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여행자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예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읽는 사람에 따라서 같은 책이 얼마나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정말 자주... 깨닫게 된다. 좋아하는 책이 비슷한 친구가 추천했더라도, 혹은 유명 작가가 추천해서 읽은 책이라도 내게는 영~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연한 여행자>>는 순전히 "앤 타일러"라는 작가의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또 공지영님의 <네가 어떤 삶을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에 소개되었다는 글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뭐랄까... 이 책이 "영~ 아니올시다!"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 역시!"하는 느낌도 아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너무나 심란하고, 우울하고 괴로울 때 접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럴 때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도 이 책이 나와 함께... 힘들 때마다 꺼내 읽게 되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하고 말이다. 

결혼 한 지 20년이 된 부부가 여행 도중 집으로 돌아오며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보인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별거를 결정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1년 전에 햄버거 가게에 갔다가 무장강도에게 총을 맞아 죽은 아들의 부재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분명 그 이유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들의 죽음이 이들의 이별에 촉매제가 되기는 했지만 분명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메이컨은 무엇이든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대로만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그리고 꼭 그렇게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과 연결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웃도, 버스나 기차, 비행기 옆자리 좌석의 사람들과도 필요 이상의 대화나 관심을 갖고 싶어하지도, 자신이 관심을 받는 것도 싫어한다.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서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요. 걷는 걸 봐요! 당신은 거리로 툭 튀어 나와서, 고개를 푹 숙이고 성큼성큼 걷소. 누군가가 당신을 세우고 위로의 말을 하고 싶어해도, 당신은 그냥 걸어갈 거요. 물론 난 당신이 마음을 쓴다는 걸 알고, 당신 자신도 그걸 알지만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겠소?"...108p
"가끔은 영영 깁스를 하고 지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솔직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깁스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가슴팍을 통통 두드려보겠지. 눈구멍을 들여다볼 테고. "메이컨? 거기 있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아무도 모르리라."..108p

이런 그의 폐쇄성이 세라에게는 아들의 죽음도 너무나 잘 견디는 아버지로, 아내의 무너질 듯한 슬픔을 잘 이해해주지도 못하는 남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세라는 자신을 꽁꽁 묶어놓은 메이컨에게서 떠나버렸다. 반면, 메이컨은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류의 애견관리사 뮤리엘을 만남으로서 자신의 세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메이컨은,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패턴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뮤리엘을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놀라운 면은 사랑했다. 또 둘이 함께 있을 때 드러나는 자신의 놀라운 면도 사랑했다. 외국이나 다름없는 싱글턴가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냉정하다는 비난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마음이 약하다고 놀림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그저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일 뿐이었다."...318p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만 일삼는 뮤리엘과의 사랑을 통해 메이컨은 조금씩 인간다움을, 삶의 즐거움을 찾아간다. 관심도 없던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관심을 갖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는 메이컨. 그리고 죽은 아들에게서 조금씩 벗어나는 메이컨. 여행을 가서도 언제나 자신의 집과 같기를 희망하던 "우연한 여행자" 메이컨은 진정한 여행자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진짜 모험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은 바로 그거야."...539p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때론 감당하지 못할 상처를 겪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행자"이기에 조금씩 극복할 수 있다. 시간이 흐름으로서... 또 다른 삶을 여행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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