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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인간이 가진 원초적 엄습함은 본성에서 베어 나오는 것일까? 인간의 기억력의 한계로 과거의 기억이 오롯이 망각의 늪을 지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기록된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객관성을 잃을 때가 있다. 역사는 인간의 삶에 끊임없이 반복되어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는 커다란 명제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 「핏빛 자오선」은 그 섬뜩함이 오래도록 뇌리 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게 한다.
저자가 바라 본 세상의 일부는 도덕성을 상실한 무차별한 살육과 약탈의 무자비한 반복으로 인간의 영혼 깊숙이 뿌리내려 어떠한 죄의식이나 윤리적 가치관이 투영되지 못한다. 습관처럼 총구를 겨눠 피 비린내를 동반한 역겨운 악취를 토해 내며 마치 지옥경 같은 세상은 저자가 바라 본 인간의 음습함을 치열하게 소묘하고 있다.
이 책은 19세기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국경지대 사이를 배경으로 원주민인 인디언과의 진정한 명분을 잃은 약탈의 시대를 배경으로 익명의 소년을 따라 전개된다. 소년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혼란한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아파치 인디언을 소탕하는 용병의 무리 속으로 내몰리게 된다. 소년은 머리가죽 사냥꾼으로 불리 우는 용병의 대장격인 글랜턴과 타락한 신부 토빈과 의뭉스럽고 요상한 판사 홀든과 조우하게 된다.
소년은 추악한 용병들의 속에서 빠르게 인간 본성을 상실하게 되고 거침없이 살인과 약탁을 자행하게 된다. 계속되는 머리가죽 사냥으로 쫓기고 쫓는 일상을 반복하게 되고 무차별한 살육으로 인해 결국 서로를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총구를 겨누게 되며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된다.
끝까지 살아남은 소년과 판사는 30년 후 어느 이름 모를 술집에서 조우하게 되며 판사는 그가 행한 과거의 기억을 건조하기 짝이 없는 사막 모래무덤과 같이 덮어 은폐시켜 버리고자 소년을 살해하게 되고 광인처럼 춤의 행위를 통해 합리화 시키며 서서히 미쳐 간다.
이 책은 일반적인 대결구도를 벗어 나 시종일관 악의 편향구조를 이루고 있다. 익숙치않은 구도를 바탕으로 저자는 사물을 의인화 시켜 장소의 이동에 따라 심리세계를 연결시켜 처리하고 있다. 전체적인 배경으로 뒤 덮고 있는 지옥 같은 황량한 사막과 어둠은 그들을 따라 움직이는 심적 변화를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음이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저자는 음습함을 무기로 역사 속에 비친 미국인의 선량한 이미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실존한 역사를 바탕으로 잊혀 진 시간을 되살리고 있다. 이렇듯 저자의 색다른 이야기는 처음의 심리적 거부감을 넘어 점차적으로 빠져 들게 만드는 늪과 같은 놀라운 필력을 보여 준다 하겠다.
또한 독특한 캐릭터인 저능아와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의도적 장치로 삽입하여 이성적 본능을 잃어 버린 인간군상의 피폐한 정신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저능아의 지적한계로 인해 오염되고 방치되어 버린 모습이 어둠에 굴복하는 비열한 모습과 자연스레 연결되어 부합한다.
인간은 야만적이고 통제 불능의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사회적 관습과 윤리적 규범을 스스로 재단하여 통제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목적의식이 분명한 규범의 틀 속에서 타인의 침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종족안전이라는 명분으로 집단적 목적의식을 합리화시켜 내세우며 더러운 죄의식을 씻어 버리는 역사를 새겨 왔다.
인류가 걸어 온 역사의 무수한 장면 속에 저자 코맥 매카시가 허구의 틀로 창조한 세상이 본질적인 관점에서 전혀 이질異質스럽지 않음을 동조하게 하는 것은 역사 속에 각인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역사의 일부분이라 하겠다.
이처럼 「핏빛 자오선」은 다양한 상념을 제공하며 정복자에 익숙한 사고의 틀을 재고하는 계기를 불어 넣어 주며 우리네 역사 속에 깃든 아픈 상흔을 기억하게 하는 시간과 사색의 폭넓은 사고를 일깨워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