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인류의 역사는 이렇다. 동굴에서 살며 수렵과 채집을 해오던 신석기인들이 먹을 것을 따라 이동해오던 습성을 버리고 농경사회로 정착하면서 한 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이 생겨나고 공동체 사회가 발달하며 종교가 생겨났다. 하지만 15년 전 터키 동남부 시리아 국경 근처에서 한 고대 유적이 발견되고 그 이후 발굴이 계속되면서 어쩌면 이 순서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방대한 면적의 이 유적은 현재 15년간 계속 발굴작업이 진행중이고 이제 겨우 5%만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한다. 그곳의 이름은 인류 최초의 신전.... "괴베클리 테페"이다. <<창세기 비밀>>은 이 괴베클리 테페라는 유적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해외 특파원 시절 이곳을 답사했던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이 소설은 매우 탄탄하며 역사와 미스테리, 인간과 종교 등 다방면에서 잘 짜여져 있다. "바로 그게 문제예요. 활과 화살을 들고 다니던 인류가 말이죠. 도기는 물론이고 농사짓는 법도 몰랐던 이들인데,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까요? 어떻게 이런 거대한 사원을 건설했을까요?"...57p <<창세기 비밀>> 속 가설은 실제 발굴 작업을 주도하는 슈미트의 주장과는 다르다.(어찌보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발굴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진실을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의 방대한 지식에 힘을 얻어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마치 그의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만들었던걸까. 너무나 거대하고 그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을 것 같은 이 사원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소설은 커다랗게 두 개의 축을 가지고 흘러간다. 하나는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과 그 비밀에 대하여.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영국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살인 사건에 대하여.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등장하던 이 사건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하나로 합쳐지고 결국은 모든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난 사실 성경이나 종교의 역사 등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때문에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의 집중도와 흥미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해서 흘러간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작가의 뒷받침 증거들이 너무나 훌륭하고 단단하기 때문에 거의 그의 주장이 사실일 거라고 믿고 싶을 정도이다. 과연 인류는 어떻게 시작되었던 걸까. 지금에 이른 인류는 어째서 머리가 좋을수록, 카리스마 있는 리더일수록 폭력성과 잔인성을 띠는 것일까. 소설 속 묘사는 무척이나 자세해서 때론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의 수위까지 이를 때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그러한 묘사가 없었다면 이렇게 모든 면에서 적절한 소설로 탄생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괴베클리 테페는 과연 소설 속 에덴동산이었을까? 그 옛날 그곳에선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실제로 어떻게 밝혀질지 굉장히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