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 영악한 자본주의 뒤집기
전병길.고영 지음 / 꿈꾸는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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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은 이제 단순한 사회적 부조의 또 다른 의미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열악한 생산자의 생산 가치를 보장하고 자본주의의 탐욕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튼튼한 교량역할 외에도 인류의 미래를 담고 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제품의 직접거래로 착한 윤리적 소비의 주체로 새로운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확립하는 일에 동참하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정무역의 차지하는 상징성에 비해 지지기반이 매우 옅은 현실임을 감안할 때 그 자생력과 토양이 척박하다.

그런 환경의 결정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이제 전 세계 공통 헤게모니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레이거니즘으로 대변되는 레이건정부의 이념정책으로 촉발된 신자유주의의는 전 세계 이념 갈등을 극복하는 동인으로 작용하였으며 각 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주류적 가치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금세기 들어 미국 발 금융 위기는 비판 없는 이념의 위험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미 그 이념적 허구가 밑바닥부터 균열되기 시작하여 드러나기 시작하였음에도 아직 그 허상에 사로잡혀 우상처럼 숭배하고 있는지 모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공정을 즐겨 말한다. 감세를 통한 정부기구의 축소와 무역장벽의 철폐, 다국적 기업의 출현은 경제주체의 경쟁의 장을 무장해제 시켜 버렸다. 사다리 걷어차기로 유명한 캠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 장하준 교수 또한 기울어진 경기장에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공정하지 못한 경제 환경은 침잠한 제국주의의 비릿한 열망에 다름 아니다. 공공의 선을 ‘자율’로 가린 그들의 공정은 오만함과 영악함 그 자체이다.

실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IMF, IBRD, WHO와 같은 다자간 협력기구들은 상당부분 왜곡된 이념적 구조를 보여준다.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성향 또한 잘 사는 나라에 유리한 기득권보호와 자국이익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태반이다. 이러한 굴절되고 왜곡된 시장 환경을 개선하고 미래의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대안정책의 바람이 어느 때 보다 뜨거운 현실이라 하겠다.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는 통합된 사회를 지향하고 함께 공생하는 사회적 기업의 출현의 필연성을 역설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책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회적 기업의 알레고리를 그 이념적 태동과 연결 지어 설명하고 제3세 국가를 위시한 사회적 기업의 면모를 소개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새로운 대안경제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고 풀뿌리 경제주체의 사회 참여로 함께 사는 세상의 진정한 의미를 구축하는 데에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책의 기저를 흐르는 기본적인 사상은 새로운 자본주의(WEconomy)로 지칭되는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이념적 흐름으로 대변된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과 호주의 데이비드 부소의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연대부조의 또 다른 발견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꿈을 실현한 아이스크림 벤엔제리의 베풂은 기업의 존재의의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렇듯 저자는 사회적 기업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할 대안으로 지속가능경영의 구심점을 찾는 통합체로 보았다. 사회적 기업이 기존의 약탈경제를 무너뜨리고 인류의 미래를 열어 갈 청사진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돌파구다. 이 시대를 변화시킬 혁신적인 이념으로 열악한 사회구조를 재편하는 커다란 틀로써 중요성을 일갈한다. 이로써 제2, 제3의 아름다운 가게와 사회연대은행의 출현을 열망하고 한국식 사회적 기업의 토착화를 기대한다.

또한 책은 사회적 기업의 대상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열거 제시하였다. 사회적 기업이 일차적 접점에서 도우미로서의 역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화된 재능을 기부하는 프로보노 푸블리코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제 아무리 적용가능성이 충분한 사안이라도 유기적으로 조합할 수 있고 실행할 역량이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보노의 길을 통해 용기 있는 실천을 주도하고 나눔의 참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처럼 새로운 자본주의는 도전과 희망을 동시에 잉태한다. 비록 정부의 국가적 기능의 회복방안이 언급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사회적 기업의 대승적 의미를 쉽게 풀어 설명하였기에 보다 많은 대중들의 인식의 물꼬를 틔운 의미 있는 책이라 하겠다. 내가 소비한 선한 행위가 헐벗고 인권이 유린된 제3세 국가의 민중들을 구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의 진실에 색안경을 벗어 던져야 할 때임을 잊지 말아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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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 옛길박물관이 추천하는 걷고 싶은 우리 길
김산환 글 사진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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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휴식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을 통해 육신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정신을 이완시켜 주는 행위의 일종이다. 하지만 급격한 문명화와 현대화로 인해 여행의 본질이 오도되는 경향이 짙다. 세련되고 최신 시설을 갖춘 위락시설이 구비된 휴양지를 선호하는 현실을 대하다 보면 씁쓸함마저 감돈다. 이처럼 여행이 변질된 이유야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최근 들어 여행 그 자체가 주는 경험의 틀과 범위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눈에 뜨이게 늘었다.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의 저자 김산환은 잊힌 옛길을 통해 우리네 산천을 돌아보고 현대화에 매몰된 향수와 정취를 공유하고 회복하고자 이 책을 펴냈다. 신작로가 뚫리고 돌담길이 사라지고 징검다리의 기억이 가라앉은 추억을 오롯이 간직한 옛길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였다. 책을 통해 우리는 상념의 즐거움과 휴식의 충만함을 곁으로 얻을 수 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미천한 것들도 작가를 통해 다듬어진 후라면 태고의 품을 잉태하여 오래도록 간직한 아슴아슴 자연으로 회복되어 새로이 태어난 날 것 그대로의 오감을 자극한다.  



저자는 여느 기행문과 달리 주관적 단상을 맛깔나게 소묘하였다. 이름 모를 들꽃에서부터 옛 시간이 만든 돌담길, 오솔길, 징검다리길 등에 고귀한 생명의 불씨를 불어 넣었다. 하나같이 진득하게 매료시키는 표정에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감촉이 그대로 전율한다. 왜 걷는 것이 쉬는 것이라는 단상을 길어 올렸는지 이내 공감하는 글이라 하겠다.


책은 저자가 밟은 우리네 강산의 구석구석 중 알짜배기만 골라 실었다. 가족중심의 여행을 테마로 구성하였다. 상세한 지역 설명과 지명이야기, 맛집 소개, 걷기 난이도 등 여행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꼼꼼히 기록하여 허투루 넘겨볼게 없다. 물론 이름난 관광지도 있겠거니와 아직 낯선 곳도 종종 자태를 뽐낸다. 무엇보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주목적이기에 번잡함을 일부러 피했다. 읽기도 쉽지만 작가가 직접 담은 사진은 마치 생동감 있게 잡아 낸 펄떡이는 역동감과 숨결이 느껴진다.


전체 3부로 나뉘어 엮었다. 각 장을 걷는 이를 통해 바라 본 풍광을 중심으로 제1부는 물이 주는 원형의 순수함을 녹여 내었다. 시간의 흐름이 마비되어 마치 멈춰버린 굽이굽이 물길이 흘러가는 섬진강자락을 필두로 걷기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제주 올레 길을 지나 마지막 남은 조선의 큰길을 내처 흘렀다. 어느 것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자연이 주는 위대한 작품에 인간의 오만함 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제2부는 경계를 넘어 잇는 고개를 걸었다. 백두대간의 고준산령 대관령의 아스라이 펼쳐 진 눈길의 순간을 담고 한 많은 동강의 뼝대 고개를 온몸으로 넘었다. 자작나무에 편지를 쓰면 맺어진다는 러시아의 전설이 스민 인제 점봉산의 운치는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우락부락 총각들이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꽃에 동해 꽃 꺾기 내기하던 백운산 화절령은 옅은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그렇다고 마냥 좋을 수만은 없듯 탄광이 막히고 도롱이못과 아롱이못의 사연은 가엾기만 하다. 인간이 휩쓸고 간 자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처음 열린 하늘재를 통해 명멸한 아픔의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깃든 월악산은 그 산세 또한 기가 막힌다. 조령을 넘어 문경세재에 얽힌 야사는 그 시절 그 사람들과 함께 걷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영남대로의 중심관문인 문경과 충주를 이어주는 길에 아직도 주막거리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우리 선현들의 결과 얼이 깃든 그 오름길을 따라 거니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기운이 풀릴 것만 같다.


제3부는 물아일체에 맞닿은 풍경의 가운데를 타고 넘었다. 해남 끝자락 두륜산 대흥사로 오르는 길은 자연과 나와 하나 된 혼연일체의 착각을 돋운다. <서편제>와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로 유명해진 유선장은 운치 또한 멋들어진다. 이 모든 것이 도탑기만 하다. 또 장성 축령산에는 춘원 임종국의 나무사랑은 그 얼과 기상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그의 행적이 고귀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것에 다르지 않다.


핏빛처럼 어스러지는 동백꽃길이 곧게 뻗은 전남 강진 백련사와 다산 정약용은 친분은 정겹기만 하다. 정약용이 여유당이라는 호를 버리고 다산이라 바꿔 부른 사연은 옛길을 통해서만 스치는 교감이다. 이쯤 되면 저자의 기행은 세상으로 통하는 부드러운 흙내임 가득한 길처럼 느껴진다. 사자평의 드넓은 화전의 향취가 아스라이 배인 낙동정맥의 기운도 이젠 살갑게 다가선다.


인생은 쉼 없이 걷는 고독한 삶의 일환인지 모른다. 먼저 간 자의 발자취를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어질한 풍광에 도취되고 자연 속으로 교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굳이 어디라도 이름난 곳이 아닐지라도 잊힌 우리네 옛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흥겹기만 하다. 문명화로 치우친 마음의 편식을 저자가 다시 터 준 책을 길라잡이 삼아 시간 내어 따라 걷다 보면 녹음이 전해 주는 풍광에 충만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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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사회 5
파스칼 피크 외 지음, 배영란 옮김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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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만물의 영장이며 마지막 진화과정에 이른 선택받은 종種이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꿰뚫고 인식하는 유일한 종으로 받아들인다. 진화의 험난한 파고를 열어젖히고 시간의 통찰을 뛰어 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진화의 연속성과 인식은 인간 스스로 규정짓고 개념화 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원숭이나 침팬지와 같이 영장류에 속하는 -결정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群을 고등동물의 부류 속에 만연히 던져 놓아도 무방할까? 아니면 사람과 다른 진화과정의 실패의 과정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처럼 인간이 고등동물과 다른 결정적인 이유를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까?

이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인류 역사에 지워진 거대담론 즉, 인간의 사람화 과정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묻힌 인식의 범주를 수면위로 끄집어내었다. 저자들은 프랑스의 제 분야의 전문가로 고인류학자 파스칼 피크, 신경생물학자 장 디디에 뱅상, 철학자 미셀 세르가 자신의 지식언어로 시각적 공유를 시도하였다. 주제가 주는 보편타당한 함의와 공저자의 통찰의 지혜가 어우러져 잊힌 인간의 존재근원을 고민하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


인간, 세상에 대한 열정적인 해석자


인간은 동물과 달리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계를 형성하는 문화라는 엄연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파악한 장 디디에 뱅상은 동물과 사람의 커다란 차이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뇌의 질적 수용 체의 차이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파악되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나서 16년 동안 시냅스와 뉴런의 지속적인 용솟음으로부터 결정적인 차이를 달리하기에 접근의 차원을 뒤집을 수 없음에 있다. 따라서 저자는 보노보나 침팬지가 직립보행을 근간의 습성을 보인인간과 유사한 영장류라 할지라도 선택적 유전자의 이시성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차이라 역설한다.


인류 태동기의 인간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도구의 사용으로 개념 지어 지곤 한다. 사람은 도구라는 것으로 인식한 파스칼 피크는 우발적 차이든 태생적 차이든 인간을 규정짓는 명백한 가늠자로 본다. 여태껏 인간의 위치가 최종 먹이사슬의 고점에 위치한 것으로 인식하였다면 다양한 인간의 위치와 자연과의 관계를 저자는 보여 준다. 인간이 생래적 환경을 극복하고 직립보행, 도구사용, 문화생활, 사회생활, 먹이공유, 사냥, 문화 등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형성한 것이 유사 대형유인원과의 차이가 없음은 인간과 그들이 하나라는 점을 알려주는 대목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인간을 무엇으로 규정하였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근접한 인류의 기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로시이다. 이로써 호모의 경계에 접근하였으며 더욱 발전한 네안데르탈인과 현재의 인류와 가장 유사한 크로마뇽인까지 계통적 차이를 살폈다. 사람이 동물과 차이를 보이는 현실은 인간이라는 발명품의 정신적 공유에 의한 획기적인 혁명에 다름 아니다. 그들과 다른 지구의 기억 속에 인류의 미미한 순간이 하나의 파생 진화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제 인식의 재고를 여는 하나의 실험무대로 각인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오랫동안 원숭이 몸 안에 갇혀 있던 ‘자유와 해방의 돌파구’였던 것으로 이는 진화의 힘이다.(p-64, 요약)


인류의 시대: 창조적 진화에서 진화의 창조자로


문명의 발전의 속도는 시간의 개념을 무색케 한다. 시간의 흔적과 궤적은 인간의 지배로 진화의 층위를 흔들고 자연의 시간을 장악하였다. 이것이 인간이 유일하게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종으로 인식되는 주된 이유다. 저자 미셀 세르는 철학적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고차원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인간이 기술의 발전으로 이룩한 현재의 소프트 사이언스를 통해 게놈 지도의 해석, DNA구조의 재배열 등 신의 영역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자연이 머금고 있는 체험의 시간을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시간을 장악하게 된 것은 탈분화 된 인간의 시대를 개척하였다. 인간이 더 이상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시간을 활용하고 조작하는 지위에 섰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자가 진화의 길을 가는 생물로 파악하였다. 인간의 역사가 시간의 연속성을 압축해 놓은 진화 과정의 상대적 제어과정으로 받아들인 것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이제 인간의 정의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진입했다. 인간이 종의 출현에 미미한 존재로 기억되는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다위니즘의 진화가 설득력이 앞선다. 인간 또한 진화의 연속성에 비켜 난 돌연변이가 아니다. 인간이 시간을 장악함으로써 얻은 헤라클레스의 불꽃을 오만함으로 휘두른다면 또 다른 종의 주인이 출현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얇은 판본에 비해 생각의 무게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책이다. 인간의 정의가 일파만파로 규정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하더라도 일정한 영역의 틀 속에 갇히는 것 또한 인간이 만든 범주에 불과하다. 이러한 범주의 참조 틀을 새롭게 조명하는 저자들의 함의는 이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함께 고민해 봄직한 의미심장한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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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앤드 밸리 - 절망의 골짜기에서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라
스펜서 존슨 지음, 김유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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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산에 오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산을 오르다보면 가파른 오르막길과 깎아지른 듯 내리막길을 연신 반복하게 된다. 까마득한 오르막길을 한없이 오르다보면 끝 간 곳 없는 막막함에 아득할 때가 있다. 허약해진 체력에 몸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마냥 맥없이 터덜거리게 되고 가슴으로 고통으로 채워진다. 왜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을 사서 하는 지 괜한 자책감과 열패감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다. 설상가상 비까지 내려 당황스러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이와 같은 고통만 지속된다면 어느 누가 오르겠는가. 순간의 고통이 영원한 것처럼 다가와도 골짜기를 벗어나 정상에 오르면 청량한 내음과 탁 트인 시야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마음이 눈 녹 듯 부서진다. 이처럼 산은 사람의 인생역경과 매우 흡사함을 공감한다. 이 책 <피크 앤드 밸리>는 문자 그대로 정상과 골짜기에 천착한 의미를 우화로 엮었다.

 


스펜서 존슨은 금세기 최고의 자기계발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을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그가 이미 발표한 전작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선물>은 전 세계인의 가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겪었을 삶의 조각을 퍼즐을 맞추듯 명쾌한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강점이 있다. 시대가 달라도 지역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와 처세가 담긴 그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차분히 가라앉게 만드는 힘이 묻어난다.

 


이야기는 성공을 향해 도전하는 젊은이와 성공의 정상에 선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실타래를 풀었다. 젊은이는 인생의 가치와 꿈을 이루고 성공이라는 이상을 성취기 위해 겁 없이 맞서 부딪히는 용기를 가지고 헤쳐 나간다. 하지만 현실은 두려움이라는 괴물 앞에 매번 주춤하게 된다. 두려움은 안주와 회피로 우리 삶을 옭아매는 올가미와 같다. 젊은이에게 닥친 두려움은 매너리즘의 나락으로 밀어 버리고 만다.

 


젊은이는 산을 오르는 동안 노인을 만나게 된다. 노인은 젊은이의 곤란한 처지와 열패감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고 정상과 골짜기에 빗댄 처세술을 가르쳐 준다. 처세는 다름 아닌 오르내림의 법칙 즉, 마음의 평정을 가지고 긍정적인 사고와 겸손의 미덕을 항시 유지하며 더불어 베풀 줄 아는 삶을 살 것을 권한다. 젊은이는 노인의 가르침에 감복을 받고 골짜기로 내려가 다시 역경과 맞서 싸워 이겨 내며 정상의 달콤함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인생이 이렇게 단순하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도 아는 사실.

 


정상의 오만함에 젖어 주위의 관계를 소원하게 되고 아집과 독선의 삶으로 빠져 들게 된다. 젊은이는 다시금 찾아온 실패의 나락에 좌절하고 엄청난 고뇌에 빠져 들판으로 여행을 떠난다. 들판은 산과 다른 끝없는 초원과 황량함이 감돈다. 하지만 젊은이는 이 또한 휴식의 연장임을 깨닫고 다시 노인을 찾아 산을 오른다. 젊은이는 보다 더 높은 정상을 오르는 동안 진귀한 보석을 발견하고 미처 깨우치지 못한 인생의 이정표를 발견한다. 바로 명확한 비전을 갖게 된다.

 


노인은 산의 오르내림의 순간과 현실을 삶을 통찰하는 지혜로 빗대어 슬기롭게 대처하도록 돕는다. 침체기의 절망이 지속될 것 같은 기분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해석하고 긴장을 풀고 평정심을 유지하면 절로 풀린다고 격려한다. 또한 절정의 순간으로 밀어 올린 강인한 긍정에너지와 열망을 마음속에 그리고 노력을 다할 것을 제시한다.

 


이처럼 젊은이와 노인의 우화를 통해 저자는 깨닫지 못한 평범함에 깃든 진리는 아주 간명하게 역설한다. 삶의 순간이라는 것이 선택과 관계의 연속이기에 누구에게나 비켜갈 수는 없는 진실이다. 오르내림의 인생법칙으로 명명한 처세는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지향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인생의 굴곡을 다스리는 지혜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복잡다단한 인생의 지침으로 사용할 좋은 본보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현실과 친해져라

역경이나 고난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 이용하라

전성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관리하라

명확한 비전을 따르라

이 법칙을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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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가고 싶다 - 소설가 이순원의 강릉이야기
이순원 지음 / 포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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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강릉 특별한 이야기


눈처럼 부서지는 포말의 흔적을 간직한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곳,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가 선호하는 위한 최적의 휴양지처로 꼽는 곳, 바로 강릉이다. 강릉은 자연이 품은 기억을 그대로 투영한 곳이다. 설악산을 위시한 태백산맥의 험준한 줄기가 뻗어 내려 와 그 기상과 위세가 차고 넘친다. 절로 막혔던 기운이 뚫리게 하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지녔다.


이 책 <강릉에 가고 싶다>의 저자 이순원은 강릉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그런 관계로 강릉의 속속들이 사정을 손금 들여다 보 듯 알차게 꾸몄다. 조금은 특별한 강릉의 명소를 소개하고 볼거리, 먹을거리, 놀 거리를 가족여행의 에세이로 굽이굽이 흘러 모았다. 그런 만큼 쉽게 읽히고 사진 속 멋진 풍경에 금방 마음을 뺏기게 만든다. 더불어 가족여행이 주는 친밀감이 담뿍 담겨 있어 여행을 통해 더 넓은 마음을 담는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하늘의 끝자락 대관령을 필두로 출발한다. 대관령 언저리 듬성듬성 세워 진 풍력발전기의 위용에 감탄하고 선현들의 지혜와 얼이 담긴 슬기를 배운다. 저자와 아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 작은 사물 하나에도 질서 정연한 자연의 이치와 풍경이 담겨 있음에 동조하게 한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릴 수 있다’는 조선시대 유한준 선생의 통찰에 빗댄 표현은 삼라만상 이치에 이르는 바로 그것이다. 


예로 강릉은 소나무와 바다로 유명한 도시다. 그 중 금강 송은 단연코 으뜸이다. 한때 소나무제선충의 번식으로 위협받기도 하였으나 어느 곳보다 자연 그대로 보존이 되고 있다. 강릉의 여행길에 소나무길이 빠지지 않는 주된 이유 또한 금강송 우듬지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사람의 영혼마저 정화시키게 할 만큼 그 향 또한 그윽하다. 조선시대의 궁궐의 중요 재료로만 사용될 만큼 그 가치가 뛰어났다 한다. 책은 금강송의 유래와 위령제를 상세히 기록하였기에 눈여겨 볼만 하다.


TV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모래시계에 얽힌 정동진의 추억은 인연이 꽤나 깊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모래시계부터 기차역사에 잔잔히 내깔리는 주제곡까지. 이곳은 모두를 감상에 젖게 하고 착각에 빠지게 하는 기분 좋은 마법을 부린다. 한껏 부풀어 오른 기분은 환상의 바다열차로 업그레이드된다. 바다로부터 전해 오는 기별이 닿을 듯 말듯 아스라이 잡힌다. 사진만으로도 탄성과 환호가 절로 터지게 한다. 


저자는 강릉에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할 푸른 길로 헌화로를 꼽는다. 세월이 깎아 빗은 기암절벽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복한다. 여기가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바닷길로 명명되었다하니 그 자태를 표현하기란 두말 할 나위 없다 하겠다. 우리네 산천이 어디든 구구절절한 사연을 간직하지 않은 곳이 없으랴마는 강릉의 산천은 그 자태가 참으로 곱다. 


이런 까닭일까? 강릉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류작가 허난설헌과 대표적인 어머니상으로 지칭되는 신사임당을 배출하였다. 아마도 천혜의 자연환경이 사람의 심성 또한 그리 닮게 만든 모양이다. 유수한 전통을 간직한 강릉향교, 국보 제51호 강릉객사문, 조선 사대부의 위상을 오롯이 간직한 선교장 등등. 기상과 절개가 절로 피어난다. 또 강릉에 들른다면 오죽헌과 경포대는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이밖에도 저자를 쫓아 간 강릉의 명소는 정동진 크루즈호텔, 우리나라 커피의 장인이 정성이 살아 숨 쉬는 커피이야기, 축음기의 본고장 미국보다 훨씬 많은 고품을 수집한 참소리 박물관, 동치미 막국수의 기막힌 맛 등 옹골진 뒷이야기가 재미나게 표현되었다.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가벼운 재미 속에 건강하게 잘 먹으며 여행하는 것이 최고라는 저자의 말은 한번쯤 되새겨 봄직하다. 편리와 인위적인 것에만 익숙해진다면 남는 게 없는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여행에서 오는 신선한 에너지는 일상에 찌든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저자의 강릉이야기에 한껏 빠져 보고 피로를 푸는 건강여행으로 계획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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