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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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으로 <파리대왕>은 4회독째다. <데미안> 만큼이나 읽을수록 이해가 깊어지고 또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책이다. 워낙 상징이나 비유가 많기도 하고 그 속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기 위해 천천히 정독이 필요하다. 또하나, <파리대왕>을 여러 번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번역 문제였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던 것. 대강이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고 배경 묘사 또한 그런 거 아닐까,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유난히 상징과 비유가 많은 이 책에서 혹시나 놓친 것이 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찍이 문예출판사의 책을 한번 구매했었다. 두 출판사의 책을 비교해 보고 거기서 거기인 듯한 느낌에 책장 위에 올려두었다가 나중에 짐을 옮기며 보니 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버려 버린 적이 있다. 이번 문예출판사의 새로운 책을 받기 전까지 두 손 모아 바랐던 것이 바로 번역이다.

"정글을 후려친 소년 둘레의 흉터 자국은 온통 열탕처럼 무더웠다."... (7페이지, 민음사)

"정글 속으로 움푹 파고든 긴 암벽은 그야말로 열탕이었다."...(7페이지, 문예출판사)

민음사 버전도 뒤쪽으로 가면 읽을 만하지만 이 앞부분은 도저히 용서가 안됐다. 이번 새로운 책을 받아 이 첫 페이지부터 펼쳐들고선 얼마나 감사했는지~! 이제 학생들도 별 어려움 없이 책 내용에 집중하며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싶다.

제목 <파리대왕>은 책 속에 직접 등장한다. 환영같기도 하고 실제같기도 한 그 장면은 나같은 기독교 문외한은 잘 몰랐던 "바알제붑"이다. 요즘 아이들은 신비아파트나 게임을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단다. 결국 섬에 남겨진 아이들 중 욕망,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과 신사의 나라 영국의 국민 한 사람으로서의 의지를 지키려고 한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또한 파리대왕이 우리의 야만성, 잔인성, 폭력성, 악마성을 의미하면서 우리 마음 속 "일부분"이라고 하는 부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읽을수록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점에 소름끼치는 소설이다. 몇몇 논란거리가 있음에도 훌륭한 소설인 이유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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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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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라는 작가를 처음 안 건,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첫째를 키우며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그림책을 구입해 읽어주는데 아직은 어렸던 아이보다 읽어주는 내가 더 울컥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사노 요코라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시간이 훨씬 흘러 이분이 쓴 에세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책을 빌리거나 사서 읽기도 하고, 소설도 쓰셨다는 걸 알고 그 또한 구해 읽기도 했다. 에세이를 읽을 때는 그림책과 다르게 무척 시크하고 멋진 신여성 할머니의 느낌이 강하다. 나이에서 오는 당당함인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 <시즈코 상>을 읽고선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시즈코 상>은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어릴 적 학대라고 할 만큼 매정하게 굴었던 엄마가 나이 들어 자신의 집에서 며느리에게 쫓겨나고 오갈 곳 없어 함께 살게 되면서 생각하게 된 이야기와, 이후 치매에 걸려 노인 홈(요양원같은 곳인가 보다)에서 지내는 엄마를 찾아가며 엄마와 또다른 관계를 맺게 되는 작가의 이야기를 정말 가감없이 담아냈다.

에세이를 읽을 때부터 느꼈던 건데, 사노 요코는 정말 가식이 없다. 본문에서도 나오는데 사람은 상황에 따라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하건만 사노 요코는 그런 요령을 피울 줄도, 그럴 듯 하게 넘길 줄도 모른다. 그런 태도가 누군가에겐 좋게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위협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재수 없게 느껴질 수도.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던 엄마와는 그렇기에 끝도 없이 부딪치고 부딪칠 수밖에 없다.

아빠의 성향을 닮아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쉽고 아버지가 옳다고 생각했던 사노 요코는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와 떨어져 살면서 그나마 엄마와의 관계가 편안해진다. 하지만 진정으로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건, 자신이 예순이 넘어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나서부터다.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자신을 잃어버린 엄마가 되어서야 다정하고 친절해지는가 하면 그제서야 엄마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끝도 없이 서로를 찌를 것만 같던 둘의 이러한 마지막 여정 속 화해는 그렇기에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림을 준다.

한 편 한 편 연재된 이야기를 묶은 책이라 앞쪽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것도 있고 겹치는 생각들도 있지만 사노 요코는 워낙 자연스럽게 빨려들 듯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특히 사노 요코처럼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화해한 관계라면 더더욱!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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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 청귤 시리즈 1
트리누 란 지음, 마르야-리사 플라츠 그림, 서진석 옮김 / 북극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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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표지를 봤을 땐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의 그림책인가 보다~ 했는데, 온라인 서점에 검색해 보니 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참, 예쁜 표지의 책이구나~ 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동화책같은 그림책이다. 출판사 또한 북극곰으로 역시 아이들 책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 보니 왜 소설로 분류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쩌면 어른을 위한 동화책일지도~.

학교 과학실에 하나씩 있을 법한 해골 모형. 우리나라 과학실에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선 언제나 등장하는 해골 모형이다. 커다란 학교 과학실 구석에서 아주 오랫동안 서 있던 요한(그 당시엔 이름이 없었지만)은 이제 은퇴하여 편안히 살고 싶다. 선생님은 요한이 안쓰러워 시골 숲 한가운데 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연락한다. 할아버지는 요한이 지낼 곳을 손보고 잘 데려와 이곳저곳 오랜 세월 동안 망가진 곳도 고쳐준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런가 보다~하고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의 진가는 바로 다음부터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일상을 보내는 요한의 이야기. 할아버지, 할머니는 요한을 그냥 장식으로 이용하지 않고 마치 자신들의 자식이나 손주처럼 대한다. 일을 할 때나 손주들과 놀이를 할 때, 요한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이 내용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제 갈 때가 가까워 옴을 느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서 나도 언젠가 이렇게 마지막을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주아주 긴~ 여운이 남는다.

역시나 생각대로 우리집 아이는, 이런 심오함을 이해하기에 아직은 어리다. 처음 제목과 표지만 보고 재밌겠다~하고 들고 가더니, 끝까지 읽은 후 자기 스타일은 아니라며 내려놓는다. 죽음과 나이듦을 아직은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그 노후와 죽음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한 동화책이었다.

*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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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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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영풍문고를 방문했다가 구입하게 된 생일 책. 다른 가족의 생일 책은 모두 읽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내 생일 책만 안 읽어보았던 <모순>이라 얼른 사 갖고 왔다. 그리고, 습관처럼 묵히기~ㅎㅎ 책은, 읽고 사고 싶을 때와 읽고 싶어질 때가 다른 것 같다. 적어도 내 경우는~^^

<모순>이 역주행을 하며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의 고민이라든가, 한창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의 마음을 아주 잘 대변하고 있는 책이라고. 난 결혼 적령기가 한참 지난 사람이지만ㅋㅋ 왜 그렇게 역주행을 하는 건지 너무나 궁금하기에~ 얼른 읽어 본다.

그랬더니~, 세상에! 이 책 진짜 오래 된 책이다. 무려 1998년. 주인공 안진진의 나이는 25세. 헉~~~!!! 나랑 동갑이잖아! 그래서 책 속에선 핸드폰(하염없이 집에서 전화를 기다린다거나)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올드한 감성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핸드폰을 제외하면 옛날 시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베스트셀러인 이유일지도)

이름에서 전혀 진지하지 않은 느낌을 풍기는 안진진은 집안 사정으로 대학을 다니다 말고 회사에 다닌다. 가정을 버리고 세상을 떠도는 아버지와 조폭이 되겠다며 사고를 치는 동생, 그 사이에서 억척같이 살아가는 어머니라는 가정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이 되는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25살, 20대의 중심이 되는 해에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탐색하게 된 자신의 결혼 상대자 후보는 둘이다. 탄탄하고 안정적이지만 기계처럼 지루한 나영규와 지지기반 없이 불안정하기만 하지만 낭만이 가득한 김장우.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195p) 너무나 극명하게 다른 두 사람 중 안진진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책은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렇다고 이들의 연애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안진진의 가족 자체가 인생이야기이고, 엄마와 쌍둥이인 안진진의 영혼의 동반자 이모 또한 안진진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재미있었다. 아주 흥미로웠고. 사실 20대의 나는 오히려 현실과 몽상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에 빠지면 사랑밖에 보이지 않으므로. 안진진의 경우 사랑에 빠지기 전부터 둘을 탐색해왔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은 훨씬 현명하므로 아마도 이 안진진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생각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173p)

책에서 "무렴하다"라는 어휘를 처음 봤는데 다들 그런지 블로그에 많이들 써 놓았다. ㅎㅎ 문장을 읽으면 대강 어떤 뜻인지는 알 수 있지만 처음 본 단어라 신기!

또 하나... <모순>은 쇄가 바뀔 때마다 표지 색이 바뀐다고 한다. 내 책은 2023년 판. 2판 60쇄.. 검정색+회색. 다음은 어떤 색일지 진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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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Finlandia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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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은 건, 약 20여년 전... <향수>를 통해서였다. 무척 흡인력 강하고 아주 강렬한, 부제가 "어느 살인자의 고백"인 소설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찾아보다가 영화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화까지 접수, 책보다 영화가 더 좋았던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를 인식하게 된 건, <좀머씨 이야기>를 통해서다. <향수>와는 너무나 다른 결의 소설로, 제 2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을 앓는 좀머씨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말 너무, 진짜 너무 좋았다. 그 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을 하나 둘 사모았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읽지는 않고...ㅋㅋ

진짜 오랜만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읽는다. 보통 문어발식 독서 중이라 집이나 교습소에는 두꺼운 책을, 가방 안에는 얇은 책을 넣어두는데 이번에 담긴 책이 <콘트라베이스>.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아 가방 속에 묵힌 채로 약 세 달. 그래도 신기하게 내용이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읽을 수 있었다.

<콘트라베이스>는 그동안의 작가의 책과는 또다른 책이다. 읽을 때마다 정말 놀랍다. 우선 희곡으로 연극을 상연하기 위해 씌여진 글이라는 사실. 게다가 이 작품은 모노드라마다. 따라서 책 속 주인공,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자인 '나'는 독자들(관객들)을 상대로 말을 한다. 희곡 형식이지만 모노드라마이기 때문에 대사글이 따로 없이 해설과 지문, 줄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나"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씨불인다.(찾아보니 표준어.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이 사람 참, 불쌍하구나 싶기도 하다.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의 위치, 항상 아래쪽 둥둥거림이나 채워주는 그런 존재라 좋은 대접도, 좋은 월급도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계속해서 얘기한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서도 자신감이 없다. 좋아하는 여자(성악가)가 있지만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따위 눈여겨 보지 않을 테니 엉뚱하게 사고나 쳐 볼까 하는 생각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콘트라베이스가 갖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룬 작품이라고 했단다. 10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인데 중간까지 이 찌질남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나 싶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공감하게 된다. 누구보다도 찌질해 보이지만 만약 그게 내 위치라면, 그 처절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자체의 심리를 아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보다는 실제로 연극으로 보면 훨씬 더 감동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독일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공연이라고 하니 언젠가 이 작품을 연극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꼭 보고 싶다. 매 작품마다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또 한번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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