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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노블마인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첫 장면부터... 더없이 강렬하다.
킬러의 것이라 생각되는 검은 장갑을 낀 손에 들린, 번득이는 칼.
"어둠 속에 손 하나가 묻혀 있었다. 그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6p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누가, 왜...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일까.
이 킬러의 등장으로 한 가족이 몰살당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사건은 조용히...(이렇게 큰 사건이지만 더할 수 없이 조용하게) 묻혔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단 한 사람.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여 걷는 것보다 기는 것이 더 편한... 아기는 집 근처 공동 묘지 속으로 숨어들어 산 자들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 의해 킬러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기는 죽은 자들 사이에서, 그 누구도 닮지 않았다는 뜻의 "노바디"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닐 게이먼의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 영화"가 떠오른다.
그의 작품들은 환상과 모험, SF, 미스테리 등을 오가며 글이 시각화가 되어 그 장면장면이 이미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레이브야드 북>>은 일가족의 죽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바디의 유년기와 그가 자라나는 과정과 그가 해결해야만 하는 숙명을 풀어내고 성인이 되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어찌보면 성장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무대가 무대이니만큼, 그 속에는 온갖 괴물들과 유령, 신비한 존재들로 가득하며 그러한 흥미로운 것에 안주하지 않고 소년의 외로움과 성숙, 인간의 내면 등에 대해서도 소홀한 면이 없다.
우리가 생각할 때 "묘지"는 보통 무서운 곳이다.
어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속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존재나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기피하게 된다.
하지만 노바디에게는 그 반대가 된다.
그를 완벽하게 보호해주는 "묘지" 안에서는 그는 안전하나, 그 밖의 산 자들이 사는 현실 세계에서 그는 보호받을 수 없고 항상 두려워해야 하고 피해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노바디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자신과 같은 존재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더 배워야 할 것을 배우기 위해.
"그럼 네 이름을 찾아."...282p
아무도 아닌(NOBODY), 자신의 부모가 왜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노바디는 더이상 자랄 수가 없다.
그가 성장하기 위해선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숙명을 해결했을 때에야 그는 묘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안전한 곳에서 머무를 수 있어도 그가 묘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약간의 고통과 힘든 일이 있더라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바로,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