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에, 나는 유럽에 있었다. 막 도착했을 때였고 우리나라를 처음 벗어난 지 겨우 이틀 째에 그 낯선 나라의 TV로 우리나라 소식을 접했다.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했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겨우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또 한 건의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삼품백화점 붕괴사건. 어떻게 그렇게 스르르... 한순간에 무너질 수가 있는지 아마도 뉴스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했을 것이다. <<강남몽>>은 바로 그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다룬 소설이라고 첫 페이지 제 1장의 제목에서부터 알려준다. "백화점이 무너지다"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닐진대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 얼마나 부실공사를 했기에. <<강남몽>>은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황석영이라는 대 작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사뭇... 기대가 컸다. 백화점의 붕괴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백화점의 붕괴 사건은 그저 작가가 보여주려 하는 역사의 단편을 하나로 이어주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그 백화점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혹은 그들과 마주치고 지나쳤던 인물들의,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저 멀리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나라가 독립하고 분리되고 전쟁을 치르고 민주주의로 거듭나려 애쓰는 그 시절을 거쳐 드디어 "강남"이 서울로 편입되고 대한민국의 "부"가 모이는 곳으로 불리게 되기까지의 역사가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진행된다. 그런데 나는 왜, "식상하다"라고 느껴지는 걸까. 한 사람의 삶과 현재 사이를 오고가는 구조가 무척 친숙하다. 내가 좋아하는 재난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구성. 단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영화에서는 순수하게 그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지만, 이 소설에선 인물들을 통해 역사를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 다르달까. 또, 그저 인물들의 개인적 삶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이 소설이 새롭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끝도없이 설명되는 역사적 나레이션이 나는 왜 그렇게 거슬리던지. 도대체 이 책이 소설일까, 다큐일까를 고민하며 몇 번이나 책을 내려놓았다. 대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사실 소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모르게 좋은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는가보다. 더 좋은 의미를 담고 있기를, 더 깊은 뜻을 담고 있기를. 고뇌하고 번뇌한 흔적을 읽는 독자가 흠뻑 느낄 수 있기를.... <<강남몽>>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마도 빠른 전개와 가볍게 읽기를 원하는 남성 독자들에겐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가 말하는 스러진 강남의 "꿈"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고 "조선 왕조 500년"이나 "제 5공화국" 같은 역사 드라마에서 설명되던 나레이션 같은 어투만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