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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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 이야기를 아주 전부터 들어왔지만 좀처럼 책을 읽게 되지 않았다. 읽을까~ 싶다가도 두께나 알 수 없는 거부감 때문에 미뤄오다 이제야 손에 들었는데,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싶다. 지금은 2025년, 전 국민을 괴롭히던 코로나도 한물 가고~, 이제 좀 경제만 살리면 살 만한 나라가 될까~ 싶던 순간 몰아닥친 계엄도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되었으니 이럴 때야말로 <28>을 읽을 때가 아닌가!

표지 한가득 채우고 있는 "28"이라는 숫자의 의미와 아무 상관 없이 소설은 재형의 옛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 알래스카 개 썰매 경주에 참가해 늑대의 공격으로 처참하게 자신의 개를 몰살시킨 재형. 살고자 하는 삶의 의지였으나 자신이 살기 위해 썰매 개를 몰살시킨 천하의 악인으로 낙인찍힌 그는, 그런 주위의 시선과 별도로 어마어마한 죄책감 속에 살아간다. 그 죄책감을 갚듯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화양이라는 도시에서 유기견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수의사로서 살아가던 재형은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기사 한 편으로 다시 나락 앞에 서 있다. 그와 동시에 이 도시에선 알 수 없는 빨간 눈 괴질이 아주 빠르게 퍼져나간다.

처음 코로나가 퍼져나가던 때가 생각난다. 2019년 12월 중국의 이야기일 것 같던 것이 2020년이 되어 단 한 명에서 시작한 이 질병이 얼마나 빨리 우리 삶을 잠식했는지. 우린 아니겠지~에서 어떡하지로 바뀌던 그 때, 무조건적인 낙천적 생각도, 부정적 생각도 하면 안되던 때였다. 내 경우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계시던 때라 더했던 것 같다. 만약 코로나를 겪지 않고 <28>을 읽었다면 그저 남의 이야기로, 소설로서만 이해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런가 하면 화양 시를 넘어 서울로 전염될까 시행한 비상계엄은, 어떻게 국가가 하나의 시를 버리고 국민을 버리고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때문에 설마... 설마... 하던 공식을 모두 깨는 소설이 되었다. 숨도 못 쉬고 읽어내려갔다.

돼지 구제역 살처분 뉴스를 보고 이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는 정유정 작가는,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 훨씬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개가 훨씬 더 인간적이고 인간이 인간성 하나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지, "삶"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곧,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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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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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클레어 키건 바람이 불고 있어 하나씩 읽어보는 중이다. <맡겨진 소녀>를 먼저 대여해서 읽었는데, 아주 짧지만 그 감정은 짧지 않아 책을 반납하고서도 한참 동안이나 마음 속에 들어차 있었더랬다. 이래서 좋은 책이구나... 싶었던 순간이다.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묘사에 내가 그 소녀가 된 것 같은 체험을 한 것에 이어 전체적으로도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처음엔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영화가 책보다 못하다는 평을 여럿 보아서 그 독서 감상을 헤치지 않으려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책장에 꽂힌 채로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가 (<맡겨진 소녀>보다 훨씬 더 큰 책인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 후에 집어들었다. 소설가의 온전한 이야기가 아닌,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임으로 훨씬 더 크게 와닿을 것 같아서다.

첫 문단에 어떤 의미를 두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그러니까 옮긴이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알아채지 못했다.ㅠㅠ) 펄롱의 이야기를 따라 읽다가 이 짧은 책이 언제 이야기를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려나...걱정되기 시작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맡겨진 소녀> 또한 뭔가 문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따윈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 <이처럼 사소한 것들> 또한 마찬가지다. 말도 안되는 사건(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그저 바깥의 마을 사람들과 그나마 인간적인,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펄롱을 따라가기만 한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한 개인의 이야기인 것처럼.

그러니까 이 소설은 ...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섦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은,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도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119p

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손해 보기 싫어서, 뭔가 피해를 입을까봐 나서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나이가 드니 좀 용감해진다.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용기에 오히려 젊을 적 소리소리 지르던 남편이 말릴 지경. 나 혼자 잘 살아봤자 뭐 하겠나~ 내 뒤를 이어 내 자식이, 손자들이 살아갈 세상인데 지금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좀 잃더라도 옳지 않은 것들은 옳지 않다고 말해야 하지 않나.

소설을 읽으며 울컥거리는 건, 바로 이런 감정들 때문일 거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임을 알겠다. 또 읽고, 또 읽어서 작가가 숨겨놓은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싶다. 역시 훌륭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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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사면 과학 드립니다
정윤선 지음, 시미씨 그림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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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과학책만 읽어서 문학 책을 쥐어주는 게 일인데, 그 외의 아이들은 문학 책만 좋아해서 과학 책이나 사회 책 등 비문학 책을 읽히는 게 최대 목표다. 그러니 만화책이라도 과학이나 사회 이론을 알려주는 책이라면 OK!. 그렇다고 만화책만 읽으면 또 문해력이 떨어지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비문학을 읽히려고 한다. 때문에 재미있는 비문학 책이 있다면 정말 절이라도 할 정도.

아니, 그런데 그런 책이 뙇!!! 있는 게 아닌가~! <과자 사면 과학 드립니다>라는 제목만 봐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고, 표지도 귀여운, 우리가 익히 알고 자주 먹는 과자들로 도배되어 막~ 흥미가 당긴다는 점! 거기다 먹는 것에 환장하는(이런 표현 좀 그렇지만~ㅋㅋ) 아이라면 신나서 읽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조용~히 거실에 깔아두니 역시나~ "엇, 이거 뭐야! 오늘은 이거!" 하고 잠자리 책으로 들고 간다. 오호~ 성공이로세~^^

책을 살펴보자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에서부터 라면과 간식 코너, 음료와 아이스크림, 유제품과 냉장식품 등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간식이 잔~뜩 들어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자주 보는 제품들을 먹고 마시며 조금쯤은 궁금했을 법한 과학 이론과 개념에 대해 아주 속시원히 설명해 주는 책이다.

왜 과자 봉지 안에는 질소가 들어있는지처럼 익히 알고있는 사실부터 아이셔 캐러멜 속 신맛의 정체나 불*볶음면처럼 매운 것을 먹을 때 물을 마시면 도움이 되는지 등등 다양한 궁금거리들을 과학 이론을 들어 차분히 설명해 준다. 어쩌면 한 번씩은 궁금했지만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그냥 넘겼을 궁금증과 호기심을 이 한 권의 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있다면 당연히 아이들이 그 호기심을 채우며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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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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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폴 오스터의 전집을 진작부터 구매해 놓고 아직 읽지 못했는데, 벌써 생애 마지막 작품이 출간되어 버렸다. 이럴 땐 항상 망설여진다. 작가의 시작부터 읽어야 할지, 우선 가까운 작품부터 읽어야 할지. 다행이도 추천사에 "오스터의 처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완벽한 마무리가, 오스터를 아직 모르는 운 좋은 독자들에게는 완벽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라는 금정연 작가의 말에 힘입어 마지막 작품부터 시도해 본다.

<바움가트너>가 읽기 어려운 작품은 아니다. 사유에 사유가 이어지는 작품들은 읽기가 좀 힘든데, 이 경우 이야기에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어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2주 넘게 붙잡고 읽었던 이유는, 그 이야기가 두껍지 않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에서부터 바움가트너 본인의 가정사와 그 너머 어머니, 아버지의 가계도, 부인인 애나와 그 가족의 이야기, 가끔 개입되는 환상까지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방대한 양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을 여러 장면에서 덧붙여 바라본 느낌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살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두려워지는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바움가트너가 생각하듯 죽음은 언제 어느 때라도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것이고 그 우연은 어쩔 수 없는 거라서 결국, 지금 이 순간들을 소중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너무 조급하지 않게, 너무 게으르지 않게.

폴 오스터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어떤 작풍이나 하는 것들을 느끼기엔 어림도 없지만 <바움가트너>가 부인을 애도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 행동력 등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하나씩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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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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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히 "책"이라는 글자가 책 제목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고른 책.ㅎㅎㅎ 평생 나는 내가 J인 줄 알고 살았는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사실 난 P였나보다...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ㅋㅋㅋ

장 폴 뒤부아라는 작가는 그저 우리 집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는 책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분명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서평을 찾아보니 없다.ㅠㅠ 아마 안 읽었나보다) 때문에 기억하고 있던 작가다. 또 <프랑스적인 삶>(이 책도 있음. 아직 안 읽음)도 있다. 어쩌다 이 작가의 책을 세 권이나 갖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진 않지만(10년 넘게 사 모은 책, 이제 구매는 줄이고 소비-독서를 열심히 하는 중) 세 권이나 갖고 있다면 분명 이 작가에게 흥미가 있을 터. 하지만 막상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자 생각했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읽어내려간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인공은 중년의 남자다. 책 나부랑이를 쓰고 있지만 신통치 않고 그저 지금까지 어영부영 살아온 느낌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부인과 그쪽 집안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이혼한 후에도 정착하고, 안정적인 삶이 아닌 무언가 붕~ 뜬 것 같은 말하자면 아직도 정체성을 찾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 자신을 대하는 주변의 사람들, 스트레스가 쌓여 몸으로 증상을 보내기 시작하는 자신에게 무언가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아버지가 일 년에 한동안은 낚시하러 떠나셨던 장소,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소로 찾아가보기로 한다.

"이제 막 책 한 권을 끝냈다. 책을 쓰는 동안이나마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이미 죽은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었다."...248p

맞서기 두려웠던 마냥 피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맞서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책 한 권 속에서 가장 강렬했던 숲을 통과하는 과정이 주인공에겐 바로 그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목숨을 내놓고 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무모했지만. 끝이 좋으니 다 좋은 걸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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