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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2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랫동안 미루어 놓은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다. 두께에서 가져오는 심리적 압박보다 내용에서 주는 현란한 심리적 변화의 무게감으로부터의 해방이 오히려 더 홀가분하게 한다. 저자는 무엇인가를 말할 듯 말 듯 자신만의 일정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그어 놓고 그 범주를 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쓰며 어느 샌가 홀연 달아나 버린다. 또한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작중인물들의 심리적 묘사가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게 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며 그가 만들어 낸 상상속의 세계로 고스란히 빠져 들게 한다.
현재를 바라보고 있으나 어느 사이엔가 과거를 회상하며 등장인물이 겪어 온 삶의 무게와 질곡을 그려 내고 있다. 지속적으로 피드백 되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그들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되고 이어 진 관계가 현재에도 과거에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녀 무수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전지적 작가 시점에 대한 철저한 지배가 존 어빙의 특유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시리도록 차가울 만큼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독자의 흐려진 판단을 여지없이 차단시켜 버리며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계산된 결론에 이르도록 재촉한다.
불의의 사고로 멋지게 성장한 두 아이들을 잃은 부부가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에서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사고의 여파로 지독스러운 우울증에 빠져 현실감마저 잃게 되어 버린 아내 메리엄과 편집광적인 성도착 증세를 보이며 방탕한 생활로 일관하는 동화작가 남편 테드를 중심으로 이러한 부모로부터 온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오빠들의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 가는 4살짜리 꼬마 루스 홀의 불안한 관계 속에 의도된 16살 소년 에드가 끼어들게 된다. 1958년 여름 이들이 겪은 이야기가 32년 후 미래의 그들이 받아들일 모습까지 치밀한 연결고리로 얽혀 전개되며 그 두터움이 놀랍기만 하다.
16살 소년 에드와 39살 여인 메리엄과의 예정된 미완의 관계는 에드의 삶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여성에 대한 불완전한 시각을 견지한 어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더 이상 사회 통념의 사랑의 관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연상의 여인에게서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며 그로부터 허무하고 고독한 인생의 굴레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게 한다.
한편 4살 소녀 루스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하여 발생한 기능적 애정결여로 인해 마음속 깊숙이 억눌린 원망과 그리움이 성공한 작가가 되어서도 이분법적인 캐릭터를 형성하게 만들며 아버지 테드와의 애증으로 점철된 불안한 심리관계 속에서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가슴이 답답할 만큼 짓누르는 무게에 읽는 내내 호흡이 가빠온다. 잠시도 상념에 빠질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저자의 익숙하지 않은 전개 방식이 어지러움에 울렁증까지 유발한다.
그러나 방대하게 뿌려 놓은 등장인물들의 기억의 편린과 내재된 감정을 끼어 맞추다 보면 서서히 드러나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회상하며 공간적 영역을 무시하게 만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적 묘사는 종국에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 극적효과를 부각시키는 새로운 인물인 해나, 앨런, 하리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며 저자가 엮어 놓은 정밀한 부비트랩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고 앞이 환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루스는 종국에 가서 야 앨런을 잃은 아픔을 하리를 통해 치유하게 되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 강박관념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되며 충만한 삶을 되찾게 된다. 에디 또한 자신의 동정을 바친 메리엄과 극적인 회후를 하게 되며 과거를 뛰어 넘어 영원불멸한 사랑의 완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상상력을 끝은 어디일까? 읽는 내내 튼튼한 플롯 전개로 인하여 작품 속 또 다른 이야기와의 연관관계가 이토록 치밀할 수 있음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저자는 스스로를 이야기를 만드는 목수라고 일컫는 데에 아무런 의심할 여지가 없음은 이 작품으로 모든 것을 말해 주리라. 현란한 리얼리즘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면 일독하기를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값진 시간을 선사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