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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평점 :
언젠가 보았던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주연했던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단란해 보였던 한 가정과 재산 분배를 두고 일어난 고소, 새로운 증인으로 인해 그 가정의 가장이 본인이 아니라는 증언으로 일어난 재판 속에 등장한 진짜 마틴 기어. 내용 자체 만으로도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무엇보다 완벽한 다른 인격인 것처럼 연기한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무척 인상깊었다. 중고서점을 거닐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보자마자 옛 기억을 떠올리며 데려온 이유다.
으흠~ 나는 도서를 구매할 때마다 항상 성급하다. 또다시 몇 년을 묵혔다가 읽어야지~하고 펼쳐 든 표지에서 보고야 만 것이다. "역사가의 상상력이 빚은 16세기 프랑스의 생생한 생활사" ! 뭐라고요? 소설이 아니라고요? 그 이야기가 실제라니.... 엣? 그럼 이 책도 소설이 아니라고? 멘붕에.... 멘붕...ㅎㅎㅎ
그래도 읽어본다. 의외로 난 역사를 좋아하고, 돈 주고 산 돈이니~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고... 이상한 똥고집이 또 등장한다. 그런데... 역시~ 재밌다. 그러니까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역사가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가 16세기 당시 실제했던 한 사건(마르탱 게르가 본인이 아닌 "팡세트"라 불렸던 희대의 난봉꾼 아르노 뒤 틸이라고 마르탱 게르의 삼촌 피에르가 고소한 사건)에 다방면으로 접근하여 사실과 가깝게 재구성한 책이다.
리으에서의 재판에 항소(피에르의 승)한 아르노 뒤 틸이 툴리노에서 다시 항소했고 그 항소심을 맡았던 장 코라스의 기록들과 실제 재판 기록, 장 코라스의 책을 기반 삼아 뒤이어 나온 책들을 기반으로 역사가의 상상과 배경지식이 합쳐져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여러 사람을 이해해 보려 한 책이 되었다. 무엇보다 항소심에서 장 코라스 판사는 진짜 마르탱 게르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르노 뒤 틸이 마르탱 게르일 확률이 높다고 봤으며 아르노 뒤 틸에게 더 많은 공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던 난봉꾼 아르노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마르탱 게르가 될 생각을 했는지, 무엇보다 마르탱의 부인 베르트랑드가 진짜 자신의 남편이 아닌지를 알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처음에는 아르노가 진짜라고 주장하다가 아니라고 말을 바꿨는지 등이 무척 흥미로웠다.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 이 이야기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리플리 증후군을 겪는 사기꾼들이 진짜 존재하니까. ) 역사가의 입장에서 그 당시 프랑스 시골 사회와 각각의 인물의 생각을 되짚어가는 과정이 정말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