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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평점 :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된 건,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을 통해서였지만 사실 카렐 차페크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낸 희곡 <R.U.R>로 더 유명한 작가다. 어째 처음 알게 된 <정원가의 열두 달>도, 워낙 유명한 <R.U.R>도 아닌 그의 <평범한 인생>을 먼저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따라 책을 고르는 나로서는 아마도 저 우주의 기가(ㅋㅋㅋ 몇십 년 전, <시크릿>을 읽은 후부터 이리 되었다) 지금쯤 네가 이런 책을 읽을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이렇게 고른 책들(책에 대해 알고 고른 것이 아니다. 그저 표지나 제목으로 느낌가는대로 고르는데 그렇다)이 모두 "죽음", "삶", "인생".... 과 연관된 것들이다.
사실 처음 표지와 작가와 제목을 봤을 땐 그저 진짜 평범한 인생을 사는한 인간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책 표지를 펼쳐 작가 소개를 읽다 보니 이 책은 "카렐 차페크 철학 소설의 3부작의 대미"라고 소개되어 있다. 알게 모르게 철학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으로서 잠깐 꺼려졌으나... 그래도 읽어 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늙은 포렐 씨는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인 철도 공무원을 찾아오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의사(하지만 철도 공무원과는 정원에서 만나 서로를 도와주던 관계)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가 남긴 기록을 받아 읽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철도 공무원의 어릴 적부터 죽기까지의 기록이 이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19p
"놀랍게도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와 신혼 시절에 대해서도 거의 회상하지 않는다.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의 역에서 보낸 조용하고 변화 없는 시절이다."...120p
철도 공무원은 가족의 보호 아래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평범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가 어릴 적 만난 한 소녀와 그 소녀를 둘러싼 여러가지 일들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영향을 미쳤고 결국 책 뒤쪽에서 또다른 자아로 등장한다.
한 사람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건 뭘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와 내가 추구하는 나라는 이상형,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나'와 내 안에서 가장 혐오하고 싫어하는 '나'가 동시에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싫은 '나'를 제외하고 가능하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형에 가깝게 보여지도록 행동하려 하지만 또다른 '나'로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평범한 인생>은 그저 한 철도 공무원의 한 평범한 삶을 조명하는 것 같지만 책의 뒤편으로 갈수록 한 인물에 대한 다층적인 심리를 들여다보며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어떠한 경험이 모두에게 같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 경험만으로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관계, 성격과 환경 등이 어우러져 누군가에겐 평범하기도,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기도 한 삶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나"라는 인간을 소설을 따라 생각하게 한 놀라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철학 소설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