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가 끝난 뒤 - 러시아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박종소.박현섭 엮어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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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편을 읽음으로서 창비 세계 문학을 세 번째로 접하게 되었다. 된소리 발음의 표기법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나는 이 전집이 참 마음에 든다. 평소 단편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점을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뿐.^^ 도대체 이 단편들의 무엇이 내 관심을 끄는 걸까. 

러시아편은 무척이나 화려한 작가진이 눈길을 끈다. 알렉산드르 뿌슈낀에서부터 레프 똘스또이, 안똔 체호프, 막심 고리끼, 미하일 불가꼬프에서부터 니꼴라이 고골과 이삭 바벨, 나제쥬다 떼피와 예브게니 자먀찐, 이반 부닌과 안드레이 쁠라또노프에 이르기까지. 다른 나라의 작품들은 한 작가당 두 세 편의 작품이 소개된 반면 러시아편은 거의가 한 작가당 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아마도 19세기 문학사를 이끈 유명 작가들이 러시아에 대거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전에 읽었던 일본편이나 영국편에 비해 러시아편의 단편들은 각 작가들의 특성을 가려내기가 쉽지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 밑바닥의 삶을, 인간 본연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고 작품마다 임팩트가 강하다. 너무나 교육적이어서 앞으로는 장편만 읽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똘스또이의 작품인 <무도회가 끝난 뒤> 조차 전혀 그의 단편인 것 같지가 않다. 이렇게 한 흐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을 엮은 분의 노력 덕이었는지 아니면 그 시대를 풍미하던 러시아 문학의 대표적 특성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창비 세계 문학을 읽게 만드는 힘인 것은 분명하다. 

너무나 닮아있는 이 작품들 덕에 이 작품이 누구의 작품인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읽었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단편들은 분명히 하나하나 잘 살아있다. 짧지만 강렬해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갑자기 불쑥 생각나게 만든다고나 할까. 아마도 내가 이 전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힘 때문일 것 같다. 

다음엔 또 어떤 나라의 작품을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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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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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에, 나는 유럽에 있었다. 막 도착했을 때였고 우리나라를 처음 벗어난 지 겨우 이틀 째에 그 낯선 나라의 TV로 우리나라 소식을 접했다.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했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겨우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또 한 건의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삼품백화점 붕괴사건. 어떻게 그렇게 스르르... 한순간에 무너질 수가 있는지 아마도 뉴스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했을 것이다. 

<<강남몽>>은 바로 그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다룬 소설이라고 첫 페이지 제 1장의 제목에서부터 알려준다. "백화점이 무너지다"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닐진대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 얼마나 부실공사를 했기에. <<강남몽>>은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황석영이라는 대 작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사뭇... 기대가 컸다. 

백화점의 붕괴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백화점의 붕괴 사건은 그저 작가가 보여주려 하는 역사의 단편을 하나로 이어주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그 백화점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혹은 그들과 마주치고 지나쳤던 인물들의,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저 멀리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나라가 독립하고 분리되고 전쟁을 치르고 민주주의로 거듭나려 애쓰는 그 시절을 거쳐 드디어 "강남"이 서울로 편입되고 대한민국의 "부"가 모이는 곳으로 불리게 되기까지의 역사가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진행된다. 

그런데 나는 왜, "식상하다"라고 느껴지는 걸까. 한 사람의 삶과 현재 사이를 오고가는 구조가 무척 친숙하다. 내가 좋아하는 재난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구성. 단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영화에서는 순수하게 그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지만, 이 소설에선 인물들을 통해 역사를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 다르달까. 

또, 그저 인물들의 개인적 삶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이 소설이 새롭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끝도없이 설명되는 역사적 나레이션이 나는 왜 그렇게 거슬리던지. 도대체 이 책이 소설일까, 다큐일까를 고민하며 몇 번이나 책을 내려놓았다. 대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사실 소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모르게 좋은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는가보다. 더 좋은 의미를 담고 있기를, 더 깊은 뜻을 담고 있기를. 고뇌하고 번뇌한 흔적을 읽는 독자가 흠뻑 느낄 수 있기를.... <<강남몽>>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마도 빠른 전개와 가볍게 읽기를 원하는 남성 독자들에겐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가 말하는 스러진 강남의 "꿈"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고 "조선 왕조 500년"이나 "제 5공화국" 같은 역사 드라마에서 설명되던 나레이션 같은 어투만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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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윤리적 소비, 철수맨이 나타났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철수맨이 나타났다 - 제1회 대한민국 문학&영화 콘텐츠 대전 수상작
김민서 지음, 김주리 그림 / 살림Friends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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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나 책 읽는 소녀 동상의 무시무시한 전설이나 푸세식 화장실에 대한 전설,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바바리맨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나 10.10 감나무 사건의 배후 등에 대한 전설들. 아이들은 이런 유치하고 뻔하거나 말도 안되는 무수한 소문과 전설들에 열광했고 그당시 우리들에게 이러한 이야깃거리는 입시 경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아니었는지! 매일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일들은 부풀려지고 과장되고 상상력이 더해져 그때 그 나이만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아이들은 마음껏 즐기고 만끽한다. 낙엽만 굴러도 웃음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철수맨이 나타났다!>>는 그러한 아이들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표지를 과감하게 "만화"로 처리했고 이야기 중간 중간 만화 삽화가 삽입되어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은 만화화하거나 영화화하여도 참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전혀 가볍지 않다. 이야기의 진도는 훌훌 넘어갈 정도로 빠른데도 그 안에 표현된 중학생 아이들의 마음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개발 붐이 일고 있어 농촌과 도시의 경계선에 있는 어느 신도시의 한 마을,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들 마을의 전설이 있다. 어린 소년의 가면을 쓰고 경찰 대신 악당들을 소탕하는 이른바 "철수맨".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나이도, 사는 곳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 철수맨이 다시 등장했다. "희주"는 우연히 철수맨 정체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친구 유채와 지은과 함께 철수맨을 찾아나선다. 

이 소설은 "철수맨"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 철수맨을 찾아나선 여학생 셋과 철수맨의 후보들이 함께 철수맨의 뒤를 쫓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학창시절의 즐거움을 찾아나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단짝 친구라고 해도 자신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지 않았던 이들이 한 사건과 한 사건을 함께 겪어가며 그 치부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정"과 "학창시절의 즐거움"을 얻게 된 것. 

"모두가 이 나이를 겁 없는 나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현재의 세상이 전부이기에 일상을 차지하는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두가 고등학생이나 성인이 된 후를 쿨하게 꿈꾸는 척하지만, 실은 그것은 말뿐이고 문제의 요지는 모두 현실 안에 있다. 학교 안에, 교실 안에, 바로 곁에 있는 친구와의 보이지 않는 관계 안에."...84p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철수맨의 정체를 꼭 밝혀내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끝까지 숨겨두고도 싶은 희주의 마음은, 현실 속의 힘든 가정형편에 대한 걱정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에 대한 갈등이 아닐까. 그 어느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겠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친구들, 그들 모두가 영웅의 후보들이다."...209p

그렇기에 정의를 실현하는 철수맨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히 하며 매일의 일상 속에서도 추억을 소중히 쌓아가는 아이들 모두가 영웅의 후보가 되는 것이다. 

<<철수맨이 나타났다!>>는 제 1회 대한민국 문학&영화 콘텐츠 대전 수상작이라고 한다. 무척 참신하면서도 재미있다. 그저 빠르고 비주얼적인 내용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비밀을 공유하고 성장해나아가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아이들에게는 "공감"을, 어른들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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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7-2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군요. 전 안식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사놓고 안본 책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책을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빠르네요.

ilovebooks 2010-07-26 21:04   좋아요 0 | URL
전 다음 기수에 쉴 것 같네요.^^
이번 기수에는 아이들책이라 저도 조금씩 제 책 줄여나가려고요~
더운 여름 가족과 함께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두 바퀴로 대한민국 한 바퀴/먹지 않고는 못 참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두바퀴로 대한민국 한바퀴 - 좌충우돌 전국 자전거 여행기
방승조 지음 / 청년정신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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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전국 일주라니~!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버거워하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계획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다. 새파랗게 어린 20대 초반이었어도 아마 나는 꿈쩍도 안했을 것이다. ㅋㅋ 그럼에도... <<두바퀴로 대한민국 한바퀴>>를 읽고나니 자전거를 타고 온가족 전국일주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고개를 들었다.^^

만화가인 몽 씨와 그의 여자친구 꼬맹이가 함께 하는 이 여행은, 만화가 몽 씨의 발랄한 카툰과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사랑 싸움 혹은 애정으로 감칠맛을 더한다. 여행에서 함께 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아주 사이 좋았던 친구와도, 혹은 몇 년 몇십 년을 함께 산 부부와도 어느 순간 꼴도 보기 싫게 만드는 것이 여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서로에게 양보하고 맞춰주며 한 달여의 여행을 마친 두 사람이 참으로 이뻐보인다.

책의 맨 첫부분을 장식하는 프롤로그의 설정이 재미있다. 장난인 듯, 설정인 듯한 카툰의 이미지는 두 사람의 관계와 여행의 동기에 대해 설명해주는 듯.^^



여행기인만큼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꼼꼼히 집어준다. 아니, 사실 이들이 준비한 것들을 서술했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여행은 총 5단계로... "서울에서 땅끝까지", "꿈의 섬 제주도 일주", "남해를 끼고", "동해안을 타고 오르다",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부분은 특이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카툰으로 장식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본문의 경우, 읽어내려가며 약간의 실망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이 책을 개인적인 수필이 아닌 "여행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인 몽 씨는 이 여행을 하며 매일 일기를 적었고 그 일기를 자전거 여행 일기를 올리기 위해 만든 블로그에 올린 듯하다. 그러므로 극히 개인적인 여행글이 된 이 이야기들이 내게는 그저 어느 블로그나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로 읽혔던 것.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인정했던 부분은 바로 "구성"에 있다. 카툰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본문으로 이어지고 하루를 마감하는 "경비지출내역"과 한페이지 사진과 간략한 문구로 끝을 맺는다. 그 마지막 페이지가 내겐 가장 마음에 든, 청량한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실, 무언가 절실하다면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 한 가지일 테지만, 나의 마음은 벌써 그것이 현재 가능하지 않은 10가지 이유를 찾으려 한다. 아마도 아직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겠지......"...108p

살면서 수많은 것들을 원하지만 그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한 행동에는 막상 주저할 때가 있다. 많은 변명들을 내세우며... 하지만 한 달간의 자전거 전국 일주를 떠난 이 두 사람들에겐 이미 "용기" 백배가 아닐런지. 수많은 경험을 하며 여행을 한 두 사람에게는 이제 많은 것들이 그 전과는 많이 달라보일 것이다. 그리고 더 크고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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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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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끝까지 읽고나니, "더블 테이크(문득 갑자기 다시 돌아보는 것)"라는 말 자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내가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음에도 무심코, 혹은 무의식적으로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던 많은, 나와는 다른 분들에게 너무 죄송해졌다. 나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한 것일까. 그렇다고 또다시 같은 상황에서 더블 테이크를 안할 자신은 없다. 아마도 내가 아는 분이라면 몰라도 거리에서 부딪히게 되는 새로운 만남에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이니 말이다.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라는 제목이 참으로 절묘하다. 이 책, 처음엔 한 장애 청년의 감동을 담은 성공기 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너무나 담담하게 마치 소설처럼 툭툭 끊어낸 그의 이야기는 그저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미국의 한 청년의 성장기일 뿐이다. "장애"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그의 내면 속의 "성장"이 이 책의 초점이다.  

가족들 속에서 장애아...가 아닌, 아주 평범하고 독립된 자아로서의 한 아이로 자란 케빈은 자신이 다리가 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애정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의 곁에는 늘 홀로서기를 돕는 가족과 친구들, 선생님들이 가득했다. 자신을 전혀 모르는 대중들 사이가 아니라면 그는 그를 잘 아는 사람들 속에서 늘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 

하지만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무언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무한한 호기심 혹은 동정심, 놀라움, 경악의 눈초리의 눈빛을 보내고 말을 걸어오는 대중들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끝도없이 설명해야 하는 그 불편함이 케빈은 너무나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케빈은 바로 그 불편함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찾아내고자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놀라고 동정심을 보이고, 캐물어보려는 대중들에게서 케빈은 복수의 의미로, 자신을 찾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 바닥에서 바라본 대중드르이 시선. 그의 사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중들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 떠났던 여행과 사진 프로젝트는 그에게 처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론을 안겨주었지만 어쨌든 그는 그 여행 속에서 성장했고 대중들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자기 찾기를 하는 동안 소홀했던 많은 관계들에 대한 희생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내게 시선을 보내는지, 나는 이해했다. 나는 그들과 달라 보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마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더러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존재로 보이는 것이 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간단하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방법으로 스케이트보드를 선택했다. 내가 나의 선택을 바꾼 데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충격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212p
"보드는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대변해주었다. 나의 세계는 미적인 가치보다 적응과 실용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붙잡아야 하는 세계였다. 스케이트보드가 없었다면, 나는 특별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해 보였던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213p

육체적 장애만이 장애라고 할 수 있을까...생각해본다. 케빈은 비록 다리가 없어 두 팔로만 활동할 수 있지만 그 외에 그가 도전하지 못한 과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가로막는 문들을 모두 통과했고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것에 맞서 용감하게 싸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지가 멀쩡한 우리들은 간혹 새로운 모험이나 도전 앞에 얼마나 많이 망설이고 힘들어하는가! 그런 우리는 정신적 장애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대중의 시선에 맞서려 했기 때문에 케빈은 자신에게 정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무대나 인생이 오로지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가족들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 그것이 그의 여행의 결론이 되지 않았을까. 그의 마지막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너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라는 질문 대신 "너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거야?"라고 묻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어떤 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질문이 아닐까. 겉으로 드러난 것에 대한 단순 호기심이 아닌, 진실로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는 호감을 표현하는 말. 당신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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