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작가가 이온 플럭스라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들어서
어제는 일본계 미국인 카린 쿠사마가 2005년에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를 보았고 오늘은 한국계 미국인 피터정(정근식)이 1996년, 1998년에 MTV에서 방영한 원작 애니를 보았다.
에곤 쉴레풍으로 몸이 길고(영어로 하면 elongated라고 표현할 수 있을만한) 가학성애(새디스트)취향의 가죽벨트착용 백합 캐릭터들이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벌이는 첩보물이다.
96년 방영분은 Gravity, 긴 제목(대충 monicans), Leisure, Last time for Everything, Tide(형세변화로 번역), Purge(숙청), War, Isthmus Crypticus의 8개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같은 설정과 배경에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느슨한 옴니버스 모음이다. 옴니버스라고 함은 도라에몽, 코난과 같이 스토리 베이스라인에서는 심해처럼 나아갈 지향점이 있는데 개별 에피소드는 연결되지 않는 여러 이야기로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아마 세기말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18세 이용가로 상당한 성적 수위라고 생각했겠지만 적나라한 베드신은 없고 암시가 되며, 혀를 섞는 딥키스에서 혀의 섞갈림을 자세하게 묘사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대신 SM스러운 디자인과 신음소리와 분위기가 묘하게 야한 편이다.
한편 사회분위기는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생태거버넌스의 독재정치다. 그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Trevor Goodchild는 매트릭스2의 메로빈지언과 마블 로키역의 톰 히들스턴같이 부드러우 저음으로 고급 영단어를 쏟아낸다.
영화에서도 I am not at the liberty of telling.. which.. 어쩌구 하는 빅토리아풍 영어를 썼었고
애니에서도 Moderation necessarily connotes use (직역하면 중용은 필연적으로 사용을 수반한다, 이고 내용상으로 절제하다보며 쓰기 마련이지 같은 의미였다)
유럽어는 중용/절제 같은 추상명사가 주어가 될 수 있으나 한국어에선 그렇게 할 수 없다.
"연속성이 ~ 하였다" 보다는 "연속적으로 하다보니.. 하였다" 같이 다른 술어로 풀어야한다. 유명 유럽철학책을 직역하면 사람들이 못 읽는 이유다. 우리와 말쓰임새가 같지 않다.
애니에서도 캐릭터가 언제 갈거야? 라고 물어보느 부분에서 Circumstances 띡 하고 나왔는데 번역은 "상황을 봐야지" 로 했다.
라임 섞인 언어 유희가 좋다.
For schedule and for pleasure
ecstatic nestling feathering(새인간하고 성적교감한다는 부분에서 황홀하게 둥지에서 날개짓하며 버둥버둥거리겠네 정도의 뜻이다)
또 egghead boyfriend가 있었는데 이는 계란머리가 아니라 매우 아카데믹하지만 현실머리 없는 사람을 뜻하는데 20세기 초 시카고 매거진에서도 용례가 있던 어휘다.
https://www.etymonline.com/word/egghead
To your right (너 오른쪽을 봐)
Too you re right (네가 역시 맞아)
처럼 같은 발음을 공유하는 언어 유희도 재밌었다.
영화는 애니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접합해서 일관적인 네러티브를 만들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영화의 처음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눈썹 파리 장면은 애니 마지막이고
정원 침투도 애니 후반부며
발을 손으로 교체한 스캔트라는 독일억양에 이중스파이인데 흑인으로 바꾸었고 침투장면을 길게 잡았다.
원작 애니에 없거나 간략히 등장한 양쪽 세계의 마스터마인드 대결구도를 만들고 결말에서 세계의 비밀을 노출하고 폭파했다.
또 일본계 감독이라 그런지 다다미방, 사쿠라 정원 등을 연출에 추가했다.
전반적으로 설정이 특이하고 대사도 유식한 부분 성적 부분 등 잘 다듬었는데 한 큐에 기승전결로 엮이는 서사가 없어 옴니버스라고는 해도 용두사미 같다
특히 98년 방영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왜 주인공이 마지막 5분에서 갑자기 총 맞아 죽는지 알 수 없다.
다 보았는데도 김아영 작품에서 설정상 오마주나 레퍼런스는 찾을 수 없었다. 모르겠다. 미드저니 연출에서 경계흐릿해지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