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없이 살아보기 - 삶의 기적을 이루는 21일간의 도전
윌 보웬 지음, 김민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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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구하라. 믿으라. 얻으라. “의 내용은 호주의 방송인 론다 번이 지은 <시크릿>의 핵심내용이다. 자신이 믿는 그대로 중립적인 우주로부터 끌어당겨 현실로 옮긴다는 것이다. 이는 긍정의 에너지로 무장한 충만한 마음상태가 바로 관건이다. 이런 일련의 주제는 호아 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가 그렇고 <호오포노지혜> 또한 그렇다. 이처럼 사물을 인식하는 대상의 변화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가에 환경이 달라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간절히 원하는 긍정의 에너지와 건설적인 방향이 성공과 행운을 가져 다 준다. 


대개의 자기 계발서가 그렇듯 이 책 <불평 없이 살아보기>의 내용 또한 성공한 삶의 모토를 제시하는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적 인식과 사고는 현실의 왜곡동조화로 있던 희망마저 사그라지게 한다. 실제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현실은 긍정보다 부정이 넘쳐 나는 것이 사실이다. 불평을 토악질해내 듯 시종일관 불만과 불평으로 끊어 넘치는 삶을 산다. 나 또한 발목을 옭매어 놓은 족쇄처럼 자유를 구속당한 삶을 살아 왔다.


왜 인간은 상황적 선택의 해결책으로 부정적인 방식을 더 선호할까? 이 책의 저자 윌 보웰은 그 이유를 불평이 심리적, 사회적 보상을 이끌기 때문으로 일갈한다. 불평을 토로함으로써 동질의식을 강하게 불러 모으고 두려움으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될 수 있는 가리개가 되기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불평의 피드백은 앞서 말한 일시적 보상의 반대급부로 잠재적인 부정적 사고에 묶이게 된다. 그에 따라 익숙해진 불평의 동조가 상황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요 동인이 되지 못함에도 대책 없는 불평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불평이 인간의 의식을 갉아 먹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저자가 실제 겪고 있었던 불평 없이 살아보기 캠페인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소망 또한 인간의 이중성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저자는 인간에게 굳은 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21일 동안 반복적으로 노력하여야지만 바뀔 수 있는 심리적 관점에서 캠페인을 고안해 내었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보라색 팔찌를 불평 없는 삶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보내고 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평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불평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제1단계는 의식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단계로 불평이 습관화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오히려 불평을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발판으로 삼는 무지몽매함을 보이는 상태의 지속이다.   

 


이와 같은 불평의 초기증상을 극복하면 이제 제2단계인 의식하면서 불평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이제는 불평이 얼마나 자신의 생활에 만연하고 지배적인지를 인식한 단계에 이르렀으며 불평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상태로 전이할 틀을 구축하게 된다.


이제 제3단계인 의식하면서 불평하지 않는 단계로 넘어가면 익숙한 습관의 방식을 버리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통감하는 상태를 맛보게 된다. 단기쾌락과 같은 중독성이 강한 불평의 심리상태가 지속적으로 유혹하게 되며 부정적 자아가 끊임없이 솟아오름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불평이 자신의 인격 속에 내재된 또 다른 자아의 형상으로 분리된 상태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제4단계인 의식하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는 단계는 완성과 변화의 충만한 상태의 지속이다. 21일 동안 연속적으로 보라색 팔찌를 옮겨 차지 않아도 불평보다 감사와 밝은 에너지가 넘쳐 나 주위를 감화시키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손목위의 기적이 창출되었으며 21일간의 여정을 모두 소화한 진정한 챔피언이다. 


불평을 누군가에게 시정해야 할 실수나 결함에 대해 

알려주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웨이터에게 수프가 차가우니 데워달라고 말하는 것은

불평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감히 나한테 차가운

수프를 내올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불평이다.(p-229)


이 책을 손에 쥐면서 같이 동봉되어 온 보라색 팔찌를 계속 차고 있다. 불평 없는 삶에 도전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였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긍정적 사고와 베풂을 통한 미덕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불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담대한 용기와 굳건한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이제 불평이 주는 찰나의 달콤함에서 벗어나 우주가 발산하는 선하고 신명나는 에너지를 모두 끌어 당겨 나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는 체인지 메이커가 되고자 하는 위대한 꿈이 생겼다. 더불어 21일 동안 불평 없는 삶을 통해 그 거대한 과정 속에 담긴 놀랍게 변화된 자신을 발견할 모토가 되었다. 이미 이 책을 집어든 순간 시작되었기에 그 칠 부 능선을 넘어 선 것인지 모른다. 의식하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는 나를 생생하게 그려보며 세상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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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나라 사람들 - 목욕탕에서 발가벗겨진 세상과 나
신병근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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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의 목욕탕은 유래 없이 개방되고 열린 평등한 곳이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 부귀 따위로 사람을 재단하는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소통과 해방의 배출구로 일상에 찌든 육신을 재충전하고 삶의 불만을 풀어 흘려버리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끼어 들 자리가 없다. 그만큼 사적인 휴식의 순간이다. 그렇다보니 목욕탕이 서민들의 다사다난한 일상으로부터 일탈의 유혹을 지켜 주는 일종의 안전지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처럼 목욕에 담긴 문화는 은밀함으로부터 기반을 둔 자유다. 이 책 <탕나라 사람들>의 소재는 아이들 눈에 비친 대중목욕탕의 풍경을 유머와 위트를 겸비하여 철학적 사유로 통찰하였다. 7살 뺑글이와 똥희의 유아적 사유와 어색한 이미지를 날것 그대로 차용하여 원형적 순수함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가벼운 문체와 추상화에 가까운 이미지는 쉽게 책장을 넘기게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인간이 부끄러움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상호간의 소통은 엉키고 단절되는 원인의 발단이 되었는지 모른다. 수치와 모욕이 생산한 파생물은 소통의 매개체를 엉키게 하는 갈등의 원인이다. 저자가 추구한 사유의 존재의미 또한 자아의 정체성 확립에서 비롯되었음은 소통의 창구로서 지목한 목욕탕의 소재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철학적 물음은 타인과의 관계 속 연결된 상호연결성에 있다. 권력, 탐욕, 명예로부터 시기, 질투, 대립, 갈등의 상황은 모두가 넘어야 할 고립무원의 산이다. 이러한 사회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망각시켜 버린다. 


목욕은 순화와 청결의 정서로 대변된다. 묵은 때를 닦아 내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 드는 산뜻한 기분은 개운한 상태를 생산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욕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관심을 보인다. 주일을 기점으로 누가 지키라고 한 적도 없건만 그 주기를 뒤따르는 현실이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목욕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순수한 상태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서 맛본 기억 저편의 평정 그 상태와 같다.  


저자의 생각이 투영된 책의 전반의 시선은 이채롭고 색다르다. 목욕탕의 풍경을 사회문화와 결부하여 희화화 시킨 것 또한 새롭다. 동심의 시각적 순수함이 그렇고 이미지의 소탈함이 그렇다. 누구나 쉽고 용이하게 행간의 숨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책 이면에 담긴 소통의 의미를 통찰하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받게 된다. 


기계적이고 획일화된 고정된 시각으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을 담았다. 육신의 겉에 묻은 오염된 상태는 목욕을 통해 정화된다. 하지만 우리 이면에 담긴 오염된 마음은 그것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헐뜯고 뭉개고 비난하는 배타적 이기심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문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진실한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내와 포용이 절실한 현실이다.


저자의 목욕탕에 얽힌 이야기는 현대를 사는 인간 본성의 회복에 가 있다. 이렇듯 무절제하고 탐욕스러운 오만한 이기심이 목욕탕 배수구를 타고 마음의 때 바다로 흘러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성 회복이 우선이다. 인간의 모양을 한 탕나라에 빗댄 풍자는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님은 분명하다. 마음의 때로 함몰되고 더욱 뒤틀리고 변형되기 전에 오염된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돌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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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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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他者로부터 자유로울 자, 누구인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의지와는 별개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소이며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로부터 파생된 인격의 정체성은 실제 본성과는 유리된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굴레처럼 엮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자아의 외부적 환경의 영향은 쉽게 변질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소문에 의해 와전되는 경우를 의미하며 자신을 가늠하는 평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 유명 여배우가 루머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져 버림으로써 우리 곁을 떠난 참담하고 어처구니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국민배우로 추앙받으며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녀의 죽음은 안티마저도 비탄과 실의에 빠지게 만들만큼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소중한 목숨마저 앗아갈 만큼 날선 대중들의 시선은 한 인간이 극복하기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었을 것이며 건너기 힘든 암흑의 강과 같았을 게다. 우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이중성과 배타적 동조화로 인해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었다. 그러한 여파는 지금도 매스컴의 첫머리를 장식할 만큼 동종의 모방비극이 연일 계속되는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루머는 인간 사회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하나의 부속물일지 모른다. 이 책 <루머의 루머>를 펴낸 제이 아셰르 또한 사소한 험담과 터무니없는 낭설에서 촉발된 지인의 자살소동을 빌미로 모티브를 건져 올렸다. 이러한 모든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비극적인 사건의 단초는 티끌만큼 작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단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주위의 동조와 분위기를 편승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 간다.

이처럼 루머가 가진 전염성과 파괴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나 루머로부터 구속받지 않고 살기는 힘든 세상이다. 루머는 인간성을 교묘하게 교란하는 부정적 표현이다. 루머를 퍼트리는 행위에 모종의 쾌락을 얻는지 모른다. 실제와는 결부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인양 받아들이고 고착화한다. 이 책의 주인공 해나의 비극적인 자살도 같은 맥락의 출발이다. 인간이 가진 정체성의 틀은 개인의 경험과 성격, 전인격에 따라 달리 영향을 받는다.

실제 이 책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축이 과장되고 논리추론이 애매한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해나의 자살과 관련된 12명의 당사자들의 행위책임을 독백의 형식으로 풀어가는 것은 상당한 몰입으로 이끈다. 여기에 완벽하게 모범적인 클레이를 엮은 것 또한 보색대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왜 해나가 모든 소통의 창구를 굳게 닫고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하루 동안 일어나는 주인공의 심리변화가 이 책의 압권이자 백미다. 불안정한 심리변화를 몰입과 이완으로 적절하게 처리하는 깔끔함이 돋보인다. 거창하거나 특별한 내용적 특징이 없음에 반해 일상의 행위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놀라움이 숨어 있다. 저자가 해나와 클레이를 통해 유추한 세상은 인간이 오래도록 고민한 불편한 진실이다. 이렇듯 군중심리가 생산하는 부정적 메커니즘에 누구나 경악과 혐오의 감정을 가질지언정 루머의 유포와 동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토록 인간의 정신마저 피폐하게 하고 의지와는 무관하게 철저히 유린하는 루머, 소문은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의 문제다. 인간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무수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 가진 확연한 특징이다. 부정적 영향은 인간을 사회 속의 홀로 고립된 섬으로 만들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관용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긍정적 인식으로 세상을 다시금 수용하는 자세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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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 영악한 자본주의 뒤집기
전병길.고영 지음 / 꿈꾸는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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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은 이제 단순한 사회적 부조의 또 다른 의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열악한 생산자의 생산 가치를 보장하고 자본주의의 탐욕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튼튼한 교량역할 외에도 인류의 미래를 담고 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제품의 직접거래로 착한 윤리적 소비의 주체로 새로운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확립하는 일에 동참하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정무역의 차지하는 상징성에 비해 지지기반이 매우 옅은 현실임을 감안할 때 그 자생력과 토양이 척박하다.

그런 환경의 결정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이제 전 세계 공통 헤게모니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레이거니즘으로 대변되는 레이건정부의 이념정책으로 촉발된 신자유주의의는 전 세계 이념 갈등을 극복하는 동인으로 작용하였으며 각 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주류적 가치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금세기 들어 미국 발 금융 위기는 비판 없는 이념의 위험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미 그 이념적 허구가 밑바닥부터 균열되기 시작하여 드러나기 시작하였음에도 아직 그 허상에 사로잡혀 우상처럼 숭배하고 있는지 모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공정을 즐겨 말한다. 감세를 통한 정부기구의 축소와 무역장벽의 철폐, 다국적 기업의 출현은 경제주체의 경쟁의 장을 무장해제 시켜 버렸다. 사다리 걷어차기로 유명한 캠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 장하준 교수 또한 기울어진 경기장에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공정하지 못한 경제 환경은 침잠한 제국주의의 비릿한 열망에 다름 아니다. 공공의 선을 ‘자율’로 가린 그들의 공정은 오만함과 영악함 그 자체이다.

실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IMF, IBRD, WHO와 같은 다자간 협력기구들은 상당부분 왜곡된 이념적 구조를 보여준다.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성향 또한 잘 사는 나라에 유리한 기득권보호와 자국이익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태반이다. 이러한 굴절되고 왜곡된 시장 환경을 개선하고 미래의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대안정책의 바람이 어느 때 보다 뜨거운 현실이라 하겠다.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는 통합된 사회를 지향하고 함께 공생하는 사회적 기업의 출현의 필연성을 역설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책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회적 기업의 알레고리를 그 이념적 태동과 연결 지어 설명하고 제3세 국가를 위시한 사회적 기업의 면모를 소개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새로운 대안경제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고 풀뿌리 경제주체의 사회 참여로 함께 사는 세상의 진정한 의미를 구축하는 데에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책의 기저를 흐르는 기본적인 사상은 새로운 자본주의(WEconomy)로 지칭되는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이념적 흐름으로 대변된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과 호주의 데이비드 부소의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연대부조의 또 다른 발견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꿈을 실현한 아이스크림 벤엔제리의 베풂은 기업의 존재의의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렇듯 저자는 사회적 기업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할 대안으로 지속가능경영의 구심점을 찾는 통합체로 보았다. 사회적 기업이 기존의 약탈경제를 무너뜨리고 인류의 미래를 열어 갈 청사진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돌파구다. 이 시대를 변화시킬 혁신적인 이념으로 열악한 사회구조를 재편하는 커다란 틀로써 중요성을 일갈한다. 이로써 제2, 제3의 아름다운 가게와 사회연대은행의 출현을 열망하고 한국식 사회적 기업의 토착화를 기대한다.

또한 책은 사회적 기업의 대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열거 제시하였다. 사회적 기업이 일차적 접점에서 도우미로서의 역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화된 재능을 기부하는 프로보노 푸블리코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제 아무리 적용가능성이 충분한 사안이라도 유기적으로 조합할 수 있고 실행할 역량이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보노의 길을 통해 용기 있는 실천을 주도하고 나눔의 참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처럼 새로운 자본주의는 도전과 희망을 동시에 잉태한다. 비록 정부의 국가적 기능의 회복방안이 언급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사회적 기업의 대승적 의미를 쉽게 풀어 설명하였기에 보다 많은 대중들의 인식의 물꼬를 틔운 의미 있는 책이라 하겠다. 내가 소비한 선한 행위가 헐벗고 인권이 유린된 제3세 국가의 민중들을 구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의 진실에 색안경을 벗어 던져야 할 때임을 잊지 말아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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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 옛길박물관이 추천하는 걷고 싶은 우리 길
김산환 글 사진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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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휴식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을 통해 육신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정신을 이완시켜 주는 행위의 일종이다. 하지만 급격한 문명화와 현대화로 인해 여행의 본질이 오도되는 경향이 짙다. 세련되고 최신 시설을 갖춘 위락시설이 구비된 휴양지를 선호하는 현실을 대하다 보면 씁쓸함마저 감돈다. 이처럼 여행이 변질된 이유야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최근 들어 여행 그 자체가 주는 경험의 틀과 범위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눈에 뜨이게 늘었다.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의 저자 김산환은 잊힌 옛길을 통해 우리네 산천을 돌아보고 현대화에 매몰된 향수와 정취를 공유하고 회복하고자 이 책을 펴냈다. 신작로가 뚫리고 돌담길이 사라지고 징검다리의 기억이 가라앉은 추억을 오롯이 간직한 옛길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였다. 책을 통해 우리는 상념의 즐거움과 휴식의 충만함을 곁으로 얻을 수 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미천한 것들도 작가를 통해 다듬어진 후라면 태고의 품을 잉태하여 오래도록 간직한 아슴아슴 자연으로 회복되어 새로이 태어난 날 것 그대로의 오감을 자극한다.  



저자는 여느 기행문과 달리 주관적 단상을 맛깔나게 소묘하였다. 이름 모를 들꽃에서부터 옛 시간이 만든 돌담길, 오솔길, 징검다리길 등에 고귀한 생명의 불씨를 불어 넣었다. 하나같이 진득하게 매료시키는 표정에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감촉이 그대로 전율한다. 왜 걷는 것이 쉬는 것이라는 단상을 길어 올렸는지 이내 공감하는 글이라 하겠다.


책은 저자가 밟은 우리네 강산의 구석구석 중 알짜배기만 골라 실었다. 가족중심의 여행을 테마로 구성하였다. 상세한 지역 설명과 지명이야기, 맛집 소개, 걷기 난이도 등 여행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꼼꼼히 기록하여 허투루 넘겨볼게 없다. 물론 이름난 관광지도 있겠거니와 아직 낯선 곳도 종종 자태를 뽐낸다. 무엇보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주목적이기에 번잡함을 일부러 피했다. 읽기도 쉽지만 작가가 직접 담은 사진은 마치 생동감 있게 잡아 낸 펄떡이는 역동감과 숨결이 느껴진다.


전체 3부로 나뉘어 엮었다. 각 장을 걷는 이를 통해 바라 본 풍광을 중심으로 제1부는 물이 주는 원형의 순수함을 녹여 내었다. 시간의 흐름이 마비되어 마치 멈춰버린 굽이굽이 물길이 흘러가는 섬진강자락을 필두로 걷기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제주 올레 길을 지나 마지막 남은 조선의 큰길을 내처 흘렀다. 어느 것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자연이 주는 위대한 작품에 인간의 오만함 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제2부는 경계를 넘어 잇는 고개를 걸었다. 백두대간의 고준산령 대관령의 아스라이 펼쳐 진 눈길의 순간을 담고 한 많은 동강의 뼝대 고개를 온몸으로 넘었다. 자작나무에 편지를 쓰면 맺어진다는 러시아의 전설이 스민 인제 점봉산의 운치는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우락부락 총각들이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꽃에 동해 꽃 꺾기 내기하던 백운산 화절령은 옅은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그렇다고 마냥 좋을 수만은 없듯 탄광이 막히고 도롱이못과 아롱이못의 사연은 가엾기만 하다. 인간이 휩쓸고 간 자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처음 열린 하늘재를 통해 명멸한 아픔의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깃든 월악산은 그 산세 또한 기가 막힌다. 조령을 넘어 문경세재에 얽힌 야사는 그 시절 그 사람들과 함께 걷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영남대로의 중심관문인 문경과 충주를 이어주는 길에 아직도 주막거리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우리 선현들의 결과 얼이 깃든 그 오름길을 따라 거니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기운이 풀릴 것만 같다.


제3부는 물아일체에 맞닿은 풍경의 가운데를 타고 넘었다. 해남 끝자락 두륜산 대흥사로 오르는 길은 자연과 나와 하나 된 혼연일체의 착각을 돋운다. <서편제>와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로 유명해진 유선장은 운치 또한 멋들어진다. 이 모든 것이 도탑기만 하다. 또 장성 축령산에는 춘원 임종국의 나무사랑은 그 얼과 기상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그의 행적이 고귀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것에 다르지 않다.


핏빛처럼 어스러지는 동백꽃길이 곧게 뻗은 전남 강진 백련사와 다산 정약용은 친분은 정겹기만 하다. 정약용이 여유당이라는 호를 버리고 다산이라 바꿔 부른 사연은 옛길을 통해서만 스치는 교감이다. 이쯤 되면 저자의 기행은 세상으로 통하는 부드러운 흙내임 가득한 길처럼 느껴진다. 사자평의 드넓은 화전의 향취가 아스라이 배인 낙동정맥의 기운도 이젠 살갑게 다가선다.


인생은 쉼 없이 걷는 고독한 삶의 일환인지 모른다. 먼저 간 자의 발자취를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어질한 풍광에 도취되고 자연 속으로 교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굳이 어디라도 이름난 곳이 아닐지라도 잊힌 우리네 옛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흥겹기만 하다. 문명화로 치우친 마음의 편식을 저자가 다시 터 준 책을 길라잡이 삼아 시간 내어 따라 걷다 보면 녹음이 전해 주는 풍광에 충만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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