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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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맨스는 형제를 뜻하는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조합한 신조어이며 남자와 남자 간의 애정을 뜻하는 단어로 우정에 가까운 사랑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성적인 의미를 더하는 섹슈얼적인 의미는 아님을 착각하지는 않아야 하며 일상적으로 쓰이는 브로맨스는 남자들간의 진한 우정과 사랑을 동반한 관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라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하겠다.

그런 브로맨스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이 많이 있지만 세간의 생각과 해석에 달라진 두 인물의 브로맨스는 좀 더 깊이 그들의 당시 상황을 확인, 유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의 현상을 두고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다르기에 그들의 관계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결과 역시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 볼 수 있기에 작가와 미술가로 대별되는 두 인물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어쩌면 여전히 세간에 읽혀진 그들의 관계보다 더 진한 사랑과 우정으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를 관계를 살펴 읽어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오랜 우정의 시간과 서로를 향한 애증의 시간을 그들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와 그들 관계를 변화시키게 된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그들의 관계가 세간의 의식처럼 그렇게 틀어지고 결별한 브로맨스로 끝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유, 자연, 자치를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진보적 법학자의 관점으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책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혼란스런 모습을 고스란히 역사에 재현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포병대위 드레퓌스를 간첩혐의로 뒤집어 씌워 옥살이를 하게 한 사건으로 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내부에 고양된 집권층의 대표적인 인권유린과 간첩조작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프랑스 사회 전체는 극심한 내홍을 겪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진보, 좌파, 공화, 사회주의자들은 드레퓌스의 재심청구를 요청했는가 하면 기득권층인 군부와 로마카톨릭교회, 왕당파는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분열되었고 그 가운데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 는 글을 연재 군부와 카톨릭의 부도덕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에 비해 폴 세잔은 자신의 정신적 성향에 따라 카톨릭의 주장에 동조하며 급기야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브로맨스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세간에는 그들의 결별이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 을 통해 졸라가 세잔을 나쁘게 평가 했다고 전해지는 바이고 보면 무언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명확히 그것이 무엇이고 또 그것을 어떻게 밝혀 낼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그에관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관련 자료를 추적하고 밝혀낼 수 있는 여력을 갖기 어렵다.

저자는 그러한 힘겨움과 잊혀질 수도 있는 일로의 졸라와 세잔의 브로맨스가 결별이 아닌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연으로 이어져 있음을 밝히며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와 당시의 상황들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우리가 놓치거나 잊을 수 있었던 부분을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두 예술가의 생애, 예술적 여정, 개인적 우정을 따라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그들이 상호간에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인지를 십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를 뒤 흔든 거대한 사건임이 분명하지만 그들이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신분을 명확히 했음을 생각해 보면 서로를 향한 불평이나 거부감이 아닌 자연스런 멀어짐과도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은 그들 나름의 예술적 존재감이 드높은 존재로 후세 다양한 예술인들에게 영향력을 미친 창조성이 높은 인물이기도 하며 더우기 졸라는 저항성의 상징적 의미를 작품속에 담아낸 인물로 읽혀진다.

현실에 있어 여전히 그들의 작품을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들의 브로맨스가 그들 작품에 훌륭한 영향력을 미친 근원으로 자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흥미로운 소재이자 사실적인 확인이 무엇보다 귀중한 역사적 브로맨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있어도 그리운 내 친구...그런 친구를 둔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이 부러움을 자아낼 수 있는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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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쩐의 전쟁 -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조선인의 돈을 향한 고군분투기
이한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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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민주적인 나라 였다고?

그 말을 사실이라 믿고픈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 같은데, 지금과 같은 민주적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억울함이나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의식을 피해자가 상소할 수 있었던 사회는 맞다고 볼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며 그 가운데 누군가는 억울하고 불편부당하다 느끼는 일들이 있을 터, 그러함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과거에도 소송을 할 수 있었다니 적잖히 역사를 배워온 나, 우리에게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쩐(錢) 은 흔히 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우리 역사에 숨겨져 있는 무수히 많은 쩐의 전쟁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현대를 살아가며 경제적 자유를 구현하려는 나, 우리에게 반면교사와 같은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조선사에 수 놓아진 쩐의 전쟁사를 쩐에 목매고 사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조선사 쩐의 전쟁" 은 인간사는 세상은 그 어디에서나 돈과 관련된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존재했음을 알고는 있지만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러한 돈의 문제를 해결했을지를 궁금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바, 찬란했던 조선역사에 있어 쩐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돈과 소송의 일들을 마주할 수 있음을 오늘을 사는 나,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아마도 우리는 조선사의 거대 프레임만을 알고 있지 않은가 하는 물음으로 자문자답 해 볼 필요성이 있다.

현실의 삶도 살기 버거워 죽겠는데 이미 지나간 조선사를 알아야 돼? 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우리의 삶은 오랜 과거에서 이어져 온 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삶이며 삶의 환경만 바뀌었을 뿐 삶 자체는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 프레임만으로의 조선사를 허울로 만들지 않고 좀 더 알찬 조선의 역사로 이해하고 지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조선사 쩐의 전쟁, 사람들에게 닥친 돈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한 방법 등에 대해 고찰하고 이해하는 일은 현대를 사는 지금에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문제 해결법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엄연히 신분제와 유교적 가치가 판을 치는 나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돈 앞에서는 그러한 시대적 면모를 벗어난 소송이라는 제도를 통해 돈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나라였음이 분명하다.



현대에 있어서도 소송을 통해 사건과 사고를 해결하는 방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조선에 있어서도 양반, 노비 가릴것 없이 돈에 결부되거나 억울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나라에 호소(소송)해 일의 바름을 잡고자 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소송을 한다 해서 억울함이 완전히 해소된다 말할 수는 없어도 노비가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억울함을 줄일 수 있었던 제도이고 보면 신분제와 유교적 사상으로 세상을 저울질 한 시대였지만 그래도 그 밑 바탕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분수 등에 대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돈을 향한 고군분투, 막장드라마, 이웃간 재산 다툼, 삶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싸움, 세금과의 전쟁 등의 주제를 통해 무수히 많은 쩐의 전쟁을 읽을 수 있고 그저 흘러가고 오는 구전이 아니라 <조선소송실록> 및 다양한 자료를 통해 관련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실질적인 역사이자 사실에 기반한 내용임을 이해하게 된다.

조선이라는 거대 프레임을 두고 그 내용을 하나 하나 채워 나가는 의미는 돈 이외에도 다양하다.

신분제가 그렇고 유교가 그러하며 전쟁이 그러하고 사람들의 삶 등이 그러하다 생각하면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다양한 관계에서 파생하는 쩐의 전쟁을 이토록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드물다 할 것이다.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가 갖는 조선에 대한 고정관념 또는 프레임을 한 꺼풀 벗겨내고자 하는 의도를 충분 히 달성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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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진화 - 변한 것, 변하고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 33한 프로젝트
이권우 외 지음, 강양구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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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관계를 보는 일은 적잖은 자괴감을 갖게 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맺는 관계와 함께하는 일에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생각도 든다.

육십이라는 환갑을 기념한다? 에이, 누가 요즘 환갑을 기념하고 그래, 백세 시대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걸 알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나, 우리이기에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의미로도 의기투합 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이력을 내려 놓고 새로운 무언가를 계획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미를 품어낸다.

산다는것, 누구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리 녹록한 삶이 아니라 생각되며 그러함을 끝내 못견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고 보면 결코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답고 찬란한 그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 가는 행위의 시간의 연속이다.

그러한 행위의 시간의 연속은 바로 진화와 닮아 있다.

진화는 인류의 오랜 삶의 시간을 거쳐 삶이라는 행위가 지속된 과정에서의 변화를 말하지만 교과서적인 진화론을 의미하기 보다 삶 자체를 진화로 의식하는 것이 어쩌며 더욱 바른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 4인의 공저자가 자신들의 삶의 이력을 풀어가며 삶이 진화인 의미를 들려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살아보니, 진화" 는 환갑에 이른 도서평론가. 천문학자. 과학관장, 그리고 그들을 대담 인터뷰 한 진화학자에 이르기 까지 4인의 공저자가 옛날 같으면 50이라는 노후의 삶을, 현대에 와서는 은퇴를 통해 마주하는 삶의 또다른 기회들을 통해 쓸쓸한 모습으로의 노인이 아닌 성장하고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에 대해 각자의 관점을 제시하는 대담집이며 그러한 그들의 인터뷰 내용들을 읽으며 지금의 나, 우리의 노후와 그 삶에 대해 비교하고 도전하는 자세로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책이다.

과거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60은 진짜 애매한 나이임이 분명하다.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가 된 지금 60세는 노인도 청년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의 나이로 지칭된다.

그나마 노인으로 인정 받으려면 10년이 지난 70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때 가서 또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 백세 시대가 아닌 110~120세 시대가 되면 마찬가지로 어중간한 나이에 속할지도 모른다.

공저자들의 우스개 소리같지만 적당히 살았으면 태어난 곳으로 다시 가 주는게 우리에게 내려진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의미로 죽음에 대한 각각의 생각들이 다르지만 적어도 젊은 세대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그들의 자산을 축내는 일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그들만의, 지금껏 소외되지 않고 사회적 지식계층으로 삶을 살아 온 그들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지금도 밥 한끼를 못 먹어 sns를 통해 국밥 한그릇을 염치 불구하고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의 깊이을 헤아려 보기 힘들게 하며 그들이 함께 이야기 하는 삶의 이야기들에 마냥 화답하고 긍정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공저자들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또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 즉 실존적 물음을 통해 인간의 진화적 삶을 이해시키려 한다.

진화 속에는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며 우리는 그러한 반복과 필수적인 과정으로의 삶을 오랜시간 이어오고 있으나 현대에 이르러 그러한 과정이 늘어난 불행함? 이 마치 행복함 인양 둔갑되어 영원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했음을 탄식하게 한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을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에서도 역사상 어떤 인간도 죽음을 선호하지 않았고 삶의 우선순위를 들었음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본질적 목표로의 삶은 내재된 진화의 매커니즘을 완성하려는 프로그램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네 명의 공저자가 벌이는 티키타카적인 시선과 대담들이 자칫 무거운 주제와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는 내용들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살아보니 진화, 그 의미와 깊은 뜻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네 명의 공저자와 함께 하는 대담에 참가해 보는것도 즐거운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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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먼지와 잔가지의 과학 인생 학교 - 과학 공부한다고 인생이 바뀌겠어?
이명현.장대익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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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먼지? 잔가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궁금하다.

이러한 명칭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쓰지 않는 전문가들의 그네들만의 은유적이거나 비유적인 의미로의 무엇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별먼지, 잔가지는 인간을 뜻하는 용어로 천문학자 이명현과 진화학자 장대익이 인간을 비유적인 의미로 지칭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런 인간에게 과학 인생 학교라니 인간의 삶에 과학이 주는 의미를 일컬음일까?

보통의 우리는 과학을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실존적 존재감이 아닌 설명적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며 나, 우리의 과학에 대한 관점을 바꿔 이제는 삶에 도움이 되는 실존적인 의미로의 과학과 인생에 유익한 과학 수업을 하는 교실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삶을 이루는 일상의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도구로의 과학이 아닌 이제는 진정 나, 우리의 삶과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실존적 가치를 지닌 과학에 대한 통찰을 만나 볼 수 있는 책을 읽어본다.



이 책 "별먼지와 잔가지의 과학 인생 학교" 는 도구로서, 설명적 가치의 존재가 아닌 삶에 의미를 준다는 새로운 관점으로의 과학을 이해하고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익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문학자 이명현과 진화학자 장대익의 콜라보로 과학을 통해 인간의 삶과 인생에 유익한 그 무엇으로의 가치를 선 보일 책의 내용들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천문학과 진화학이 인문학의 범주를 넘어 실존적이고 메타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인간의 오랜 역사를 통해 보면 인간에게, 인간의 삶에 위안과 용기를 주는 목록들이 있는 바, 신화, 종교, 이념과 사상, 철학 등 그러한 목록에 과학도 당당히 순위를 매길 수 있으며 좀더 나, 우리에 대해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위안을 제시한다는 내용을 주장 하는가 하면 과학적 세계관, 과학정신, 과학적 태도 등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변화를 부여할 수 있는지, 인간의 궁극적 삶의 목적이랄 수 있는 행복한 삶,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에 과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에 지금까지 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고정관념 처럼 생각해 왔던 과학과 진화의 개념을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 탈바꿈 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무언가를 설명하는데만 쓰이는 과학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과 삶, 인생이라는 과정속에 실존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과학이 라면, 또한 그렇게 나, 우리의 의식이 바뀐다면 적어도 우매한 의식에 사로잡혀 그릇된 행동으로 나, 우리의 삶과 인생을 허비하는 일은 줄어들 수 있으리라 판단해 볼 수 있다.

무수히 많은 질문과 스스로 얻어야 하는 해답들을 위한 검증적 과정으로의 과학의 활용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생각하는 설명적, 도구적 과학이 아닌 실존적 과학으로의 가치는 인간의 삶에 유착된 존재로 거듭날 수도 있을것 같다.



이해라는 말, 이해는 설명과는 다른 의미이다.

설명은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하는 행위이며 이해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말함과 해석의 차이라 할 수 있지만 해석은 종합적 차원의 행위로 인식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과학이 일차적으로 맡아 온 ‘설명(explanation)’이 임무였지만 삶을 ‘이해(understanding)’하고 해석하며 변혁하는 힘을 제시하는 과학에 대한 인간의 기대는 쉽게 만나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행복한 삶, 행복한 꿈, 아름다운 인생 등 다양한 형이상학적 의미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할 수 없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과학은 답을 찾고 연구하며 올바른 해답으로 인간의 삶과 인생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실을 생각하며 통속적 과학론에 머물러 있는 나, 우리의 의식을 이제는 바꾸어 볼 필요성도 있다 하겠다.

저자들의 과학 인생 학교 지론을 읽고 생각하다 보면 삶과 죽음을 함께 지니고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한 물음들에 대답할 여력이 없다면 참으로 난감하고 힘겨운 물음이자 짜증이 날 법도 한 일이지만 과학의 도움을 통해 일말의 궁금증들을 해결 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 우리 자신에 대한 의혹의 시선들은 점차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즐겁고 재미있는 독서 시간이 될지니, 함께 해 보시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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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생 한동훈
심규진 지음 / 새빛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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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대 대통령 선거는 윤석열 국민의 힘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결로 펼쳐진 승부였다.

그 당시에는 검찰총장의 자리에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윤석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속은 없었음을 지나고 보니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국민의 지지도를 얻지 못하는 대통령으로 추락했고 그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과 국정 운영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수준이라 국민들이 현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마뜩치 않음을 실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차기 대선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금껏 속았다?면 이제는 올바른 인물로 정권재창출을 이뤄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2030세대들의 그러한 열망은 윤석열을 떠나고 새로운 인물 73년생 한동훈에 이르러 정점을 찍고 있다 생각하게 되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그 역시 검찰 출신이며 법무부 장관을 거쳐 이제는 국민의힘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쳐를 옮긴것을 생각하면 그의 행보에 국민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대선전에서도 박빙의 세를 이룰 한동훈, 그에 대한 모든것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73년생 한동훈" 은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에 대해 보수와 진보 진영을 이루는 586 세대의 혼탁한 사정(私政)을 더이상의 국민을 위한 정치로 둔갑시키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신보수 세력의 결집과 탈이념의 인물로 그려내고 있어 지금 이 시점에서 자못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을 거쳐 윤석열에 이르는 정권교체를 신화적 정권교체로 이야기 하는 저자의 논고에 적잖은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허나 한동훈과 이재명의 능력주의에 대한 주장은 식상한 느낌이 든다.

검찰로서의 언론 전에 유능함을 가진것이 그의 자기 방어적이고 정치적 문제나 국제적 사안에 독립적인 의식을 내 보일거라고 어떻게 장담을 하는지, 또한 이재명식 유능함이 싸구려라는 의미는 어떤 발상에서 그러한지 자못 흥미로운 관점이기도 하며 아쉽기도 한 부분이다.

물론 시대가 과거 정치에 대한 비판과 탈피를 원하고 있으니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필수적인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정치인 그 누구도 선호해 미리 선택을 하는 입장은 아니며 올바른 정치를, 국민을, 나라를 위한 인물을 선택하고자 하는 입장을 갖고 있어 이러한 의사는 국민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희망과도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검찰의 지난 오랜 역사를 살펴보면 국민에게 검찰이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 너무도 뻔히 알 수 있는데, 그러한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키웠다니 우습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준석 국민의 힘 당대표를 두고 저 XX, 이 XX 한 언사를 생각하면 한동훈이라고 그물에서 놀던 인물인데 그나물에 그 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싶다.

그러한 행태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에서 나오며 국민을 국민답게, 인간으로 이해하지 않는 수준이하의 의식에서 발로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검찰 출신이니 당연히 법과 수사 밖에 모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며 세상이 법과 수사로 돌아가는 일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미래를 이끌어 갈 정치 지도자에 대한 평을 쓴다니 놀랍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에 MZ 세대들의 바램대로 흘러가는것도 같다.

구시대의 흐름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갈 뿐이지만 여전히 현재의 정치사에 있어 마지막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판판하게 된다.

한동훈 팬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전통적 남성 가치관의 실현에 대입할 수 있는 인물이 한동훈이라 했는데 오히려 전통을 무시하고 새로운 시대로 변화 나가고자 하는 MZ세대의 기호는 한동훈의 그러한 모습을 속빈 강정으로의 모습으로 인식하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갖게 되는 팬덤을 보는것 같다.

이 책을 통해 73년생 한동훈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이미지는 다양하다.

또한 그가 어떤 의미에서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인물로 등극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을 선호하는 입장의 사람들이라면 한동훈과 그를 새로운 정치 지도자의 등극으로 인식하는 이 책에 호불호의 감정을 느낄 것은 분명하다 할 수 있다.

단, 중요한 것은 저자 역시 그런 호불호를 가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책임질 인물에 대한 이해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생각해 꼼꼼히 읽고 국정 운영의 책임자를 선택하는 현명함을 이루길 원할것이다.

그 길에 이 책의 유용함이 녹아들어 있다.


**출판사 새빛의 지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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