질기게 따라붙었습니다. 커서 저는 인디언의 지혜라든가 전해내려오는 지혜의 말, 구루의 가르침, 명상의 언어.. 이런 분위기에 잘 빠져들지 못했습니다. 뜬구름잡는 소리들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저에게 특별히 '여유'나 '너그러움'이 생길만한 일도 없었는데요.  그건 그저 책의 힘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부정적인 상황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서 퍼져나오는 지혜의 향기(상상일뿐이겠지만, 아무튼 지혜에서 어떤 향기가 난다면 말이죠.)가 저를 이끌어주었습니다.

겸허함
인내
존경
명예
사랑
희생
진실
연민
용감함
꿋꿋함
너그러움
지혜

흔히 말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요.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를 쓴 조셉M.마셜3세와 번역자 김훈은 최고입니다. 아니, 그냥 최고가 아니라 최고 중에 최곱니다. 겸허함을, 인내를, 존경을, 명예를, 사랑을, 희생을, 진실을, 연민을, 용감함을, 꿋꿋함을, 너그러움을, 지혜를, 이 두 사람보다 한글로 잘 그려낸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2009년이 다 가진 않았지만,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를 꼽겠습니다. 세상에 어떤 '지식'을 전하는 책은 넘쳐나지만, 살아갈 힘과 지혜를 나눠주는 책은 흔치 않습니다. 그러니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를 읽은 저는 분명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 고마운 9월입니다.

진실은 가끔 고통스럽다. 하지만 진실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환상만이 존재한다. 진실은 우리 라코타 사람들이 아직도 대지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가 혹독한 변화를 이겨내고 살아남았으며 그 덕에 전보다 더 지혜로워지고 강해졌다는 것이다. 환상은 우리가 우리보다 더 강하고 더 우월하고 더 도덕적인 사람들, 우리가 신에게서 부여받은 천부적인 권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패배했다고 하는 것이다. 진실은 우리가 숫자로 압도당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많은 총을 갖고 있고 우리가 가진 것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했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짓눌렸다.
우리가 정복당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우리가 생존자들이라고 하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복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한테 던져줄 수 있는 최악의 것을 받아들였고, 아직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우리가 과거의 일부요, 연구하고 분석하고 측정하고 해부하고 궁극적으로 심판할 수 있는 어떤 대상들이라고 하는 건 환상이다. 우리가 가장 혹독한 시련들을 버텨낸 전통과 관습과 가치관들을 보유한, 아직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문화라고 하는 것이 진실이다. (211p.)
 
책을 읽다보면 제가 믿는 것들과 맞서는 내용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읽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바람이 너를 지나가게 하라』를 꼽는 이유가 바로 위에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은이가 확고한 태도로 말하고 있는 '그의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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