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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 ㅣ 터널 시리즈 1
로더릭 고든.브라이언 윌리엄스 지음, 임정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타자의 상상력을 통해 그것이 활자로 구현되고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면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우리가 호흡하고 사는 현실속의 세상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더구나 힘겨운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고 막연하게 받아들이던 사물이나 대상들에 대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가히 위대한 일이라 할 만하다.
이 책 「터널」은 조앤.K.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의 성공 계보를 잇는 탁월한 환타지 소설로 전 세계 이목과 독자들로부터 강렬한 주목을 받았다. 체계적이고 연관성이 뛰어난 스토리텔링, 모티브가 된 소재의 단순함에서 오는 친밀감, 상상력이 빚어 버무린 마법과 같은 신세계, 적절한 갈등구조 등이 갖추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을 내포하고 있다.
저자 로더릭 고든은 집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고고학과 고생물학에 흥미를 두었던 관계로 아마도 이 책의 소재가 된 지하 세계의 구축작업에 전문적인 영역을 확보하여 비현실적이고 미지의 영역의 객관적이고 검증된 접근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담보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세세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로더릭 고든이 가시화하여 완성시켰다면 공저자인 브라이언 윌리암스는 숙련된 영화작업과 예술가적 기질에 기저를 둔 경험을 바탕으로「터널」의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 넣어 가상을 실제로 변모시키는 성과를 이루어 내게 하였다. 이 책 「터널」은 둘 사이의 협조관계가 긴밀하게 이루어 진 보기 드문 합작품이라 하겠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의 영향으로 이야기의 속 그림은 눈에 띄게 낯익은 장면들이 많아 보인다. 아버지 버스터 박사의 돌연 행방불명으로 이 책의 주인공 14세 소년인 윌이 모험을 찾아 떠나는 장면은 <인디애나 존슨>시리즈의 헤리슨 포드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 콜로니로 명명된 지하세계의 스펙타클하고 웅장한 모습은 존 로날드 로웰 톨킨이 지었고 피터 잭슨 감독이 영화화하여 더욱 유명해진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과 겹쳐 보인다. 또한 <나니아 연대기>의 거대하고 장대한 모험적 요소가 가미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러한 환타지 소설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모방에 의한 자기화는 방대한 서사적 구조의 체계적 연결성과 전체적 구성의 균형감에서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즉각적인 반응을 실현케 한다. 이것이 이 책 「터널」의 매력이며 저자의 시놉시스가 분명함을 보여 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완성이 3부로 나뉘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사건전개와 발단과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처리가 들쑥날쑥하여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을 자아내게 한다. 주인공 윌의 친구로 등장하는 체스터가 윌의 모험에 동참하는 계기와 극복과정이 희박해 보이며 윌의 여동생 레베카의 악의 축으로의 갑작스런 전향은 극적상승을 노린 기대효과에 부응하지 못하고 마는 형국이여서 밟히는 잔상으로 남는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영상화를 목표로 작업이 이루어 진 것임을 알게 한다. 헐리우드 식 장편영화의 계보를 잇는 빠른 사건전개와 쉼 없이 이루어지는 갈등요소의 배치는 블롤 버스터 영화의 한편을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영화적 요소는 빠르고 즉일적인 반응에 익숙한 세대에게 충분히 먹힐 수 있는 소재임에 분명하며 롤 플레잉 게임에 빠진 신세대에게 들어맞는 코드라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물로의 이전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작품의 완성도에 목을 멜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책 「터널」이 영상산업을 어는 정도 염두에 두고 집필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짜임새를 갖춘 잘 만들어진 책임에는 분명하다.
두 공저자가 빚어 만든 세계를 바탕으로 표토인(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지하 세계의 콜로니를 지배하는 스틱스 간의 양립하는 대결구조는 참신성이 돋보이게 하며 견고하게 지어 진 이야기의 궤적을 철저하게 관통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는 「반지의 제왕」의 웅장함과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법과 같은 상상력이 창조해 낸 세계의 놀라움에 열광하였다. 이러한 환타지 소설에 몰입하고 빠져 드는 이유는 철저히 영웅적 서사적 구조와 모험담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게다.
고난의 여정을 거쳐 목표를 달성하는 모험담의 구조가 독자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고 이러한 간접경험을 통해 확장된 사고의 영역을 키우게 되고 창의성과 상상력에 무한의 날개를 달아 불가능을 가능케 할 미래의 기술을 앞당기는 현실을 낳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 「터널」은 꾸준히 회자될 것이고 오래도록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