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사회 5
파스칼 피크 외 지음, 배영란 옮김 / 알마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이란 만물의 영장이며 마지막 진화과정에 이른 선택받은 종種이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꿰뚫고 인식하는 유일한 종으로 받아들인다. 진화의 험난한 파고를 열어젖히고 시간의 통찰을 뛰어 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진화의 연속성과 인식은 인간 스스로 규정짓고 개념화 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원숭이나 침팬지와 같이 영장류에 속하는 -결정적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群을 고등동물의 부류 속에 만연히 던져 놓아도 무방할까? 아니면 사람과 다른 진화과정의 실패의 과정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처럼 인간이 고등동물과 다른 결정적인 이유를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까?

이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인류 역사에 지워진 거대담론 즉, 인간의 사람화 과정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묻힌 인식의 범주를 수면위로 끄집어내었다. 저자들은 프랑스의 제 분야의 전문가로 고인류학자 파스칼 피크, 신경생물학자 장 디디에 뱅상, 철학자 미셀 세르가 자신의 지식언어로 시각적 공유를 시도하였다. 주제가 주는 보편타당한 함의와 공저자의 통찰의 지혜가 어우러져 잊힌 인간의 존재근원을 고민하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


인간, 세상에 대한 열정적인 해석자


인간은 동물과 달리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계를 형성하는 문화라는 엄연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파악한 장 디디에 뱅상은 동물과 사람의 커다란 차이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뇌의 질적 수용 체의 차이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파악되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나서 16년 동안 시냅스와 뉴런의 지속적인 용솟음으로부터 결정적인 차이를 달리하기에 접근의 차원을 뒤집을 수 없음에 있다. 따라서 저자는 보노보나 침팬지가 직립보행을 근간의 습성을 보인인간과 유사한 영장류라 할지라도 선택적 유전자의 이시성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차이라 역설한다.


인류 태동기의 인간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도구의 사용으로 개념 지어 지곤 한다. 사람은 도구라는 것으로 인식한 파스칼 피크는 우발적 차이든 태생적 차이든 인간을 규정짓는 명백한 가늠자로 본다. 여태껏 인간의 위치가 최종 먹이사슬의 고점에 위치한 것으로 인식하였다면 다양한 인간의 위치와 자연과의 관계를 저자는 보여 준다. 인간이 생래적 환경을 극복하고 직립보행, 도구사용, 문화생활, 사회생활, 먹이공유, 사냥, 문화 등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형성한 것이 유사 대형유인원과의 차이가 없음은 인간과 그들이 하나라는 점을 알려주는 대목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인간을 무엇으로 규정하였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근접한 인류의 기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로시이다. 이로써 호모의 경계에 접근하였으며 더욱 발전한 네안데르탈인과 현재의 인류와 가장 유사한 크로마뇽인까지 계통적 차이를 살폈다. 사람이 동물과 차이를 보이는 현실은 인간이라는 발명품의 정신적 공유에 의한 획기적인 혁명에 다름 아니다. 그들과 다른 지구의 기억 속에 인류의 미미한 순간이 하나의 파생 진화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제 인식의 재고를 여는 하나의 실험무대로 각인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오랫동안 원숭이 몸 안에 갇혀 있던 ‘자유와 해방의 돌파구’였던 것으로 이는 진화의 힘이다.(p-64, 요약)


인류의 시대: 창조적 진화에서 진화의 창조자로


문명의 발전의 속도는 시간의 개념을 무색케 한다. 시간의 흔적과 궤적은 인간의 지배로 진화의 층위를 흔들고 자연의 시간을 장악하였다. 이것이 인간이 유일하게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종으로 인식되는 주된 이유다. 저자 미셀 세르는 철학적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고차원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인간이 기술의 발전으로 이룩한 현재의 소프트 사이언스를 통해 게놈 지도의 해석, DNA구조의 재배열 등 신의 영역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자연이 머금고 있는 체험의 시간을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시간을 장악하게 된 것은 탈분화 된 인간의 시대를 개척하였다. 인간이 더 이상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시간을 활용하고 조작하는 지위에 섰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자가 진화의 길을 가는 생물로 파악하였다. 인간의 역사가 시간의 연속성을 압축해 놓은 진화 과정의 상대적 제어과정으로 받아들인 것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이제 인간의 정의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진입했다. 인간이 종의 출현에 미미한 존재로 기억되는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다위니즘의 진화가 설득력이 앞선다. 인간 또한 진화의 연속성에 비켜 난 돌연변이가 아니다. 인간이 시간을 장악함으로써 얻은 헤라클레스의 불꽃을 오만함으로 휘두른다면 또 다른 종의 주인이 출현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얇은 판본에 비해 생각의 무게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책이다. 인간의 정의가 일파만파로 규정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하더라도 일정한 영역의 틀 속에 갇히는 것 또한 인간이 만든 범주에 불과하다. 이러한 범주의 참조 틀을 새롭게 조명하는 저자들의 함의는 이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함께 고민해 봄직한 의미심장한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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