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제6회 무명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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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달의 제단은 서안 조씨라는 가상의 양반 가문을 배경으로 가부장제의 폭력이 어떻게 인간을 억압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서안 조씨 가문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진 폭력의 가해자는 가부장들즉 남성들이었고피해자는 여성들이었다주인공 상룡은 남성이고 차기 가부장이 될 종손이지만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입장 모두를 지니는 특수한 입장의 인물이다또한 서안 조씨 집안의 남성들 중에서 유일하게 가부장제의 폭력이 부당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인물이기도 하다작품 안에서 이 특수한 인물이 집안의 가부장적인 폭력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그의 대응이 서안 조씨 가문의 다른 남성들과 어떻게 다른지그리고 그를 통해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TV 문학관으로 영상화된 '달의 제단(2006)' 속 상룡(김영재)의 모습. 상룡은 서자 콤플렉스와 종손으로서의 중압감을 지고 살아간다.


  서안 조씨 집안의 다른 남성들과 상룡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그의 서자 콤플렉스이다상룡의 아버지는 가문이 정해준 배우자 해월당 유씨가 아닌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상룡을 낳았다상룡은 서자이지만 상룡 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이었기에 조부는 어쩔 수 없이 상룡을 종손으로 받아들인다서자인 자신이 종손이라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조부의 냉대와 종손으로서 느끼는 중압감 때문에 상룡은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간다그리고 자신보다 약자인(식모의 딸인데다 다리에 장애가 있고, 추한 외모로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당한다.) 정실을 강간하고 그녀를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또 다른 가해자가 된다가부장제의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상룡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가부장제의 폭력이 어떻게 대물림되는가를 보여준다.


TV 문학관 '달의 제단' 속 정실의 어머니 달실댁(사미자)과 정실(황정민). 두 사람은 상룡에게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애정을 쏟는다.


  그러나 작품 속 두 가지 요소로 인해 상룡은 다른 서안 조씨 집안의 남성들과 폭력에 다르게 반응하게 된다그 첫 번째 요소는 선산을 이장하다 발견된상룡의 10대 조모 소산 김씨가 남긴 언간(諺簡)이다언간을 해독하라는 조부의 명으로 상룡은 언간을 읽게 된다처음에는 친정할머니에게 시댁에서의 일상을 전하는 평범한 문안 편지인 줄 알았던 언간은 서서히 서안 조씨 집안의 추악한 진실을 드러낸다두 번째 요소는 상룡을 향한 정실의 사랑이다정실을 억눌린 분노와 욕구를 해소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상룡은 자신을 향한 무조건적인 정실의 사랑으로 인해 자신도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상룡의 10대 조모인 소산 김씨(이연경), 그녀가 남긴 한글 언간을 통해 상룡은 가문의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던 두 가지 요소는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하나로 얽히며 상룡에게서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분노와가부장적 폭력의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이끌어낸다바로 정실의 임신이다정실의 임신으로 상룡은 자신의 혈육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조부에게 그 사실이 발각되어 정실과 아이 모두 빼앗기게 된다그 때 상룡이 읽은 마지막 언간의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었다남편을 잃은 소산 김씨는 가문의 유일한 희망인 아이를 낳았지만불행히도 아이는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이에 소산 김씨의 시부는 갓 태어난 손녀를 짓밟아 죽이고 먼 친척의 아이를 데려와 소산 김씨가 낳은 손자로 위장한다앞으로 8만 8천 번 윤회하더라도 나무나 돌로 다시 태어날지언정 무엇이든지 암수 나뉘고 어미가 새끼 낳는 것으로는 다시 나지 않겠다(p. 271.)”는 소산 김씨의 마지막 절규는 상룡을 얼어붙게 만든다. “나는 언간에 매몰되었다나와 내 핏줄의 몸뚱이를 짓밟는 거대한 짐승의 발길아무런 저항 없이 바스라지며 여린 골격이 내뱉는 파쇄음뭉그러진 달팽이의 잔해를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력한 자의 공포그 모든 감각들은 의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p. 272.)” 상룡은 친조부에게 짓밟혀 죽은 소산 김씨의 딸과 조부에게 빼앗긴 자신의 아이를 겹쳐 보면서 가부장적인 폭력의 희생자인 소산 김씨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서안 조씨 가문을 이끄는 수장인 상룡의 조부(오영수).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매몰되어 진실을 외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간의 진실 앞에서 상룡은 조부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조부는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에 매몰되어 진실을 외면한다하지만 상룡은 가문의 추악한 진실수백 년을 이어온 폭력을 직시한다자신과 자신의 혈육이 그 폭력의 대상이 되었을 때 여인들이 느꼈을 무력감과 아픔을 처절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상룡은 언간을 불태워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조부를 막으려다 효계당에 불을 내게 되고조부와 함께 효계당에서 목숨을 잃는다.

  상룡과 조부 모두 효계당과 함께 불타는 결말은 비극이지만효계당에서 이어져 오던 가부장적인 폭력의 종말을 뜻한다상룡이 언간과 정실과의 사랑을 통해 폭력의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공감했기에 수백 년을 이어온 가부장제의 폭력을 끊을 수 있었다이 소설은 폭력은 강하지만 공감과 사랑으로 그 폭력을 끊어낼 수 있다고 절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나는 언간에 매몰되었다. 나와 내 핏줄의 몸뚱이를 짓밟는 거대한 짐승의 발길, 아무런 저항 없이 바스라지며 여린 골격이 내뱉는 파쇄음, 뭉그러진 달팽이의 잔해를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력한 자의 공포. 그 모든 감각들은 의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p.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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