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으로도 역설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문구라 할 수 있다.

죽음 잎에 소중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지킨다 한들 과연 죽음이 소중함을 지켜줄 보호자도 아니고 보면 다분히 죽음이 묻는다는 말의 의미는 죽음 그 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라 죽음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삶을 은유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도 된다.

삶의 완성이 죽음이라 했다는 어느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삶이라는 자체를 죽음으로 향하는 '죽어감'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해보게도 된다.

그러한 죽어감이 우리에게 묻는다는 의미라 생각하면 제목이 주는 의미를 십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삶을 삶이라 하지 않고 죽어감이며 종국에는 죽음과 맞물려 있는 존재로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소중함과 갖가지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모자랄 그 무엇들에 대한 희구는 그저 삶의 장식품 처럼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소모적 감정의 잔재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들기도 한다.

죽어감에 대한 의미를 통해 삶의 의미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저자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죽음이 물었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는 인간은 삶과 죽음이 맞물린 과정속에서 삶 속에 유영하듯 애착을 갖는 존재로 삶이 비춰주는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언제까지고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하는 무지를 갖고 있으며 그러한 우리는 삶에만 애착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죽음 역시 관심과 애착을 가져야 할 부분임을 깨닫게 해주어 우리의 삶에 대한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완화의료 의사가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의 단상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죽음은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절대적 법칙이다.

경험이라는 말도 살아 있으며 체험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음을 뜻하고 보면 죽음은 해당사항이 없는 경험이 될 뿐이다.

호스피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완화의료 등 알 듯 모를 듯 한 의미가 꼬리를 물고 궁금증을 일으켜 끝끝내 완독을 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 활동.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과 시설을 뜻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안락사를 시키는 존재로 기억하고 있어 저자의 말처럼 다수가 믿고 있는 '정상적인 것'을 뒤집어 볼 필요성을 느끼게도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계의 대모이며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심리적 단계를 제시했는데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이라는 5단계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완화의료는 호스피스가 시설이나 간호를 돕는 인물이라 생각하면 그들이 하는 일, 업무로의 행위가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고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의료체계를 일컷는다.

저자는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 특히 통증을 완화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의학이라고 설파한다.


인간은 혈기왕성하게 움직이는 시기에는 병에 걸리거나 아파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여력이 나이들어 병에 걸린 사람들 보다는 월등히 높다.

하지만 나이듦이라는 건 죽음과 조우할 날이 상대적으로 가까워 지고 있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관리를 부실하게 한다면 좀 더 빨리 우리는 죽어감으로 둔갑하게 되는 삶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100세 시대에 삶을 강조해도 모자랄 판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있다고 혹자는 지청구를 날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시간은 쏜 살 같다.

쏜 살이란 쏘아진 화살과 같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화살이 얼마나 빨리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듯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우리는 빠르게 늙어간다는 의미이며 죽어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하듯 인간의 삶이자 생의 시간은 허투루 낭비할 시간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산다면 어느 누군가는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누리며 천천히 죽어감을 만끽할 수 있는가 하면 자신은 초라하게 빠른 죽어감으로 스스로에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주장한 죽음의 5단계를 실감하고 있을지모 모를 일이다.

저자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생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꾀하게 하는 저자는 마지막이라는 죽음의 순간에 누릴 수 있는 좋은 마침표에 대한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 생각된다.

존엄한 죽음, 그러한 죽음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움주는 완화의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출 수 있고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느껴볼 수 있어 좋았던 책이라 기억하고 싶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클래식 8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정영훈.김세나 옮김 / 메이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역사는 돌고 돌아 그 자리라는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왜냐 하면 수 천년을 이어온 인간의 역사이지만 인간의 삶이 배태한 다양한 삶의 지혜들이 켜켜이 쌓이 고전들 속에 녹아들어 있고 우리는 그러한 고전들을 통해 삶의 지혜를 자신만의 양수로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받아들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새로운 모습으로의 사상이나 시대적 산물들을 생성해 내기에 같지만 다른 인간의 모습을, 다르지만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함께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유명인이자 지혜로운 인물, 철학자이자 사상가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영향력을 받은 존재이기에 돌고 도는 관계라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어른들이 하는 말처럼 '그 나물에 그 밥' 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인간사가 아닐까 하지만 인생론을 두고 말하는 익히 아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인생에 격한 감동과 공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한 인생론의 유의미한 지혜를 들려주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수업" 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쇼펜하우어, 니체, 처칠, 파바로티 등의 인생에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로 그의 직설적 표현력에 따른 인생론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의 항로를 바꾸고 변화할 수 있게 해준 인물의 인생수업에 대한 내용을 담아낸 책이다.

인생수업? 어느 누구의 인생이건 모두가 자신만의 인생이기에 특별하다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이기적인 사상이지만 함께 사는 세상 속에서의 인생론은 혼자만의 그것과는 또 달라야 함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세상사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표명하기 보다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호불호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숨기고 뒷통수 치는 인간들 보다는 월등히 정의롭다 판다할 수 있다.

고차원적인 화답이 아니라 세속적인 표현으로의 지혜들을 쏟아 내기에 어쩌면 염세주의적 성향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부분이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니체는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관점주의를 지향하며 형이상학적 철학자로 그 역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에 대한 통찰의 영향력을 받았다고 한다.

정치가인 처칠이나 성악가인 파바로티 역시 각기 개인으로의 인생론에 대한 변화의 동기부여를 저자의 인생론을 통해 개척할 수 있었음이고 보면 그의 인생 수업에 대한 지혜로움을 우리의 삶, 인생에도 적용해 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을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시대의 나, 우리에겐 꽤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동인이 될 것이라 판단해 본다.


저자의 직설적인 인생수업의 한 예를 들어 보자.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미덕과 조심성을 갖추는것 외에 행복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지혜로움만큼 행복하고, 자신의 어리석음만큼 불행하다" (page 22)


이와 같은 직설적 표현은 삶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설파한 톨스토이의 무엇에 대한 함의가 아닌 행복하기 위한 지적인 충족 욕구를 직시하고 있어 '인간은 어떻게 행복해 지는가"에 대한 방법론적 서설을 떠올려 보게되 한다.

그런가 하면 한 번뿐인 인생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보자.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도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썼고, 때로는 풍요로운 것애 추한 것을 곁들여 놓았다.

세번째 여행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보내라, 마지막 여행은 철학하며 사는 것이다." (page 29)


위 문장 역시 마찬가지로 마지막 인생으로의  여행은 철학하며 살라는 주문이 바로 지적 욕구에 대한 오마주를 뜻한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하듯 노년의 삶이, 인생에 깃든 철학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인간의 오랜 역사, 지혜가 되었음을 살피고 보면 우리 역시 그러한 존재들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수 없이 많은 인생 수업들이 존재한다. 각자의 상황이나 마음에 따라 받아들여질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진한 밑거름으로의 자양분이 될 수 있고 변화의 태동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해보게 된다.


**네이버 카페 북뉴스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짓는 생활 - 농사를 짓고 글도 짓습니다
남설희 지음 / 아무책방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언가를 짓는다는 것은 과정으로으 행위를 통해 결과로의 무엇을 탄생 시키고자 하는 일과 같다.

어쪄면 농사를 짓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어 이 씨앗이 살 것인지 아니면 죽을 것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으로의 행동이 바로 짓는 행위와 같다고 본다면 씨앗이 발아하고 싹을 틔워 줄기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농부의 짓는 행위에 대한 결과에 다름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 놓고 보니 작가 역시 작품을 쓰면서 이 작품이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아닐지를 가늠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작품을 써나가기에 그 역시 짓는일과 다를바 없다 하겠다.

그렇게 자신의 글쓰기에 자신없어 하고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가슴 졸이던 작가의 일상의 조각들을 기록한 에세이를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오늘도 짓는 생활" 은 농사를 짓고 글도 짓는다는 작가의 짓는 것에 대한 바램을 담아 독자들에게 일상에서 부는 따스한 바람의 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백일장 출신의 작가, 상 받으며 쭈볏쭈볏 하는 느낌은 저자만의 느낌은 아닐것 같은데 저자는 유독 그러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는것 같다.

어쩌면 저자 스스로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순수하다는 느낌도 동시에 가질 수 있어 신선하다는 느낌으로 전이된다.

특히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책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터라 흐뭇한 웃음을 입가에 흘려본다.

작가는 아무나 하나? 하는 조금은 우스개 소리처럼 들릴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부정적 의식 보다는 긍정적 의식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 속에 그러한 부분들이 많이 반영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도록 장치해 두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긍정의 에너지는 거의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과 같은 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글을 읽고 보며 글을 짓는 마음이나 농사를 짓는 마음이 허투루 물 새듯 흐르지 않고 단단함으로 빛을 발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함은 이미 자기 안에서 정제되고 넘쳐 품어져 나온 무언가를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겸양적 자존심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해본다.

나는, 우리는 저런 마음으로 글을 농사를, 타인과의 관계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마주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한 나, 우리를 만나게 됨을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것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라 했다.

시작이 어설프다면 신선함으로 바라보면 될 일이고 너무 오래되어 낙후된 느낌이라면 연륜에 의한 중후장대함으로 느껴보면 될 일이다.

즉 관점의 차이이며 통찰의 서사를 실현해 볼 수 있는 마중물로의 작품들이 차고도 넘치기에 저자의 짓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 우리의 삶, 인생을 짓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쿠시마 - 일본 원자력 발전의 수상한 역사와 후쿠시마 대재앙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폭발 사고가 터졌다.

원자의 가속화를 통해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것이 어떠한 재앙을 가져올지는 사실 지나고 보니 알게 된 일이라 하겠다.

이미 우리는 지구상에서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의 7등급 대형사고를 겪었다.

안전하다고 생각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에너지 생산 기반이라 생각했던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은 상상 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어떤 건물보다 안전확보를 위한 설계를 더해 지었던 원자력 발전소의 안위도 결국은 진도 8.5 이상의 지진으로 14~15미터 이상의 쓰나미가 발생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쳤고 그 이후는 익히 우리가 아는 바 대로의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 "후쿠시마" 는 인간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으며 자연 현상 앞에 인간은 한낫 부유물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그러면서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가져온 재앙과도 같은 현실을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음이 드러나 더욱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며 후쿠시마 원전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원전 폭발이 가져온 복합재난으로의 여파를 살펴보는 일 까지를 담아 독자들에게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책이다.

일본의 역사에서 원전의 필요성에 대한 수긍이 첫 걸음마 였다면 후쿠시마 원전 건설 시기의 1970년대는 성장의 시대로 완전한 체제를 갖추고자 했으며 이 때 당시 세계 각국에서 운용되는 원전에서의 크고작은 일탈적 사건들이 원자력에 대한 안전성을 의심케 하는 근원이 된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의 폭발사고 이후 전 세계는 원전 폭발사고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점검 및 안정 정책에 대해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미국과 프랑스의 변화에 비춰 일본은 자체적으로 위험이 적다고 선언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고 후쿠시마에서 60km 떨어진 미야기현에서 진도 7.5의 지진이 발생 했을 때는 후쿠시마에 대한 안전 대응책을 강구해야 했지만 외면 또는 무시함으로써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 전조는 이미 커지고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일본의 역사에서 후쿠시마에 대한 필요성을 찾고 후쿠시마 원전의 건설부터 시작해 과정과 안전검사, 대책 등에 이르기 까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두루뭉술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닌 전문서적을 읽는것과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상세하고 세부적인 내용들이 우리를 원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원자력 발전은 세계 각국에서 활용도 높은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방법중의 하나이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이 자연 재해로의 폭발로 인한 재앙이 아니라면 인간의 삶에 매우 유용하고 중요한 에너지 생산체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다량의 원전을 운용중이지만 일본과 붙어 있는 이유로 우리 역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 하기보다 미리미리 안전점검과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만 인간의 삶이 지속될 수 없는 재앙으로의 폭발과 같은 일을 방지할 수 있으리라 판단해 본다.

후쿠시마 원전을 통해 원전이 가진 문제점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 보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며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몰지각에서 인식으로의 지평을 바꾼 계기가 되었음을 전해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의 색채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8
서동욱 지음 / 호밀밭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우리는 겨울을 삶의 양면인 죽음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에 있어 겨울은 극한의 환경을 제공하기에 인생의 암흑기 혹은 죽음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으로의 치환을 하는터라 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그러함을 찾아볼 수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했다. 이미 죽은 자에 대한 더이상의 말은 필요없다.

죽기 까지의 과정과 서사가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행보임을 생각하면 우리는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며 인생의 혹한기인 겨울로의 진입은 각자의 겨울게 대한 단상과 색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인생을 거창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세, 전기세, 수도세, 쌀 값, 연탄 값 등으로 각박한 삶의 환경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느껴지는 인생처럼 그저 아무것도 아닌, 어쩌면 치욕스러운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기에 그러한 인생의 버거움을 던저버리려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책 "겨울의 색채" 는 4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지만 각 소설이 보여주는 화두는 삶과 죽음에의 단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삶에 대한 애착만큼 죽음에 대한 살가움을 느끼지는 못하는것 같다.

느끼지 못하는것 인지 아니면 무감각 한 것인지를 쉽게 알 수는 없다.

직접적인 죽음과의 조우는 자신의 가족의 죽음과 관련 되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부분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활동으로의 경조사 등으로 대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많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느낌을 받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죽음에 대한 의미나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 볼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죽음이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그러한 존재인양 생각하게 되고 자칫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종에 까까운 일탈적 행위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하지만 삶과 대척점에 있는 죽음은 언제 손바뀜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 인생에 드리운 죽음에 대한 그림자들을 형성하는 많은 사회적 불안과 문제들이 건강한 사회를 위한 회복에 있어 죽음이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조망하고 있으며 그러한 죽음을 통해 우리 각자의 개인적인 생애에 드리운 트라우마와 같은 심리적 기제를 발생시킨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앞 뒤면이라 지칭하는 우리로서는 어느게 앞이고 뒤인지는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마치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처럼 삶과 죽음 역시 그러할 진데 우리만의 의식으로 삶의 완성 이후에 죽음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 역시 부적절한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삶의 완성은 죽음이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면 지금 나, 우리는 현실에서 그러한 의미를 깨우쳐 보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하겠다.

죽음에 몰입해 보면 삶에 대한 애착이 더욱더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겨울의 색채로 극한의 환경만을 생각하는 단순함을 벗어나 순백의 세상 또는 나와 타자와의 두터운 연결고리로의 겨울을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의식보다는 삶이라는 끈끈함을 더욱 몰입하게 되는 나, 우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