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공화국, 누가 우리 아이의 재능을 죽이는가
안드레아스 잘허 지음, 송경은 옮김 / 서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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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뛰어난 사람을 지칭한다. 이만큼 영재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을 상회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전제를 두고 판단한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영재로서의 특성과 자질은 누구에게나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러한 유한특정성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간을 영재로 둔갑하려는 착각 내지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나의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난 것을 마다할 부모가 있을까? 제 나이 또래를 훌쩍 뛰어넘는 탁월한 재능과 비범한 능력을 보인다면 어찌 방치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이의 재능에 관대하였는지, 제대로 된 교육적 토양을 배양하여 주었는지, 교육행정의 다양한 기회의 제공 및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지, 보호자로서의 제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 반드시 묻고 따져 보아야 할 문제라 할 것이다.

 


이 책 <영재공화국>은 독일의 정치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안드레아스 잘허가 자국 내 무너지는 공교육환경을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구태의연한 교육행정으로 인하여 사장되어 버리는 아이의 재능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토양과 새로운 대안환경을 제시하고 나섰다. 저자는 인접한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사례와 교육선진국인 싱가포르, 창의성의 나라 미국의 교육환경을 사례로 들어 신랄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교육은 만년지대계라 한다. 또한 교육은 올바른 자의식을 배양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인교육이 목표가 된다. 더불어 아이의 특성과 적성에 따라 타고난 재능을 일구고 모자란 분야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가 된다. 하지만 교육적 목표와 현실은 일정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의 참된 재능이 무엇인지를 바라보는 학교, 교사, 부모의 제 역할이 밑바탕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사상적 기저에도 아이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는 것의 배경으로 적성과 능력에 부합하는 교육적 환경조성이 보다 시급함을 내세운다. 그가 말하는 영재의 관념이 기존의 우리 사회가 바라본 것과 다르지 않음에 놀라게 한다. 유아기적 신동이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이 되면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 되어 버리는 현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국가적 문제에 방증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공교육의 붕괴현상은 교사에 대한 위상 실추와 공교육의 획일화와 불신감을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는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서 또한 얼마만큼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었는지는 누구나 인식하고 공감하는 문제다. 문제의 왜곡 분출은 사교육시장으로 몰리게 하고 양극화에 따른 교육기회의 균점마저 형평성을 잃게 만들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 “는 말은 잊혀진지 오래다.

 


저자가 바라 본 독일의 교육시스템의 심각성은 교사의 자질과 정부의 교사육성부재에 일차적 원인을 묻는다. 무능력한 교사의 순환적 퇴출구조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져야 교육이 살고 아이의 재능이 돋보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교육자의 육성에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며 현재의 관료주의적 사고로 인한 경직화된 교육정책의 후진성향을 통렬하게 되짚었다.

 


교사의 책임이 그 어느 누구보다 크다는 것은 통감하지만 교사의 처우문제에 대해서는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재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난해한 문제를 오롯이 교사에게만 전가하려는 미루기의 전형이다. 교사의 질적 개선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아이의 교육적 혜택이 군더더기 행정잡무에 묻혀 사라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아이의 재능은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이며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부모는 교사의 책임을 묻기 이전에 부모로서의 자질과 아이에 대한 애착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어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 이러한 건전한 교육적 토양이 대내외적으로 배양되고 정부의 일관되고 창의성을 살리는 교육정책이 흔들림 없이 시행된다면 공교육의 부활은 힘든 일이 아니라 할 것이다. 아이의 재능은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 아닌 관심을 통해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교육환경에 대한 기존의 시스템과 패러다임을 변환하고 조급함에서 벗어나 아이의 잠재된 재능을 살리는 것에 주력하여야 한다. 조기교육을 통한 아이의 재능을 발굴하는 것 또한 중요하나 부모의 눈높이로 아이를 재단하려 하는 시대착오적 행위를 중단하여야 한다. 이는 잠재했던 능력 또한 매몰되고 상실되어 버릴지 모를 일이다. 아이와의 열린 대화를 통한 조력자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상호소통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적 파수꾼인 인식 있는 교사로서의 자리매김을 다 할 때 일그러진 교육현장을 개선할 수 희망의 불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불편한 교육계에 대한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이다.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아이의 눈을 통해 아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더불어 학교와 교사를 통한 내적인 자기변신을 통해 잃어버린 열정과 주인의식 및 상호간 가치인정의 온전한 자리매김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 하겠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실추한 교권의 확립과 절로 흥겨워지는 신명나는 학교로 거듭날 것이다.

 


독일은 동서독 통합을 원만하게 이루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이다. 이러한 나라의 저자가 교육계의 비현실적 관행과 만연한 교육의식에 대하여 펜을 든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의 성공이 곧 나라의 흥망성쇠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비단 저자가 독일사회의 성찰과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로 이 글을 써 내러 갔다 할지라도 우리의 현재와 다르지 않은 것은 더 이상 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음에 있다. 저자를 통해 교육계의 현실을 성찰하고 각성할 수 있는 가늠좌가 될 여지가 충분한 책이다.

 


미래 사회를 짊어지고 갈 아이들에게 이분법적 편 가름으로 아이들을 나누는 어리석음을 그치지 않는다면 하향평준화를 통한 질적 저하의 위기는 마치 내리막길을 걷는 것처럼 불을 보듯 뻔하다. 정보화시대에 역행하는 산업화시대의 유물인 허울 좋은 학교를 벗어 버리고 생동감 있고 활기찬 교육환경이 조성되기를 기원해 본다.

 


   
  훌륭한 교사는 예전이나 앞으로나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해요. 따뜻한 마음(감성)과 활발하게 돌아가는 두뇌(이성), 다시 말해 다정함과 엄격함이죠. 어느 것 하나 빠져선 안 돼요. 저마다 이를 요구하는 순간이 있거든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것이 필요한 적재적소의 순간을 알려줘요. 언제 부드러움을, 언제 엄격함을 보여야 하는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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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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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파트, 대한민국 사람치고 아파트와 얽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더라도 어떤 목적이든지 간에 아파트와 관련한 일화 한 토막은 누구든 쉽사리 읊조린다. 아파트로 인해 계층이 나뉘고 심지어 전인격마저 부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원래 그것이 가진 본연의 목적인 주거의 기능은 희석되고 오로지 교환가치로서의 기능이 우위를 차지한 해괴망측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 <아파트에 미치다>의 저자 전상인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찰과 더불어 환경적 담론에 대해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아 펴냈다. 아파트에 얽힌 사회공동체적 특성을 이해하고 분석을 통해 아파트가 품은 이데올로기를 현대 사회의 주류적 가치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한 탁월한 감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아파트의 기능적 요인을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채워 넣었다.

 


책은 아파트의 기원인 건축사적 기원을 소개로 아파트가 한국사회에 고착화되고 현재의 그것으로 재편되기까지의 연대기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아파트가 진화하기 시작한 시점을 박정희정권을 즈음으로 보고 있다. 국가산업발전계획에 의거하여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과 주거안정의 목적아래 주택공사에서 보급하기 시작한 공동주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파트의 촉발제가 되었음을 말한다.

 


이를 통해 처음 소개된 아파트는 전통적인 한옥구조에 익숙한 우리의 정서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구조와는 이질감으로 인해 별반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 하지만 경제개발에 의한 산업화 시대로의 이행은 전형적인 가족구조를 허물고 핵가족화 및 개인주의가 보다 강화되는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며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구조의 산업화, 정보화시대로의 이행이 아파트에 대한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생성하게 하고 골목문화를 퇴보시키며 폐쇄적인 개인가치에 중점을 두는 공동체관을 형성하는 기저로 파악하였다. 분명 저자가 짚은 아파트가 가진 외형적 편리보다 내면적 변형은 더 큰 왜곡현상을 도출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요세공동체의 형성과 같은 환경적 변화에서 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 있다. 실제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기 시작한 기저에는 경제적 함수관계가 치밀하게 깔려 있다. 아파트 건설로 인한 경제성장유발효과는 엄청난 잠재가치를 촉발시키고 경제의 흐름을 순탄하게 이어주는 효자산업으로의 역할을 하는 것에 있음은 정부로서는 묵과하지 못할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적 유발효과 외에도 점차로 아파트 자체가 개인의 부를 측정하고 투자가치로서의 기능을 매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에도 우리가 아파트에 미치게 하는 근원적인 요인이 깃들어 있다. 초고층 아파트에 평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는 세태는 계층 간 주거형태의 동질성이 주는 한계에서 저자는 이유를 찾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 편중현상은 계층 간 양극화의 조장과 구성원 간 갈등을 조장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음은 암울한 자화상이다. 저자는 아파트에 대한 단조로운 시각을 접고 입체적인 변화를 통해 서구와 같은 오랜 기간 숙성된 고급주거문화의 사회적 용인을 기대하고 있다. 계층 간 이동이 유연하고 기회의 균점으로 누구든 진입이 자유로운 환경에 주안점을 두고 역설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파트가 사회학적으로 여권을 신장하는 계기로 보았다는 점에 있다. 아파트의 수평적인 구조는 전통의 가옥구조의 수직적 구조를 붕괴하고 신체가구의 발달은 여성의 대중적 권력을 쟁취하는 권리신장의 계기로 보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참여가 전방위적인 영역으로 확대 이행하는 것에 아파트와의 연관성을 연결시켜 이해한 시도는 독특한 시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중산층 계층을 형성하는 일등공신으로 여성의 힘, 특히 미시의 권력이 지대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분명 아파트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근원이 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60%가 40평형대의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한다. 드러내지 않은 속내는 암묵적 합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로자 임금으로 17년을 전부 모아도 집 장만 못한다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다. 21세기 신유목민시대가 멀지 않았음은 예고하는 불우한 미래의 모습이다.


저자가 제시한 주거문화의 개혁은 미봉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파트에 대한 투기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년계층의 실업난 해소와 과잉 부담을 유발하는 주거문제로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근원적인 해결은 고사하고 또 다른 불평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대한 거품은 당분간은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적인 요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아파트에 대한 집착과 수요는 새로운 대체제의 등장과 구미에 맞는 반대급부가 있지 않는 이상 요원한 일로 비친다. 그렇다면 아파트에 대한 획일화된 방식의 개발보다 다양한 건축방식 및 임대방식의 도입으로 접근의 패러다임을 변화하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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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 아이디어뱅크 홍사종의 스토리 마케팅
홍사종 지음 / 새빛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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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세상을 지배한다. 멋들어진 이야기 한 자락에 울고 웃는 현실을 직시하더라도 결코 허언이 아니다. 얼마 전 서점가에 엄마열풍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은 감성코드를 자극한 좋은 사례라 하겠다. 메마른 세태에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의 되돌아보기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눈물을 쏙 빼는 엄마라는 주제로 잊어버린 원형질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인간 본성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기에 제격이었기에 이토록 화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 홍사종은 문화혁명의 개척자로 움직이는 아이디어뱅크라고 불리 운다. 그가 역설하는 이야기시대는 문화, 경제, 사회, 정치 등 각 영역을 아우르는 공통의 헤게모니로 메가톤급의 파급효과를 촉발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제는 정보화시대를 넘어 이야기가 세상을 주름잡는 시대가 왔음을 천명한다.


우리는 조앤 롤링의 소설 ⟪헤리포터 시리즈⟫에 열광하고 헐리우드무비에 일희일비한 문화적 왜곡현상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디즈니가 생산해 내는 편향적 문화구조의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지고 고유의 자의식마저 그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들이 창작해 낸 이야기는 완성도나 흥행 면에서 보더라도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저자가 목도하고 경험한 이야기의 파급효과는 문화선진국이 체계적 과정과 절차를 거쳐 세계무대를 장악한 창의성을 살린 맨 파워에 있다. 잘 된 이야기를 발굴하고 재목을 길러 우리식의 환경을 조성할 것을 제시한다. 고객의 구미에 맞고 소위 트렌드를 흡수하는 안목을 기르고 마케팅과 접목한다면 트라이앵글처럼 딱 들어맞을 것이라 조언한다.


실제 무미건조한 제품이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더해 녹아들면 파생되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자의 이야기에 내재된 가치가 주지한 바와 같이 파급효과, 생산유발효과, 경제연계효과 등을 고려한다면 기술집약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경제력 상승효과는 더 큼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이야기의 창발성과 문화중심의 담론을 시종일관 부르짖고 있지는 않다.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 저자의 깊이 있는 고민과 흔적을 다분히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화적 편중현상의 원인에 대해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총체적인 통찰을 시도하였다.


입장료가 50만원을 호가하는 오페라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문화열등생으로 인식되고 대중음악이 아닌 전통음악이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해 격식을 낮추는 것은 저급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상호작용이 결여된 보수주의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고에 지나지 않음을 일갈한다.



우리 사회는 경제발전의 승패에만 치중한 경향이 강하다.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아왔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이는 전후세대를 필두로 하여 세대 간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과도한 경제발전의 이데올로기에 부쳐 승자독식주의 관용적 미덕과 부의 양극화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소통과 양보의 부재는 문화적 변질현상으로 창의성을 말살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초야에 묻히게 하는 기현상을 도출하였음을 말한다. 문화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 들불처럼 번진 인맥, 학맥, 지연 등의 일그러진 잣대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러하기에 저자가 경제개발의 얼룩으로 물든 우리 사회를 이야기의 감성코드로 치유코자한 시도는 단연 돋보임을 알게 한다. 우리 사회가 불안정한 미래 사회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기준점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와 같은 실로 고마운 글이라 하겠다.


저자가 담은 사회전반의 현상과 문젯거리는 충분히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선하려는 의지보다 안주하려는 마음이 더 컸음은 비굴함이 아니고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재담 넘치는 저자의 올곧은 생각과 포용력 넘치는 이야기에 귀담아 들여야 할 이유가 넘쳐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함께 풀어가야 할 우리의 문제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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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사이언스 Brain Science - 뇌를 어떻게 발달시킬까
정갑수 지음 / 열린과학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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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IQ)가 높으면 똑똑할까? 뇌의 크기가 가벼운 여자의 뇌가 남자보다 지능이 떨어질까? 인간의 자유의지는 제어할 수 있을까? 뇌가 크면 머리가 똑똑할까? 우리에게 알려진 뇌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이다. 의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 통상 알려진 뇌에 대한 잘못 알려진 편견에서 비롯된 선입견의 일환이다. 뇌에 대한 물리적, 단편적, 피상적인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라 말한다.




이 책 <뇌를 어떻게 발달시킬까>의 저자 정갑수는 뇌에 대한 궁금증과 두꺼운 베일에 싸인 비밀의 영역을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뇌에 기능적 특성과 구조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여 부담 없이 다가온다. 더불어 뇌의 중요한 부위에 대한 현상세계에 대한 실제 연결로 이어져 이해를 빠르게 한다.




뇌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무궁무진하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영역의 최선두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뇌에 대한 이해와 지배는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영역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찰한다면 이 책은 지식의 전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다 하겠다.




누구나 단기기억상실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방금 전화를 걸기위해 메모된 숫자를 인식하고 버튼을 누르는 동안 잊어버리는 것은 기억의 저장방법의 다름에서 연유한다. 통상 기억은 의미기억과 일상기억으로 나뉘어 지는데 순간의 단편적인 기억은 의미기억으로 이해되며 반복되어 실행되는 기록은 편도체를 통해 해마라는 영역에 저장되는 것으로 대뇌피질의 한부분인 전두엽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대개 인간의 뇌를 무한의 컴퓨터로 비유하곤 한다. 러시아의 유명한 체스영웅 카스파로프와 슈퍼컴퓨터와의 대결은 인간의 능력이 무한함을 대변한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뇌의 연관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틀린 답이라 한다. 단지 창의적인 영역인 특정부위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리졸라티 교수는 원숭이의 어떤 행동을 통해 전두엽의 특정한 뉴런이 활성화 되는 소위 ‘거울뉴런’을 발견해 내었다. 거울뉴런은 상황적 유사성을 설명하고 감정이입현상, 모방을 통한 학습이나 창조에도 관여함으로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거울뉴런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체득한다면 기술습득이나 학습의 개선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뇌를 충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 수면은 하루 동안 기억한 내용을 분류하고 삭제하고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일을 하며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로 생체방어기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잠이 부족한 다음날 피부가 칙칙하고 꺼칠하게 보이는 것은 멜라토닌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또한 뇌에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스트레스는 활성산소를 증가시켜 리듬을 깨트리고 코르티졸을 분비하여 감정의 긴장상태를 흩트리게 한다. 뇌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가공할만한 위력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맛보는 모든 감각기관의 최종에 뇌가 관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피하는 긍정적 사고와 천연마약인 엔돌핀을 돌게 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되새긴다.




그렇다면 뇌를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을까? 뇌는 평생 동안 자극과 경험에 의해 변화가 가능하며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 스스로 좋은 환경을 만들고 외부 자극에 대한 유연성과 긍정에너지를 유지한다면 좌뇌와 우뇌의 장점을 골고루 발달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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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ㅣ 과학과 사회 1
피에르 주아네베로니크 나움 그라프 외 13인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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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애정과 본능의 감정과 정비례한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성적인 교합을 통해 임신을 하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인류적 진실의 소치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나 가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진 불임부부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가의 원인은 사회구조적 변화와 환경적 영향에서 찾는다.




다행스럽게도 의학의 발전은 더 이상 불임의 영역을 자연의 상태로 방치하지 않는다. 의학의 발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종의 헤라클레스의 도전인 셈이다. 시험관 아기를 통한 정상적인 임신과정의 한 부분을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제3자의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 부모와의 완전한 단절로부터의 접근으로 불임부부에게는 메시아로 이해된다.




이 책 <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의학의 발전이 사회 통념상 자리 잡은 기존의 인문학적 접근과 과학의 출현으로 인한 새로운 접근을 통합적으로 시도하여 가족에 대한 정의와 성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담론을 스케치하고 있다. 프랑스 유수의 신경정신과 의사를 필두로 정신분석학자, 인류학자,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존의 가치체계를 흔드는 작업을 일관된 알고리즘으로 연결시키려 하였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활동은 출산의 시기를 늦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개인의 능력발휘와 정체성의 표현은 사회적 교류로 대변된다. 사회적 인식은 여성에 대한 자리 매김에 건조함 일색이다. 여성의 자연스런 출산에 따른 부대조건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경제활동의 지속여부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 사실이며 출산은 여성과 관련된 지극히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지배적 현상이다.




이러한 출산의 저하는 기존의 가족관계를 서서히 변모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공저자들의 인식을 관통하는 공통의 담론은 기존 가치체계의 변화에 있다. 변화의 시발점에는 첨단기술사회로의 이전이 일차적 이유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성 정체성은 더 이상 굳건한 짜임의 틀로 받아들이기는 힘듦을 말한다. 이로써 기존의 관습과 인식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중대한 문화적 침투현상의 표현인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의 출현과 아이와의 관계의 정의는 반드시 논의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프랑스의 진보적인 문화적 인식이 우리보다 빠르게 동성애자와 앞서 언급한 제3자의 정자 내지 난자의 기증으로 이루어 진 생물학적 부모의 법적 확립은 사회 전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가치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리모에 의한 출산과 정자의 냉동보관으로 사후출산으로 인한 아이의 출산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는 미혼의 여성이 오빠의 정자를 이용하여 시험관 상태로 수정하여 다시 자궁 내에 착상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가진다면 이것을 근친상간으로 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접근하기에는 과학의 발전이 너무 앞서가는 모습이라 하겠다.




성에 대한 욕망과 아이의 관계는 여태껏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었다. 출산에 따른 사회적 요구는 부모에 대한 혈통으로 이어지며 정체성의 보편화된 모습으로 촉발되었다. 소위 말하는 혈통, 부계중심의 사회는 기독교의 간섭과 무관하지 않음을 책은 말한다. 인류의 역사상 부계중심의 혈통보존이 확립되고 성이 은밀한 것으로 인식되고 여성의 영향이 축소된 것에 대한 배경으로 기독교를 지목하고 있다.




비단 종교적 이유 이외에도 인간의 본성에도 이유를 찾는다. 일종의 어두움 일색인 고독의 한 단면으로 묘사된 장르인 누아르 소설 속 가족관은 일정한 심리적 투영이라 하겠다. 가족의 전통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미완의 구조로 재편되는 현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의 불확실성에서 찾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생각의 파편이 꼬리를 물게 만드는 책이다. 철학적 시각의 인식의 틀을 기반에 두고 과학적 현상에 대한 검증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접목되어 버무려 져 있다. 가족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상징적인 가치를 폭넓게 수용하는 영역의 확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유연성은 사회적 담론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거쳐 가는 현상으로 보편적 진리를 허무는 작업으로 시작됨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기계화되고 변모되어 가는 이 시대,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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