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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한줄리뷰] 우렁각시 만난 느낌이다.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왔더니 난장판이던 집안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고 있고 빨랫줄에 가지런히 빨래 널려 있고 그런 느낌. 아 정말 여기가 우리집 맞나싶게 그렇게.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 일들을 깨끗이 씻고 다듬어 맛있는 한그릇 요리로 만들어 내 앞에 놓아준 엄기호 작가에게 감사한다.
삶에서 딜레마를 회피할 수 없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딜레마가 타인의 존재다. 내 삶에 남이 있을 때는 귀찮고 괴롭다. 혼자 있고 싶다. 그러다 막상 또 혼자가 되면 외롭다. (208p.)
‘혼자면 외롭고 같이 하면 괴로운’
가족? 일? 여행?.. 무엇이나 다 되겠지만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건 ‘동료’다. "동료란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슬픔에 공감하는 동료가 있을 때 내 삶이 아무리 비루하더라도 견딜 만해진다."(122p.) 친구라는 좋은 말을 두고 왜 굳이 동료라는 말을 썼을까 궁금하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동시대인이란 ‘시대의 어둠’을 보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 시대의 어둠을 보았기에 운명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동료라고 한다.(136p.)
아하, ‘동시대인’이라는 말을 들으니 알겠다. 친구보다는 동료의 범위가 훨씬 넓구나. 하긴 내 경우만 봐도 친구라고 하기는 애매한데 동료라고 부르는건 부담없는 사람들이 많긴하다. 책에서 말하는 ‘시대의 어둠을 보았기에 운명까지 함께할 수 있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엔 여러모로 부담되는 면이 있지만 말이다.
멘토 전성시대
멘토는 오디세우스의 친구인 멘토르에서 나온 말이다. 친구 오디세우스가 집을 떠나 바다를 떠도는 동안 멘토르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돌보고 가르쳤다. 멘토르는 십여 년 동안 친구의 아들을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동료처럼 조언하며 그의 성장을 도왔다. 멘토르가 텔레마코스에게 전수해준 것은 소소한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다. 누구의 표현을 빌린다면 ‘운명의 파고를 넘나드는’ 지혜를 전수했다. 이처럼 원래 멘토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는 자가 처한 구체적인 곤경이나 도전에 ‘맞추어’ 지혜를 빌려준다. 그래서 과거에 멘토는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사람, 즉 어른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멘토는 더 이상 어른을 칭하는 말이 아니다. 이 시대에 멘토는 인생 성공을 향한 롤 모델, 닮고 싶은 사람이다. 우리 시대의 멘토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 뿐 아니라 자기 인생에서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에게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비법뿐 아니라 자기 삶에서 성공한 사람의 태도, 즉 한비야의 열정이나 안철수의 성실 같은 덕목을 닮고 싶어 한다. 이들을 따라하면 우리 인생도 이들처럼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184p.)
멘토가 주는 ‘기대’는 상품과 같다. 멘토를 보며 사람들은 자신이 노력하고 일정한 주건을 충족하면 자기에게도 좋은 결과가 상품처럼 주어지리라 여기며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필요한 힘이다. 그러나 멘토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드러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 멘토가 있고 이들이 가진 힘과 이들의 위로가 있기에 사회는 여전히 살 만한 곳처럼, 삶이 가능한 공간처럼 상상된다. 그 결과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다.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좌절했기 때문이다." "네가 어리석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멘토는 사회를 가리는 판타지다. (184p.)
공감한다. 멘토 전성시대에 어른이 설 자리는 없다. 설 자리가 없으니 어른다운 말을 할 수도 없다. 어른이 어른다운 말을 해 주어야 어른 노릇을 하는 것인데 어른다운 말을 한들 듣는 귀가 없다. 어른이 어른 노릇 할 데가 없으니 우울하다. 젊은이는 일자리가 없어 우울하고 어른은 어른 노릇 할 자리가 없어 우울하다. 왜 이렇게 되었나. 왜 이렇게 너도 나도 우울한 시대가 되었나. 내가 뭘 잘못했나. 니가 뭘 잘못했니. 우리가 뭘 잘 못한건가.
답답하다 답답해. 누가 속 시원이 말 좀 해주오~
짜잔~
..엥? 뭐?
짜잔~
..그러니까 뭐?
짜잔~
..장난해?
짜잔~
..아 쫌!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읽으세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읽고 우리 같이 생각을 해봐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읽으면 우리는 동료예요.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읽고 우리 같이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읽고 두더지가 되어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우리가 한 세상 잘 살았지"로 제목 바꿔 달고 한바탕 잘 사는 얘기 펼치는 그 날이 언젠가는 꼭 오고 말도록!
*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다섯개로는 모자라 카테고리를 하나 만듦.
[별5따따블곱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