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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의 대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5
엘리오 비토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책이 담고 있는 의미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번 다른 정보가 필요하다. 때로는 그저 그 책 안에 담고 있는 내용자체만으로 무언가를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책을 둘러싼 수 많은 배경과 지식들이 있어야만 그 내용과 의미를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때도 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은 그저 종이위의 글자만이 아니다. 그 책이 쓰여진 시간, 그 책이 그려낸 나라, 그 책을 감싸는 문화와 국민성등 수 없이 많은 요소들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그 책을 이해하는데 필요하기도 하다.
종이 위의 글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칠리아에서의 대화
<시칠리아에서의 대화>라는 제목의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책 속에 쓰여진 내용만으로는 완전하게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책. 그래서 책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뿐 아니라 그 외의 배경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책이 바로 <시칠리아에서의 대화>이다. 그저 아름다운 절경과 문화의 나라로 기억되는 이탈리아, 그래서 이 책을 잡기 전까진 그저 아름다운 관광의 나라로만 알고 있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책 속에서 만나는 시칠리아의 이야기는 너무도 생소하고 어렵기만 하다.
15년만에 고향을 방문한 아들과 그곳에 남아있던 어머니
<시칠리아에서의 대화>는 어린날 고향을 떠나 15년 동안 한번도 고향에 들르지 않았던 한 가족의 아들 실베스트로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날 그 앞으로 도착한 한통의 편지, 그 편지는 아버지가 보낸 것으로 어머니를 떠나 다른 여인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제 실베스트로의 어머니는 고향에 홀로 남아있으며 조금 있으면 그녀의 영명축일이니 어머니에게 전할 축하를 잊지말라는 한마디를 담고 있다. 15년의 세월동안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고향, 아버지의 외도, 홀로 남은 어머니의 모습들이 복잡하게 그의 주변을 맴도는 중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차표를 끊고 오랜시간 발길을 끊었던 그곳, 고향으로 향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환상과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인 세상
실베스트르는 고향을 향하는 기차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롬바르디아 거인부터 무수염과 콧수염, 조그만 시칠리아의 사내, 목도리에 둘러쌓인 젊은이 등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안에서 그가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시칠리아의 현실을 보여준다. 오랜시간 발길을 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기억속에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고향의 모습, 실베스트로에게 남아있는 고향의 모습은 15년 전의 과거이지만 그 15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의 시칠리아를 따라잡는 과정이 기차여행의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칠리아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이 바로 시칠리아의 현재이며, 이제 실베스트로가 시칠리아에서 맞딱드려야할 고향의 현재를 알리는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고향에 당도한 실베스트르는 어머니를 만나고 어머니의 환자들을 만나며 그곳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된다. 책의 제목처럼 <시칠리아에서의 대화>들로 만들어지는 그 시간들은 실베스트로에게 잃어버린 15년의 시간이자 그의 어머니가 살아왔던 시간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이며, 가족의 슬픔으로 모습을 바꾸어 다가오게 된다.
시칠리아, 과거와 현재속에 모욕당한 그들의 세상
실베스트르는 <시칠리아에서의 대화>를 통해 시칠리아에서 자신이 보내지 않았던 15년의 시간동안 그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경험한다. 15년의 시간은 현재가 되어 뒤섞이고 그에게 거대한 혼돈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리고 어린 동생을 전쟁터로 내몰아 버린 조국의 현실과 모욕당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모욕당한 사람들의 시간이 바로 그들의 부모님의 시간이며 그토록 외면했던 자신의 가족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실베스트르가 시칠리아에서 보낸 <시칠리아에서의 대화>의 시간은 그에게 잃어버린 15년이자 잃어버린 가족이며 곧 그들의 현실인것이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서 모욕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들.
사람들은 그들이 놓여 있는 현실이 자신의 이상와 맞지 않을때, 혹은 그 현실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절망을 경험할때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외면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실베스트로가 15년의 긴 시간동안 고향을 떠나 단 한번도 발걸음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런 외면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속해있으나 스스로 그 삶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그곳에서 벗어나 조금 더 사람이고 싶었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고 가족을 떠나고 자신을 떠나야만 새로운 자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그저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현실을 알고, 현실을 경험했으며 그 현실처럼 어려운 미래도 조금은 눈치 챌 수 있는 능력이 사람들에게는 있으니까. 실베스트로는 어쩌면 고향을 떠나던 그 때에 자신의 외면이 영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단지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그가 말하는 모욕당하는 세상 속에 모욕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에는 실베스트로 자신의 시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모욕당하는 세상의 진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