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슭에 선 사람은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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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일까?

인간은 생각, 행동, 언어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결정을 짖는것이 아닐까, 물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러함을 따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로써 우리 내면에 자리한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은 변함없이 확고한 고정관념처럼 자리하게 되고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없는 눈꺼풀을 스스로 쓰고 있는것은 아닐까 싶은 궁금증도 생긴다.

사람의 생각, 행동, 언어는 무수히 많은 상황과 현실을 마주하면서 달라지기 마련인데 왜 우리는 그 사람의 한 단면만을 보고 마치 그것이 그사람의 전부인 양 고착화 시키는지 모를 일이다.

인간을 구분하는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서도 가볍게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그러한 분류의 기준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현자들의 생각을 미쳐 쫒지 못하는 나의 생각으로는 나와 타자에 대한 생각에 그러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너, 네가 알고 있는 나는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는 본질에 다가서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강기슭에 선 사람은" 은 나,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그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내면의 모습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해 독자들의 일상과 비교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연인인 기요세와 기요타, 어느날 기요타가 사고를 당했다고 전해 들은 기요세는 연인의 집에 들러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연애편지 형식의 글을 읽게 된다. 

기요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의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는 기요세의 마음을 놀라게 한다.

지금껏 자신이 알던 기요타의 모습이 아닌, 연애를 하면서도 가족의 이야기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저어하던 기요타의 모습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고, 함께 사고를 당한 친구의 연인은 또다른 기요타의 모습을 보게 한다.

친하다는 친구와 싸우다 다리에서 굴렀다는 이야기 등 자신이 지금껏 보아 왔던 기요타라는 존재와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과연 기요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러한 부분을 현실로 빌어 오면 나, 우리와 관계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인식에 있어 우리 역시 그 사람의 일부분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요세와 기요타의 관계는 사랑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마무리 지어질까? 아니면 새로운 시선으로 또다른 전개가 펼쳐질까? 하는 궁금증으로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몰입감이 맛있는 음식을 눈 앞에 두고 느끼는 감칠맛과 같은 느낌으로 전해진다.

나, 우리와 알고 있는 어느 존재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더하여 그러한 타자의 비밀에 쌓인 진실한 모습을 알아야 한다는, 즉 진면목을 보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귀결되며 세상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 등에 대해 일정부분의 개연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염탐하게 한다.



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닌것 일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은 타자 역시 나를 이해하고 인식함에 있어 같은 방식으로의 인식이며 표면적으만 볼 수있거나 보이는 사실에서 진실이 감추어진 내면을 꿰뚫어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저자는 책의 제목 '강기슭에 선 사람은"을 그러한 비유로 선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강 기슭에 있는 사람이 강 바닥에 있는 돌들의 수나 모습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걸 알수 있으려면 직접 강 바닥으로 잠수해 들어가 보는 수 밖에 없는 일일 터, 인간관계의 내면적인 부분에 촛점을 맞춰 타인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시선으로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식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현실의 나, 우리가 겪는 인간관계의 표면적인 부분에 머무는 시선을 꼬집어 변화를 촉구하고자 하는 진정성 어린 저자의 바램이라 말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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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청춘 청춘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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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서른 다섯, 다자이 오사무는 서른 여덟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왜 일까? 왜 천재적인 작가들은 하나 같이 모두 단명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에 생을 마감한다 밝혔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은 자기 존재의 증명에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는 대지주 쓰시마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그야말로 졸부인 아버지와 가문에 대한 경멸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환경을 배척하지 못한 채 유익하게? 활용하는 모순된 삶을 통해 성장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다자이 오사무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소설가 였음을 생각해 보면 다자이 오사무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더우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세상을 염세주의적으로 보는 경향성을 가진 터에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던 다자이 오사무로서는 자기 삶의 환경에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의를 확립하지 못한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욱 퇴폐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유머러스한 작품이 존재하는 등 폭 넓은 창작의 범위를 보여주지 않는가 추정할 뿐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X 청춘과 마찬가지로 다자이 오사무 X 청춘에 대한 작품만을 골라 출판한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다자이 오사무 X 청춘" 은 12편의 단편 모음집으로 꾸며져 있으며 파란만장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삶을 목도할 수 있는 좌익활동과 약물중독, 두 번의 결혼과 여덟 번의 자살시도, 문단에서의 비판과 자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미완성에 따른 고통 등을 보여준 인물이 청춘에 대해 어떤 의식으로 조명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인간실격>에는 어쩌면 작품에서 말하는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는 독백조의 말이 주는 의미가 현실 자신의 실체가 걸어 온 길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자기 삶의 모순성에 대해 비관하고 더욱더 퇴폐적인 삶, 인생으로 빠져 들게 된 근원이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조건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말하는 청춘에서의 키워드는 청춘의 존재자, 바로 청년이다.

청년은 물오르는 싱싱함과 건강함과 죄충우돌하는 모습, 치기어린 모습으로 보여질법도 하지만 오사무의 시각에서는 그러한 모습들 중에 방황과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고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음과 동시에 청춘의 시기를 부끄럽게 여길 수도 있는 개연성을 소설들의 의미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가 밝히고 싶었던 현실 세계에서 비롯된 오해, 또는 풍문과 편견에 쌓인 사람들의 의식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 나, 자신의 부끄러운 의식과 행위에 대한 성찰적 시선이 오롯이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을것 같다.



일상화 또는 일반화된 청춘의 표상으로의 모습을 우리는 청춘의 특유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가 본 청춘의 일반적인 모습과 우리가 바라 보는 청춘의 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혀지게 될 수도 있지만 통섭적인 의미를 부여해 본다면 인간적인 정체성으로 접해볼 수 있는 상처받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등 미숙하고 그 미숙함에 아파하는 나약한 청춘들의 실체를 오히려 목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다자이 오사무 X 청춘이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X 청춘이나 한결같이 그들이 청춘을 노래하는 의미가 무엇이라 느껴지는가?

현실을 사는 나, 우리 역시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거나 보냈을 터이고 보면 그들이 보여주는 청춘을 통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될 세계에 대해 상처받고 아파하는 청춘이기보다 위로와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이 아닐까 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

왠만한 책들은 소장에 대한 의미를 갖지 않지만 독특하게 짜여진 케이스와 청춘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미를 피력한 두 작가의 청춘서에 대해 공감하며 독자들의 일독과 소장을 권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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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청춘 청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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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그야말로 한창 청춘이라 할 나이인 35살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한 작가이다.

오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나쓰메 소세키 등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하지만 일본 근대문학의 정점이라 지칭하는 존재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 하겠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거개가 근대적 산물의 작품들이라 여길 수 있고 단편에 속해 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은 마주할 기회가 마땅치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의 작품이 그 자신의 생애를 대환한 작품으로 느껴지게 될 수도 있겠다.

35세면 청년의 청춘을 지나 중년기의 청춘에 접어드는 시기에 이르는 시점이라 삶에 대한 다양한 느낌을 조망할 수 있었을 터이고 보면 그러한 시기에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 일은 적잖히 그의 작품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판단 했을지를 짐작케 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 중 청춘을 테마로 한 작품들만 골라 수록한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X 청춘" 은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생애만큼이나 짧은 단편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12편의 소설들은 모두 '청춘' 이라는 테마를 갖고 있어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느끼는 우리의 청춘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향한 경향이 대부분 어둡고 암울하며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부분들을 인간 내면의 이기심과 모순된 심리 등으로 세상을 염세주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관점을 다분히 느끼게 한다.

염세주의는 비관주의라고도 하며 세계 자체를 불합리하고 비애가 가득찬 곳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이나 꿈과 같은 것들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생각하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적 관점이 그의 작품속에서 드러나는 것을 몰입도 있게 읽은 독자는 느낄 수 있을 것이나 이번에 출판 된 '청춘'을 테마로 한 작품들에서는 색다른 시선들이 더해져 눈에 들어온다.

'짝사랑' 은 누군가의 짝사랑을 듣고 또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하는 류의 서사와 '게사와 모리토' 는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하지만 성적 욕망과 애증의 서사를, '귤' 에서는 화자의 행동이 만들어 내는 따듯함에 대해 목도할 수 있는가 하는 등 다양한 관점과 시선들이 우리를 그의 염세주의적 경향성에서 건져올려 청춘만의 특유의 빛깔과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방종과 자유분방함이 그 특유의 성질이라 여기지 않을까 싶지만 그 또한 사람마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청춘들에게는 무엇을 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고민으로 삶의 여운들이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일들은 왠지 모를 불안함으로 늘 나, 우리를 옥죄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게 된다.

마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쓴 유서에서 처럼 어떤 특정한 사유라기 보다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이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결과를 배태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면 적어도 그가 바라 본 청춘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포착되고 그의 작품 속에서는 또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조하며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이 느끼는 청춘, 그가 생을 마감하며 전하고자 했던 청춘의 단말마가 오늘의 우리 현실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터에 우리의 청춘들은 과연 어떤 마음, 어떤 의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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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 상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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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말이 누가 왜 한 말인지를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이들이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1592년 임진년에 발생한 임진왜란은 조선의 허약함을 고스란히 보여준 전쟁이었다.

아니 전쟁이라기 보다 그냥 복싱 선수가 샌드백을 치듯 일방적인 점령수순이 벌어진 전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착하기만 한 우리 민족의 성품이 어쩌면 더욱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치는 근거로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조선과는 달리 일본은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빠른 개화와 발전을 거듭해 자신들에게 은혜를 배푼 나라에 뒤통수를 치는것도 모자라 살육의 전쟁까지 벌인 나라로 변신했다.

수 많은 임진왜란과 관련한,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도서, 영화 등이 난무하지만 정작 이충무공전서, 난중일기 등을 올바르게 읽어본 기억이 나 역시도 없는것 같아 부끄러움이 앞장서기에 호국의 달을 맞이해 특별한 기회로 만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토로한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를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는 저자의 임진왜란에 대한 포괄적 서사를 통해 그 당시 조선의 상황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독백 스타일의 스토리텔링으로 역사의 굵은 흐름에 대해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시중에는 이미 많은 난중일기 소설이나 기록물로의 서적들이 출판되어 있다.

저자는 그러한 서적들과 차별화를 두고자 이순신장군의 해전사에 대한 전쟁 뿐만이 아닌 임진왜란 발발 시의 전국적인 전쟁으로의 다양한 전투를 함께 실어 임진왜란에 대한 통찰을 꾀하고 있어 무척이나 그 스케일이 장대하고 세밀하다.

우리가 알고 있듯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워 조선의 땅을 밟고자 했고 동래부사 송상헌은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즉,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비켜 주기는 어렵다는 말로 불꽃 뛰는 전쟁터의 상황을 예상케 한다.

어쩌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 한 기시감에 쌓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장수들의 도망이 비일비재하고 그에 따라 소민들의 피해는 말할 수 없는 지경으로 드러난다.

더구나 다른 나라의 역사도 아닌 나, 우리나라의 역사속 인물들의 행보에 희희낙락할 수 없는 입장이고 보면 읽던 소설을 집어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전쟁이라 인간적인 도덕과 윤리가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쟁을 돕기 위해 달려 온 명군이 재물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배고픈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 먹고자 하는 상황으로 치닫는 일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연준다.

장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격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가 하면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고자 하는 그의 충심어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 효자로 소문난 이순신은 자식의 도리로서의 효도를 어머니에게 실천하며 안과 밖의 모습이서 허투루 사람을 대하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장군을 돌보는 다모 예화와 이순신의 사랑은 지금껏 처음으로 들어보는 이야기다.

이미 있었던 이야기겠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이순신 장군 관련 책자들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것 같아 부끄러움이 앞선다.



소설은 임진년(1592년)의 정월 초하루 1월 1일을 기점으로 시작하며 상, 하권으로 분리 된 두 권을 통해 정유재란(1597년)과 장군의 죽음에 이르는 1598년 11월 19일까지의 장군의 일기체 형식으로 진행되는 임진왜란의 전체 아웃라인과 그 세밀한 내막을 함께 통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최애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 아니던가, 그런 그의 충성심과 효심은 오늘을 사는 나,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다양한 관점으로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임진왜란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지만 더 많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우리의 영웅 이순신이 가진 12척의 배를 조명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껏 갖게 된다.

국뽕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러한 국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 우리는 없었다 생각할 수 있으며 저자의 오랜 시간의 집필이 빚어낸 재미와 감동은 적잖히 호국의 달을 맞은 지금 충무공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한다.

매우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스토리로, 더구나 장군의 독백처럼, 일기체 형식으로 전하는 그의 구국의 염을 가슴 가득 진하게 느껴본다. 독자들의 일독, 아니 다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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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을 거니까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천수를 다한다
와다 히데키 지음, 오시연 옮김 / 지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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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세상은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분명코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목과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나 꿈이 있을까? 아니 있다고 한들 어차피 죽을꺼니까 꿈과 희망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현실을 열심히 살아야 할 까닭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이 가질 법한 그러한 의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일, 아니 오늘 죽는다 해도 인간은 꿈을 꾸고 희망을 가꾸고 행복을 누리길 원한다.

어차피 죽을껀데, 그게 왜 필요해라고 강변한다면 그럼 살지말고 바로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자책조의 의식이나 생각이라기 보다 우리의 먼 미래에 다가 올 죽음이라는 절대적 상황을 맞이 하기까지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역설적인 의미를 내포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나, 우리는 어차피 죽을꺼니까, 나,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금 현재의 나, 우리의 삶의 행복을 누리길 바라마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목에서 캐치할 수 있다면 적어도 자조적이고 궤변적인 의식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마는 그런 삶은 살지 않으리라고 본다.

삶과 죽음 역시 나,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인과관계의 법칙이 적용된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 어차피 죽을꺼지만 그때 까지는 나,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책 "어차피 죽을꺼니까" 는 일상적으로의 삶을 사는 나, 우리에게 죽음은 아주 먼 나라의 타인에게나 어울릴 법한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불지불식간에 나, 우리에게 다가 선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기보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은 어차피 죽을 꺼니까,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건 누구나 똑같은 공평하고 평등한 일이니까 지금의 나, 우리는 그러한 죽음과의 대면을 하기 전에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 있을 때 나, 우리가 하고 싶었던, 하고자 했던 수 많은 일들, 바로 꿈이자 희망으로의 일들을 과감하게 도전해 보라고 전하는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그려주는 책이다.

무릇 삶은 죽음과 얼굴만 다른 쌍둥이라 했다.

그러하기에 삶의 매 순간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마뜩치 않은 일이겠지만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살아가며 죽음을 맞닥트리게 되는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 아니던가 싶다.

죽음을 목도하거나 대면하게 되면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나, 우리의 삶에 대한 진정성이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일이고 그러한 진짜 나다운 삶, 인생에 갈증을 느끼게 되는 일은 죽음이 가져다 주는 삶의 찬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삶을 살아가며 그렇게 진정성 있게 나, 우리 자신을 대하고 생각하며 평가했던 적이 있던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우리에게 최상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마법의 말들을 풀어내고 조언해 주고 있다.



현실을 사는 나, 우리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부질없는 대상이다.

오로지 현실의 지금이야 말로 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기에 지금 나,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더구나 젊음을 가지고 있을 때와 나이들어 늙음을 맞이 했을 때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이들면 괜시리 서럽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에 대해 젊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세월의 흐름앞에 장사가 없듯 나 역시도 나이를 먹고 늙어감에 따라 그러한 서글픔 어린 생각들이 넝쿨처럼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기분에만 빠져 있기에는 지금이 너무 아쉽다.

젊은이는 젊음을 낭비할 수도 있는 특권이 있을지 몰라도 늙은 사람은 지금의 순간을 나, 우리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그러한 일은 삶을 놓아버리고 어차피 죽을꺼지만 그 죽음을 한 발 더 앞당길 수 있는 기회의 끈을 잡는것과 다를바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삶을 낭비할 까닭도 없으며 어떻게든 죽음과 하이파이브 하기까지는 건강한 노인으로 존재하는 일이 지금 현재의 나,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최상의 과제를 위한 도움을 위해 저자가 전해주는 마법의 말들을 귀담아 듣고 실천하는 나,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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