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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국엔.... 그런 거다. 이 세상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렇게 생겨먹었다. 부자들은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빌어먹으며 살 수밖에 없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돈 있는 사람들은 아주 편안하게 이겨내는 거고, 돈 없는 이들은... 그 몇 푼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자존심 버리고, 자신을 버리고, 가족까지 버리게 되는 거...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다.
<<도가니>>는 바로 그런 이 바보같은 세상을,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돈 있고 권력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밑바닥에서 어떻게든 한 구석 차지하고 살아보겠다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우리"라는 존재들이 너무나 힘이 없고, 진실은 너무나 멀기에 그 힘 없고 순수한, 어린 것들을 지켜주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승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이 현실에서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적어도 책에서만큼은.... 이 소설에서만큼은 행복한 결말이 나기를... 그렇게 바랬나보다. 하지만 소설에서도 그런 결말이 나기에는 현실과 너무나 괴리가 커서... 그런 악은 사라지고 선이 이기는 그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도저히 마지막까지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 아닌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그지 같을 줄은 몰랐어. 우리 많이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거 같아. 교육청, 시청, 다 얽혔어. 무진여고 무진고, 아니면 초등학교 아니면 처조카 아니면 무사모, 아니면 영광제일교회....."...131p
그런 거다. 권력 있고, 힘 있는 자들 모두 모여 약하고 힘 없고 쓰러질듯한 이들을 돕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세상이다. 난 이 책 속 이 문장에 가장 공감을 한다. 이 소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하고 마지막 공판 결과까지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이 소설 속 가장 현실과 같은 부분은 바로 저 문장이 아닐까.
그래도 이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한가닥 희망의 빛이 있다. 자신들의 인권을 되찾으려고 용기를 끌어모은 아이들이 있고, 그들을 돕는 서유진 같은 인물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처음부터 무척이나 우리와 가장 닮아있던 강인호가... 이들을 돕는 데 한몫하기를 바랬다. (난 아직도 꿈을 꾸고 있나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돈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며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어떤 것을 향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거야.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것, 그것도 아주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 어떤 기쁨을 맛보았어. 그리고 그것은 내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지만 낯설고 고귀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인 내 속에 원래 그런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웃을 위해, 더불어 함께하기 위해 싸울 때 내가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안 거야. 그리하여 한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다른 존엄한 생명들을 짓밟는 자들과 싸우고 싶어졌던 거야. 이것은 내 인생에서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나는 다른 누구를 위해서보다 나 자신을 위해 꼭 이 일을 마치고 싶어."...281p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나를 등지고... 강인호는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버린다. 그리고, 그럼으로서 나는 이 소설이 더욱 우리의 모습과 같음을, 이 세상을 그대로 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옳은 것이 옳다고 밝혀지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조금씩 치유되고, 아이들이 아이들 자신의 자리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기에, 미래는 바로 그들에게 있기에 이 그지같은 세상에 아주 조금 희망을 가져보려 한다. 이 땅의 딸로 자라난 사람으로서,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미래는...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조금 더 깨끗하고 맑은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