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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엊저녁에, 해는 졌는데 갑갑증이 일어서 밖으로 나선 길.
갈 데가 없다. 슈퍼에 갈 일도 없고 세탁소에도 볼 일 없고 밀가루 끊기로 해서 빵집도 못가고.
도서관은? 언제 문닫지? 안 간지가 몇 달 되니 몇 시까지 하는지 모르겠는거라.
일곱 시 넘었는데, 일곱 시 까진가? 여덟 시? 여섯 시 일지도..
첫번째 운,
어차피 나선 길 어디로 걷긴 걸어야지.
걷다가 결국 돌아와야 할 길이라는 것 모르는 거 아니니
허탕치는셈 치고 그냥 한 번 가보자, 라는 맘이 든 거.
이걸 운으로 친다. 내가 나에게 주는 좋~은 운.
두번째 운,
오늘이 월요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월요일도 아니고 토요일, 일요일도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울산 도서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용인 도서관은 격주로 쉬는데..
책을 빌릴 수 있는 자료실은
화요일~금요일은 저녁 8시,
토요일,일요일은 저녁 6시 까지 연다.
지금은 수요일 저녁 7시!
그러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그리고 마지막, 내가 이 글을 쓰는 결정적 이유,
세번째 운,
매주 월요일 휴관을 하고
화요일~금요일은 저녁 8시,
토요일, 일요일에는 저녁 6시 까지 자료실을 이용할 수 있는 울산 북구 농소3동 도서관에
호시노 미치오의 책이 있다는 사실! 결정적으로, 그 책이 '대출가능'이라는 사실!!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는 없지만
내가 찾은건 『여행하는 나무』가 아니고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니까
『여행하는 나무』가 있고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가 없었다면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며 비관했을텐데
『여행하는 나무』가 없고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가 있으니
아, 얼마나 다행인가!
아,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그리하여 지금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행복하다.
이 계절에 이 순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는 정말이지
운 좋은 사람이다.
이 책은, 아름답다.
책을 읽고 '아름답다'는 표현은 이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그저 재미있다거나 특이하다거나 감동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하다.
호시노 미치오의 글과 사진은, 아름답다.
호시노 미치오의 삶이 아름답다.
호시노 미치오는 죽음마저 아름답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처음 해본다. 아름다운 죽음이라니..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쩌겠나.
아,
이제 겨우 리뷰를 시작하는데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나니
더 못쓰겠다.
내가 계속 운이 좋으면
아마 내일 다른 도서관에서 『여행하는 나무』를 빌려 읽고
이 리뷰를 계속 이어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