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명화되고 보편적 정의가 지배적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비이성적이거나 몰상식적인 일들에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원초적인 아픔의 형태가 아닐지라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자라나는 연대된 믿음이다. 어떻게 보면 봉건제 사회에서든 민주제 사회에서든 보편적 선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때로 잔인하고 더할 나위 없이 추악스럽다. 아픔의 형태가 원초적일수록 더 크게 잔혹함의 형태는 무뎌지고 아픔에 대한 고통척도의 비례가 비정상적으로 재단된다. 더욱이 제도화된 기관의 이면 속에 감춰진 폭력은 때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참혹한 역사의 어두운 사실에 기반한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세운 미혼모를 위한 보호소이며 입양시설이었다. 구휼시설의 타락은 더 철저하게 무너졌고 파장효과는 매우 강력했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인권유린의 실상은 가닿지 못한 현실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화자를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불편했고 차가운 고통은 사뭇 낯설기만 한다. 하루하루 오늘을 버티게 한 노동의 대가에 실로 감사하며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중년의 필부를 통해 바라 본 타인의 고통은 많은 물음을 제시한다. 작가의 의도가 천착한 바가 여과없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은 가벼웠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시나브로 스며들지만 암초에 걸려 소용돌이치는 물결처럼 파문은 오래도록 자리 잡는다. 불의와 타협한 시간을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선을 통해 현실속의 자아를 선의로 이끄는 과정은 매우 감동스럽다. 이미 이야기는 영상화되어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지만 그 전에 활자를 통해 바라 본 감동을 느끼길 권한다.

 

이야기가 추동하는 힘은 간결하지만 빠르게 퍼져 오래도록 여운을 새기는 힘을 가진 책임에 틀림없다. 어느 시대에 살았건 어느 곳에 터를 내렸건 역사의 층위에 기억된 아픔과 야만의 폭력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타락하고 오염되며 취약한 구조의 결과물인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역사의 시간 곳곳에 나타난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즉 공공의 선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희망처럼 다가온다.

 

이렇듯 작가의 책은 처음이지만 단숨에 읽혔다. 이야기의 얼개가 단단한 것은 사실에 기반을 해서 그러하겠으나 종교적 위선의 충격이 관념의 거짓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를 통해 공허한 허무성에 실존적 물음까지 다양한 생각의 지평이 펼쳐진다. 연민의 한계와 양심의 명령 사이의 절묘한 대립은 이 책이 보여줄 원초적 물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