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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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극의 흐름이 최고조에 이르러 느닷없는 반전이 일어나면...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저 깜짝 놀라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당황하고 놀라서 몸이 반응을 일으키는 듯. 최고의 반전으로 꼽히는 영화라면... 역시나 "식스 센스"가 아닐까. 언뜻 누군가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봤음에도 왜 그렇게 소름이 끼치도록 놀라고 놀라웠는지. 

"유령"의 존재를 믿으시는가. 나는 나름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고 감성적인 부분보다 이성적인 부분에 치우친 인간이지만 어두운 밤 어디선가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은 공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내 내면에서는 이 유령의 존재를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안에 사는 너>>는 제목만 보면 무척이나 달콤할 것 같은 로맨틱 소설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쌍둥이들의 존재와 그들간의 미묘한 대립, 감정 등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유령"의 존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느닷없는 주인공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윗 세대 쌍둥이들의 관계에서부터 그 아래 세대로 이어진 쌍둥이들의 자립으로 이어져온다. 

나 자신이 쌍둥이가 아니고 내 아이 또한 쌍둥이가 아니기에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며 서로에게 얼마만큼 환멸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다른 "나"를 바라보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라고 추측은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또한 세 쌍둥이로 태어나 끊임없이 자아에 대해 고민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을 정확히 어떤 부류에 넣을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1권이 끝났지만 소설은 이제 막 시작했고 에디와 엘스페스와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로버트가 엘스페스의 일기를 통해 읽고 온전히 이해해야만 "쌍둥이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자! 이제 2권으로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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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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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요네하라 마리님의 책은 세 번째이다. 읽을 때마다 재치있는 그녀의 글에, 거침없는 결말에, 놀라운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거구나!', '어쩌면 이렇게 맛깔스러운 글을 쓸 수 있을까' ...등등. 같은 주제를 두고도 마리님의 책을 읽으면 좀 더 철학적이면서도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과감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는 지식은 아주 얕은 개울물인데 마리님의 지식 창고는 끝도 없는 바다인 것을 알겠다. 그 지식을 끝도없이 술술~ 줄줄~ 풀어낸다. 

이번엔.... "발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존의 그녀의 글처럼 발명을 빗대어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비꼬는 놀라운 글일 것이라는 예상을 살짝 비켜났다. 내 예상대로의 글은 아주 일부분일 뿐... <<발명 마니아>>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그녀의 놀라운 발명 이야기로 가득하다. 정말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인 것.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일상생활의 불편함에서, 혹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냥 투덜대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중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여 직접 개선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발명가인 것 같다. 평소 마리님의 글에서 톡톡 튀는 재치를 느끼기는 했지만 이분 또한 발명가의 기질을 갖고 계신지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발명 마니아>>를 통해 왠지 수긍이 가니 이 또한 마리님만의 개성인 듯 느껴진다. 

아주 사소한 계기나 생각에서 시작하여 나무 가지처럼 뻗고 뻗어 생각은 다른 생각을 불러들이고 또 다른 계기를 만든다. 마리님의 발명은 때로는 황당하게 때로는 어이없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왠지 공감이 가고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 않다. 기계적인 부분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한겨울에 손 시리지 않게 누워서 독서하는 법"이라든가 "어디서나 에어컨"에서 지방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것 등의 발명을 만나면 "올레~!!"를 외치지 않을 수가 없다. 왠지 그 필요의 처철함이 나와 꼭~ 같기 때문이 아닐까.

마리님의 발명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부터 사회적 이슈나 문제(유괴, 환경 오염,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 사회적 약자 등)에서 출발한 해결법으로 새로운 물품을 발명하거나 제시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와 관련하여 몸 속의 피하지방이나 고혈압의 나쁜 콜레스테롤 등을 에너지화 하는 방법 등은 무척이나 귀가 솔깃해지는 발명인 것처럼 느껴진다. 

요네하라 마리님의 책이 가장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저 즐겁거나 새로울 것 같은 주제 속에서도 국제 사회의 문제점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발명을 통해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현안에 대해서는 거의가 2004년과 2005년에 씌어진 글이 많아 지금과는 사뭇 맞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그때와 지금의 국제 사회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는, 바로 일러스트이다. 슥슥~ 아무렇게나 그렸을 것 같은 이 일러스트레이터의 서명은 아라이 야요인데, 알고보니 이 가명 또한 요네하라 마리님의 것이라는 사실!^^ 글을 아주 잘 나타내며 살짝 비꼬는 듯한 이 일러스트와 글이 아주 잘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다음에는 또 어떤 책이 나올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한 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한 것들을 이렇게까지 발전시켜 뛰어난 발명품으로 탄생시킨 요네하라 마리님의 재치와 아이디어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어쩌면 조만간 혹은 몇십 년 후에 마리님이 생각했던 그대로의 발명품이 등장하지는 않을까...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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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별궁의 노래 - 잊혀진 여걸 강빈 이야기
김용상 지음 / 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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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소현세자의 이야기를 담은 <<소현>>을 읽었다. 그리고 이젠, 소현세자빈의 이야기. 병자호란에서 너무나 비굴한 패배 끝에 청국으로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고 8년만에 조선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죽음에 이른 소현세자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으로 읽는 재미는 크다. 

저자는 소현세자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주인공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여걸"이라고 일컫는 대열에 소현세자빈이 전혀 뒤지지 않음을 작가의 말에서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작가의 말을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상 뒤쪽에 있었다면 오히려 소설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에 읽었던 소설에서는 세자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별궁의 노래>>에 등장하는 소현세자빈이 참으로 낯설다.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조선 여인상에서 벗어나 있으니 그럴 만합니다. "...48p

세자빈은 자기 스스로 다른 여인네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저 바깥일에 간섭하지 않고 조용히 내조만을 바라는 궁중 여인들의 예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한 발 더 일찍 정세를 읽고 바른 길로 세자를 인도하고 싶어했고, 어려움에 처한 심양관을 구하고자 직접 농사와 무역에 참여하여 사람을 부릴 줄도 알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응용하여 적용할 줄도 알았다. 그러니 그녀가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눈엣가시였을지...

소설을 읽다보니 안그래도 두껍고 길어 자칫 헤이해지기 쉬운 집중력을 흐트려뜨리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 흐르다말고 어딘가로 튄다고 느껴지는 것. 누군가를 설명하기 위해 전체 줄거리에서 빠져나와 뒤로, 혹은 옆으로... 새나가다보니 내가 지금 어디를 읽고 있나...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런가하면 당시의 역사를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적 배경이 부족하다.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같은 시대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의 반이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워낙 소현세자와 임금 간의 갈등이 크다보니 책은 쉬이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내게는 "작가의 말"에서 읽은 저자의 세자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어 이 또한 저자의 편애가 아닌가..싶었다. 분명 세자빈은 그당신의 여인들과는 달랐다. 또, 소현세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누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 좋고 명민한 머리로 세자빈은 마음을 추스리고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분명 세자빈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조 소용처럼은 아니더라도 악화시키는 데 일조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 누가 옳고 그러냐...를 따지고 싶다면 그 모든 결론은 이 책을 읽는 각자 독자의 몫이 아닐까. 

분명 세자빈은 불행을 기회로 만들 줄 아는 똑똑하고 생활력 있는 여인이었다. 또 비록 볼모였다 하더라도 청나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소현세자가 다음 임금이 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많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역사관을 세자빈을 통해 밝히고자 한 것 같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왠지 이 책이 객관적이 아닌, 무척이나 주관적인 책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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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통곡하는 한
야엘 아쌍 지음, 권지현 옮김 / 반디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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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향하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민족을 위해, 조국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순교자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많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하지만 그런 맹세 후에... 목적지를 찾아가며 두 청년은 조금씩 자신의 소중한 목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그 의의와 의미를 다신 한 번 되새겨본다. 이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 방법밖에 없을까. 그 아이들의 내적 갈등이 참으로 섬세하게 그려져서 큰 임팩트가 없었어도 감동받았던... 그런 영화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이 지역의 싸움은... 그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직접 몸으로 전쟁을 겪고 있는 그들조차도 제대로 전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고 그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분노만을 상대방에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뉴스에서 이지역의 참상이 보도되었다.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른지 밝힐 수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었다. 

<<땅이 통곡하는 한>>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그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이들 민족간의 싸움이 되었고 유대인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소설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대인 사미와 아랍인인 카말은 둘도 없는 친구다. 프랑스에 사는 이들의 우정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위기를 맞는다. 사미가 팔레스타인 여러 명에게 보이콧을 당한 것. 그 사건을 계기로 사미는 더이상 유대인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없음을, 자신의 나라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사미와 사미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카말. 

그리고 또다른 청소년들이 있다. 팔레스타인인으로 아버지는 이스라엘 사람의 회사에서 일하시고 자신은 풍족하게 자랐지만 이스라엘 사람의 회사를 돕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고 부끄러워하는 인티사르. 이들 가족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인티사르는 조금씩 자신만의 생각을 쌓아간다.

그리고 또 한 팔레스타인 소녀. 신장 투석을 위해 매일같이 이스라엘의 병원으로 향한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줄여주려 애쓰는 이사라엘 사람들의 착한 심성을 잘 알고 있다. 

이들 네 명의 청소년들은 어디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될까. 모두들 전쟁을 지긋지긋해 한다. 이들에게 폭격은 이미 일상화가 되어 있다. 모두 방법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이제 더이상의 전쟁은 안된다는 것. 평화가 아주 절실하다는 사실을.

"우리를 점령한 그들이 적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적이 아니라면 그 누구와 평화를 만들겠니? 폭력이 평활르 가져오진 않는단다."...95p

책의 뒷편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양쪽 모두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 지칠대로 지쳐버린 많은 이들이 평화를 원하는데도 일부의 극단적인 사람들은 아직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치 그 폭력이 평화를 가져다줄 것처럼. 그래서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 한, 땅이 통곡하는 한, 아이들은 죽어나갈 것이다."...143p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의 노력이, 어쩌면 이들의 전쟁을 간과하고 혹은 부추겨왔을 국제 사회의 노력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충분히 함께 노력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더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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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특별하지 않은 청춘들의,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박근영 지음, 하덕현 사진 / 나무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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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예술인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그들과의 괴리감. 그들은 무언가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듯했고, 생각도 달랐고, 생활 패턴도 달랐다. "바른 생활"을 선호하며 융통성 없이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너무나 수동적인 나로서는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범주로부터 벗어났다. 그들을 동경하지만 그들과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자신의 욕망에 속아도 보고 꺾여도 본 자들, 한 번쯤 삶에 굴절되어도 보았으나 연민이란 거울방에 갇히지 않고 희망 없이 희망을 꿈꾸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나는 '동무'라고 부른다. 이 인터뷰는 그런 '동무'들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들이 지나왔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는 글에서)

저자가 의도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인터뷰 된 11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예술인이다. 포토그래퍼, 패션 디자이너, 연극배우, 화가, 영화 감독에서 만화가, 뮤지션, 건축가와 시인까지... 처음엔 몰랐다. 그저 우연히 작가의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나가는 와중에 든 생각은, 작가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다보니 당연히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게 된 것은 아닐까...싶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왠지 치열하다. 자신이 원하고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그들은 앞만 보며 내달렸다. 그저 주위에서 바라는대로 아니면 그 자리에 안주하는 편안한 삶을 원하는 나와는 역시나 다르다. 여유있는 어린 시절이었건, 어려운 시절이었건 그들은 고민과 역경을 안은 채 자신들만의 꿈을 향했다. 분노나 갈등이 그들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말, 한동안 그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정작 삶은 자신의 의지를 비껴가는 일이 다반사다. 내 의지와 어긋나는 일들을 겪으며 때로 아파하고 좌절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26p

한 인터뷰마다 그 사람만의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그 공간은 걸으며 위로받았던 곳일 수도 있고, 감성이나 영감을 일깨우거나 용기를 주기도 하는 곳이다. 내게 그러한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본다.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 책을 읽는 우리집 빨간 소파, 친구들과 함께했던 "아저씨네", 얼마 전 여행에서 발견한 "명옥헌원림", 나 혼자 책 읽고 싶을 때 가는 집 앞 M도날드...ㅋㅋㅋ 누구에게나 그러한 공간이 있다. 

나와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그들의 삶이... 조금씩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나도 지금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떠한 결과를 내야 좋은 삶을 살았다거나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때문에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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