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엄마와 고양이.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이런 라임.

어김없이 떠올라.


 엄마: 내가 보낸 고양이 사진 봤냐?

   나: 어. 그럼. 봤지. 고양이가 꽤 크던데?

 엄마: 그럼. 크지. 벌써 6개월이나 됐는데.

   나: 새끼 고양이라 그러잖았어?

 엄마: 응. 00가 가져올 때는 새끼 낳은 걸 가져온 거지. 육개월이믄 인제 다 큰 거야.

   나: 이쁘게 생겼드라고.

 엄마: (웃으며) 그렇다니까. 애가 아주 이뻐. 깨끗하구. 말귀두 다 알아들어.

   나: 말귀를 알아들어?

 엄마: 그럼. 내루야 일루 와, 그러면 풀썩 뛰어 와서 발라당 누워. 애가 아주 머리두 좋아. 오늘은 00가 출근한 다음에 저기 옷장 위에 내 옷가방 위에 올라가드니 꼼짝두 않구 거기 앉었어. 높은 데를 좋아해. 저기 앉았다가 지가 배고프면 내려와서 밥 먹구 또 올라가. 올라가지 말아야 할 데를 올라가면 어뜩하는지 알어? 분무기루 물을 한 번 찍 뿌리면 돼. 물을 싫어해. 목요두 혼자 못 씻겨. 하두 지랄을 해서. 둘이 붙잡구 씻겨야 돼. 쟤한테는 아주 분무기가 약이야. 처음엔 아주 온갖 데를 다 올라가서 내가 물을 많이 뿌렸어. 인제 딱 올라가는 데만 올라가. 애가 아주 똑똑해. 그래두 아직 내 방에는 못 들어오게 해. 나는 그거는 싫어. 털 날리구. 아이구. 고양이 올라가 앉는 거가 뭐가 있다드만.. 아 그래. 그거. 캣타원가 뭔가 그게 있다는데, 아이구, 어뜩하냐. 그걸 가져오랠 수두 없구, 그렇다구 고양이를 내쫓을 수두 없구, 어띃게 같이 사냐. 참. 허허허허.


   나도 허허허. 게임 끝났구만은 뭐. 고양이가 좋아하는 거, 고양이가 싫어하는 거 벌써 딱딱 얘기하면서 내쫓기는 뭐. 나야말로 아이구, 캣타워 하나 만들어야겠구나. 하하하, 캣타워라니, 하하하, 캣타워를 만들겠다니!


   오늘 통화하면서 엄마가 단 한 마디라도 돈(고양이 용품이나 먹이를 사는 데 드는 돈, 병원비) 얘기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말 기록할 만하다. 그것으로 이미 고양이 내루는 엄마네 집 식구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자식이고 뭐고 아무튼 돈 계산 만큼은 언제나 철두철미한 울엄마로서는 정말 힘든 결정이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였지만, 지레짐작이란 언제나 형편없는 결말을 이끌어낼 뿐이라는 것이 또 한번 드러났다. 고양이 얘기를 하는 내내 엄마가 어찌나 환하게 웃고 있든지(영상 통화), 이건 뭐 처음부터 게임 꺼리도 아니었겠구만 하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조카는 나보다 더 엄마를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버는 이유를 1. 먹고 살려고. 2. 책 살려고. 라고 썼는데, 오늘 하나 추가해야겠다. 3. 조카와 엄마와 고양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나의 계산기는 35도 정도 되는 것 같다. 따뜻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갑다고 하기도 그런, 미적지근한 온도라고 할까. 아무려나, 춥기는 마찬가지다. 


   『차가운 계산기 - 경제학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원제 : I spend, therefore i am (2014년)),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너무나 읽고 싶지 않게 생긴 이 책을, 읽고 싶다. 읽으면서 나의 계산기, 그의 계산기, 다른 몇 개 계산기를 한 군데 모아놓고 따져보고 싶다. 나도 계산기 있어! 너만 있냐? 나도 있다고! 소리쳐 외치고 싶다. 새로 시작하는 일은 그렇게 시작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35도라도 유지하고 살자면 별 수 없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

나는 높은 데를 싫어(무서워)하고,

물놀이도 좋아한다.


고양이는 내가 아니다.

고양이는 높은 데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조카를 좋아하고,

고양이는 엄마와 가족이 되었고,

고양이는 조카와 엄마와 한 집에 산다.


나도 조카를 좋아하고, 엄마와 가족이지만 

고양이는 잘 모르고, 

모두와 따로 살고,

그러면서 캣타워를 만들 생각을 한다.


나의 계산기는 제법이다.

나설 때와 들어갈 때를 안다.

오토매틱이다.

남의 손에 놀아나지 않도록

내가 더 신경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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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18 20: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캣타워 만드심 보고싶어요! 분무기 제압과 잘잘라님 라임에 감탄하고 갑니다^^*

잘잘라 2021-02-18 21:41   좋아요 4 | URL
만들면, 보여드릴께요.
사면, 넘어가구요.
히히힛, 미미님 *^0^*

scott 2021-02-18 2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냥이들은 높은곳을 좋아하고 높은곳에서도 살포시 착륙도 잘하는 ㅋㅋ
오늘의 문장 요약 ~해볼께요
[고양이는 엄마,조카와 가족이고 고양이는 조카를 좋아하고 엄마는 아들??딸?? 잘잘라님을 기다리고 잘잘라님은 계산기를 두들기며 엄마와 통화중이돵 ㅋㅋㅋㅋ]
(̵̵́╹ᴥ╹)̵̵̀ 냐옹

잘잘라 2021-02-18 21:51   좋아요 3 | URL
scott님 (̵̵́╹ᴥ╹)̵̵̀ 냐옹 (귀여버서 복붙해봤습니다요~ )
맞아요. scott님, 다 맞는데, 어, 음, 몇 십 년 전에, 제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그때는 엄마가 제가 아들로 나오기를 노심초사 기다리셨겠는데, 저는 딸로 태어났고, 실망한 울엄니는 동생이라도 남동생 보라고 ‘남이‘라고 부르셨다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옹~~~~ 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21-02-18 2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현재 읽기 진행형인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말씀드리면요, 이 책 내용은 개인과는 거의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가 바로 문제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

잘잘라 2021-02-18 22:01   좋아요 2 | URL
북다님 안녕하세요. 요며칠 북다님 올리신 글 읽다가 책에 관심이 생겼어요. 어려워서 읽다가 말더라도 아무튼 시작은 해보려구요. 북다님 글 읽으면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0^

붕붕툐툐 2021-02-18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만드신 캣타워 기대합니당!! 어머니가 고양이랑 한식구가 된 게 확실해 보이네용!!😍

잘잘라 2021-02-18 23:4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죠 그죠! 고양이가 온 뒤로, 엄마가 훨씬 더 많이 웃어요. 그러면서도 안방(엄마방)에는 절대 못들어가게 한다는 말에 빵 터졌어요. 이러다 귀여운 할머니 등극하시는 거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