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3편 부정적 리뷰, 댓글, 평을 보고나서 확실히 깨달았다

아 한국관객 수준이 정말 높구나
온갖 미드 한드 일드로 단련된 최상의 감식안을 지닌 평론가 민족이다

작년 천만영화가 잘 안 나온 건 영화 퀄리티가 떨어져서라기보다 관객을 만족시킬만한 프레시하면서 완성도 높은 영화가 없었기 때문일 수 있겠다

작년 평이 박했던 한국영화는 사실 다른 나라에선 충분히 흥행하고 티켓 팔릴 작품이었던건 아닐까

파묘는 캐릭터와 스토리 빌드업이 신선했다 뜬금 수직 일본 오니가 나와 으잉했어도 짜임새는 괜찮았다

그러니까 이제 납치 추적 구원 같은 서사는 진부한 것

유령과 외계인 싸움이라는 단다단과
전개를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체인소맨이 필요한거다 한국작품에

시그니처를 만든 후 시그니처를 버린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선승의 가르침과 같다

1탄에서 끝나지 않고 시리즈물로 성공을 이어나가려면 자본으로 인한 스케일업(세트 무대 필선 배우진 로케) 뿐 아니라 가일층 새로움을 보여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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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20호
한승혜 외 지음 / 서울리뷰오브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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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뷰는 2020년에 시작했던 원년 멤버의 글이 갈수록 덜해지며서 약간 힘이 빠졌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 다양한 필진을 구해 여러 기고문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호는 극단적이라고 평해본다. 여성학에 관심이 많으면 필수적으로 사야하는 도서이고 관심이 없다면 읽을 만한 꼭지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특집리뷰도 여성학이고 심지어 1년에 한 번 있는 리뷰상 수상작 마저 역사에서 잊혀진 여성의 의미에 대한 글이다.


특집리뷰1은 조지 오웰의 지워진 아내 에일린이 가장을 보필해서 작가 커리어가 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슷한 류로 한국여성미술가 아카이브인 그들도 있었다도 생각난다)

특집리뷰2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에 대한 글(상호구성에 대한 함의)이다.

특집리뷰3은 자연의 다종다양한 암컷을 조명하며 인간사회에 주는 의미를 도출한 글(리뷰어는 9장이 재밌었다고 했다)이다.

특집리뷰4는 커리어와 가정의 양립, 성의 일터에서 존재론적 가치에 대한 글이다


이에 이어 리뷰상 최우수상 수상작은 미 콜로라도주 총기난사사건의 가해자 엄마에 대한 리뷰다

그다다음 현시원의 힐마아프클린트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와 왜위대한여성미술가는없었는가 린다노클린의 고전을 언급한 글까지 사실상 한 호의 반 정도가 여성학에 대한 읽을 거리로 풍부하다.


만약 김보국의 헝가리 밀란 쿤데라를 조명한 글, 리뷰 우수상 수상작 난민의 삶을 다룬 글, 박종령의 노예제에 대한 글을

지역적, 사회문화적, 역사적 소수자까지 포함하자면 억압과 구조적 폭력에 대한 글감으로 알찬 한 호다.


이번 호의 지향점이 선명하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다. 한 분야에 관심있는 마이너 독자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필독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책에 관심있는 다양한 취향의 광역 독자를 겨냥한 대중잡지로 시작했다면 이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홍성욱의 과학기술사회학(STS)과 루시 쿡의 사회생물학에 대한 글이 아니라면 기존에 자주 다루던 과학서 리뷰는 사실상 없기에 이탈의 사유가 될 수 있다. 매 호 판매량이 중요하다면 독자의 반응과 추이가 궁금할지도


색깔과 지향점이 선명했고 개별 꼭지는 유익했다. 다만 리뷰 잡지인데도 다루는 책의 주제가 한쪽으로 쏠렸고 이번 겨울 시즌에 나온 좋은 책들이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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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작가가 이온 플럭스라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들어서

어제는 일본계 미국인 카린 쿠사마가 2005년에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를 보았고 오늘은 한국계 미국인 피터정(정근식)이 1996년, 1998년에 MTV에서 방영한 원작 애니를 보았다.


에곤 쉴레풍으로 몸이 길고(영어로 하면 elongated라고 표현할 수 있을만한) 가학성애(새디스트)취향의 가죽벨트착용 백합 캐릭터들이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벌이는 첩보물이다.


96년 방영분은 Gravity, 긴 제목(대충 monicans), Leisure, Last time for Everything, Tide(형세변화로 번역), Purge(숙청), War, Isthmus Crypticus의 8개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같은 설정과 배경에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느슨한 옴니버스 모음이다. 옴니버스라고 함은 도라에몽, 코난과 같이 스토리 베이스라인에서는 심해처럼 나아갈 지향점이 있는데 개별 에피소드는 연결되지 않는 여러 이야기로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아마 세기말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18세 이용가로 상당한 성적 수위라고 생각했겠지만 적나라한 베드신은 없고 암시가 되며, 혀를 섞는 딥키스에서 혀의 섞갈림을 자세하게 묘사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대신 SM스러운 디자인과 신음소리와 분위기가 묘하게 야한 편이다.


한편 사회분위기는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생태거버넌스의 독재정치다. 그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Trevor Goodchild는 매트릭스2의 메로빈지언과 마블 로키역의 톰 히들스턴같이 부드러우 저음으로 고급 영단어를 쏟아낸다.


영화에서도 I am not at the liberty of telling.. which.. 어쩌구 하는 빅토리아풍 영어를 썼었고

애니에서도 Moderation necessarily connotes use (직역하면 중용은 필연적으로 사용을 수반한다, 이고 내용상으로 절제하다보며 쓰기 마련이지 같은 의미였다)


유럽어는 중용/절제 같은 추상명사가 주어가 될 수 있으나 한국어에선 그렇게 할 수 없다.

"연속성이 ~ 하였다" 보다는 "연속적으로 하다보니.. 하였다" 같이 다른 술어로 풀어야한다. 유명 유럽철학책을 직역하면 사람들이 못 읽는 이유다. 우리와 말쓰임새가 같지 않다.


애니에서도 캐릭터가 언제 갈거야? 라고 물어보느 부분에서 Circumstances 띡 하고 나왔는데 번역은 "상황을 봐야지" 로 했다.


라임 섞인 언어 유희가 좋다.

For schedule and for pleasure

ecstatic nestling feathering(새인간하고 성적교감한다는 부분에서 황홀하게 둥지에서 날개짓하며 버둥버둥거리겠네 정도의 뜻이다)


또 egghead boyfriend가 있었는데 이는 계란머리가 아니라 매우 아카데믹하지만 현실머리 없는 사람을 뜻하는데 20세기 초 시카고 매거진에서도 용례가 있던 어휘다. 

https://www.etymonline.com/word/egghead


To your right (너 오른쪽을 봐)

Too you re right (네가 역시 맞아)

처럼 같은 발음을  공유하는 언어 유희도 재밌었다.


영화는 애니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접합해서 일관적인 네러티브를 만들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영화의 처음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눈썹 파리 장면은 애니 마지막이고

정원 침투도 애니 후반부며

발을 손으로 교체한 스캔트라는 독일억양에 이중스파이인데 흑인으로 바꾸었고 침투장면을 길게 잡았다.

원작 애니에 없거나 간략히 등장한 양쪽 세계의 마스터마인드 대결구도를 만들고 결말에서 세계의 비밀을 노출하고 폭파했다.

또 일본계 감독이라 그런지 다다미방, 사쿠라 정원 등을 연출에 추가했다.


전반적으로 설정이 특이하고 대사도 유식한 부분 성적 부분 등 잘 다듬었는데 한 큐에 기승전결로 엮이는 서사가 없어 옴니버스라고는 해도 용두사미 같다

특히 98년 방영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왜 주인공이 마지막 5분에서 갑자기 총 맞아 죽는지 알 수 없다.


다 보았는데도 김아영 작품에서 설정상 오마주나 레퍼런스는 찾을 수 없었다. 모르겠다. 미드저니 연출에서 경계흐릿해지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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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단상

워너비와 추구미가 다르면 고민이 된다.

자신 안의 두 가지 모습이 있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내가 정말 원하는 부분은 외면할 때
해결할 수 없는 트랩에 걸린 것 같다.

예컨대 싱어게인4 61호 공원가수는 첫 곡 <나비효과>와 패자부활전 <달팽이>같은 발라드를 부를 때 대중과 심사위원의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자신이 좋아하는 몽환적 사이키델릭락인 슈게이징을 할 때는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아무리 목소리를 부각시키는 파트를 타협해봐도 매한가지다.

혜리도 대중이 원하는 여동생 이미지와 자신이 바라는 세련된 도시녀 이미지가 다르고 박보영도 간호사 이미지만 계속 소비되고 있다. 워너비와 추구미가 불일치해 고민이다.


보이고 싶지 않은 나를 좋아해줄 때와

보이고 싶은 나는 좋아해주지 않을 때

이 극복할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어쩔 수 없이 전자를 위해 살아간다. 대부분의 인플루언서, 배우, 유명인이 그럴 것이다. 우울의 한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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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단상

전시장에서 사진 찍는 것은 책에 줄 긋는 것과 같다.


새로 접한 사람이 지식정보를 탐닉하는 환희 속에 무엇이 좋은지 무엇을 걸러야할지 무엇은 다시 접할 수 있을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복 도파민이 뇌 속에 분비되어 시간 안에 아무 것이나 저장하기 위해 이것저것 담는 것이다.


마트에서 카트에 쇼핑리스트보다 더 많이 주섬주섬 담는 것과 같다.

쿠팡이나 쓱 앱에 들어갔다가 광고에 홀려 장바구니에 물품이 많아지는 것과 같다.


남녀노소 관계 없다.

미술관에 다녀본 적 없이 평생 관계없는 일을 하고 은퇴한 후 유럽여행 갔다가 으레 간다는 미술관에 들어가서 벼락을 맞고 미술에 관심이 생겨 60대에 다니기도 한다.

유년시절부터 수학과학만 파고 전형적인 영재-과고-과기대 등 이과 기숙학교 테크트리를 타다가 문과 여친을 만나서 미술관 방문을 시작하기도 한다.

애 기르느라 정신 없다가 고등학교 졸업시키고 여유가 생겨서 다니기 시작한 동호회, 모임, 문화센터에서 은우엄마 손에 이끌려 미술관에 드나들기도 한다.

반드시 미대, 미학, 미술사 전공생만 미술관에 오지 않고 반드시 학생이나 전공자만 발길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자신의 생애주기의 여러 타이밍에 여러 계기에 의해 내방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책을 다양한 시점에 다양한 이유로 읽는다.


이때 신규진입자는 자신의 마음을 앗아간 작품에 몰두한 나머지 저장 강박을 느낀다.

지금 안 보면 어떡하지 지금 읽지 않으면 어떡하지


도서관 책은 공용이라 침 묻히고 줄 치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줄을 치고 싶다면 자기가 구매해서 개인 소유가 된 책에 얼마든지 하면 된다.


문제는 미술관의 그림인데 개인 소유가 안된다. 도록은 다소 비싼 편이고 때론 저작권 문제로 촬영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로 저장하는게 최선이다. 기본 원칙은 촬영 금지였다. 2010년대 어느 순간인가 촬영 금지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더니 촬영이 문화로 자리잡았다. 인스타 게시용으로 입구에서 대형 광고 패널 앞에서 사진 촬영을 넘어 전시장 안에서도 스마트폰 촬영이 일반적이 되었다. 촬영 제지는 자연스러운 권리 행사를 막는 방해요소처럼 느껴지고 촬영 금지하는 곳은 발길을 하지 않아 SNS에 바이럴이 안되니 그냥 허용한다. 이제는 둑이 무너진 것마냥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비가역적이다. 스마트폰 촬영은 다반사고 일상적이다.


그런데 정말 집에 돌아가 그 사진을 다시 보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치 책에 어지럽게 줄 친 부분들을 다시 읽는가? 라는 질문과 같다.


차라리 책을 읽을 때 정말 핵심적인 부분만 줄을 치면 어떨까

개인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내 생각을 더 추가해보면 어떨까


이를 그림에 적용해보면

전시장에서 정말 괜찮은 그림 1%만 찍는다.

전시장에서 봤던 마음에 드는 그림 정보를 필기장에 적어놨다가 도록이나 인터넷에서 찾아 보고 더 생각해본다.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정말 많이 오래 다녀보고 스스로 깨쳐야하는 부분이다.


어차피 그렇게 많이 찍어도 다시 안 본다는 것을 말이다.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안 본다는 것도

다시 못 보는 귀한 그림도 쉽게 갈 수 없는 외국미술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또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몇 년 만 지나면 카메라 해상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옛날에 그렇게 폐관시간 전에 달려가 허겁지겁 찍었던 사진의 화질이 구리게 느껴진다는 것도 말이다.

(캠코더 테이프 시대를 생각해보자 그렇게 멀지 않은 옛날이다

또, 20핀 단자, USB잭, C타입으로 충전단자가 변해간 걸 생각해보자)

그렇게 해탈이 기다린다.


왜냐하면 체험은 사건이며 사건이란 일일히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몰에 물드는 바다의 그 한 순간을

바람이 불 때 휘날리는 깃발을, 

바라보고 마음에 담는 것으로 족하지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면 촬영에 집중하느라 스크린만 바라보게 되고 아우라를 느끼지 못한다.

남에게 보여줄 집착에 사로잡혀 순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어차피 내일 다시 해는 지고 바람은 언제든지 다시 불기 마련이며

책은 또 읽을 수 있고 그림도 없어지지 않고 언젠가 또 볼 기회가 있으나

일단 어떤 시기에 어떤 책 한 권은 미친듯이 줄을 그으며 읽으며

어떤 시기에 어떤 전시에서 모든 그림을 미친듯이 다 찍는다


누구나 뉴비 때는 아직 체험 시간의 절대량이 적으므로

비어있는 곳간에 저장하느라 마음이 급급해서 계속 줄을 긋고 계속 셔터를 누른다.

학창시절 수학초심자 때 연립방정식 문제를 풀어야하고 정수론을 이해야하며 코사인법칙을 외워야하듯이

독서나 전시의 경우도 신규진입자는 걸어나가야할 어떤 트랙이 있다.

만능 저장강박에서 관심사 분야확장에서 전국과 전세계 미술관 탐방에서 비교번역까지 머나먼 여정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밟아야하는 머나먼 구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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