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저자께서 6월에 올린 글인데 피드에 왠일인지 오늘 떠서 읽다가 어학적으로, 철학(신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풀어서 설명해본다. 이런 것이 라틴어를 읽는 재미다.

내용은 대략 암브로시우스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플라톤에게서 유래했다는 플라톤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며 되려 플라톤이 예레미야를 통해 유대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논박하는 대목이다.

출전: Augustinus, De doctrina christina, II 28. 43.
번역: alek.try.on

De utilitate autem historiae,
역사의 유익함에 관해서,
ut omittam Graecos,
그리스인들[의 예들]은 제쳐두더라도,
quantam noster Ambrosius quaestionem solvit,
우리 암브로시우스가 아주 중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calumniantibus Platonis lectoribus et dilectoribus,
플라톤의 독자들과 애호가들이 비방했을 때 말이다.
qui dicere ausi sunt omnes Domini nostri Iesu Christi sententias,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견해들을quas mirari et praedicare coguntur,
자신들도 감탄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들을
de Platonis libris eum didicisse,
그가 플라톤의 책들에서 배운 것이라 감히 말하였다.
quoniam longe ante humanum adventum Domini Platonem fuisse negari non potest.
왜냐하면 주님의 인간으로서의 강생보다 훨씬 이전에 플라톤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Nonne memoratus episcopus, considerata historia Gentium,
근데 아까 그 주교[암브로시우스]는 이방인들의 역사를 고려하여,
cum reperisset Platonem Hieremiae temporibus profectum fuisse in Aegyptum, ubi Propheta ille tunc erat,
플라톤이 예레미야 시대에 이집트로, 그 예언자가 있었던 곳으로 갔음을 알아냈을 때,
probabilius esse ostendit quod Plato potius nostris Litteris per Hieremiam fuerit imbutus, ut illa posset docere vel scribere quae iure laudantur?
플라톤이 오히려 우리의 성서에서 예레미야를 통해 영향을 받아 그가 마땅히 칭찬받을 수 있는 내용들을 가르치고 쓸 수 있었단 게 더 그럴듯함을 보여준 것 아니겠는가?

....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고전 라틴어 acc+inf였던 간접문의 활용 그리고 예수 이전에 살았던 플라톤에 대한 신학적 해명에 대한 것이다.

우선 어학부터. 중세 라틴어 이후부터는 간접문에서 현대 유럽어처럼 that구절이 보편적이다. 독일어의 다스 dass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의 끄,께que처럼 다음 구절을 연결한다. 예컨대 그가 말한다. 댓 이하라고.. 하는 식으로 쿠오드 quod를 사용한다.

그런데 로나제국주교 암브로시우스(339)는 고전과 중세 중간의 고대후기 인물이어서 그런지 쿠오드가 아니라 고전 라틴어의 대격+부정사를 사용한다

문장에는 ablative absolute 절대탈격(이라고 잘못 번역된 느슨한 종속절),ut+subj., plup.subj.같은 중요한 문법
글고 proficisci같은 수동태모습에 능동태의미인 이태동사deponent도 나오지만 모두 생략하고 간접문만 초점을 맞춰보자

noster Ambrosius가
quantam quaestionem을 solvit했지

Platonis의 lectoribus et dilectoribus들이 calumniantibus했는데

qui(그 플라톤의 독자와 애호가들이) dicere + ausi sunt감히 말했었다 다음을.

Domini nostri Iesu Christi의
omnes sententias(여기 간접문의 목적어 먼저 f.pl.acc.)들을
<quas mirari et praedicare +coguntur했던 그 모든 견해인데>
(de Platonis libris) eum didicisse
플라톤의 책들로부터(de+pl.abl) 그가 배웠었다고

eum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고 대격으로 표시된 간접문의 주어에 말하다의 부정사 과거형이 간접문의 동사다.

그 이후도 고전 라틴어식 간접문은 세 번 더 나오는데
Platonem fuisse + negari non potest.
(성육신 이전에) 플라톤이 ~있었다고(존재했었다고)+ 부정할 수 없었다. (전체문장은 quoniam때문에 앞뒤로 왜냐하면 ~ 때문이다가 붙는다)

cum reperisset(알아냈을 때) + Platonem이 (Hieremiae temporibus 예레미야의 때에) profectum fuisse갔었음을

이 앞에 considerata historia gentium은abl.absolute이니 historia a가 장음이고 gent-ium3변화 pl.gen.다. 이방 민족들의 역사를 검토한 채로.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인용된 부분 딱 마지막만 간접문이 아니라 quod 댓구절을 쓰는데 왜냐하면 안은 문장이 여러 개 겹쳐있기 때문이다.

probabilius esse 더 그럴듯하다고 (comp adv)
ostendit 보여주었다. 다음 이하를
(그가 + 보여주었다 + 더 가능성있다고 + 다음 이하를)
+ quod Plato가 potius오히려 nostris Litteris per Hieremiam우리 (성경) 문헌들에 의해 예레미야를 통해 fuerit imbutus, 스며들어있었을 듯하다고

즉, 그 주교는 오히려 플라톤이 예레미야를 통해 우리 성서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더 타당하다고 보였주었다(증명했다)

여기서 앞과는 달리 acc platonem이 아닌 이유는 esse가 간접문으로 껴있기 때문이다. 이 주어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데 정말 굳이 굳이 드러내자면 eum, illud다.
그는(그 주교는) 보여주었다. ostendit
+그것이(그 사실이) 더 타당하다고 eum+ esse (간접문1 acc+inf)
+quod Plato + fuerit (간접문2 quod+S+V perf.subj.)

-여기서 간접문2도 대격을 써버리면 문법 전체가 이해불가능하게 꼬이기 때문

그(플라톤)가 그(우리 경전의) 내용들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에 + ut 목적, 결과절
+ ut illa posset docere vel scribere
+quae iure laudantur?
그(플라톤)는 가르치거나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마땅히 칭찬되는 그 내용들을

이런 식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라틴어의 스도쿠 같은 재미짐이다

신학적으로도 흥미로운데 예수 이전 인물의 구원에 대해서 시사하기 때문. 조선땅에 천주교 도래 이전 인물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많은 초기 선비들이 고민했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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