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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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은 아주 단순해 보였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남자가 아내의 불륜 상대인 남자와 그의 임신한 아내를 죽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 쉬유이許友一는 뭔가 미심쩍다고 느낀다. 수사 방향을 놓고 선배 경찰과 술집에서 말다툼을 한 다음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경찰서에 출근하니 뭔가 이상하다. 지금은 분명히 2003년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늘이 2009년 3월 15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6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형사가, 6년 전 살인사건의 진상을 찾아간다. 이 한 줄의 줄거리 소개만으로도 흥미롭다. 쉬유이와 기자 루친이盧沁宜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2009년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예상치 못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쉬유이는 살인사건의 진상뿐만 아니라 자신이 잊어버렸던 자신의 진실까지 마주하게 된다. 


  이런 추리소설에서 반전을 미리 알게 되면 재미가 없는데, 바보 같이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다 딱 반전이 밝혀져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하지만 반전을 알고 나서도 그 반전이 밝혀지기까지의 전개 과정이 흥미로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반전을 뒤엎는 또 다른 반전이 있었다. 


  두 번째 반전을 통해 밝혀진 범인과 범행 동기는 억지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다. 자신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주인공의 캐릭터가 앞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급격하게 바뀌어서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변하면서 작품 전반을 지배하던 분위기도 갑자기 변한다. 참혹한 살인사건과 기억상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무거운 소재와 중간중간에 인용되는 데이빗 보위의 노래 'The Man Who Sold the World'의 섬뜩한 가사가 빚어내는 안개 속 같은 분위기가 결말에서 싹 걷혀 버린다. 


  좀 더 무게감 있고 어두운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아쉽겠지만, 주인공이 기억상실과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안개 속을 뚫고 나오는 과정을 풀어가는 이야기의 힘이 뛰어나다. 그리고 찬호께이의 다른 작품들처럼 홍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금의 홍콩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후의 작품들보다는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이 뛰어난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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