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순하다. 먹고 자기를 숱해 반복해도 잠은 소멸되지 않는 듯하다. 그 잠 속에서 아이는 변하고 또 변한다. 배냇짓이 강렬해질수록 아이는 또렷해진다. 제 풀에 웃고 울기를 오고가며 미지의 세계를 유영하는 것 같다. 신기하기만 하다. 기억에 없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망각처럼 오묘하다. 

  무릎을 세우고 아이를 가만히 눕혀 본다. 아이는 바람처럼 가볍다. 부러질 듯 가녀린 손끝이 굳은 살 위로 미끄러질 때 저릿한 감촉이 온몸을 훑는다. 전율은 미성처럼 부드럽고 청량하다. 아이의 내밀한 사생활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다. 풋풋한 향취가  봄내음처럼 포근하다. 향취는 뛰어난 정화제다. 아이로부터 묵은 근심을 덜어 낸다.

# 2

  아이는 거울처럼 속임이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모방이 배움의 첩경이라는 격언을 되새기면 틀림이 없다. 현명한 아이로 길러 내려면 본보기가 건실해야 한다. 아이는 그 건실함을 롤모델로 함은 당연지사다. 이제 학교생활을 시작한 큰 아이는 나와는 다른 듯 닮았다. 하지만 기질은 어찌할 수 없는 본성이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나조차 싫은 나를 발견한다.

  습관은 티끌로 시작해 단단한 바위가 된다. 부정적인 행동일수록 더 굳고 견고해진다. 평소 나는 상황을 살피는 버릇이 있다.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나누고 따져 벗어나려는 행동에서 기인한다.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증후군이랄까? 설익은 방어기제가 롤모델로 삼은 대상으로부터 관계된 모든 행동을 답습하는 결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아이는 어른을 발판으로 딛고 세상을 본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습관이 성격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본성과 성격이 결합되면 아이의 정체성은 결정된다. 정체성의 핵심은 자존감과 무관치 않다. 자존감은 상황을 주도하는 힘이 될 것이며 스스로 일어서는 동인이 된다. 그렇지만 머리로 이해했으나 마음으로는 너그럽지 못한 것이 인간이다. 필부에 불과한 나로서는 아이의 행동에 토를 달게 되고 믿음의 깜냥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 3

 아이는 아직 제도가 만든 틀을 이해하지 못한다. 먼저 해야 하는 일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즐긴다. 나는 산만함으로 금세 단정 짓곤 하지만 다시 곱씹어 보면 생각의 고리를 억누르는 행동이 아닌지 모른다. 시간을 나누고 약속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아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만든 관계의 네트워크를 지키기 위한 규범화된 규칙 내지는 사회화가 빚은 결과이다. 아이는 혼란스럽다. 마음껏 하고픈 행동을 통제받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모든 것에 제약이 뒤따른다는 사실에 말이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주도면밀하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사회가 요구하는 전인간의 모습에 다가선다. 칭찬스티커에 늘어나는 개수만큼 행복해 하고 이유 없이 즐거워한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도 아이는 피아노 치기에 황홀해한다. 이렇듯 아이는 제 스스로 타협한다. 기실 조급함은 아이보다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충분히 잘 할 수 있음에도 못내 채근하는 것은 내게 사라진 여유가 절실하다. 그러므로 아이의 비밀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단방약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3-2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너무 이뻐요........
저여, 곡우님의 글을 읽으면서 아가야가 막 떠올라요.
투명하고 아름답고 곱네요.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죠. 놀랍구요.

아,,,,,,,,, 저두 어디서 아기가 뚝 떨어지면 좋겠어요. 너무 부러워요. 하지만 제가 낳을 생각하니 까마득해서. ^^
곡우님은 옆지기님께 진짜 감사드리세요, 저같은 여자두 있으니까요~ 홍홍.

穀雨(곡우) 2011-03-29 17:15   좋아요 0 | URL
생명의 신비를 이제사 조금 배웁니다. 더불어 감사하는 마음도....

양철나무꾼 2011-03-2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제가 보편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아이의 상상력은 제한 되더라구요~
예의범절이나 규범이랑은 또 다르게...아이가 살 세상은 우리가 사는 이세상이랑은 또 다르니까, 아이가 무한한 상상력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돈은 넉넉히 물려줄 수는 없지만,
무한 상상력, 창의력은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穀雨(곡우) 2011-03-29 17:16   좋아요 0 | URL
보편성의 잣대에 길들여진 제 자신이 무섭습니다.
아이의 상상력의 걸림돌이 될까봐 말이지요...^^