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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구판절판
한권의 책을 손에 잡고 시간을 들여 읽고 나면 책을 정리하는 시간에 느끼는 감정들은 그 책을 읽는 순간 느꼈던 감정과는 다른 경우가 있다. 읽는 내내 즐겁고 유쾌하게 너무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읽었던 이야기도 책을 정리하는 시간에는 내가 무엇을 읽었던가를 갸웃거리게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읽는 동안 내내 고역스럽고 힘이 들었음에도 읽고 나면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 한참을 머뭇거리게 하는 책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언제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야겠다라고 다짐하게 하는 책도 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정말 오랜만에 나에게 그런 느낌을 선사한 아련하고도 흐릿한,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오래 되새김질하며 기억에 떠올릴 한 권의 책이라는 느낌으로 남은 책이었다. 마치 이 책의 제목처럼 <나를 보내지 마>라고 말하는 이야기. 그래서 보내야만 하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더욱 잡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나를 보내지 마>이다.
헤일셤의 아이들, 그들만의 기억
<나를 보내지 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캐시라는 이름의 30대 여성이다. 헤일셤이라는 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현재는 간병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과거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방식으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막연한 느낌을 준다. 그저 30여년의 삶을 살아온 여성이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 어쩌면 아무것도 특이할만한 이야기가 없을지 모르는 그녀의 성장의 과정들을 그녀와 함께 그 시간을 보내온 이들과 공유한 수 없이 많은 추억들과 함께 버무려 낸 이야기. 그래서 단순한 성장소설처럼 느껴지는 이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그들의 과거.
책을 읽는 내내 헤일셤이라는 공간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곤한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 기증자, 근원자들의 알 수 없는 말들. 읽는 동안 내내 정확한 의미를 규정해주지 않던 이 단어들은 캐시가 그곳을 살아가며 어렴풋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던 자신들의 운명과 그 진실에 대해 깨달아가득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단순한 성장소설과 같은 느낌을 주던 이 이야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사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신체를 기증해야하는 운명을 타고 탄생된 클론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그들의 운명.
순수하게 누군가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탄생된 하나의 존재 클론, 모두가 사랑과 우정과 성장의 과정을 겪는 독립적인 인격체이지만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받기 보다는 누군가의 부속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켜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많이 닮은 듯한 영화와 소설, 하지만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은 아일랜드의 그들보다 훨씬 잔인한 운명을 타고 난 존재이다. 스스로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인지도 모른채 장기를 기증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남겨지니 삶을 그리고 계획하며 살아갔던 아일랜드의 그들과는 다르게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에 대해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을 몰랐기에 그 사실을 맞딱드리고 저항할 수 있었던 아일랜드의 그들에 비해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은 이미 알고 있던 운명이었기에 저항할수도 없고 저항할 마음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며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떤것도 자신들을 구할 수 없는, 그리고 그들 자신도 자신을 구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 그들을 버려놓아 읽는 내내 그들의 운명을 아파하고 안타깝게 만든다.
진실의 가치.
<나를 보내지 마>의 캐시와 그 친구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을 모른채 살아갔던 혹은 그 사실을 외면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던 헤일셤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자신들이 결국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죽음으로써 가치를 이루어낸다는 최악의 진실은 아마도 그 사실을 몰랐을때보다 알았을때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은 대부분 그 끝을 알 수 없다. 모두가 미래를 알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미래가 아름답고 더욱 빛날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미래가 정해진 사람들, 그리고 그 미래가 아름답기는 커녕 최악의 것들이라면 고통으로 가득찬 미래를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리라. <나를 보내지 마>는 그래서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왜 의미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자체로 의미있는 존재로 살아갈 기회를 얻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알려주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