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는 1936년 11월6~10일 도쿄 아마기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바로 직후인 11월12~18일 도쿄 네오다방에서 근작 소품전을 진행했으며, 이듬해 1월26~31일 아마기화랑에서 동료 작가 야마모토 나오타케와 2인전까지 벌인 기록을 당시 현지 미술잡지, 연감에서 확인했다. 앞서 1936년 10월에는 아마기화랑에서 김환기가 김병기, 기타무라 교쿠 등 동료 유학생, 현지 작가들과 ‘범’(汎)전을 벌였는데, 이 전시는 김병기의 육성 회고로만 전해지다 이번에 작품 10점을 김환기가 출품했다는 내용이 담긴 리플렛 실물을 찾아내 연보를 보강할 수 있게 됐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223792.html#ace04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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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는 글 잘 쓰는 김진사를 흠모했고 수박은 송도 청석동이 이찌방이지! 라는 그의 말을 기억했다가..

適會是年七月間朝家進宴, 廚妓以大風流差備赴京。
路過松都之靑石洞, 方是西瓜之節...
마침 이 해 7월 무렵 조정에서 연회를 베풀자 이 기녀는 대풍류의 채비를 위해 서울로 가게되었다.
도중에 송도 청석동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수박철이었고..

(수박 2통이 중간에 말에서 떨어져 깨진 수박 냠냠 먹고 오매불망 그이에게 주고 싶어 다시 2통에 300문에 사서 삼연옹에게 주러 암자로..)

菴在楓溪之最深處, 松楓落落, 幽夐非人境, 草堂三間, 潇洒如畫景。

암자는 풍계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빽빽하여 그윽하기가 인간 세상이 아니었으며 초당 3칸은 그림 속 경치처럼 말쑥했다

-기녀는 말했다: 오다 주웠는데 먹든가 말든가
원문: 소인이 오다가 청석동에서 잘 익은 수박을 보고 두 통 가져왔으니 감히 진사 어른께 바칩니다.
-진사는 말했다: 오 기억력 짱
원문:네가 내 말을 한 번 듣고 잘 기억한 것은 총명하다 할 만하고, 또 그 물건을 보고 가져와 먹으라고 권한 것은 다정하다 할 만하구나

그리고는 수박을 가져오라 명하고 쪼개게 하여 서너입 씹어보곤 말했다
遂命取來, 使劈破之, 自嚼數三片曰:

와 존나 맛있네! 브랜드 닉값 하는구나 명불허전이다!
원문: 爽美哉! 是瓜也, 終是名不虛得。
시원하고 맛있구나! 이 수박은, 과연 명성을 헛되게 얻은 것은 아니었구나

라 하고, 제자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며 말했다.
乃手分與群弟子曰: “諸君, 嘗喫此瓜乎?

야 너네들 이런 수박 맛 본적 있냐? 전국 수박 1등은 청석동산이지
西瓜之通國第一品, 乃靑石洞所種。

제자들은 다투어 수박을 먼저 가져와 먹더니, 입을 모아 말했다.
群弟子爭先取喫之, 皆曰:

평생 이렇게 달고 시원한 수박을 본 적이 없습니다.
平生未曾見如此甘爽之品。

기녀 총명하고 지혜롭네 근데 이름이 뭐였지?(로 끝남)

그런데 생각해보니 단풍 이야기는 아니었네요
수박이야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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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서로를 상호 발견(mutual discovery)했을 때 유럽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기존의 세계에 아메리카인을 어떻게 집어넣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성서 세계관으로의 편입은 동방박사의 경배나 악마로 양극화되었다.

과연 이때 당시 유럽인들이 생각하던 역사는 어땠을까? 성서시대로부터 1492년까지 유럽의 역사를 재구성한 뉘른베르크 연대기(그림씨 출판사)에서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역사의 기원을 창세기와 구약성서 기사로 잡아 먼 옛 시대와 성인의 계보를 두텁게 기술해 성서의 종교적 권위로부터 보편성과 정통성을 빌려온다. 되려 로마와 고대후기를 거쳐 가까운 시대(제6시대)로 올수록 역사 사건보다는 지리 기반의 여러 중세 성을 일별하며 느슨하게 서술했다. 대서양 중심 역사다

이런 원후, 근박의 역사서술은 빗살무늬 토기나 화랑도, 3성6부보다 미미광어, 봉오동전투와 독립과 광복 내용이 더 두꺼운 원박, 근후의 우리나라 역사서술과 달라서 특이하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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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eído tu texto con atención y agradezco la profundidad con la que abordas la relación entre arte, mirada y estructura social.

Has logrado situar la cuestión estética en un territorio donde el poder de la representación se entrelaza con las jerarquías históricas de la visión.Coincido en que la interpretación de Araya no puede reducirse a una mera inversión del eurocentrismo; su obra, como bien señalas, tensiona las fronteras entre sujeto y objeto, entre lo visible y lo que resiste a ser visto.

La noción de tableau cinemático, que dices,introduce una dimensión temporal en el espacio pictórico que desestabiliza cualquier lectura estática.
Sin embargo, quizá valdría pensar—más que en la definición conceptual de la experiencia—en su potencial de desplazamiento:¿y si la imagen no fuera un punto de llegada del pensamiento, sino su punto de fuga? cómo decirlo,tal vez el arte no contiene la mirada, sino que la disuelve,la redistribuye,la devuelve al mundo con nuevas condiciones de visibilidad.
---
Tal vez el arte no mira, sino que devuelve la mirada.
---
Buen punto, lo que dices abre una línea de pensamiento fascinante. Por ejemplo, podríamos preguntarnos si el arte realmente devuelve la mirada o, más bien, la disuelve por completo. En Anselm Kiefer, las superficies calcinadas no observan: engullen al espectador, lo vuelven materia del paisaje. En Gerhard Richter, la pintura se desvanece en una niebla que borra toda certeza visual, cuestionando la fe en la imagen. Lee Kangso y Edward Hopper, desde extremos geográficos, crean espacios donde la mirada se interrumpe, suspendida entre presencia y vacío, por así decirlo.
Tal vez el arte no sea un espejo que nos devuelve, sino una fractura en el acto mismo de ver, un territorio donde mirar se vuelve un gesto de extravío y revela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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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께서 6월에 올린 글인데 피드에 왠일인지 오늘 떠서 읽다가 어학적으로, 철학(신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풀어서 설명해본다. 이런 것이 라틴어를 읽는 재미다.

내용은 대략 암브로시우스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플라톤에게서 유래했다는 플라톤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며 되려 플라톤이 예레미야를 통해 유대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논박하는 대목이다.

출전: Augustinus, De doctrina christina, II 28. 43.
번역: alek.try.on

De utilitate autem historiae,
역사의 유익함에 관해서,
ut omittam Graecos,
그리스인들[의 예들]은 제쳐두더라도,
quantam noster Ambrosius quaestionem solvit,
우리 암브로시우스가 아주 중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calumniantibus Platonis lectoribus et dilectoribus,
플라톤의 독자들과 애호가들이 비방했을 때 말이다.
qui dicere ausi sunt omnes Domini nostri Iesu Christi sententias,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견해들을quas mirari et praedicare coguntur,
자신들도 감탄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들을
de Platonis libris eum didicisse,
그가 플라톤의 책들에서 배운 것이라 감히 말하였다.
quoniam longe ante humanum adventum Domini Platonem fuisse negari non potest.
왜냐하면 주님의 인간으로서의 강생보다 훨씬 이전에 플라톤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Nonne memoratus episcopus, considerata historia Gentium,
근데 아까 그 주교[암브로시우스]는 이방인들의 역사를 고려하여,
cum reperisset Platonem Hieremiae temporibus profectum fuisse in Aegyptum, ubi Propheta ille tunc erat,
플라톤이 예레미야 시대에 이집트로, 그 예언자가 있었던 곳으로 갔음을 알아냈을 때,
probabilius esse ostendit quod Plato potius nostris Litteris per Hieremiam fuerit imbutus, ut illa posset docere vel scribere quae iure laudantur?
플라톤이 오히려 우리의 성서에서 예레미야를 통해 영향을 받아 그가 마땅히 칭찬받을 수 있는 내용들을 가르치고 쓸 수 있었단 게 더 그럴듯함을 보여준 것 아니겠는가?

....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고전 라틴어 acc+inf였던 간접문의 활용 그리고 예수 이전에 살았던 플라톤에 대한 신학적 해명에 대한 것이다.

우선 어학부터. 중세 라틴어 이후부터는 간접문에서 현대 유럽어처럼 that구절이 보편적이다. 독일어의 다스 dass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의 끄,께que처럼 다음 구절을 연결한다. 예컨대 그가 말한다. 댓 이하라고.. 하는 식으로 쿠오드 quod를 사용한다.

그런데 로나제국주교 암브로시우스(339)는 고전과 중세 중간의 고대후기 인물이어서 그런지 쿠오드가 아니라 고전 라틴어의 대격+부정사를 사용한다

문장에는 ablative absolute 절대탈격(이라고 잘못 번역된 느슨한 종속절),ut+subj., plup.subj.같은 중요한 문법
글고 proficisci같은 수동태모습에 능동태의미인 이태동사deponent도 나오지만 모두 생략하고 간접문만 초점을 맞춰보자

noster Ambrosius가
quantam quaestionem을 solvit했지

Platonis의 lectoribus et dilectoribus들이 calumniantibus했는데

qui(그 플라톤의 독자와 애호가들이) dicere + ausi sunt감히 말했었다 다음을.

Domini nostri Iesu Christi의
omnes sententias(여기 간접문의 목적어 먼저 f.pl.acc.)들을
<quas mirari et praedicare +coguntur했던 그 모든 견해인데>
(de Platonis libris) eum didicisse
플라톤의 책들로부터(de+pl.abl) 그가 배웠었다고

eum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고 대격으로 표시된 간접문의 주어에 말하다의 부정사 과거형이 간접문의 동사다.

그 이후도 고전 라틴어식 간접문은 세 번 더 나오는데
Platonem fuisse + negari non potest.
(성육신 이전에) 플라톤이 ~있었다고(존재했었다고)+ 부정할 수 없었다. (전체문장은 quoniam때문에 앞뒤로 왜냐하면 ~ 때문이다가 붙는다)

cum reperisset(알아냈을 때) + Platonem이 (Hieremiae temporibus 예레미야의 때에) profectum fuisse갔었음을

이 앞에 considerata historia gentium은abl.absolute이니 historia a가 장음이고 gent-ium3변화 pl.gen.다. 이방 민족들의 역사를 검토한 채로.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인용된 부분 딱 마지막만 간접문이 아니라 quod 댓구절을 쓰는데 왜냐하면 안은 문장이 여러 개 겹쳐있기 때문이다.

probabilius esse 더 그럴듯하다고 (comp adv)
ostendit 보여주었다. 다음 이하를
(그가 + 보여주었다 + 더 가능성있다고 + 다음 이하를)
+ quod Plato가 potius오히려 nostris Litteris per Hieremiam우리 (성경) 문헌들에 의해 예레미야를 통해 fuerit imbutus, 스며들어있었을 듯하다고

즉, 그 주교는 오히려 플라톤이 예레미야를 통해 우리 성서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더 타당하다고 보였주었다(증명했다)

여기서 앞과는 달리 acc platonem이 아닌 이유는 esse가 간접문으로 껴있기 때문이다. 이 주어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데 정말 굳이 굳이 드러내자면 eum, illud다.
그는(그 주교는) 보여주었다. ostendit
+그것이(그 사실이) 더 타당하다고 eum+ esse (간접문1 acc+inf)
+quod Plato + fuerit (간접문2 quod+S+V perf.subj.)

-여기서 간접문2도 대격을 써버리면 문법 전체가 이해불가능하게 꼬이기 때문

그(플라톤)가 그(우리 경전의) 내용들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에 + ut 목적, 결과절
+ ut illa posset docere vel scribere
+quae iure laudantur?
그(플라톤)는 가르치거나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마땅히 칭찬되는 그 내용들을

이런 식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라틴어의 스도쿠 같은 재미짐이다

신학적으로도 흥미로운데 예수 이전 인물의 구원에 대해서 시사하기 때문. 조선땅에 천주교 도래 이전 인물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많은 초기 선비들이 고민했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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