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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동서양의 종족 간 우월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 뿌리가 깊고 넓다. 유럽과 맞닿아 있는 아시아는 문화적, 지리적, 관습적 관점에서 많은 영향과 간섭을 받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에서 출발하는 식민사관은 아시아 전역에 아직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책 「상실속의 상속」은 끈적끈적하고 눅눅한 냄새를 풍긴다. 인도의 신비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가 그대로 풍자되어 나타난다. 인도가 가진 오랜 종교적 배타성으로 인해 카스트제도를 생산하게 되고, 인간 존엄성이 묵살된 계층 간 구조관계가 갠지스 강의 혼탁한 누런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종교적 관점에 의해 억눌린 현실을 저자 키란 데사이는 서양문화에 대한 이상향, 특히 전형적인 백인 우월중심국가인 영국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카스트제도에 굴복된 인간 군상들의 일그러진 자아상과 다양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고발하고 있다.
이 책 「상실속의 상속」은 분노와 냉소적 이미지로 나약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퇴직 판사 재무바이의 1986년을 배경으로 시작되며 불운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판사의 기억속에 잊혀진 판사의 딸 외손녀 사이, 전형적인 하층민을 대변하며 미국이라는 거대자본주의 환상에 사로잡힌 요리사와 그의 아들 비주, 가난한 대가족의 아들로 사는 리안을 중심으로 혼란스러운 인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인도의 성장에 늙은 고목처럼 질기게 발목을 잡고 있는 보수적이고 고루한 시대적 문제에 대하여 의식적인 접근을 시도함과 동시에 인간이 가진 자의식에 대한 본성적 접근을 중첩적으로 시도하여 그로부터 파생된 이야기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또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있는 그대로 사실감 있게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며 태곳적 신성함을 간직한 인도 서북부의 풍광을 아득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인물 간 갈등상황을 맛깔스럽게 소묘하고 있다.
저자 키란 데사이는 요리사와 그의 아들 비주를 통해 일종의 연민의식과 거대 자본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힘겹게 온갖 굴욕과 자존심을 상실해가며 아들 비주를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보내었으나 그를 기다린 초라하고 험난한 현실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볼품없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판사 재무바이는 영국으로의 유학이 계층 간 수직신분상승을 가져 오는 가문의 영광스러운 일로 받아 들여졌으나 정작 유색인종으로의 상대적 열등감에 비뚤어진 감정적 기현상을 잉태하며 오히려 같은 민족에 대한 수치스러움으로 뒤바뀌게 된다. 이런 움직일 수 없는 현실에 스스로 변모하기를 갈망하여 본능의 표출의 도구로 분첩을 바르는 웃지 못 할 희극적 현실을 그려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사이와 그의 가정교사 리안을 통해 계층 간 파괴를 시도하고자 하는 의도로 적절한 로맨스를 가미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히말라야 설원보다 두터운 묵은 관습을 타파하고자 하나 어눌하기 짝이 없는 리안의 본성에 따라 정체성을 잃게 되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며 사이의 영혼에 어둠의 그림자를 깊게 각인시킨다.
이야기는 판사의 애견 무트의 실종으로 미묘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던 심리적 긴장관계가 일시에 무너지게 되고 사이는 리안으로부터 상실 당한 순수한 연정의 감정을 회복할 수 없는 현실과 대치하게 된다. 이와 함께 판사는 요리사에게 무트의 실종을 추궁하며 요리사는 제도적 관습에 순종하며 굴복하게 되고 한편 요리사의 아들 비주는 허황된 성공의 망상에서 빠져 나와 인도로 귀향하게 되며 다시금 혹독한 현실에 부딪히게 되면서 종국을 달린다. 아마도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버릴 수 없는 비현실적이고 삐뚤어진 감정들의 편린들로부터 오롯이 상속받게 된다. 끝닿은 곳을 찾기 힘든 아득한 심연과 같은 어둠의 감정들을.
이렇듯 저자는 나름의 인물 간 묘사를 통해 잃어버린 것에 중점을 두어 때로는 다민족 간 알력과 혼란의 시기를 냉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때로는 오리엔탈리즘으로 둔갑한 문화적, 종교적 비현실성을 꼬집고 있으며 비열하고 엄습하기 짝이 없는 잔혹한 시대적 실상을 녹아내고 있다.
이 책 「상실속의 상속」은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하여 현실감 있게 반영하고 있다. 고착화된 사회적 시대적 문제에 대해 담담함을 간직한 특유의 스타일로 휘적휘적 흘러간다. 인도의 전통적인 진한 카레향과 양고기로 만든 모모의 향처럼 향신료 같은 맛과 비프 스테이크의 서구적 향이 배합된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