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페르세폴리스 1~2 세트 - 전2권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포함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보여주는 유적 페르세폴리스에서 볼 수 있듯이,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화려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륙의 길목에 위치한 탓에 숱한 침략과 전쟁을 겪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강대국들의 간섭과 국왕의 독재에 시달렸다. 1979년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의 혁명으로 독재 왕정은 물러났지만, 이듬해 이란의 혁명에 위기감을 느낀 이라크가 침략해 8년 동안이나 전쟁이 계속되었다. 혁명을 주도했던 이슬람 세력은 독재와 이슬람 근본주의로 사람들을 억압했다. 이란 출신의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만화로 그린 그녀의 성장기가 이 책 『페르세폴리스』이다.


마르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신과 마르크스


  지식인 부모님을 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마르크스의 책을 읽어온 마르잔은 마르크스의 열렬한 신봉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무함마드의 뒤를 잇는 신의 마지막 예언자라고 믿고, "모든 사람들이 좋은 태도를 갖고, 고운 말을 쓰고, 좋은 행동을 하며, 가난한 사람도 매일 통닭 한 마리씩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는다. 어린 나이에 자신을 빛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꿈을 가진 마르잔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들도 매일 통닭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어느 할머니도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소망은 어린아이다워서 귀여웠다. 

아누쉬 삼촌의 감방으로 면회를 온 마르잔.


  그러나 순수했던 마르잔의 삶도 이란의 현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르잔을 유난히 예뻐했던 혁명가 아누쉬 삼촌은 반정부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다. 아누쉬 삼촌이 처형된 뒤로 마르잔은 신에 대한 믿음도, 신의 마지막 예언자가 되겠다는 포부도 버린다. 이렇게 마르잔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복장이 이슬람 규율에 맞는지 검사하는 종교위원회. 그들에게 걸린 마르잔.


현실에서 억압당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펑크 음악으로 푸는 마르잔.


 독재 왕정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줄 알았던 이슬람 세력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독재로 사람들을 숨막히게 억압한다. 특히 여성은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이 조금만 삐져 나와도 제재를 받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억압을 받는다. 저항 정신이 강한 마르잔으로서는 더더욱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마르잔은 외국의 펑크 음악을 통해 답답한 마음을 푼다.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와즈다'에서도 주인공 소녀 와즈다는 빡빡한 이슬람 규율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외국의 팝 음악을 들으면서 푼다. 까만 히잡과 차도르로도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은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펑크 족 친구들과 어울리는 마르잔


  1권은 이렇게 마르잔이 14살 때까지 독재와 억압으로 가득한 이란의 현실 속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권에서 14살이 된 마르잔은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독재도 이슬람 근본주의도 없는 유럽에서 마르잔은 펑크족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마르잔은 이방인일 뿐이었다. 마르잔은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소외감에 시달리며 방황한다. 어딜 가도 마르잔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자유롭되 외로운 곳에 남겠는가, 자유롭지 않되 외롭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겠는가. 마르잔은 후자를 선택한다.



  몇 년만에 돌아온 고국은 여전히 이슬람 정권의 억압 아래 있었다.  미대 실습 시간에도 이슬람 율법 때문에 누드모델을 쓰지 못하고 차도르를 뒤집어쓴 모델을 그려야 했다.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을 조금만 보이는 것도, 검고 긴 옷소매 밖으로 팔목이 보이는 것도. 외국 음악 테이프를 갖고 다니는 것도 잡아갈 구실이 되었다. 마르잔은 깨닫는다. 일상생활의 작은 곳까지 파고드는 억압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두려움은 사람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그래서 두려움은 모든 독재 체제에서 억압의 원동력이 되고, 머리카락을 보이거나 화장을 하는 것 같은 작은 행동도 두려움에 맞서는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런 작은 저항으로 마르잔은 이슬람 정부와 사회의 억압에 맞선다.

마르잔과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


  마르잔이 이런 어두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게 한 버팀목은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지지였다. 가족들 중에서도 특히 마르잔의 할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마르잔을 격려해 준다. 마르잔이 첫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할지 말지 고민하자, 자신도 이혼 경력이 있는 할머니는 "첫번째 결혼을 해 봤으니 두번째 결혼은 더 잘 할 수 있다"며 마르잔을 다독여 준다. 1980년대 이슬람권에서 이혼 경력이 남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여성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할머니가 있었기에 마르잔도 자신을 둘러싼 억압에 당당하게 맞서며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폭력과 억압이 가득한 혼란스러운 이란의 역사 속 마르잔의 성장기는 씁쓸하다. 하지만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마르잔의 용기와 신랄한 유머감각은 독자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한다. 또한 마르잔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는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화려하게 꾸며지지 않고 흑백의 색채와 단순한 선만으로 이루어진 담백하고 날카로운 그림체만으로도, 작가는 신랄한 유머와 날카로운 비판, 따뜻한 인간애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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