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빛을 따라서 아우름 30
엄정순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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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코끼리의 어느 한 부분만 만져보고 코끼리가 이렇게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시각장애인들처럼,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코끼리의 전체를 만져보고, 다른 사람이 만진 부분과 자신이 만진 부분을 합친다면 코끼리의 전체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화가 엄정순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고, 이 의문은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미술 교육을 맡게 되었다. 빛조차 인식할 수 없는 전맹(全盲)부터 빛과 어둠만을 구별하는 눈, 시야의 주변은 흐릿하고 가운데만 선명하게 보이는 눈, 시야의 반만 보이는 눈까지 다양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시야와 시력,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미술을 매개체로 서로의 보는 방식을 알아가는 프로젝트 <우리들의 눈 Another way of seeing>을 진행해 오고 있다. 미술은 시각예술이니, 보이지 않는 사람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 보이는 아이들이 어떻게 미술을 하냐,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미술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은 시각이 없는 대신 다른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고,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느 날 그녀는 캄보디아의 들판을 걸어가는 코끼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최초로 우리나라에 왔던 코끼리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코끼리는 조선 태종 때 일본에서 진상된 인도네시아 코끼리였다. 기후도 먹이도 맞지 않으니 코끼리는 조선 땅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사람을 두 번이나 밟아 죽였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세종은 코끼리를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보내어 병들고 굶어 죽지 않게 하여라."라는 교지를 내렸다.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떠돌며 외롭게 살았던 코끼리에게서 외롭고 소수자인 존재를 만났을 때의 교감을 느꼈다. 그 교감은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직접 코끼리를 만지며, 커다란 대상을 통해 상상력과 크기 감각을 키우고 다른 생명체와 정서적으로 교감한다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사육사의 도움으로 코끼리를 만지는 맹학교 아이들 출처: https://www.saveelephant.org/news/the-art-of-touching-an-elephant/

 

  하지만 프로젝트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러 동물원 관계자들이 여러 사람들의 낯선 손길에 코끼리가 당황해서 아이들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나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이겠지만 코끼리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코끼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러나 이미 코끼리 체험 프로그램이 있으니 와서 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도움을 준 동물원 사람들이 있었다. 수의사들과 조련사들의 도움과 배려로 아이들은 코끼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전에 전시된 맹학교 학생의 작품, 코끼리의 긴 코가 강조되어 있다. 출처: https://blog.naver.com/openkaab/20113302004

 

 

  코끼리를 만져본 뒤 아이들은 자신이 느낀 대로 코끼리의 모습을 표현했다. 코끼리의 긴 코만을 강조한 아이도 있었고, 자기가 만진 순서대로 코끼리의 각 부위를 수평으로 늘어놓은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만든 코끼리들은 코끼리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지만, 코끼리의 기존 이미지에 의지하지 않았기에 코끼리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보이는 나로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고, 각자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표현함으로써 좀 더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소통에 미술이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데서 미술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함께 코끼리를 만지고 느끼고 상상하고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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