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merican Hagwon - 『파친코』이민진 신작 <아메리칸 학원>
The Associated Press / 2026년 9월
평점 :
이민진의 디아스포라 3부작 아메리칸 학원이 다다음 주에 현대문학에서 나온다. 아마 원고를 미리 넘겼던 것일까 원서도 엊그제 나왔는데 이례적인 속도의 번역납품이다. 하반기 메가급 해외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호와 이민진인데, 둘 다 팬층이 두텁고 영상화도 되면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네임 밸류가 낮은 작이라고 저기대작은 아니고, 인구에 회자되는 정도가 많다는 말일 뿐이다. 빨리빨리의 민족, 얼리 어답터 한국인은 기다리지 않고 미리 원서를 읽는다. 둘 다 온라인 서점에 즉각 대량입고 되어 바로 배송가능 상태고 판매량도 해외도서부문 1위에 연이어 등극했다.
파친코는 찰스 디킨스풍 사회적 리얼리즘을 한국의 지난한 근현대사에 끌고 왔다. 아메리칸 학원은 그보다 더 근시대를 다루어 90-00년대 초반이다. 소설은 90년대 개포동에서 시작하고, 리더십 있는 엄마 헬렌과 서울대 수학과 졸업, 다국적 상사 자원관리부에서 일하는 남편 존 고, 그리고 세남매의 이야기다. 학교에서 기대받고 성적도 우수한 오빠들과 다르게 아빠를 닮아 내성적이어서 엄마의 걱정을 사는 막내딸 미도.
어떻게 원서를 읽어? 라고 물어본다면, 1등급 약 4퍼센트 비율을 유지해야하는 평가구조상 탈락자를 일부러 만들기 위해 배배 꼬인 수능영어에 비해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그저 두께가 두껍고, 긴 소설을 자기만의 방에서 묵독하는 습관이 들지 않은 이들에게는 영어든 국어든 독해 자체가 어려울 뿐이니. 결국 독서는 모두에게 개방되어있으나, 소수만 점거할 수 있는 보물이니, 대다수는 유투브 다이제스트 영상으로 고갱이를 습득하고 영상화되면 그제서야 보겠지 싶다. 늘 그래왔듯.
영어소설을 읽을 때 재미는 인물의 관계나 젠더를 파악하는데 있다. 동아시아와 다르게 이름만 갖고 백퍼 성별을 확신할 수 없다. 예컨대 한 페이지 읽고나서야 Mido는 her brothers하는 방식으로 '그녀의'가 나와 막내딸임이 확정된다.
이게 사실 영어일 뿐이지 한국소설을 읽는 묘한 기분이 든다. 그건 파친코도 그랬는데, 번역자도 지역 사투리를(특히 부산 영도 출신) 생생하게 구사해 영어에 없는 구어체의 묘미를 새로 만들어냈다. 그런데 <파친코>는 시대적 배경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와 마찬가지로 구한말-일제강점기였고, 지금과는 언어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작게는 소품이나 서적명에서도, 유리된 환상의 옛 세계였다.
그런데 아메리칸 학원은 정말 90년대 말 여행자유화와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계화가 불러 온 한국인의 유학, 이민 같은 동시대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호주에 유학 간 조카, 미국에 유학 간 고모들의 이야기 같다. <파친코>의 중심 인물인 선자가 지금은 8-90대 할머니 할아버지 조부모 세대이기 때문에 지나간 옛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다. (물론 그 아랫세대도 있지만 그들은 자이니치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잘 찾아볼 수 없어 완전한 감정이입은 안된다) 그만큼 가까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심지어 아들딸의 교육, 학업성취, 학교평가, 진로계획 같은 것으로 시작해서 더더욱.
물론 당연히 문자 그대로 영어로 쓴 한국소설이지만, 영어를 읽는데 묘하게 한국어로 겹쳐 읽히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영어식 사고구조가 드러날 때도 있다. 작게는 어휘에서 기타 등등을 etc.가 아니라 sundries라는 문학적 표현을 쓴다든지, 크게는 아이들 학교를 설명할 때 한국의 경우 초품아 대단지, 학군지, 서울대 등 명문대 입결로 설명하는데, 미국에서 보통 학교나 건물 설명할 때처럼, with spacious auditorium, two music rooms하는 식으로 건물에 부착된 구조적 기능을 명사로 붙여넣는다. 영어에서 건물이나 방 설명할 때 그런 식으로 하듯이.
그리고 남편 존 고가 high-functioning introvert라는 고기능성 내향인이라 설명하는데 이는 2010-20년대 mbti와 심리학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이런 표현은 그전에 출간된 소설에서는 별로 못 읽었다.
한국-일본을 연결하는 캐릭터나 설정은 자기복제적이라고도, 익숙함이라고도 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